나도 몰래 내가 ‘마약류’ 복용자?

입력 2015.10.25 (22:29) 수정 2015.10.2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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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에서 연구직으로 일하고 있는 김모 씨, 자신도 모르는 새 충격적인 일을 당했다며 힘겹게 입을 열었습니다.

<인터뷰> 김 씨(명의 도용 피해자) : "기분이 찝찝한 정도가 아니라 이건 누가 내 이름으로 이렇게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훔쳐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받았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김 씨(명의 도용 피해자) : "이런 전력이 있다는 거 사회생활하는데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아찔했죠."

<오프닝>

인간의 중추신경을 자극하거나 억제시킬 수 있는 향정신성 의약품, 의학 서적에는 마약류로 분류돼 있고 오남용할 경우 인체에 크게 해가 된다고 적혀있습니다.

의존성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처방하지도 않고 또 복용도 조심해야하는데요.

누군가 이런 약을 나의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으로 처방받는다면 어떨까요?

황당하지만 이런 일이 현실에서 쉽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실태를 낱낱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어깨뭉침으로 지난 5월 약국을 찾았던 김 씨는 약사에게서 일주일전 이미 향정신성 성분이 든 약을 처방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직감한 김 씨,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를 찾아 자신의 의료기록을 확인했고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누군가가 김 씨 이름으로 1년 여에 걸쳐 모두 백여 알 가까이 향정신성 약품을 처방받은 것입니다.

<인터뷰> 김 씨(명의 도용 피해자) : "지금도 솔직히 이 사람, 다른 명의로 처방을 받고 있을 것 같아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죠. 만약 제가 몰랐으면 계속 제 이름으로 그 의약품 처방받았을 수도 있고..."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여성 한 명을 섭외해 무작위로 한 의료원에 들어가 봤습니다.

진료를 받으러 온 사람이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는지 확인합니다.

<녹취> "(의료 보험증을 안 갖고 왔는데...) 작성 부탁드릴께요."

환자가 접수증에 이름과 주민번호를 적으면 진료 접수는 끝이 납니다.

접수증에 적은 것은 자신의 명의가 아닌 취재 기자의 이름과 주민번호.

신분증이나 건강보험증과 대조해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는 없습니다.

진료를 거쳐 항우울과 수면 성분이 들어간 향정신성 의약품 일주일치 처방을 해줍니다.

무작위로 찾아간 또 다른 의원,

<녹취> 의사(음성변조) : "최대의 처방이 4주밖에 안됩니다. 4주."

간단히 이름과 주민번호를 직접 적고 진료를 거친 뒤 곧바로 향정신성 성분인 졸피뎀이 들어간 수면제 4주치까지도 처방해줍니다.

4주치 밖에 처방받을 수 없다던 이 수면제.

일주일 뒤 다른 의원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똑같은 약을 더 처방받을 수 있었습니다.

불과 일주일 최대 4주분만 처방된다는 약이 6주분까지 처방이 가능한 상황인 겁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명의를 이용해 이곳 저곳의 여러 병원을 드나들며 마약류 의약품을 사들이는 것을 관련자들은 '향정 쇼핑'이라고 부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적발된 사례 중에는 4개월 동안 28번 진료를 받아 670여 알의 수면제를 받았거나 1년 동안 40차례에 걸쳐 360여 알의 수면제를 처방 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도용해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을 수 있는 이유는 본인임을 확인하는 절차가 사실상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 대부분의 의료기관은 진료 접수를 할 때 환자가 접수증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적거나 구두로 알려주는 것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998년 이전에는 의료보험증을 지참해야 했지만 지난 1998년 규제간소화 차원에서 의료기관의 본인 확인 의무 규정이 삭제됐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는 장기요양기관에서만 진료 전에 본인 확인을 하도록 돼 있고 일반 병원에서는 건강보험증이나 신분증을 확인하는 절차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료기관으로서는 본인 확인 의무가 없으니 일일이 까다롭게 본인임을 확인하지 않고 있고 환자도 건강보험증을 챙겨 다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녹취> "((건강보험증을) 들고 오시는 분들이 많으신가요?) 한 분도 안계세요. 한 분도 안계시고요. 요즘은 건강보험증을 제시한다고 하더라고 "이거 없어도 돼요" 라는 말을 병원에서도 많이 해요. 왜냐하면 그만큼 전산화가 많이 되어 있기 때문에..."

병원에 적어낸 이름이 전산으로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다고 확인만 되면 남의 이름으로 진료, 처방을 받는 것을 아무도 확인하지 않고 있는 셈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누군가 내 이름과 주민번호를 도용했다해도 도용한 사람을 잡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취재진은 대학 연구직 김 씨를 사칭한 누군가가 3차례 처방 받았다는 병원을 찾아가 봤습니다.

병원측은 자신들도 속았다고 말합니다.

<녹취> 병원 관계자 : "진료를 안해줄 수 없죠. 오다가 (보험증을) 두고 왔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그러면."

김 씨를 사칭한 사람이 누구인지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병원에 남아 있을까?

<녹취> "((도용한 사람) 어떤 신상도 전혀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 건가요?) 어떤 사람이냐 그게...전혀 그건 모르는거죠."

근처에 CCTV도 없고 도용한 사람의 신상을 파악할 수 조차 없는 상황, 명의 도용자를 찾는 건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더 심각한 문제는 누군가 자신의 명의를 도용해 마약류 의약품을 처방받고 있어도 스스로는 아예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지난 여름, 서울 시내 한 약국.

한 여성이 처방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눈치를 살피는가 싶더니 자신이 약사에게 줬던 처방전을 탁자 밑에서 몰래 꺼내 도망칩니다.

약사가 자신을 의심하는 낌새를 채고 도주한 겁니다.

남의 이름을 도용해 이른바 '향정 쇼핑'을 하던 이 여성은 결국 약사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여성 등 3명은 모두 11명의 개인정보를 도용해 2년 동안 천 7백여 정의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받았습니다.

<인터뷰> 장재익(노원서 마약수사전담팀장) : "자기네들 명의로 처방을 받고 약국에 가고 하면 어차피 중복처방 이름이 뜨니까 못 처방받으니까 타인 명의를 그렇게 받아서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도용해서."

명의 도용 피해를 입은 11명은 모두 한 인터넷 매체의 신입사원으로 지원했던 사람들.

피의자들은 이 회사에 다니던 지인으로부터 정보를 넘겨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서울과 경기도 등 십여 곳의 병원을 다니며 '향정 쇼핑'을 벌이는 동안 피해자 11명 가운데 그 누구도 피해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누군가 자기 이름과 주민번호로 이런 마약류 성분 의약품을 처방받았다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나요?)) 모르고 있는 상태죠."

현실적으로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알아내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한 중국의 포털 사이트에 한국 주민번호와 관련된 검색어를 넣자 누군가의 주민등록증이 뜹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문제가 된 주민번호 유출 사고만 놓고 봐도 4억 건 이상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장여경(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활동가) : "주민번호의 대량유출 사건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08년도 옥션에서 천8백만 건 유출되면서부터라고 저희는 보고 있어요 . 보도된 어떤 주민번호 유출 사고만 종합을 좀 해봐도 4억 건 이상이 되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보도되지 않은 암암리에 유출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 같고요."

다른 사람의 명의로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받거나 진료를 받는 등 건강보험을 부정으로 사용하는 건수는 실제 매년 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 부정사용으로 적발돼 보험료를 물어내야하는 결정건수는 2011년 2만 9천여 건에서 계속 증가해 3년 만에 50% 이상 늘었습니다.

올해 들어서도 상반기까지만 만 9천여 건이 적발됐습니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부정사용으로 나간 건강보험료만 43억여 원, 그만큼 건강보험 재정도 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수치는 남의 명의를 도용했다고 자진 신고를 하거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적발한 건수만 집계한 것 일뿐 드러나지 않은 건강보험 부정사용 액수는 포함되지 않은 것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측에서는 보험 재정 뿐 아니라 향정신성 의약품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신원 확인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뷰> 노증식(국민건강보험공단 급여관리실 부장) : "본인 확인을 의무화하는 거라든지 그 전자보험증 같은 것을 도입하는 부분이 사실 필요한 것은 다 공감하고 있기는 한데 이게 국민적인 합의가 더 필요하겠죠. 그러다보니까 지금 아마 안되고 있는 것 같아요."

실제 의료기관에서 본인 확인을 의무화하는 법들이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규제가 늘어난다는 반대에 부딪혀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건강보험 명의도용을 막기 위해서는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진료 기록을 건강보험공단 사이트에서 수시로 확인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명의 도용으로 적발되더라도 대부분 불구속 입건되는 등 처벌이 약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강태언(의료소비자연대 사무총장) : "약물에 대한 관리체계가 좀 더 견고해져야 한다라는 판단이 좀 들고요. 어떤 개인의 신분을 도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철저하게 취급될 수 있는 거고 거기에 따르는 지도감독, 또는 일벌백계하고 하는 측면에서만 잘 법이 적용되면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향정신성 의약품을 과다하게 처방받았을 경우, 취업이나 보험가입 등 사회생활에 피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명의 도용사실을 알기도 어려울 뿐더러 알게되더라도 이를 바로잡을 방법도 마땅치 않습니다.

이제라도 건강보험 명의도용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본인 확인 강화 등의 대책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연관 기사]

☞ [뉴스9] 남의 이름으로 ‘마약류’ 처방…누구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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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도 몰래 내가 ‘마약류’ 복용자?
    • 입력 2015-10-25 22:39:28
    • 수정2015-10-25 23:20:33
    취재파일K
한 대학에서 연구직으로 일하고 있는 김모 씨, 자신도 모르는 새 충격적인 일을 당했다며 힘겹게 입을 열었습니다.

<인터뷰> 김 씨(명의 도용 피해자) : "기분이 찝찝한 정도가 아니라 이건 누가 내 이름으로 이렇게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훔쳐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받았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김 씨(명의 도용 피해자) : "이런 전력이 있다는 거 사회생활하는데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아찔했죠."

<오프닝>

인간의 중추신경을 자극하거나 억제시킬 수 있는 향정신성 의약품, 의학 서적에는 마약류로 분류돼 있고 오남용할 경우 인체에 크게 해가 된다고 적혀있습니다.

의존성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처방하지도 않고 또 복용도 조심해야하는데요.

누군가 이런 약을 나의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으로 처방받는다면 어떨까요?

황당하지만 이런 일이 현실에서 쉽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실태를 낱낱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어깨뭉침으로 지난 5월 약국을 찾았던 김 씨는 약사에게서 일주일전 이미 향정신성 성분이 든 약을 처방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직감한 김 씨,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를 찾아 자신의 의료기록을 확인했고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누군가가 김 씨 이름으로 1년 여에 걸쳐 모두 백여 알 가까이 향정신성 약품을 처방받은 것입니다.

<인터뷰> 김 씨(명의 도용 피해자) : "지금도 솔직히 이 사람, 다른 명의로 처방을 받고 있을 것 같아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죠. 만약 제가 몰랐으면 계속 제 이름으로 그 의약품 처방받았을 수도 있고..."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여성 한 명을 섭외해 무작위로 한 의료원에 들어가 봤습니다.

진료를 받으러 온 사람이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는지 확인합니다.

<녹취> "(의료 보험증을 안 갖고 왔는데...) 작성 부탁드릴께요."

환자가 접수증에 이름과 주민번호를 적으면 진료 접수는 끝이 납니다.

접수증에 적은 것은 자신의 명의가 아닌 취재 기자의 이름과 주민번호.

신분증이나 건강보험증과 대조해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는 없습니다.

진료를 거쳐 항우울과 수면 성분이 들어간 향정신성 의약품 일주일치 처방을 해줍니다.

무작위로 찾아간 또 다른 의원,

<녹취> 의사(음성변조) : "최대의 처방이 4주밖에 안됩니다. 4주."

간단히 이름과 주민번호를 직접 적고 진료를 거친 뒤 곧바로 향정신성 성분인 졸피뎀이 들어간 수면제 4주치까지도 처방해줍니다.

4주치 밖에 처방받을 수 없다던 이 수면제.

일주일 뒤 다른 의원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똑같은 약을 더 처방받을 수 있었습니다.

불과 일주일 최대 4주분만 처방된다는 약이 6주분까지 처방이 가능한 상황인 겁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명의를 이용해 이곳 저곳의 여러 병원을 드나들며 마약류 의약품을 사들이는 것을 관련자들은 '향정 쇼핑'이라고 부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적발된 사례 중에는 4개월 동안 28번 진료를 받아 670여 알의 수면제를 받았거나 1년 동안 40차례에 걸쳐 360여 알의 수면제를 처방 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도용해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을 수 있는 이유는 본인임을 확인하는 절차가 사실상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 대부분의 의료기관은 진료 접수를 할 때 환자가 접수증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적거나 구두로 알려주는 것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998년 이전에는 의료보험증을 지참해야 했지만 지난 1998년 규제간소화 차원에서 의료기관의 본인 확인 의무 규정이 삭제됐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는 장기요양기관에서만 진료 전에 본인 확인을 하도록 돼 있고 일반 병원에서는 건강보험증이나 신분증을 확인하는 절차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료기관으로서는 본인 확인 의무가 없으니 일일이 까다롭게 본인임을 확인하지 않고 있고 환자도 건강보험증을 챙겨 다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녹취> "((건강보험증을) 들고 오시는 분들이 많으신가요?) 한 분도 안계세요. 한 분도 안계시고요. 요즘은 건강보험증을 제시한다고 하더라고 "이거 없어도 돼요" 라는 말을 병원에서도 많이 해요. 왜냐하면 그만큼 전산화가 많이 되어 있기 때문에..."

병원에 적어낸 이름이 전산으로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다고 확인만 되면 남의 이름으로 진료, 처방을 받는 것을 아무도 확인하지 않고 있는 셈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누군가 내 이름과 주민번호를 도용했다해도 도용한 사람을 잡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취재진은 대학 연구직 김 씨를 사칭한 누군가가 3차례 처방 받았다는 병원을 찾아가 봤습니다.

병원측은 자신들도 속았다고 말합니다.

<녹취> 병원 관계자 : "진료를 안해줄 수 없죠. 오다가 (보험증을) 두고 왔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그러면."

김 씨를 사칭한 사람이 누구인지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병원에 남아 있을까?

<녹취> "((도용한 사람) 어떤 신상도 전혀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 건가요?) 어떤 사람이냐 그게...전혀 그건 모르는거죠."

근처에 CCTV도 없고 도용한 사람의 신상을 파악할 수 조차 없는 상황, 명의 도용자를 찾는 건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더 심각한 문제는 누군가 자신의 명의를 도용해 마약류 의약품을 처방받고 있어도 스스로는 아예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지난 여름, 서울 시내 한 약국.

한 여성이 처방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눈치를 살피는가 싶더니 자신이 약사에게 줬던 처방전을 탁자 밑에서 몰래 꺼내 도망칩니다.

약사가 자신을 의심하는 낌새를 채고 도주한 겁니다.

남의 이름을 도용해 이른바 '향정 쇼핑'을 하던 이 여성은 결국 약사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여성 등 3명은 모두 11명의 개인정보를 도용해 2년 동안 천 7백여 정의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받았습니다.

<인터뷰> 장재익(노원서 마약수사전담팀장) : "자기네들 명의로 처방을 받고 약국에 가고 하면 어차피 중복처방 이름이 뜨니까 못 처방받으니까 타인 명의를 그렇게 받아서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도용해서."

명의 도용 피해를 입은 11명은 모두 한 인터넷 매체의 신입사원으로 지원했던 사람들.

피의자들은 이 회사에 다니던 지인으로부터 정보를 넘겨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서울과 경기도 등 십여 곳의 병원을 다니며 '향정 쇼핑'을 벌이는 동안 피해자 11명 가운데 그 누구도 피해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누군가 자기 이름과 주민번호로 이런 마약류 성분 의약품을 처방받았다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나요?)) 모르고 있는 상태죠."

현실적으로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알아내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한 중국의 포털 사이트에 한국 주민번호와 관련된 검색어를 넣자 누군가의 주민등록증이 뜹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문제가 된 주민번호 유출 사고만 놓고 봐도 4억 건 이상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장여경(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활동가) : "주민번호의 대량유출 사건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08년도 옥션에서 천8백만 건 유출되면서부터라고 저희는 보고 있어요 . 보도된 어떤 주민번호 유출 사고만 종합을 좀 해봐도 4억 건 이상이 되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보도되지 않은 암암리에 유출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 같고요."

다른 사람의 명의로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받거나 진료를 받는 등 건강보험을 부정으로 사용하는 건수는 실제 매년 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 부정사용으로 적발돼 보험료를 물어내야하는 결정건수는 2011년 2만 9천여 건에서 계속 증가해 3년 만에 50% 이상 늘었습니다.

올해 들어서도 상반기까지만 만 9천여 건이 적발됐습니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부정사용으로 나간 건강보험료만 43억여 원, 그만큼 건강보험 재정도 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수치는 남의 명의를 도용했다고 자진 신고를 하거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적발한 건수만 집계한 것 일뿐 드러나지 않은 건강보험 부정사용 액수는 포함되지 않은 것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측에서는 보험 재정 뿐 아니라 향정신성 의약품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신원 확인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뷰> 노증식(국민건강보험공단 급여관리실 부장) : "본인 확인을 의무화하는 거라든지 그 전자보험증 같은 것을 도입하는 부분이 사실 필요한 것은 다 공감하고 있기는 한데 이게 국민적인 합의가 더 필요하겠죠. 그러다보니까 지금 아마 안되고 있는 것 같아요."

실제 의료기관에서 본인 확인을 의무화하는 법들이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규제가 늘어난다는 반대에 부딪혀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건강보험 명의도용을 막기 위해서는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진료 기록을 건강보험공단 사이트에서 수시로 확인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명의 도용으로 적발되더라도 대부분 불구속 입건되는 등 처벌이 약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강태언(의료소비자연대 사무총장) : "약물에 대한 관리체계가 좀 더 견고해져야 한다라는 판단이 좀 들고요. 어떤 개인의 신분을 도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철저하게 취급될 수 있는 거고 거기에 따르는 지도감독, 또는 일벌백계하고 하는 측면에서만 잘 법이 적용되면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향정신성 의약품을 과다하게 처방받았을 경우, 취업이나 보험가입 등 사회생활에 피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명의 도용사실을 알기도 어려울 뿐더러 알게되더라도 이를 바로잡을 방법도 마땅치 않습니다.

이제라도 건강보험 명의도용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본인 확인 강화 등의 대책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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