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이래서 반대합니다”…태양광 발전이 만든 그늘

입력 2015.11.16 (16:07) 수정 2015.11.1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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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환경 에너지 '태양광' 설치 반대…이유는?

전북 고창의 한 어촌마을에 10년 넘게 버려져 있던 폐염전이 있습니다. 쓸모없게 방치돼 있던 이곳에 국내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단지가 들어설 계획입니다. 58메가와트, 한해 2만 가구가 쓸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전남 영광 원자력발전소 근처에 살면서 원전 피해를 주장해왔던 고창 주민들로서는 안전한 친환경 에너지로 꼽히는 태양광 시설이 반가울 텐데요, 그런데 정작 지역 주민들은 태양광 설치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뭘까요?

고창 폐염전고창 폐염전

▲ 고창 폐염전


■ "태양광, 무슨 도움이 되나요?"
주민들은 솔직했습니다. 태양광 시설이 들어와도 마을에 득이 되는 건 없다는 겁니다.

"주민들한테 실질적으로 이익되는 것은 없잖아요. 일자리를 창출한다든가, 인력을 쓴다든가 그런 것이 아니라 전부 기계적으로 해버리니까 우리 마을에는 아무런 보탬이 안된다는 얘기죠…."
- 태양광 발전 단지 예정지 주민 인터뷰 中

"태양광 발전시설 탓에 수온이 올라가 갯벌이 망가질 수 있다." "보기에 좋지 않다." 여러 걱정도 있지만, 태양광 업체만 이익을 보고 주민들은 들러리만 선다는 불만이 가장 컸습니다. 태양광 시설 설치를 둘러싸고 빚어지는 갈등, 이른바 '햇빛 갈등'인데요, 요즘 농촌 들녘이나 산자락, 바닷가에 태양광 시설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갈등이 심한 곳은 고소, 고발로도 이어집니다.

반대 현수막반대 현수막



주민 민원과 반대에 부딪혀 시작조차 못 한 태양광 사업이 전북과 전남에서만 백 건이 넘는데요, 이건 추산일 뿐입니다. 왜일까요? 정부가 제대로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발전량에 따라 사업 허가 주체가 산업통상자원부와 광역·기초 자치단체로 나뉘어
실태 파악이 어려운 데다 주민과의 갈등은 업체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입장인데요, 오는 2035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11%까지 늘리겠다며 태양광 설치 비용까지 지원하는 정부가 정작 태양광 발전의 발목을 잡는 갈등에 대해서는 조정 역할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지난 2013년 국제 기준으로 1%, OECD 꼴찌 수준입니다.

■ '햇빛발전' 이익..지역·기업 공유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태양광 발전이 확산되고 있는 일본은 어떨까요? 태양광 발전이 지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일본 역시 주민 반대가 있을 텐데요, 취재진이 찾은 일본의 한 중소도시는 태양광 발전으로 인한 수익을 지역 사회와 나누는 방법으로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일본 나가노 현의 이이다 시는 대규모 태양광 시설을 허가할 때부터 발전 시설이 지역에 도움이 되는지 등을 꼼꼼히 따지도록 하는 내용의 조례를 만들었습니다. 발전 수익을 지역과 나누겠다는 기업에는 자치단체 소유의 땅을 무료로 빌려주거나 무이자 융자 등 각종 지원을 해주면서 이익 공유를 유도하고 있는 겁니다. 태양광 입지를 결정할 때도 자치단체가 나서서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일본 태양광 발전소일본 태양광 발전소

▲ 일본 이이다 시 태양광 발전소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갈등 없이 태양광 사업이 추진된 곳이 있는데요, 전남 신안군 팔금도입니다. 3년 전, 섬에 있는 폐염전 세 군데에 4천3백 가구가 쓸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하는 대규모 태양광 발전 단지가 지어졌는데요, 주민들은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건설 초기부터 마을 대표와 기업, 신안군이 협의를 거듭한 끝에 앞으로 10년 동안 해마다 전력 판매액의 0.8%, 3천만 원 가량을 기업이 마을 발전기금으로 내놓는다는 데 합의를 이끌어 낸 겁니다. 마을 공동 창고에 태양광 발전 시설도 지어주고 여기서 나오는 발전 수익금 역시 모두 마을에 돌아가는데요, 쓸모없던 폐염전에 들어선 태양광 시설 덕분에 뜻밖의 마을 수익이 생겨서 주민들은 오히려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신안군 태양광 발전소신안군 태양광 발전소

▲ 신안군 태양광 발전소


■ 시민 힘 모아 '햇빛 발전'
'햇빛 갈등'을 줄이기 위한 방법은 또 있습니다. 바로 주민들이 태양광 발전을 통해 직접 수익을 얻도록 하는 건데요, 일본의 이이다시는 10년 전 지역의 한 시민단체와 함께 이른바 '햇님펀드'를 시작했습니다. 시민들이 낸 투자금으로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 비용을 충당하고 생산된 전기를 팔아 그 수익금을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입니다.

여기에 자치단체는 공공기관 지붕을 무료로 빌려줘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게 하고 생산된 전력은 20년 동안 정해진 가격으로 사줘 안정된 수익을 보장해줬습니다. 가정에서 쓰고 남은 태양광 전력을 개인이 직접 팔 수 있도록 한 제도 역시 시민 참여를 늘리는 데 역할을 했습니다. 그 덕분에 지난 10년 동안 시민 2천2백여 명이 펀드에 참여해 170억 원을 모았고, '햇님 펀드'로 만든 햇빛 발전소만 3백30여 개나 됩니다. 처음 3킬로와트로 시작한 태양광 발전량 규모도 천 배 이상 늘었습니다.

햇님펀드햇님펀드

▲ '햇님펀드' 투자자 이름이 적힌 안내판


태양광 발전 수익을 지역과 공유하는 것,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 사회적 공감대,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제도적 지원이 있다면 불필요한 '햇빛 갈등'없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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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이래서 반대합니다”…태양광 발전이 만든 그늘
    • 입력 2015-11-16 16:07:10
    • 수정2015-11-16 16:13:18
    취재후·사건후
■ 친환경 에너지 '태양광' 설치 반대…이유는? 전북 고창의 한 어촌마을에 10년 넘게 버려져 있던 폐염전이 있습니다. 쓸모없게 방치돼 있던 이곳에 국내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단지가 들어설 계획입니다. 58메가와트, 한해 2만 가구가 쓸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전남 영광 원자력발전소 근처에 살면서 원전 피해를 주장해왔던 고창 주민들로서는 안전한 친환경 에너지로 꼽히는 태양광 시설이 반가울 텐데요, 그런데 정작 지역 주민들은 태양광 설치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뭘까요?
고창 폐염전 ▲ 고창 폐염전
■ "태양광, 무슨 도움이 되나요?" 주민들은 솔직했습니다. 태양광 시설이 들어와도 마을에 득이 되는 건 없다는 겁니다. "주민들한테 실질적으로 이익되는 것은 없잖아요. 일자리를 창출한다든가, 인력을 쓴다든가 그런 것이 아니라 전부 기계적으로 해버리니까 우리 마을에는 아무런 보탬이 안된다는 얘기죠…." - 태양광 발전 단지 예정지 주민 인터뷰 中 "태양광 발전시설 탓에 수온이 올라가 갯벌이 망가질 수 있다." "보기에 좋지 않다." 여러 걱정도 있지만, 태양광 업체만 이익을 보고 주민들은 들러리만 선다는 불만이 가장 컸습니다. 태양광 시설 설치를 둘러싸고 빚어지는 갈등, 이른바 '햇빛 갈등'인데요, 요즘 농촌 들녘이나 산자락, 바닷가에 태양광 시설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갈등이 심한 곳은 고소, 고발로도 이어집니다.
반대 현수막
주민 민원과 반대에 부딪혀 시작조차 못 한 태양광 사업이 전북과 전남에서만 백 건이 넘는데요, 이건 추산일 뿐입니다. 왜일까요? 정부가 제대로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발전량에 따라 사업 허가 주체가 산업통상자원부와 광역·기초 자치단체로 나뉘어 실태 파악이 어려운 데다 주민과의 갈등은 업체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입장인데요, 오는 2035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11%까지 늘리겠다며 태양광 설치 비용까지 지원하는 정부가 정작 태양광 발전의 발목을 잡는 갈등에 대해서는 조정 역할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지난 2013년 국제 기준으로 1%, OECD 꼴찌 수준입니다. ■ '햇빛발전' 이익..지역·기업 공유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태양광 발전이 확산되고 있는 일본은 어떨까요? 태양광 발전이 지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일본 역시 주민 반대가 있을 텐데요, 취재진이 찾은 일본의 한 중소도시는 태양광 발전으로 인한 수익을 지역 사회와 나누는 방법으로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일본 나가노 현의 이이다 시는 대규모 태양광 시설을 허가할 때부터 발전 시설이 지역에 도움이 되는지 등을 꼼꼼히 따지도록 하는 내용의 조례를 만들었습니다. 발전 수익을 지역과 나누겠다는 기업에는 자치단체 소유의 땅을 무료로 빌려주거나 무이자 융자 등 각종 지원을 해주면서 이익 공유를 유도하고 있는 겁니다. 태양광 입지를 결정할 때도 자치단체가 나서서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일본 태양광 발전소 ▲ 일본 이이다 시 태양광 발전소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갈등 없이 태양광 사업이 추진된 곳이 있는데요, 전남 신안군 팔금도입니다. 3년 전, 섬에 있는 폐염전 세 군데에 4천3백 가구가 쓸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하는 대규모 태양광 발전 단지가 지어졌는데요, 주민들은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건설 초기부터 마을 대표와 기업, 신안군이 협의를 거듭한 끝에 앞으로 10년 동안 해마다 전력 판매액의 0.8%, 3천만 원 가량을 기업이 마을 발전기금으로 내놓는다는 데 합의를 이끌어 낸 겁니다. 마을 공동 창고에 태양광 발전 시설도 지어주고 여기서 나오는 발전 수익금 역시 모두 마을에 돌아가는데요, 쓸모없던 폐염전에 들어선 태양광 시설 덕분에 뜻밖의 마을 수익이 생겨서 주민들은 오히려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신안군 태양광 발전소 ▲ 신안군 태양광 발전소
■ 시민 힘 모아 '햇빛 발전' '햇빛 갈등'을 줄이기 위한 방법은 또 있습니다. 바로 주민들이 태양광 발전을 통해 직접 수익을 얻도록 하는 건데요, 일본의 이이다시는 10년 전 지역의 한 시민단체와 함께 이른바 '햇님펀드'를 시작했습니다. 시민들이 낸 투자금으로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 비용을 충당하고 생산된 전기를 팔아 그 수익금을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입니다. 여기에 자치단체는 공공기관 지붕을 무료로 빌려줘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게 하고 생산된 전력은 20년 동안 정해진 가격으로 사줘 안정된 수익을 보장해줬습니다. 가정에서 쓰고 남은 태양광 전력을 개인이 직접 팔 수 있도록 한 제도 역시 시민 참여를 늘리는 데 역할을 했습니다. 그 덕분에 지난 10년 동안 시민 2천2백여 명이 펀드에 참여해 170억 원을 모았고, '햇님 펀드'로 만든 햇빛 발전소만 3백30여 개나 됩니다. 처음 3킬로와트로 시작한 태양광 발전량 규모도 천 배 이상 늘었습니다.
햇님펀드 ▲ '햇님펀드' 투자자 이름이 적힌 안내판
태양광 발전 수익을 지역과 공유하는 것,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 사회적 공감대,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제도적 지원이 있다면 불필요한 '햇빛 갈등'없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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