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 사랑 YS…“DJ 때문에 콩찰떡 챙겨”

입력 2015.11.24 (11:34) 수정 2015.11.2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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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 조리장을 지내며 그의 밥상을 챙긴 류한열(65)씨의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맺혔다.

"김영삼 대통령이 퇴임 무렵 손수 써주신 글귀 '송백장청'(松栢長靑)을 마음속에 새기고 살 겁니다. 너무 보고 싶습니다."

강남의 대형 한식당 주방장이었던 류씨는 김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1993년 3월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이 1998년 2월 퇴임하고서도 석 달간 더 주방을 지켰다.

류씨는 이후 청와대를 나와서도 상도동 자택에 들어가 2년여간 요리사로 더 일하면서 YS의 밥상을 7년 넘게 책임졌다.

류씨는 청와대 조리장 실기시험으로 한 요리가 생선조림이었다고 회상했다.


▲ 故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 조리장을 지낸 류한열 씨


김 전 대통령이 해산물을 좋아하는 거제도 출신인 점이 실기시험에 고려됐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청와대에는 류씨 외에 한식과 양식, 일식 요리사 한명씩이 함께 있었다.

류씨에게 YS는 '서민적이면서도 털털하고 소탈한 사람'으로 남아있다. 그는 "워낙 불평불만이 없고 어떤 음식이든 해 드리는 대로 맛있게, 남김없이 잘 드셨다"고 기억했다.

청와대 시절 YS는 오전 7시와 정오·오후 6시 정각에 정확하게 식사했다.
그는 인근 관사에서 지내면서도 혹여 아침에 못 일어날까 알람 시계 두 개를 맞춰 오전 4시 30분에 일어나 청와대로 향했다.

YS의 아침상에는 늘 콩찰떡과 사골 우거짓국이 올랐다. 류씨는 "대통령께선 평상시 식사 때 밥은 세 숟가락 이상 뜨지 않고 요리류나 반찬을 주로 드셨다"고 전했다.

류씨의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것은 단연 칼국수다. 청와대 시절 보통 1주일에 3번 이상, 하루에 많게는 100그릇도 넘게 만들었다.

YS가 우리 밀 먹기를 강조하며 칼국수 사랑을 보인 까닭에 'YS 칼국수 할머니'로 유명한 압구정동 '안동국시' 주인 고(故) 김남숙 여사가 직접 청와대에 와서 요리법을 류씨에게 전수했다.

류씨는 "점심 메뉴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무조건 칼국수였기에 셀 수도 없이 많은 칼국수를 만들어야 했다"며 "워낙 면을 좋아하셔서 여름이면 칡냉면과 도토리냉면, 겨울에는 가락국수도 자주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YS의 식사 속도는 일반인보다 1.5배 빨랐다고 한다.

칼국수 오찬에 대규모 인원이 참석하면 동시에 음식을 내기 어려운데, YS의 빠른 식사 속도 탓에 음식을 늦게 받은 참석자가 행여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할까 봐 참석자의 3분의 2에 음식이 다 돌아갔을 때 비로소 YS 앞에 칼국수를 놓았다고 한다.

콩찰떡은 YS의 '영원한 맞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해 칼국수를 먹고 난 다음 청와대 오찬 상에 오르게 됐다.

류씨는 "DJ가 청와대 칼국수가 너무 빨리 소화돼 청와대에서 나와 식사를 한 번 더 했다는 얘기가 있었다"며 "이에 식전에 콩찰떡을, 식후에 과일을 넉넉히 내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왔다"고 전했다.

YS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으로는 생대구, 그 가운데서도 대구 머리를 이용한 조림·찜 요리를 꼽았다.

류씨는 길게는 보름 가까이 되는 해외 순방 때도 그림자처럼 대통령 내외와 동행했는데 뉴욕 한복판에서 대구 머리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 일도 있었다.

"한일 정상회담 이후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대통령의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갑자기 대구 매운탕이 먹고 싶다고 하셔서 숙소였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근처 한인식당을 수배해 요리를 겨우 만들었죠."

하지만 당시 대구탕에는 대구 머리가 없었다.

류씨는 "매운탕을 겨우 냈는데 대통령이 좋아하시는 머리는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며 "진땀이 날 때쯤 당시 미국에 살던 YS의 딸이 서양에서는 원래 대구 머리를 먹지 않는다고 해줘 좌중에 웃음이 터진 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대통령이 '그러면 살이라도 먹어야지'라며 크게 웃었는데, 나중에 경호실장이 다가와 머리는 없지만 대구 매운탕 덕분에 대통령 기분이 한결 좋아져 고마워했다"고 말했다.

멸치 어장을 운영했던 아버지 고 김홍조 옹에 대한 사랑도 각별해 만찬상에는 꼭 아버지가 보낸 죽방멸치를 고추장과 함께 냈다고 한다.

퇴임 뒤에도 류씨는 명절 때면 대구를 비롯해 YS가 좋아하는 먹을거리를 들고 꼬박꼬박 상도동을 찾았다.

YS는 자신을 아버지처럼 따르는 류씨가 상도동을 떠나 종로구 수송동에서 9년 동안 운영한 한정식집 '청류관'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애정을 표시했다고 한다.

류씨의 부인 오경자(55)씨는 손명순 여사에 대한 기억이 각별하다.

그는 "밤낮 메뉴 연구를 하는 우리 부부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싶으셨던지 어느 날 고급 강남 양장점 옷을 선물로 주셨다"며 "그 따뜻함 때문에 지금까지 그 옷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YS의 서거 소식에 울음을 터뜨렸다는 류씨는 "청와대와 상도동에서 7년간 매 끼니를 챙기며 아버지처럼 모셨다"며 "생대구를 싸들고 상도동을 찾아 인사드릴 때면 좋아하시던 표정이 생생하다"면서 또다시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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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1-24 11:34:26
    • 수정2015-11-24 11:36:32
    정치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 조리장을 지내며 그의 밥상을 챙긴 류한열(65)씨의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맺혔다.

"김영삼 대통령이 퇴임 무렵 손수 써주신 글귀 '송백장청'(松栢長靑)을 마음속에 새기고 살 겁니다. 너무 보고 싶습니다."

강남의 대형 한식당 주방장이었던 류씨는 김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1993년 3월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이 1998년 2월 퇴임하고서도 석 달간 더 주방을 지켰다.

류씨는 이후 청와대를 나와서도 상도동 자택에 들어가 2년여간 요리사로 더 일하면서 YS의 밥상을 7년 넘게 책임졌다.

류씨는 청와대 조리장 실기시험으로 한 요리가 생선조림이었다고 회상했다.


▲ 故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 조리장을 지낸 류한열 씨


김 전 대통령이 해산물을 좋아하는 거제도 출신인 점이 실기시험에 고려됐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청와대에는 류씨 외에 한식과 양식, 일식 요리사 한명씩이 함께 있었다.

류씨에게 YS는 '서민적이면서도 털털하고 소탈한 사람'으로 남아있다. 그는 "워낙 불평불만이 없고 어떤 음식이든 해 드리는 대로 맛있게, 남김없이 잘 드셨다"고 기억했다.

청와대 시절 YS는 오전 7시와 정오·오후 6시 정각에 정확하게 식사했다.
그는 인근 관사에서 지내면서도 혹여 아침에 못 일어날까 알람 시계 두 개를 맞춰 오전 4시 30분에 일어나 청와대로 향했다.

YS의 아침상에는 늘 콩찰떡과 사골 우거짓국이 올랐다. 류씨는 "대통령께선 평상시 식사 때 밥은 세 숟가락 이상 뜨지 않고 요리류나 반찬을 주로 드셨다"고 전했다.

류씨의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것은 단연 칼국수다. 청와대 시절 보통 1주일에 3번 이상, 하루에 많게는 100그릇도 넘게 만들었다.

YS가 우리 밀 먹기를 강조하며 칼국수 사랑을 보인 까닭에 'YS 칼국수 할머니'로 유명한 압구정동 '안동국시' 주인 고(故) 김남숙 여사가 직접 청와대에 와서 요리법을 류씨에게 전수했다.

류씨는 "점심 메뉴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무조건 칼국수였기에 셀 수도 없이 많은 칼국수를 만들어야 했다"며 "워낙 면을 좋아하셔서 여름이면 칡냉면과 도토리냉면, 겨울에는 가락국수도 자주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YS의 식사 속도는 일반인보다 1.5배 빨랐다고 한다.

칼국수 오찬에 대규모 인원이 참석하면 동시에 음식을 내기 어려운데, YS의 빠른 식사 속도 탓에 음식을 늦게 받은 참석자가 행여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할까 봐 참석자의 3분의 2에 음식이 다 돌아갔을 때 비로소 YS 앞에 칼국수를 놓았다고 한다.

콩찰떡은 YS의 '영원한 맞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해 칼국수를 먹고 난 다음 청와대 오찬 상에 오르게 됐다.

류씨는 "DJ가 청와대 칼국수가 너무 빨리 소화돼 청와대에서 나와 식사를 한 번 더 했다는 얘기가 있었다"며 "이에 식전에 콩찰떡을, 식후에 과일을 넉넉히 내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왔다"고 전했다.

YS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으로는 생대구, 그 가운데서도 대구 머리를 이용한 조림·찜 요리를 꼽았다.

류씨는 길게는 보름 가까이 되는 해외 순방 때도 그림자처럼 대통령 내외와 동행했는데 뉴욕 한복판에서 대구 머리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 일도 있었다.

"한일 정상회담 이후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대통령의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갑자기 대구 매운탕이 먹고 싶다고 하셔서 숙소였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근처 한인식당을 수배해 요리를 겨우 만들었죠."

하지만 당시 대구탕에는 대구 머리가 없었다.

류씨는 "매운탕을 겨우 냈는데 대통령이 좋아하시는 머리는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며 "진땀이 날 때쯤 당시 미국에 살던 YS의 딸이 서양에서는 원래 대구 머리를 먹지 않는다고 해줘 좌중에 웃음이 터진 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대통령이 '그러면 살이라도 먹어야지'라며 크게 웃었는데, 나중에 경호실장이 다가와 머리는 없지만 대구 매운탕 덕분에 대통령 기분이 한결 좋아져 고마워했다"고 말했다.

멸치 어장을 운영했던 아버지 고 김홍조 옹에 대한 사랑도 각별해 만찬상에는 꼭 아버지가 보낸 죽방멸치를 고추장과 함께 냈다고 한다.

퇴임 뒤에도 류씨는 명절 때면 대구를 비롯해 YS가 좋아하는 먹을거리를 들고 꼬박꼬박 상도동을 찾았다.

YS는 자신을 아버지처럼 따르는 류씨가 상도동을 떠나 종로구 수송동에서 9년 동안 운영한 한정식집 '청류관'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애정을 표시했다고 한다.

류씨의 부인 오경자(55)씨는 손명순 여사에 대한 기억이 각별하다.

그는 "밤낮 메뉴 연구를 하는 우리 부부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싶으셨던지 어느 날 고급 강남 양장점 옷을 선물로 주셨다"며 "그 따뜻함 때문에 지금까지 그 옷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YS의 서거 소식에 울음을 터뜨렸다는 류씨는 "청와대와 상도동에서 7년간 매 끼니를 챙기며 아버지처럼 모셨다"며 "생대구를 싸들고 상도동을 찾아 인사드릴 때면 좋아하시던 표정이 생생하다"면서 또다시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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