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해고 정당성 따지는 ‘노동위’는 정당한가?

입력 2015.12.02 (08:05) 수정 2015.12.0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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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든 타의든 직장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른바 '고용 불안 시대'라고도 하죠. 회사의 일방적 해고가 부당하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노동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찾아가는 곳이 있습니다. '노동위원회'입니다.

중앙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


'노동위원회'가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해고를 당한 노동자가 찾아오면 그 해고가 정당한지 부당한지를 판정합니다. 둘째, 회사와 노동조합 사이에 첨예한 갈등이 생기면 그걸 조정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합니다. 중요한 곳입니다. 말하자면 법원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볼 수 있죠.

공익위원 3인공익위원 3인


한 해 평균 만 건 정도의 해고·징계 사건이 전체 노동위원회로 들어옵니다. 이 가운데 법원 소송으로까지 넘어가는 것은 5%도 채 안 됩니다. 대부분 노동위원회에서 결론이 나는 것이지요. 사실상 법원이나 다름없는 겁니다. 법원에선 판사가 판결하듯, 노동위원회에선 '공익위원'이 판정을 맡습니다. 어쩌면 이들이 해고자와 그 가족의 삶을 좌우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취재진취재진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 판사가 되는 것처럼 공익위원을 하려면 뭔가 노동 사건 또는 노동법에 전문적 식견을 갖춰야 할 겁니다. 그게 상식이지요. 취재진의 문제의식도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됐습니다. 도대체 누가 공익위원이 되는 것일까. 이들은 해고자의 삶을 좌우할 중요한 판정을 내릴 만큼 자격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을까. 노동위원회의 중요성에 비해 언론의 심층 보도는 그동안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KBS 탐사보도팀은 중앙노동위원회가 2008년~2014년 판정을 내린 해고·징계 사건 6,537건 전체를 단독 입수해 다각도로 분석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분석분석


공익위원별로 해고 사건에 대한 판정 결과가 크게 차이가 났습니다. 해고자 입장에선 자신의 사건이 누구에게 배당되느냐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겠죠. 문제는 공익위원들 가운데 '노동법 전문가'로 분류할 만한 사람이 절반 수준에 그쳤다는 점입니다. 이혼 사건 전문 변호사라든지, 아동학 교수가 공익위원으로 들어가 있기도 했습니다. 판정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놓고 문제 제기가 있을 법한 대목입니다. 또 하나. 노동법 전문가일수록 회사와 해고자 중 해고자 손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들어준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도 올해부터 공익위원들 가운데 노동부 관료 출신을 상당수 배제하는 등 전문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운용 방식이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 개선 방안을 놓고 노사정 삼자의 지혜가 모아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철수 서울대 법대 교수(노동법 전공)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이번 취재 결과에 대해 "노동위원회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거라고 평가했습니다.

독일 중학교 노동 수업독일 중학교 노동 수업


유럽 대부분의 선진 국가들은 아예 '노동법원'을 별도로 두고 노동 사건을 전담하게 하고 있습니다. 노동 사건을 처리하는 데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지요. 늘 그렇듯 유럽과 한국의 현실을 비교하는 건 좀 허탈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선진국이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한국 사회가 유럽보다 나은 면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다만 이번 취재에서 이것 하나만큼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취재진이 독일 베를린의 한 중학교에서 접했던 사회 수업입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다양한 사례를 제시해주고 해고가 정당한지 부당한지, 회사의 방침이 어떤 점에서 옳은지 그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노동자의 권리'를 세세히 가르치는 그들의 교육 방식. 솔직히 많이 부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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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기획 창] ‘노동위 심층 보고서’ 누가 심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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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해고 정당성 따지는 ‘노동위’는 정당한가?
    • 입력 2015-12-02 08:05:23
    • 수정2015-12-02 11:11:35
    취재후·사건후
자의든 타의든 직장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른바 '고용 불안 시대'라고도 하죠. 회사의 일방적 해고가 부당하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노동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찾아가는 곳이 있습니다. '노동위원회'입니다.
중앙노동위원회
'노동위원회'가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해고를 당한 노동자가 찾아오면 그 해고가 정당한지 부당한지를 판정합니다. 둘째, 회사와 노동조합 사이에 첨예한 갈등이 생기면 그걸 조정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합니다. 중요한 곳입니다. 말하자면 법원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볼 수 있죠.
공익위원 3인
한 해 평균 만 건 정도의 해고·징계 사건이 전체 노동위원회로 들어옵니다. 이 가운데 법원 소송으로까지 넘어가는 것은 5%도 채 안 됩니다. 대부분 노동위원회에서 결론이 나는 것이지요. 사실상 법원이나 다름없는 겁니다. 법원에선 판사가 판결하듯, 노동위원회에선 '공익위원'이 판정을 맡습니다. 어쩌면 이들이 해고자와 그 가족의 삶을 좌우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취재진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 판사가 되는 것처럼 공익위원을 하려면 뭔가 노동 사건 또는 노동법에 전문적 식견을 갖춰야 할 겁니다. 그게 상식이지요. 취재진의 문제의식도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됐습니다. 도대체 누가 공익위원이 되는 것일까. 이들은 해고자의 삶을 좌우할 중요한 판정을 내릴 만큼 자격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을까. 노동위원회의 중요성에 비해 언론의 심층 보도는 그동안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KBS 탐사보도팀은 중앙노동위원회가 2008년~2014년 판정을 내린 해고·징계 사건 6,537건 전체를 단독 입수해 다각도로 분석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분석
공익위원별로 해고 사건에 대한 판정 결과가 크게 차이가 났습니다. 해고자 입장에선 자신의 사건이 누구에게 배당되느냐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겠죠. 문제는 공익위원들 가운데 '노동법 전문가'로 분류할 만한 사람이 절반 수준에 그쳤다는 점입니다. 이혼 사건 전문 변호사라든지, 아동학 교수가 공익위원으로 들어가 있기도 했습니다. 판정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놓고 문제 제기가 있을 법한 대목입니다. 또 하나. 노동법 전문가일수록 회사와 해고자 중 해고자 손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들어준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도 올해부터 공익위원들 가운데 노동부 관료 출신을 상당수 배제하는 등 전문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운용 방식이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 개선 방안을 놓고 노사정 삼자의 지혜가 모아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철수 서울대 법대 교수(노동법 전공)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이번 취재 결과에 대해 "노동위원회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거라고 평가했습니다.
독일 중학교 노동 수업
유럽 대부분의 선진 국가들은 아예 '노동법원'을 별도로 두고 노동 사건을 전담하게 하고 있습니다. 노동 사건을 처리하는 데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지요. 늘 그렇듯 유럽과 한국의 현실을 비교하는 건 좀 허탈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선진국이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한국 사회가 유럽보다 나은 면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다만 이번 취재에서 이것 하나만큼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취재진이 독일 베를린의 한 중학교에서 접했던 사회 수업입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다양한 사례를 제시해주고 해고가 정당한지 부당한지, 회사의 방침이 어떤 점에서 옳은지 그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노동자의 권리'를 세세히 가르치는 그들의 교육 방식. 솔직히 많이 부러웠습니다. [연관 기사] ☞ [시사기획 창] ‘노동위 심층 보고서’ 누가 심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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