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네티즌 수사대의 ‘진짜’ 현행범 검거記

입력 2015.12.03 (08:14) 수정 2015.12.0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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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인천 대공원 앞이었습니다. 한낮이었지만 날씨는 꽤 쌀쌀했습니다. 한 남성이 같은 자리를 계속해서 서성였습니다. 검은 점퍼를 입었고, 점퍼에 달린 모자를 눌러쓰고 서 있었습니다.

잠시 뒤 남성이 서 있는 곳으로 퀵서비스 기사의 차량이 도착합니다. 기사는 종이상자 하나를 건넵니다. 남성이 택배 기사한테서 그 상자를 건네받는 순간, 차량에 함께 타고 있던 경찰이 남성을 현장에서 체포합니다. 인터넷 구매 사기의 현행범으로 현장에서 체포된 그 남성은 29살 왕 모 씨였습니다.

■ 범인 검거 현장을 카메라에 담다



왕 씨 검거 장면을 직접 현장에서 취재했습니다. 기자인 저에게도 범인을 검거하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현장에서 왕 씨는 달아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체포된 왕 씨의 옷을 수색하자 오만 원짜리 현금 뭉치가 나왔습니다. 얼핏 보기에도 수백만 원은 족히 되어 보이는 두툼한 뭉치였습니다. 고시원에 산다는 왕 씨가 저 많은 돈을 어디서 구했을까요?

■ 중고거래 물건만 받아 가로챈 수법은?


▲ 왕 씨가 갖고 있던 돈 뭉치


범행 수법은 간단했습니다. 범인은 금팔찌나 금목걸이와 같이 돈이 꽤 되는 물건이 중고장터에 나오면 접근했습니다. 일단 본인을 00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라고 소개했습니다. 사기꾼이 아니란 믿음을 주려는 거죠.

또 물건을 건네받을 장소로 본인 대신 퀵서비스 기사를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현장에서 물건을 퀵서비스 기사가 받는 즉시 인터넷 송금을 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입금하면 바로 문자메시지가 가지 않느냐며 걱정 말라고 믿음을 줬습니다.

'내가 믿고 사는 것이니 위험부담은 내가 한다'는 너스레도 상당했습니다. 하지만 이 입금 문자에 함정이 있었습니다. 물건 파는 사람에게 계좌이체는 하지도 않은 채, 은행이 보내는 입금 문자와 똑같은 형식과 내용으로 휴대폰 문자를 보내 계좌이체가 된 것처럼 꾸민 겁니다.


▲ 사기범이 보낸 가짜 입금 문자메시지


기사가 나간 뒤 기사에 붙은 댓글을 보니 '계좌 확인만 하면 알 수 있는데, 속은 사람이 바보 아니냐'는 반응도 있습니다. 얼핏 그리 생각하기 쉬운데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우선 사기범은 퀵서비스 기사에게 금팔찌가 건네지는 순간 은행을 사칭한 문자를 보냅니다. 그런 뒤엔 바로 전화를 겁니다. 물건을 건넸느냐, 문자는 받았느냐, 친절하게 묻고 또 잡담도 합니다. 통화 도중에 평소 은행에서 받던 문자와 꼭 같은 형식의 입금 문자메시지가 도착하죠.

물건 판 사람은 당연히 모바일 뱅킹으로 입금 사실을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범인은 도무지 전화를 끊을 생각이 없습니다. 몇 분을 확인하고 농담하고, 사소한 질문하고, 그렇게 시간을 끄는 것이죠. 수법입니다. 전화를 끊은 뒤, 입금이 안 된 사실을 알아차릴 때는 늦습니다. 이미 퀵서비스 기사는 떠났고, 범인은 더는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하늘은 노래집니다.

■ 피해자의 범인 추적, 이렇게 시작됐다

☞ [뉴스9] 감쪽 같은 가짜 ‘입금 문자’…믿었다간 큰 낭패

여덟 달 전 장진순 씨가 겪은 일이 바로 이렇습니다. 금목걸이를 주고도 받지 못한 돈은 480만 원이었습니다. 장 씨는 우선 인터넷에 사기당한 일을 정리해 올렸습니다. 추가 사기 방지를 위해서죠. 방송국에도 알립니다. 그렇게 해서 지난 3월, KBS는 장 씨 사연을 중심으로 뉴스를 내보냅니다.

KBS는 신종 수법의 사기인 데다, 유사한 사기가 재발할 수 있다고 판단해 중심 뉴스로 내보냈습니다. 장 씨는 또 경찰에 신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잡기 힘들 거라는 말을 듣습니다. 석 달 뒤, 경찰은 '수사 종결 통지서'를 장 씨 집으로 보냅니다.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수사를 더는 진행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수사할 단서가 없다는 뜻이죠.

하지만 장 씨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단서를 찾아 나가기 시작합니다. 피해 내용은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추가 피해자가 어디에서 발생했단 사실까지 확인해갑니다. 한편으로는 같은 방식으로 금붙이를 판다고 여러 차례 인터넷 장터에 글을 올리기도 합니다. 범인이 물기를 바라고 던진 '미끼'같은 거지요. '함정수사' 같은 거라고 할까요? 진짜 거래를 하려고 한 사람들이 나타날 때도 있었죠. 그때는 사정을 설명하고 돌려보내기도 했습니다.

피해 후 여덟 달 동안 장 씨는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범인을 추적합니다. '억울하고 약올라서'라고 말합니다. 사람으로부터 믿음을 배반 당한 경험, 그건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를 일입니다. 게다가 경찰은 포기한 상황. '결국 피해를 본 사람이 잡지 못하면 절대 잡지 못한다'는 확신까지 하게 되었거든요.

■ 네티즌 수사대의 공조, 마침내 빛을 보다



그런 장 씨에게 지난달, 한 네티즌이 연락을 해왔습니다. '한 남성이 00장터에 내놓은 내 금팔찌를 사겠다고 한다, 그런데 거래 방식이나 유형이 당신이 사기를 당한 것과 유사해 보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남성과 대화를 한 장 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합니다. 그리고 경찰은 현장에 함께 나가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결과는 영상으로 보신 대로입니다. 범인은 현장에서 붙잡힙니다. 결정적 제보를 한 네티즌, 바로 화면에 금팔찌를 착용하고 등장하는 이윤호 씨입니다. (얼굴은 가렸습니다.)



취재하면서 확인한 이른바 '네티즌 수사대'의 능력은 대단했습니다. 물론 장 씨가 포기하지 않았고, 또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에 범인이 잡힌 건 사실이지만, 이윤호 씨의 결정적인 제보가 없었다면 범인을 잡을 수는 없었겠죠. 이 씨 경우 물건을 팔려다가 미심쩍으면 안 팔면 그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씨는 직감적으로 사기범행을 알아채고 유사 피해를 겪은 장 씨를 찾아내서 연락합니다.

직거래 약속시각은 하루 미뤘습니다. 경찰에 신고하고 잠복수사를 할 시간을 번 겁니다. 또 개인 시간을 하루 할애해 현장을 지켰습니다. 위험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죠. 하지만 이 씨는 범인을 기다리고 대화하고 또 그 내용을 녹음해 증거를 남기기까지 검거 당일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냅니다.

장진순 씨와 이윤호 씨, 두 분만 등장한 게 아닙니다. 동일 피해를 본 경기도 일산과 광주, 대전의 시민들도 이들의 추적을 도왔습니다. 한 번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이 범인을 잡는다는 목적 하나로 인터넷상에서 똘똘 뭉친 겁니다. 범인과의 통화 녹음 목소리를 듣고는 같은 사람이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모두가 쫓고 있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란 사실을 확인한 거죠. CCTV도 제공했습니다.

더 중요한 건 현장에서 검거된 왕 씨 외에 범인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거죠. 범인이 쓰는 전화가 선불폰이며, 피해내역이 존재하는 전화란 사실 역시 이들 수사의 결과입니다. '네티즌 수사대'의 추적을 따돌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 경찰의 수사력은, 글쎄?



'네티즌 수사대'가 참 대단했다면, 경찰은 좀 아쉬웠습니다. 소액 사건이 빈발하고 범인들이 대부분 명의를 추적할 수 없는 전화를 쓰는 게 사실이긴 해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에는 아쉬움이 남는단 말을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처리해야 할 사건이 많다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좀 더 적극적으로 피해 예방에 나서줬더라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지는 않았을 거라는 아쉬움, 저만 가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장 씨 사건의 경우 피의자를 특정도 못 한 채 석 달이 지났고, 그 뒤 수사를 종결해버립니다. 많은 사건을 수사해야 하는 경찰로서는 사건의 경중을 가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었으리라 이해해보려고는 하지만, 인터넷 누리꾼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습니다. 제 앞선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그야말로 '경찰 성토장'입니다. '유사한 경험이 있다, 경찰은 소액 사건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피해자가 직접 잡지 않으면 못 잡는다, 범인 검거한 사람을 경찰로 특채하자, 이래서 사설탐정이 필요하다…'



이번 검거의 경우에도 현행범 외에 공범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지만, 경찰이 추가로 어떤 수사를 하고 있다는 내용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붙잡힌 범인 1명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해 검찰로 송치했다는 소식만 들려옵니다. 소식을 전해 들은 피해자들은, '이대로 사건이 종결되면 안 되는데, 지금도 사기를 치고 있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잡아야 하는데'하며 여전히 불안해합니다.

저 역시 이번 보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태도가 무척 의아하고 당황스러웠습니다. 공범을 추적하기보다는 내부 검거 보고에 앞서 언론에 먼저 보도되면 곤란하다는 것에 더 신경을 쓰는 태도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 여전히 계속되는 유사 범죄

보도 이후 비슷한 피해 사실을 알려오는 누리꾼들이 많습니다. 한 누리꾼은 현금 30만 원을 계좌로 송금했지만, 물건은 못 받는 피해를 봤다고 연락해왔습니다. 역시 '추적'을 해봤더니 사기꾼의 이름이 '안00'이고 2014년 10월에 감옥에 다녀온 사람이라는 것까지 알아냈다고 합니다. 동종 피해를 본 10여 명과 SNS로 대화하면서 올 10월 이후 피해를 본 사람이 무척 많다는 사실도 알아냈다고 전했습니다. 피해가 주말에 집중됐고, 소액 피해라 보상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사실도 알아냈습니다.

이렇게 피해 당사자와 네티즌들은 계속 피해를 호소하고 정보를 모으고 추적을 해가고 있는데, 왜 경찰은 범인을 못 잡는지, 계좌정지라도 하면 추가 피해는 막을 수 있을 텐데 왜 그러지 않는지, 그런 점을 노려 사기범들은 계속해서 사기를 치고 다니는 것이 아닌지... 네티즌 수사대는 그렇게 넘쳐나는 화를 삭여가며 지금 이 시각에도 계속해서 수사하고 있습니다. 경찰분들도, 바쁘시더라도, 조금 더 힘내주시길 바랍니다.

p.s 아울러 아직 잡히지 않은 공범의 목소리를 변조하지 않고 공개합니다. 장 씨는 경찰이 잡지 못하면 '취미 삼아서'라도 계속 이 목소리를 추적하겠다고 말합니다. 모쪼록 추가 피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범인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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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네티즌 수사대의 ‘진짜’ 현행범 검거記
    • 입력 2015-12-03 08:14:55
    • 수정2015-12-03 08:34:13
    취재후·사건후
지난달 19일 인천 대공원 앞이었습니다. 한낮이었지만 날씨는 꽤 쌀쌀했습니다. 한 남성이 같은 자리를 계속해서 서성였습니다. 검은 점퍼를 입었고, 점퍼에 달린 모자를 눌러쓰고 서 있었습니다. 잠시 뒤 남성이 서 있는 곳으로 퀵서비스 기사의 차량이 도착합니다. 기사는 종이상자 하나를 건넵니다. 남성이 택배 기사한테서 그 상자를 건네받는 순간, 차량에 함께 타고 있던 경찰이 남성을 현장에서 체포합니다. 인터넷 구매 사기의 현행범으로 현장에서 체포된 그 남성은 29살 왕 모 씨였습니다. ■ 범인 검거 현장을 카메라에 담다
왕 씨 검거 장면을 직접 현장에서 취재했습니다. 기자인 저에게도 범인을 검거하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현장에서 왕 씨는 달아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체포된 왕 씨의 옷을 수색하자 오만 원짜리 현금 뭉치가 나왔습니다. 얼핏 보기에도 수백만 원은 족히 되어 보이는 두툼한 뭉치였습니다. 고시원에 산다는 왕 씨가 저 많은 돈을 어디서 구했을까요? ■ 중고거래 물건만 받아 가로챈 수법은?
▲ 왕 씨가 갖고 있던 돈 뭉치
범행 수법은 간단했습니다. 범인은 금팔찌나 금목걸이와 같이 돈이 꽤 되는 물건이 중고장터에 나오면 접근했습니다. 일단 본인을 00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라고 소개했습니다. 사기꾼이 아니란 믿음을 주려는 거죠. 또 물건을 건네받을 장소로 본인 대신 퀵서비스 기사를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현장에서 물건을 퀵서비스 기사가 받는 즉시 인터넷 송금을 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입금하면 바로 문자메시지가 가지 않느냐며 걱정 말라고 믿음을 줬습니다. '내가 믿고 사는 것이니 위험부담은 내가 한다'는 너스레도 상당했습니다. 하지만 이 입금 문자에 함정이 있었습니다. 물건 파는 사람에게 계좌이체는 하지도 않은 채, 은행이 보내는 입금 문자와 똑같은 형식과 내용으로 휴대폰 문자를 보내 계좌이체가 된 것처럼 꾸민 겁니다.
▲ 사기범이 보낸 가짜 입금 문자메시지
기사가 나간 뒤 기사에 붙은 댓글을 보니 '계좌 확인만 하면 알 수 있는데, 속은 사람이 바보 아니냐'는 반응도 있습니다. 얼핏 그리 생각하기 쉬운데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우선 사기범은 퀵서비스 기사에게 금팔찌가 건네지는 순간 은행을 사칭한 문자를 보냅니다. 그런 뒤엔 바로 전화를 겁니다. 물건을 건넸느냐, 문자는 받았느냐, 친절하게 묻고 또 잡담도 합니다. 통화 도중에 평소 은행에서 받던 문자와 꼭 같은 형식의 입금 문자메시지가 도착하죠. 물건 판 사람은 당연히 모바일 뱅킹으로 입금 사실을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범인은 도무지 전화를 끊을 생각이 없습니다. 몇 분을 확인하고 농담하고, 사소한 질문하고, 그렇게 시간을 끄는 것이죠. 수법입니다. 전화를 끊은 뒤, 입금이 안 된 사실을 알아차릴 때는 늦습니다. 이미 퀵서비스 기사는 떠났고, 범인은 더는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하늘은 노래집니다. ■ 피해자의 범인 추적, 이렇게 시작됐다 ☞ [뉴스9] 감쪽 같은 가짜 ‘입금 문자’…믿었다간 큰 낭패 여덟 달 전 장진순 씨가 겪은 일이 바로 이렇습니다. 금목걸이를 주고도 받지 못한 돈은 480만 원이었습니다. 장 씨는 우선 인터넷에 사기당한 일을 정리해 올렸습니다. 추가 사기 방지를 위해서죠. 방송국에도 알립니다. 그렇게 해서 지난 3월, KBS는 장 씨 사연을 중심으로 뉴스를 내보냅니다. KBS는 신종 수법의 사기인 데다, 유사한 사기가 재발할 수 있다고 판단해 중심 뉴스로 내보냈습니다. 장 씨는 또 경찰에 신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잡기 힘들 거라는 말을 듣습니다. 석 달 뒤, 경찰은 '수사 종결 통지서'를 장 씨 집으로 보냅니다.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수사를 더는 진행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수사할 단서가 없다는 뜻이죠. 하지만 장 씨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단서를 찾아 나가기 시작합니다. 피해 내용은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추가 피해자가 어디에서 발생했단 사실까지 확인해갑니다. 한편으로는 같은 방식으로 금붙이를 판다고 여러 차례 인터넷 장터에 글을 올리기도 합니다. 범인이 물기를 바라고 던진 '미끼'같은 거지요. '함정수사' 같은 거라고 할까요? 진짜 거래를 하려고 한 사람들이 나타날 때도 있었죠. 그때는 사정을 설명하고 돌려보내기도 했습니다. 피해 후 여덟 달 동안 장 씨는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범인을 추적합니다. '억울하고 약올라서'라고 말합니다. 사람으로부터 믿음을 배반 당한 경험, 그건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를 일입니다. 게다가 경찰은 포기한 상황. '결국 피해를 본 사람이 잡지 못하면 절대 잡지 못한다'는 확신까지 하게 되었거든요. ■ 네티즌 수사대의 공조, 마침내 빛을 보다
그런 장 씨에게 지난달, 한 네티즌이 연락을 해왔습니다. '한 남성이 00장터에 내놓은 내 금팔찌를 사겠다고 한다, 그런데 거래 방식이나 유형이 당신이 사기를 당한 것과 유사해 보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남성과 대화를 한 장 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합니다. 그리고 경찰은 현장에 함께 나가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결과는 영상으로 보신 대로입니다. 범인은 현장에서 붙잡힙니다. 결정적 제보를 한 네티즌, 바로 화면에 금팔찌를 착용하고 등장하는 이윤호 씨입니다. (얼굴은 가렸습니다.)
취재하면서 확인한 이른바 '네티즌 수사대'의 능력은 대단했습니다. 물론 장 씨가 포기하지 않았고, 또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에 범인이 잡힌 건 사실이지만, 이윤호 씨의 결정적인 제보가 없었다면 범인을 잡을 수는 없었겠죠. 이 씨 경우 물건을 팔려다가 미심쩍으면 안 팔면 그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씨는 직감적으로 사기범행을 알아채고 유사 피해를 겪은 장 씨를 찾아내서 연락합니다. 직거래 약속시각은 하루 미뤘습니다. 경찰에 신고하고 잠복수사를 할 시간을 번 겁니다. 또 개인 시간을 하루 할애해 현장을 지켰습니다. 위험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죠. 하지만 이 씨는 범인을 기다리고 대화하고 또 그 내용을 녹음해 증거를 남기기까지 검거 당일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냅니다. 장진순 씨와 이윤호 씨, 두 분만 등장한 게 아닙니다. 동일 피해를 본 경기도 일산과 광주, 대전의 시민들도 이들의 추적을 도왔습니다. 한 번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이 범인을 잡는다는 목적 하나로 인터넷상에서 똘똘 뭉친 겁니다. 범인과의 통화 녹음 목소리를 듣고는 같은 사람이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모두가 쫓고 있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란 사실을 확인한 거죠. CCTV도 제공했습니다. 더 중요한 건 현장에서 검거된 왕 씨 외에 범인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거죠. 범인이 쓰는 전화가 선불폰이며, 피해내역이 존재하는 전화란 사실 역시 이들 수사의 결과입니다. '네티즌 수사대'의 추적을 따돌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 경찰의 수사력은, 글쎄?
'네티즌 수사대'가 참 대단했다면, 경찰은 좀 아쉬웠습니다. 소액 사건이 빈발하고 범인들이 대부분 명의를 추적할 수 없는 전화를 쓰는 게 사실이긴 해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에는 아쉬움이 남는단 말을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처리해야 할 사건이 많다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좀 더 적극적으로 피해 예방에 나서줬더라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지는 않았을 거라는 아쉬움, 저만 가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장 씨 사건의 경우 피의자를 특정도 못 한 채 석 달이 지났고, 그 뒤 수사를 종결해버립니다. 많은 사건을 수사해야 하는 경찰로서는 사건의 경중을 가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었으리라 이해해보려고는 하지만, 인터넷 누리꾼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습니다. 제 앞선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그야말로 '경찰 성토장'입니다. '유사한 경험이 있다, 경찰은 소액 사건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피해자가 직접 잡지 않으면 못 잡는다, 범인 검거한 사람을 경찰로 특채하자, 이래서 사설탐정이 필요하다…'
이번 검거의 경우에도 현행범 외에 공범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지만, 경찰이 추가로 어떤 수사를 하고 있다는 내용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붙잡힌 범인 1명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해 검찰로 송치했다는 소식만 들려옵니다. 소식을 전해 들은 피해자들은, '이대로 사건이 종결되면 안 되는데, 지금도 사기를 치고 있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잡아야 하는데'하며 여전히 불안해합니다. 저 역시 이번 보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태도가 무척 의아하고 당황스러웠습니다. 공범을 추적하기보다는 내부 검거 보고에 앞서 언론에 먼저 보도되면 곤란하다는 것에 더 신경을 쓰는 태도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 여전히 계속되는 유사 범죄 보도 이후 비슷한 피해 사실을 알려오는 누리꾼들이 많습니다. 한 누리꾼은 현금 30만 원을 계좌로 송금했지만, 물건은 못 받는 피해를 봤다고 연락해왔습니다. 역시 '추적'을 해봤더니 사기꾼의 이름이 '안00'이고 2014년 10월에 감옥에 다녀온 사람이라는 것까지 알아냈다고 합니다. 동종 피해를 본 10여 명과 SNS로 대화하면서 올 10월 이후 피해를 본 사람이 무척 많다는 사실도 알아냈다고 전했습니다. 피해가 주말에 집중됐고, 소액 피해라 보상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사실도 알아냈습니다. 이렇게 피해 당사자와 네티즌들은 계속 피해를 호소하고 정보를 모으고 추적을 해가고 있는데, 왜 경찰은 범인을 못 잡는지, 계좌정지라도 하면 추가 피해는 막을 수 있을 텐데 왜 그러지 않는지, 그런 점을 노려 사기범들은 계속해서 사기를 치고 다니는 것이 아닌지... 네티즌 수사대는 그렇게 넘쳐나는 화를 삭여가며 지금 이 시각에도 계속해서 수사하고 있습니다. 경찰분들도, 바쁘시더라도, 조금 더 힘내주시길 바랍니다. p.s 아울러 아직 잡히지 않은 공범의 목소리를 변조하지 않고 공개합니다. 장 씨는 경찰이 잡지 못하면 '취미 삼아서'라도 계속 이 목소리를 추적하겠다고 말합니다. 모쪼록 추가 피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범인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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