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話] 묘소 비석에 남겨진 의문의 휴대전화 번호

입력 2015.12.0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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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장례 문화는‘화장’이 일반화돼 있다. 시신을 화장한 뒤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바다에 뿌린다. 형편이 나은 사람은 유골을 공동묘지에 모시고 비석을 세운다. 그런데 최근 공동묘지에서 괴이한(?) 유골함 절도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12일, 류(劉) 모 씨는 새벽같이 허난성(河南省) 신양시(信陽市)에 있는 홍샨(红山) 공동묘지 관리사무소로부터 한 통의 전화 연락을 받았다. 급히 와달라는 부탁이다. 류 씨는 올해 초 남편이 세상을 떠나 화장을 한 뒤 그곳에 묻었다. 류 씨는 새벽부터 걸려온 전화가 못내 께름칙했지만, 별일 아니겠지 하고 가족과 함께 공동묘지를 찾았다.

류 씨 남편의 묘소는 여느 공동묘지 산소와 크게 다르지 않게 단장돼 있었다. 대리석 비석과 유골함이 갖춰진 일반적인 형식이다. 그런데 묘지 관리사무소 직원과 함께 찾아간 그녀는 남편의 묘를 보고 까무러지듯 놀랐다.

파헤쳐진 묘소파헤쳐진 묘소

묘가 방수포로 덮여 있고 이를 걷고 보니 묘소는 파헤쳐져 있고 유골함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콘크리트로 된 유골함 덮개는 부서져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나머지 부분도 크게 파손됐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한 산소를 보고 류 씨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류 씨 남편 묘지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십여 기의 묘지도 같은 피해를 입었다.

묘지 관리사무소 측도 전날 낮 12시쯤, 묘역을 순찰하다 이렇게 유골함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며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다만 범행 수법으로 볼 때 유골함 전문 절도범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공동묘지에 있는 폐쇄회로 TV나 보안 요원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망치도 사용하지 않고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 수작업을 한 흔적이 보인다고 말했다. 묘지 관리소 측은 도난을 확인한 뒤 묘역 뒤편 산 주위를 따라 1km를 수색했지만 끝내 유골함을 찾지 못했다.

비석에 낙서한 휴대전화 번호비석에 낙서한 휴대전화 번호

더욱이 유족들이 혀를 내두른 건 이들의 대담한 범행 때문이다. 이 절도범들은 비석 위쪽 눈에 잘 띄는 부분에 펜으로 자신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버젓이 적어놓기까지 했다. 유골함을 찾고 싶으면 연락하라는 어이없는 통보다. 유족들은 그 순간 뭔가에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경찰에 알리지도 못했다. 유골이 혹여 훼손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실제로 또 다른 피해자인 방(方) 모 씨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적힌 전화번호로 접촉을 시도했다. 전화번호는 장수성(江苏省) 전장(镇江)시 지역 번호로 나왔다. 전화를 걸자 범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하천 변에 잘 모시고 있다며 가족들이 돈을 가져오면 유골함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겠다고 대답했다.

방 씨는 가족과 상의 끝에 범인의 요구에 따라 먼저 2만 위안(약 370만 원)을 송금했다. 돈을 보내주면 당연히 유골함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유족들의 기대는 허망하게 수포로 돌아갔다. 그냥 나중에 보자는 빈말만 계속됐다. 차일피일 미루던 이들 범인은 다음 통화에서는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결국 방 씨 가족은 유골함은커녕 2만 위안의 생돈만 날리고 말았다. 가족들이 전화를 걸어 절도범에게 항의도 해봤지만 돌아온 건 욕설과 폭언.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협박도 더해졌다.

이후 문제 해결이 어려워지자 방 여사와 가족은 경찰에 신고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이들이 전국을 무대로 상습적으로 유골함을 훔치는 전문 절도단으로 판단하고 다른 지역 공안과 합동으로 추적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일정한 구역이나 목표 없이 떠돌아다니며 절도하기 쉬운 곳을 표적삼아 유골함을 훔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훼손된 묘소훼손된 묘소

지난 6월에도 항저우(杭州)에서는 10여 개의 공동묘지를 돌아다니며 200여 기의 묘소를 턴 전문 유골함 절도범이 경찰에 붙잡혀 세간을 놀라게 했다. 중국에서 최근 심심찮게 유골함 절도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유족들의 포기할 수 없는 심리를 악용한 악질적인 범죄다.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토장을 주로 하던 중국에서 지금처럼 화장으로 방향을 선회한 건 1950년대 들어서다. 1956년 마오쩌둥(毛澤東)은 매장을 금지하고 화장을 하도록 하는 ‘장묘문화혁명’을 실시했다. 막대한 산림이 묘지로 황폐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법으로 시작된 화장이지만 장사문화에 일대 큰 변화를 이끈 이는 지도층의 솔선수범이다. 1979년 사망한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는 화장 처리돼 바다에 뿌려졌고, 1989년 사망한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 역시 화장한 유골이 장시성(江西省) 황무지에 안장됐다. 1997년 사망한 덩샤오핑(鄧小平)도 화장 후 바다에 뿌려졌다.

이후 극히 일부 소수민족에 한해 매장이 허용되지만, 화장 문화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중국이 이처럼 어렵게 정착한 화장 문화가 유골 전문 절도범의 손쉬운 표적이 되면서 중국 정부의 새로운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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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2-09 11:01:33
    중국話
중국의 장례 문화는‘화장’이 일반화돼 있다. 시신을 화장한 뒤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바다에 뿌린다. 형편이 나은 사람은 유골을 공동묘지에 모시고 비석을 세운다. 그런데 최근 공동묘지에서 괴이한(?) 유골함 절도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12일, 류(劉) 모 씨는 새벽같이 허난성(河南省) 신양시(信陽市)에 있는 홍샨(红山) 공동묘지 관리사무소로부터 한 통의 전화 연락을 받았다. 급히 와달라는 부탁이다. 류 씨는 올해 초 남편이 세상을 떠나 화장을 한 뒤 그곳에 묻었다. 류 씨는 새벽부터 걸려온 전화가 못내 께름칙했지만, 별일 아니겠지 하고 가족과 함께 공동묘지를 찾았다. 류 씨 남편의 묘소는 여느 공동묘지 산소와 크게 다르지 않게 단장돼 있었다. 대리석 비석과 유골함이 갖춰진 일반적인 형식이다. 그런데 묘지 관리사무소 직원과 함께 찾아간 그녀는 남편의 묘를 보고 까무러지듯 놀랐다.
파헤쳐진 묘소
묘가 방수포로 덮여 있고 이를 걷고 보니 묘소는 파헤쳐져 있고 유골함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콘크리트로 된 유골함 덮개는 부서져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나머지 부분도 크게 파손됐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한 산소를 보고 류 씨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류 씨 남편 묘지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십여 기의 묘지도 같은 피해를 입었다. 묘지 관리사무소 측도 전날 낮 12시쯤, 묘역을 순찰하다 이렇게 유골함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며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다만 범행 수법으로 볼 때 유골함 전문 절도범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공동묘지에 있는 폐쇄회로 TV나 보안 요원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망치도 사용하지 않고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 수작업을 한 흔적이 보인다고 말했다. 묘지 관리소 측은 도난을 확인한 뒤 묘역 뒤편 산 주위를 따라 1km를 수색했지만 끝내 유골함을 찾지 못했다.
비석에 낙서한 휴대전화 번호
더욱이 유족들이 혀를 내두른 건 이들의 대담한 범행 때문이다. 이 절도범들은 비석 위쪽 눈에 잘 띄는 부분에 펜으로 자신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버젓이 적어놓기까지 했다. 유골함을 찾고 싶으면 연락하라는 어이없는 통보다. 유족들은 그 순간 뭔가에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경찰에 알리지도 못했다. 유골이 혹여 훼손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실제로 또 다른 피해자인 방(方) 모 씨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적힌 전화번호로 접촉을 시도했다. 전화번호는 장수성(江苏省) 전장(镇江)시 지역 번호로 나왔다. 전화를 걸자 범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하천 변에 잘 모시고 있다며 가족들이 돈을 가져오면 유골함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겠다고 대답했다. 방 씨는 가족과 상의 끝에 범인의 요구에 따라 먼저 2만 위안(약 370만 원)을 송금했다. 돈을 보내주면 당연히 유골함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유족들의 기대는 허망하게 수포로 돌아갔다. 그냥 나중에 보자는 빈말만 계속됐다. 차일피일 미루던 이들 범인은 다음 통화에서는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결국 방 씨 가족은 유골함은커녕 2만 위안의 생돈만 날리고 말았다. 가족들이 전화를 걸어 절도범에게 항의도 해봤지만 돌아온 건 욕설과 폭언.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협박도 더해졌다. 이후 문제 해결이 어려워지자 방 여사와 가족은 경찰에 신고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이들이 전국을 무대로 상습적으로 유골함을 훔치는 전문 절도단으로 판단하고 다른 지역 공안과 합동으로 추적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일정한 구역이나 목표 없이 떠돌아다니며 절도하기 쉬운 곳을 표적삼아 유골함을 훔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훼손된 묘소
지난 6월에도 항저우(杭州)에서는 10여 개의 공동묘지를 돌아다니며 200여 기의 묘소를 턴 전문 유골함 절도범이 경찰에 붙잡혀 세간을 놀라게 했다. 중국에서 최근 심심찮게 유골함 절도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유족들의 포기할 수 없는 심리를 악용한 악질적인 범죄다.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토장을 주로 하던 중국에서 지금처럼 화장으로 방향을 선회한 건 1950년대 들어서다. 1956년 마오쩌둥(毛澤東)은 매장을 금지하고 화장을 하도록 하는 ‘장묘문화혁명’을 실시했다. 막대한 산림이 묘지로 황폐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법으로 시작된 화장이지만 장사문화에 일대 큰 변화를 이끈 이는 지도층의 솔선수범이다. 1979년 사망한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는 화장 처리돼 바다에 뿌려졌고, 1989년 사망한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 역시 화장한 유골이 장시성(江西省) 황무지에 안장됐다. 1997년 사망한 덩샤오핑(鄧小平)도 화장 후 바다에 뿌려졌다. 이후 극히 일부 소수민족에 한해 매장이 허용되지만, 화장 문화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중국이 이처럼 어렵게 정착한 화장 문화가 유골 전문 절도범의 손쉬운 표적이 되면서 중국 정부의 새로운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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