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스릴 만점’ 스키장? 자칫 형사 책임까지…

입력 2015.12.24 (09:06) 수정 2015.12.2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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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위해 경기도의 한 스키장을 찾았습니다. 슬로프 옆에서 한 시간여를 지켜봤는데, 실수로 넘어져 눈밭을 뒹구는 스키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찔한 순간이 적지 않았습니다.

매해 스키 시즌이 끝나면 법원에는 스키장 안전사고 문제로 인한 소송이 심심찮게 접수됩니다. 대체로 스커어들이 스키장에서 부상을 입고 스키장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입니다. 하지만 이용객이 스키장 측을 상대로 소송에서 이긴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변호사도 스키장 안전사고 소송에서 이용객이 승소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스키장스키장


■ 스키장 측의 과실 입증 쉽지 않아

스키장 안전사고와 관련한 법원 판결문에선 대체로 이런 문장이 등장합니다. 〈스키는 운동 특성상 슬로프에서 미끄러지거나 넘어지는 등의 위험이 수반되는 것으로서, 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스키를 탄다〉.

한마디로 스키의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스키를 탄 만큼, 이용자에게 사고의 책임도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슬로프의 난이도 선택과 안전모 착용 등 안전에 관한 주의 의무 역시 이용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게 법원 판결의 취지입니다.

슬로프 시설에 명백한 하자가 있거나 안전 요원 미배치 등 스키장 측의 명백한 과실이 있증될 경우라면 당연히 스키장 측이 책임을 집니다. 하지만 판례를 찾아보면 일반인들이 스키장 측의 과실을 입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스키를 즐기는 본인이 우선 안전사고에 유의해 스키를 즐기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스키장 사고스키장 사고


■ 사례 1

지난 2012년 2월 정 모 군은 경기도의 한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사고는 중급자 코스 하단부에서 발생했는데, 정 군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미끄러져 옆에 있던 안전 그물망과 충돌한 뒤 밖으로 튕겨져나갔습니다. 마침 안전 그물망 밖에서 이용객이 들고 있던 스노보드 날에 부딪히면서 정 군은 얼굴을 심하게 다쳤습니다. 정 군의 부모는 스키장 측을 상대로 2억여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 5월, 정 군 측의 주장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판결의 결정적인 이유는 정 군이 이날 스키를 처음 타는 초보임에도 불구하고 중급자 코스에 올라갔다는 점입니다. 스키장 이용객 스스로 실력에 맞는 슬로프를 선택해야지, 이용객의 실력을 스키장이 사전에 확인하고 통제할 방법은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법원은 정 군이 부딪힌 뒤 튕겨져나간 안전 그물망 역시 오히려 기둥을 단단하게 고정할 경우 이용객들이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스키장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안전모 등 보호 장구 착용 등의 책임도 정 군에게 있다고 봤습니다.

이 판결에서도 '스키장 이용객이 위험을 감수하고 스키를 즐긴다'는 점이 손해배상 여부를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 사례 2

42살 박 모 씨는 지난 2102년 3월 강원도의 한 스키장에서 방향을 바꾸다가 하다가 넘어져 무릎 십자인대 파열 등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박 씨는 스키장이 제설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생긴 얼음 턱에 걸려 넘어지면서 사고가 발생했다며 3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스키장 측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박 씨는 2심까지 다퉜지만, 소송에서 모두 졌습니다.

이 판결에서도 법원은 박 씨가 실력 이상의 슬로프를 선택해 무리하게 방향을 바꾸다가 사고가 났다는 스키장의 후송일지에 서명한 점을 결정적인 판단 이유로 제시했습니다. 법원은 얼음 턱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정 씨의 주장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스키장 안전사고 문제가 민사 소송에서 그치지 않고, 형사 처벌까지 가는 사례도 있습니다. 다른 스커어들과 부딪혀 부상을 입혔을 때 합의가 원만하지 않으면 교통사고처럼 벌금형 등에 처해질 수 있는 겁니다.

스키장 사고스키장 사고


■ 사고 냈다가 형사 처벌도…

32살 허 모 씨는 지난 2013년 1월, 강원도의 한 스키장에서 빠른 속도로 스노보드를 타고 내려오다가 앞에 있던 김 모 씨를 들이받았습니다. 이 사고로 김 씨는 목 등을 다치는 전치 6주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피해자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허 씨는 재판에 넘겨졌고, 결국 과실치상 혐의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올해 1월, 42살 최 모 씨 역시 전북의 한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다가 슬로프에 넘어져 있던 김 모 씨를 발견하고도 제때 서지 못해 김 씨에게 전치 6주의 부상을 입혔습니다.

최 씨 역시 법원에서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법원은 "최 씨가 속도를 줄이며 스키의 조향 및 제동을 정확히 해서 사고를 미리 방지해야 할 주의 의무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교통사고와 마찬가지로 전방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하고, 멈춰 서지 못한 최 씨에게 과실치상의 책임을 물은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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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스릴 만점’ 스키장? 자칫 형사 책임까지…
    • 입력 2015-12-24 09:06:17
    • 수정2015-12-24 09:27:06
    취재후·사건후
취재를 위해 경기도의 한 스키장을 찾았습니다. 슬로프 옆에서 한 시간여를 지켜봤는데, 실수로 넘어져 눈밭을 뒹구는 스키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찔한 순간이 적지 않았습니다.

매해 스키 시즌이 끝나면 법원에는 스키장 안전사고 문제로 인한 소송이 심심찮게 접수됩니다. 대체로 스커어들이 스키장에서 부상을 입고 스키장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입니다. 하지만 이용객이 스키장 측을 상대로 소송에서 이긴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변호사도 스키장 안전사고 소송에서 이용객이 승소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스키장


■ 스키장 측의 과실 입증 쉽지 않아

스키장 안전사고와 관련한 법원 판결문에선 대체로 이런 문장이 등장합니다. 〈스키는 운동 특성상 슬로프에서 미끄러지거나 넘어지는 등의 위험이 수반되는 것으로서, 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스키를 탄다〉.

한마디로 스키의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스키를 탄 만큼, 이용자에게 사고의 책임도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슬로프의 난이도 선택과 안전모 착용 등 안전에 관한 주의 의무 역시 이용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게 법원 판결의 취지입니다.

슬로프 시설에 명백한 하자가 있거나 안전 요원 미배치 등 스키장 측의 명백한 과실이 있증될 경우라면 당연히 스키장 측이 책임을 집니다. 하지만 판례를 찾아보면 일반인들이 스키장 측의 과실을 입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스키를 즐기는 본인이 우선 안전사고에 유의해 스키를 즐기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스키장 사고


■ 사례 1

지난 2012년 2월 정 모 군은 경기도의 한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사고는 중급자 코스 하단부에서 발생했는데, 정 군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미끄러져 옆에 있던 안전 그물망과 충돌한 뒤 밖으로 튕겨져나갔습니다. 마침 안전 그물망 밖에서 이용객이 들고 있던 스노보드 날에 부딪히면서 정 군은 얼굴을 심하게 다쳤습니다. 정 군의 부모는 스키장 측을 상대로 2억여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 5월, 정 군 측의 주장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판결의 결정적인 이유는 정 군이 이날 스키를 처음 타는 초보임에도 불구하고 중급자 코스에 올라갔다는 점입니다. 스키장 이용객 스스로 실력에 맞는 슬로프를 선택해야지, 이용객의 실력을 스키장이 사전에 확인하고 통제할 방법은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법원은 정 군이 부딪힌 뒤 튕겨져나간 안전 그물망 역시 오히려 기둥을 단단하게 고정할 경우 이용객들이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스키장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안전모 등 보호 장구 착용 등의 책임도 정 군에게 있다고 봤습니다.

이 판결에서도 '스키장 이용객이 위험을 감수하고 스키를 즐긴다'는 점이 손해배상 여부를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 사례 2

42살 박 모 씨는 지난 2102년 3월 강원도의 한 스키장에서 방향을 바꾸다가 하다가 넘어져 무릎 십자인대 파열 등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박 씨는 스키장이 제설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생긴 얼음 턱에 걸려 넘어지면서 사고가 발생했다며 3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스키장 측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박 씨는 2심까지 다퉜지만, 소송에서 모두 졌습니다.

이 판결에서도 법원은 박 씨가 실력 이상의 슬로프를 선택해 무리하게 방향을 바꾸다가 사고가 났다는 스키장의 후송일지에 서명한 점을 결정적인 판단 이유로 제시했습니다. 법원은 얼음 턱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정 씨의 주장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스키장 안전사고 문제가 민사 소송에서 그치지 않고, 형사 처벌까지 가는 사례도 있습니다. 다른 스커어들과 부딪혀 부상을 입혔을 때 합의가 원만하지 않으면 교통사고처럼 벌금형 등에 처해질 수 있는 겁니다.

스키장 사고


■ 사고 냈다가 형사 처벌도…

32살 허 모 씨는 지난 2013년 1월, 강원도의 한 스키장에서 빠른 속도로 스노보드를 타고 내려오다가 앞에 있던 김 모 씨를 들이받았습니다. 이 사고로 김 씨는 목 등을 다치는 전치 6주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피해자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허 씨는 재판에 넘겨졌고, 결국 과실치상 혐의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올해 1월, 42살 최 모 씨 역시 전북의 한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다가 슬로프에 넘어져 있던 김 모 씨를 발견하고도 제때 서지 못해 김 씨에게 전치 6주의 부상을 입혔습니다.

최 씨 역시 법원에서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법원은 "최 씨가 속도를 줄이며 스키의 조향 및 제동을 정확히 해서 사고를 미리 방지해야 할 주의 의무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교통사고와 마찬가지로 전방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하고, 멈춰 서지 못한 최 씨에게 과실치상의 책임을 물은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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