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양건 사망…통일부 ‘조의’, 남북관계 영향은?

입력 2015.12.30 (17:20) 수정 2015.12.30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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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의 대남정책을 총괄해온 김양건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어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습니다.

향년 일흔셋의 나이인데요.

북측이 밝힌 사인은 교통사고입니다.

-김양건 비서의 사망이 북한 권력 지형과 또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먼저 김양건 비서의 사망에 대해서 나온 북한의 보도를 저희가 정리했는데요.

이걸 보시고 분석을 좀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아침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양건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어제 오전 6시 15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부고를 띄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중앙TV에서도 보도가 나왔습니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인 김양건 동지는 교통사고로 주체 104, 2015년 12월 29일 6시 15분에 73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서거하였다.

-북한은 김양건 비서의 부고에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충직한 혁명전사이며 김정은 제1위원장의 가장 가까운 동지라고 밝혔습니다.

-수령에 대한 고결한 충정과 높은 실력을 지니고 오랜 기간 우리 당의 위업을 충직하게 받들어온 김양건 동지를 잃은 것은 우리 당과 인민에게 있어서 큰 손실로 된다.

-또 김 비서의 장례식은 김정은 위원장이 국가장의위원장을 맡아 내일 오전 8시 국장으로 거행된다고 전했습니다.

-김양건 비서 하면 우리에게도 좀 친숙한 분이죠.

-그렇습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일 위원장 옆에 배석했던 분이잖아요.

그러니까 김정일 위원장 때부터 신뢰를 받아온 분인데 어떤 분인지 소개해 주시죠.

-일단 42년생입니다.

73세로 사망을 했고요.

평안남도 안주 출신입니다.

김일성종합대학교를 졸업을 했습니다.

졸업한 다음에 국제부의 일단 외교부 말단 관리로 시작을 했는데 한마디로 승진의 가도를 달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 번도 좌천을 당한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노련하고 굉장히 스마트한 인물입니다.

일단 매너가 굉장히 외교관 스타일이라 그럽니다.

보통 북한의 담당자들이 상당히 좀 거친 측면이 있는데 이 김양건 비서는 국제통답게 굉장히 스마트하고 아주 세련된 매너를 갖고 있고요.

-전공도 프랑스어시더라고요.

▼김양건, 그는 누구인가?▼

-그렇습니다.

저희로서는 2007년 10.4 정상회담을 노무현 대통령, 김정일 위원장 간에 성사시킬 때 배석을 할 정도로 신뢰를 받았습니다.

가깝게는 인천 아시안게임 때 3인방이 갑자기 인천에 왔는데 그때 거의 단장 격으로 왔고요.

또 근접하게는 지난 8월 25일 합의를 판문점에서 이끌어낼 때 우리 김관진 안보실장의 상대역으로 활약을 했습니다.

사실 그 뒤에 확성기 방송을 껐다고 해서 평양으로 돌아가서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을 정도로 김정은의 최측근 대남국제비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온 인물로 북한이 당 비서지만 국장을 이례적으로 선언을 하고 부고를 조선중앙TV와 노동신문을 통해서 공개하는 등 아주 신뢰를 보내는 인물입니다.

-정상회담이나 또는 8.25 합의도 이끌어냈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게 보면 협상의 달인이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을까요?

-예, 남북관계라는 게 주고받기인데.

김양건 비서는 그런 측면에서 굉장히 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측의 요구사항을 굉장히 정확하게 파악하고 또 북측이 줄 만한 사항을 정확하게 제시함으로써 결국은 씨름 끝에 협상을 하고 정상회담을 성사시킨다는 측면에서 우리 측에서는 어렵지만 그래도 대화가 되는.

일종의 주화파, 대화파 북한 대남통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뭐 저런 인물이 앞으로 누가 앞으로 나타날 것인지에 관해서 우리 입장에서는 조금 기다려야 될 정도로 풍부한 경험을 가졌다라는 것이 김양건 비서의 최대 강점이고 또 우리로서는 그런 대로 말이 통하는 인물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군요.

아버지와 할아버지 때보다도 유난히 숙청을 많이 해서 공포정치를 했던 김정은 위원장의 그런 두터운 신뢰를 얻었던 비결은 뭐였을까요?

▼김양건, 승승장구 배경?▼

-일단 노련합니다.

일단 지도자의 의향을 정확하게 파악을 하고 거기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또 요구사항을 충실하게 이행함으로써 신뢰를 받았죠.

그게 2007년에 10.4 정상회담을 김정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끎으로써 김정일의 무한한 신뢰를 받았고 대를 이어서 또 김정은 세대에 와서도 인천에 내려와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또 8.25합의에서는 자신들의 위급한 측면인 확성기 방송을 끔으로써 김정은의 무한한 신뢰를 얻어서 공화국 영웅 칭호까지 받는 등 지도자의 어떤 요구를 정확하게 관철해내는 그런 측면에서 굉장히 외교의 아주 달인이라고 평가하면 맞다.

-그리고 또 어떤 세력화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 김정은 위원장을 덜 위협받게 하는...

-그렇습니다.

생전에 그 사람을 접촉한 남측 인사들에 따르면 일단 파벌이 없었고 누구하고 척을 지는 적이 없었고 또 대화가, 언어가 굉장히 절제돼 있다고 해서 누구로부터 원성을 사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것이 또 그게 공화국 사회에서 장수하는 하나의 비결이 됐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망사고 자체를 좀 놓고 보면요.

북한이 부고를 띄우면서 사인에 대해서 교통사고다 이렇게 밝힌 것도 좀 이례적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이제 사망 장소 이런 것을 밝히지 않았고요.

그리고 사망시점에서 발표까지 하루 정도가 걸렸는데 왜 늦어진 걸까요?

-일단 육하원칙에 의한 발표에서 장소가 빠져 있죠.

어제 아침 6시 15분이라고 교통사고로 나옴으로써 우리 입장에서 북한의 무슨 차가 많길래 아침 6시 15분에 러시아워도 아닐 텐데 교통사고가 났을까.

그리고 과연 시내인가, 시 외곽인가 그런 것도 궁금증이 있고.

저희로서는 김용순과 이제강이라는 사람을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김용순 역시 2000년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인물이죠.

그런 인물이 교통사고로 지금 사망을 했습니다.

그때 김용순 비서가 남측과 대화에 적극적이다 보니까 군 쪽으로부터, 보수파들로부터 반발을 야기했지 않았느냐.

그래서 김용순 비서도 역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교통사고라는 것이 위장사의 하나의 대명사가 됐고요.

최근에는 2010년에 리제강 당 부부장이 장성택 측근들에 의해서 제거되는 과정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발표가 나옴으로써 교통사고 하면 아, 이게 정적 제거의 하나의 수단이 아니겠느냐라고 우리가 자꾸 추론을 해볼 수밖에 없는데 현재로서는 김양건 부장의 얘기로는 정확하게는 당국에서 아직 확인이 나오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의문이 좀 든다는 거죠?

-우리가 당연히 의문점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견제 세력에 의한 숙청이냐.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의 워낙에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숙청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의견들이 있는데 국정원의 발표를 좀 더 지켜봐야겠죠.

최근 좌천된 것으로 알려진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김양건 장의위원회 명단에 포함돼 있습니다.

이게 보시면 여섯 번째에 이름을 올렸어요.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다시 복귀를 했죠.

지난번에 리을설 원수의 장례위원회 명단에서 빠지면서 저희가 닭공장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고 있지 않느랴고 추론했는데 두 달 만에 거의 복권됨으로써 그의 건재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밖에 없고요.

▼최룡해 복귀로 해석?▼

최룡해의 복권이 김양건의 사망과 무슨 관계를 가지는지는 좀 더 저희가 지켜봐야겠지만 다시 한 번 최룡해가 세구나, 실세라는 그런 인식을 갖기에는 충분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한번 보면 숙청설이 제기됐던 원동연 부부장도 이번에 장의위원 명단에 올랐어요.

-원동연 역시 대남관계통이죠.

다소 조금은 강경한 입장을 가끔 보이는 인물이죠.

아마 김양건 부장이 사라진 이후에 차세대 대남 최고 일꾼으로 떠오를 1순위가 우리가 원동연 부부장으로 보고요.

그다음에 맹경일 부부장.

주로 차관급들이 부각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사람들의 부상이 강경쪽으로 흐를 것인지 온건쪽으로 흐를 것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되겠지만 우리로서는 김양건 부장이 대남관계에 풍부한 경험을 가져서 비교적 온건했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대남관계에 강경쪽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사실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 김양건 비서가 사라진 그 자리에 포스트 김양건이 누가 될지도 궁금하고요.

또 김양건 최측근 중의 하나였으니까 비서의 공백이 혹시 김정은 체제에 어떤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듭니다.

▼김정은 체제에 미칠 영향?▼

-물론 북한 체제가 특정 인물이 빠진다 그래서 금방 체제가 휘청거리거나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죠.

다만 이런 정상회담을 수행한 인물이 사라짐으로써 김정은의 대남 협상에서의 입김이 좀 더 강해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

협상장에 직접 관여하는, 사실은 그동안에 김양건 비서가 완충장치 역할을 했는데.

-외교통이 사라졌으니.

-최고 경험자가 사라짐으로써 김정은이 협상장으로 직접 전화를 해서 지시를 할 경우에 남북관계의 협상이 뜻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도 상존하기 때문에 앞으로 내년 5월 7차 당대회까지 남북관계를 끌고갈 것인지 우리 정부의 조금 대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우리 정부에서는 일단 남북관계 문제에서는 우리 정부도 고민이 좀 많을 것은 같은데.

일단 우리 정부도 조의를 표명을 했죠.

▼정부, 김양건 사망 조의 표명▼

-네, 일단 정상회담을 했던 인물이고 또 서울에도 몇 차례 왔던 인물이기 때문에 예의를 표명했고요.

물론 조문사절이 갈 시간은 없습니다.

내일 아침 8시에 장례를 치르기 때문에 서울에서 누가 갈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김양건의 사망을 계기로 남북이 조금 더 부드러운...

김양건의 유지가 또 그런 뜻이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 입장으로서는 좀 더 후계자들이 좀 더 부드러운 협상, 좀 더 유연한 협상을 할 수 있기를 현재 기대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남관계도 걱정이 되지만 아무래도 외교라인이 바뀌다 보면 북미, 북일, 북중 관계에도 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가장 큰 측면이 중국과의 관계입니다.

사실은 김정은 입장에서는 이번에 모란봉악단의 전격 철수에서 봤듯이 북중관계가 매끄럽지 않습니다.

특히 내년 5월 7차 당대회를 마치고 베이징을 방문해야 되는데 이러한 것을 최대한 원만하게 처리할 부서들이 국제부입니다.

이 국제부의 비서가 결국은 김양건 부서인데 김양건 비서가 사라짐으로써 중국통인 최룡해가 전면에 나서서 방중 문제를 협의할 텐데 과연 김양건 비서만큼 아주 유연하고 또 세련되게 노련하게 문제를 풀 수 있을지 그건 조금 미지수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게요.

여러 번 좌천됐다 올라왔다 한 분이라서 어떻게 또 대처를 하실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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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양건 사망…통일부 ‘조의’, 남북관계 영향은?
    • 입력 2015-12-30 17:28:45
    • 수정2015-12-30 19:4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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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의 대남정책을 총괄해온 김양건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어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습니다.

향년 일흔셋의 나이인데요.

북측이 밝힌 사인은 교통사고입니다.

-김양건 비서의 사망이 북한 권력 지형과 또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먼저 김양건 비서의 사망에 대해서 나온 북한의 보도를 저희가 정리했는데요.

이걸 보시고 분석을 좀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아침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양건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어제 오전 6시 15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부고를 띄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중앙TV에서도 보도가 나왔습니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인 김양건 동지는 교통사고로 주체 104, 2015년 12월 29일 6시 15분에 73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서거하였다.

-북한은 김양건 비서의 부고에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충직한 혁명전사이며 김정은 제1위원장의 가장 가까운 동지라고 밝혔습니다.

-수령에 대한 고결한 충정과 높은 실력을 지니고 오랜 기간 우리 당의 위업을 충직하게 받들어온 김양건 동지를 잃은 것은 우리 당과 인민에게 있어서 큰 손실로 된다.

-또 김 비서의 장례식은 김정은 위원장이 국가장의위원장을 맡아 내일 오전 8시 국장으로 거행된다고 전했습니다.

-김양건 비서 하면 우리에게도 좀 친숙한 분이죠.

-그렇습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일 위원장 옆에 배석했던 분이잖아요.

그러니까 김정일 위원장 때부터 신뢰를 받아온 분인데 어떤 분인지 소개해 주시죠.

-일단 42년생입니다.

73세로 사망을 했고요.

평안남도 안주 출신입니다.

김일성종합대학교를 졸업을 했습니다.

졸업한 다음에 국제부의 일단 외교부 말단 관리로 시작을 했는데 한마디로 승진의 가도를 달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 번도 좌천을 당한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노련하고 굉장히 스마트한 인물입니다.

일단 매너가 굉장히 외교관 스타일이라 그럽니다.

보통 북한의 담당자들이 상당히 좀 거친 측면이 있는데 이 김양건 비서는 국제통답게 굉장히 스마트하고 아주 세련된 매너를 갖고 있고요.

-전공도 프랑스어시더라고요.

▼김양건, 그는 누구인가?▼

-그렇습니다.

저희로서는 2007년 10.4 정상회담을 노무현 대통령, 김정일 위원장 간에 성사시킬 때 배석을 할 정도로 신뢰를 받았습니다.

가깝게는 인천 아시안게임 때 3인방이 갑자기 인천에 왔는데 그때 거의 단장 격으로 왔고요.

또 근접하게는 지난 8월 25일 합의를 판문점에서 이끌어낼 때 우리 김관진 안보실장의 상대역으로 활약을 했습니다.

사실 그 뒤에 확성기 방송을 껐다고 해서 평양으로 돌아가서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을 정도로 김정은의 최측근 대남국제비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온 인물로 북한이 당 비서지만 국장을 이례적으로 선언을 하고 부고를 조선중앙TV와 노동신문을 통해서 공개하는 등 아주 신뢰를 보내는 인물입니다.

-정상회담이나 또는 8.25 합의도 이끌어냈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게 보면 협상의 달인이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을까요?

-예, 남북관계라는 게 주고받기인데.

김양건 비서는 그런 측면에서 굉장히 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측의 요구사항을 굉장히 정확하게 파악하고 또 북측이 줄 만한 사항을 정확하게 제시함으로써 결국은 씨름 끝에 협상을 하고 정상회담을 성사시킨다는 측면에서 우리 측에서는 어렵지만 그래도 대화가 되는.

일종의 주화파, 대화파 북한 대남통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뭐 저런 인물이 앞으로 누가 앞으로 나타날 것인지에 관해서 우리 입장에서는 조금 기다려야 될 정도로 풍부한 경험을 가졌다라는 것이 김양건 비서의 최대 강점이고 또 우리로서는 그런 대로 말이 통하는 인물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군요.

아버지와 할아버지 때보다도 유난히 숙청을 많이 해서 공포정치를 했던 김정은 위원장의 그런 두터운 신뢰를 얻었던 비결은 뭐였을까요?

▼김양건, 승승장구 배경?▼

-일단 노련합니다.

일단 지도자의 의향을 정확하게 파악을 하고 거기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또 요구사항을 충실하게 이행함으로써 신뢰를 받았죠.

그게 2007년에 10.4 정상회담을 김정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끎으로써 김정일의 무한한 신뢰를 받았고 대를 이어서 또 김정은 세대에 와서도 인천에 내려와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또 8.25합의에서는 자신들의 위급한 측면인 확성기 방송을 끔으로써 김정은의 무한한 신뢰를 얻어서 공화국 영웅 칭호까지 받는 등 지도자의 어떤 요구를 정확하게 관철해내는 그런 측면에서 굉장히 외교의 아주 달인이라고 평가하면 맞다.

-그리고 또 어떤 세력화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 김정은 위원장을 덜 위협받게 하는...

-그렇습니다.

생전에 그 사람을 접촉한 남측 인사들에 따르면 일단 파벌이 없었고 누구하고 척을 지는 적이 없었고 또 대화가, 언어가 굉장히 절제돼 있다고 해서 누구로부터 원성을 사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것이 또 그게 공화국 사회에서 장수하는 하나의 비결이 됐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망사고 자체를 좀 놓고 보면요.

북한이 부고를 띄우면서 사인에 대해서 교통사고다 이렇게 밝힌 것도 좀 이례적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이제 사망 장소 이런 것을 밝히지 않았고요.

그리고 사망시점에서 발표까지 하루 정도가 걸렸는데 왜 늦어진 걸까요?

-일단 육하원칙에 의한 발표에서 장소가 빠져 있죠.

어제 아침 6시 15분이라고 교통사고로 나옴으로써 우리 입장에서 북한의 무슨 차가 많길래 아침 6시 15분에 러시아워도 아닐 텐데 교통사고가 났을까.

그리고 과연 시내인가, 시 외곽인가 그런 것도 궁금증이 있고.

저희로서는 김용순과 이제강이라는 사람을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김용순 역시 2000년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인물이죠.

그런 인물이 교통사고로 지금 사망을 했습니다.

그때 김용순 비서가 남측과 대화에 적극적이다 보니까 군 쪽으로부터, 보수파들로부터 반발을 야기했지 않았느냐.

그래서 김용순 비서도 역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교통사고라는 것이 위장사의 하나의 대명사가 됐고요.

최근에는 2010년에 리제강 당 부부장이 장성택 측근들에 의해서 제거되는 과정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발표가 나옴으로써 교통사고 하면 아, 이게 정적 제거의 하나의 수단이 아니겠느냐라고 우리가 자꾸 추론을 해볼 수밖에 없는데 현재로서는 김양건 부장의 얘기로는 정확하게는 당국에서 아직 확인이 나오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의문이 좀 든다는 거죠?

-우리가 당연히 의문점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견제 세력에 의한 숙청이냐.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의 워낙에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숙청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의견들이 있는데 국정원의 발표를 좀 더 지켜봐야겠죠.

최근 좌천된 것으로 알려진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김양건 장의위원회 명단에 포함돼 있습니다.

이게 보시면 여섯 번째에 이름을 올렸어요.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다시 복귀를 했죠.

지난번에 리을설 원수의 장례위원회 명단에서 빠지면서 저희가 닭공장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고 있지 않느랴고 추론했는데 두 달 만에 거의 복권됨으로써 그의 건재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밖에 없고요.

▼최룡해 복귀로 해석?▼

최룡해의 복권이 김양건의 사망과 무슨 관계를 가지는지는 좀 더 저희가 지켜봐야겠지만 다시 한 번 최룡해가 세구나, 실세라는 그런 인식을 갖기에는 충분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한번 보면 숙청설이 제기됐던 원동연 부부장도 이번에 장의위원 명단에 올랐어요.

-원동연 역시 대남관계통이죠.

다소 조금은 강경한 입장을 가끔 보이는 인물이죠.

아마 김양건 부장이 사라진 이후에 차세대 대남 최고 일꾼으로 떠오를 1순위가 우리가 원동연 부부장으로 보고요.

그다음에 맹경일 부부장.

주로 차관급들이 부각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사람들의 부상이 강경쪽으로 흐를 것인지 온건쪽으로 흐를 것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되겠지만 우리로서는 김양건 부장이 대남관계에 풍부한 경험을 가져서 비교적 온건했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대남관계에 강경쪽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사실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 김양건 비서가 사라진 그 자리에 포스트 김양건이 누가 될지도 궁금하고요.

또 김양건 최측근 중의 하나였으니까 비서의 공백이 혹시 김정은 체제에 어떤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듭니다.

▼김정은 체제에 미칠 영향?▼

-물론 북한 체제가 특정 인물이 빠진다 그래서 금방 체제가 휘청거리거나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죠.

다만 이런 정상회담을 수행한 인물이 사라짐으로써 김정은의 대남 협상에서의 입김이 좀 더 강해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

협상장에 직접 관여하는, 사실은 그동안에 김양건 비서가 완충장치 역할을 했는데.

-외교통이 사라졌으니.

-최고 경험자가 사라짐으로써 김정은이 협상장으로 직접 전화를 해서 지시를 할 경우에 남북관계의 협상이 뜻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도 상존하기 때문에 앞으로 내년 5월 7차 당대회까지 남북관계를 끌고갈 것인지 우리 정부의 조금 대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우리 정부에서는 일단 남북관계 문제에서는 우리 정부도 고민이 좀 많을 것은 같은데.

일단 우리 정부도 조의를 표명을 했죠.

▼정부, 김양건 사망 조의 표명▼

-네, 일단 정상회담을 했던 인물이고 또 서울에도 몇 차례 왔던 인물이기 때문에 예의를 표명했고요.

물론 조문사절이 갈 시간은 없습니다.

내일 아침 8시에 장례를 치르기 때문에 서울에서 누가 갈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김양건의 사망을 계기로 남북이 조금 더 부드러운...

김양건의 유지가 또 그런 뜻이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 입장으로서는 좀 더 후계자들이 좀 더 부드러운 협상, 좀 더 유연한 협상을 할 수 있기를 현재 기대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남관계도 걱정이 되지만 아무래도 외교라인이 바뀌다 보면 북미, 북일, 북중 관계에도 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가장 큰 측면이 중국과의 관계입니다.

사실은 김정은 입장에서는 이번에 모란봉악단의 전격 철수에서 봤듯이 북중관계가 매끄럽지 않습니다.

특히 내년 5월 7차 당대회를 마치고 베이징을 방문해야 되는데 이러한 것을 최대한 원만하게 처리할 부서들이 국제부입니다.

이 국제부의 비서가 결국은 김양건 부서인데 김양건 비서가 사라짐으로써 중국통인 최룡해가 전면에 나서서 방중 문제를 협의할 텐데 과연 김양건 비서만큼 아주 유연하고 또 세련되게 노련하게 문제를 풀 수 있을지 그건 조금 미지수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게요.

여러 번 좌천됐다 올라왔다 한 분이라서 어떻게 또 대처를 하실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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