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혹독한 北 ‘속도전’의 한계

입력 2016.01.09 (08:08) 수정 2016.01.0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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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연초부터 기습 핵실험으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북한이 내부적으로는 핵실험을 주민 결속의 소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는 5월 열리는 7차 당 대회를 겨냥해 다시 한 번 속도전에 고삐를 죄고 나섰는데요, 혹독하기만 한 북한의 속도전, 그 실태와 한계를 <클로즈업 북한>에서 집중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평양 밤하늘을 배경으로, 화려한 불꽃이 솟아오른다.

2016년 새해를 알리는 북한의 불꽃놀이 모습이다.

<녹취> 평양 시민 : "새해를 맞이하는 저의 심정은 우리 앞날이 이 축포와 같이 더 밝고 창창하리라는 것을 확신할 뿐입니다."

전 세계가 북한의 핵실험 충격에 빠져 있는 사이, 정작 북한 내부는 신년사 관철을 내세우며,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5일 평양 김일성 광장.

김 씨 일가 찬양 플래카드와 당기를 든 주민들이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한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제시한 과업 완수를 다짐하는 대규모 군중대회다.

신년사를 통째로 암기하고 낭독하는 ‘신년사 원문 학습’도 이어졌다.

<녹취> 김철훈(평양시인민위원회 부위원장) : "신년사에는 강성국가 건설의 모든 전역에서 수행하여야 할 투쟁 과업과 방도들이 명백히 밝혀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신년사 원문 학습에 힘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북한 TV는 다양한 현장의 모습을 전하며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자욱이 안개 낀 도로를 덤프트럭 여러 대가 내달린다.

트럭마다 가득 실린 건 고철..

공장의 철강재 생산을 돕는다며 각 지역, 부문 별로 고철을 수집하는 이른바 ‘고철전투’다.

<녹취> 리강파(북한 금속공업성 국장) : "인민경제의 어느 부분이나 요구되는 것이 철강재입니다. 그래서 내부예비와 잠재력을 남김없이 동원해서 많은 파철을 싣고 달려 나왔습니다."

거름을 섞어 퇴비를 만드는 북한 농촌의 모습도 전파를 탔다.

특히 새해 들어 북한 매체가 집중 보도하고 나선 건 건설 현장이다.

지난해 10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한 백두산 1,2호 발전소의 뒤를 이어, 5월 당대회 이전 완공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백두산 3호 발전소.

가뭄, 폭우 등 재해에 대비하기 위한 대규모 물길 공사 등이 대표적이다.

<녹취> 북한 속도전청년돌격대원 : "첫 수소폭탄시험에서의 성공은 최후 진군길에 떨쳐나선 우리 속도전 청년돌격대원들에게 크나큰 힘과 고무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속도전청년돌격대가 현재 맡아 수행하고 있는 모든 대상들을 무조건 최상의 수준에서 끝내겠다는 것을 굳게 결의합니다."

광산 발파 현장과 ‘어로전투’라 불리는 물고기 잡이, 철강사업소 가동 모습 등이 연일 전파를 타고 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대내적으로 가장 강조하고 나선 건 ‘경제강국 건설’이다.

이를 위한 새 구호도 제시됐다.

<녹취> "모든 일꾼들과 근로자들이 당 제 7차대회가 열리는 올해에 강성국가 건설의 최전성기를 열어나가기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한다."

특히 36년 만에 열리는 7차 당 대회를 겨냥한 주민동원은, 북한 전역으로 급속히 확장되는 분위기다.

<인터뷰> 정영태(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일단 7차 당 대회를 목표로 해놓고, 이 이전에 소위 경제력 건설을 위한 여러 가지 실적을 최대화시킴으로서 이 당 대회의 목표를 달성한다, 이런 형태로 지금 나가고 있다고 볼 수가 있죠."

이 과정에서 유용하게 활용되는 수단도 있다.

최근 북한 방송이 반복해 내보내고 있는 기록영화다.

건설 현장에 투입된 군인들이 개울을 가로질러 흙을 나르는 장면..

그런데 군인들이 건너는 건 다름 아닌, 사람이 받치고 있는 ‘인간 다리’이다.

폭포수를 맞으며 벽에 통나무를 박아넣고, 대못을 잡고 있는 동료의 손 위로 망치질을 하는 위험천만한 장면까지..

이 과정에서 강조된 건, 단연 속도다.

<녹취> "인민군대는 최고사령관이 바다를 메우라고 하면 바다를 메우고, 산을 떠 옮기라고 하면 산을 떠 옮겨야 합니다. 대비약 대혁신의 불바람을 세차게 일으켜 건설에서 조선속도를 창조하여야 합니다."

이른바 속도전.

장비와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노동력을 총동원해 최단 기간 최고의 성과를 내려는 북한 특유의 사업 추진 방식이다.

특히 당 창건 70주년이었던 지난해는 북한 전역이 속도전 열풍에 휩싸였던 한 해였다.

미래과학자거리와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등 굵직한 건설 사업을 비롯해, 수해를 입은 나선시 주택복구 사업에도 속도전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해 9월) : "나선시 피해 복구를 당 창건 기념일 전으로 무조건 끝낼 데 대한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랑의 전투명령을 높이 받들고…"

지난 한 해 북한 전역에서 속도전이 진행된 곳은 60여 군데.

속도전의 주축은 북한군과 청년들이다.

지난 해 대규모 공사 중 하나였던 백두산 발전소 건설 역시 청년이 도맡았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은 수시로 건설 현장을 찾아 청년의 역할을 강조하며 속도전을 독려했다.

<인터뷰> 정영태(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사실 청년이라고 하면 노동력에 있어서 핵심이죠. 청년이 모든 부분에 있어서 앞장서서 이러한 노력 동원이라든가 아니면 속도전도 좋고 이런데서 참여하는 그것이 사실은 성공의 관건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 시대 들어와서 청년을 굉장히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속도전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10년 간 ‘건설부대’에 복무하며 속도전 현장에서 일했던 탈북자의 생생한 증언을 들어보자.

<녹취> 엄영남(건설군인 출신 탈북자/2010년 평양아파트 공사 등 참여) : "그냥 말 자체로 속도전이죠. 언제까지 끝내라. 지금 한 6개월 정도 남았는데....장비가 딱히 특별할 게 없으니까 그냥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밖에 없어요. 14층, 15층까지 모래 마대를 메고 그렇게 층계로 해서 다 나르거든요. 현장에서 숙식을 하면서 정말 밥 먹는 시간 내놓고는 거의 잠자는 것 서너 시간 자면서 거의 계속 일하고, 일하는.."

이러한 속도전 현장은, 북중 접경지대를 취재한 남북의 창 카메라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양강도 혜산시의 철길 보수 공사 현장.

체제 선전 노래로 작업을 독려하는 선전대원들 너머로 산허리에서 공사 중인 돌격대원들이 보인다.

중장비도 없이 맨 손으로 흙을 파고 파낸 흙을 나르는 모습.

이같이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진행되는 속도전은 인명 피해로도 이어진다고, 건설 군인 출신 탈북자는 설명한다.

<녹취> 엄영남(건설군인 출신 탈북자/2010년 평양아파트 공사 등 참여) : "골조 공사를 마친 후 그 위에 콘크리트를 붓는데 그 콘크리트가 굳어지는 시간을 양생 기간이라고 해요. 그게 비가 온다거나 환경 조건이 안 좋을 때는 일주일 있어도, 일주일이 되어도 양생이 안 될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걸 어기고 괜찮다 싶어서 그냥 막 뗄 때가 있어요, 속도 때문에..이래서 사고가 나는 거죠, 무너지니까."

실제로 무리한 속도전은 지난 2014년 평양 23층 아파트 붕괴라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작용에도 북한 당국이 속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인터뷰> 이석기(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경제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에 직면하면 북한에서 가장 쉽게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인 노동력을 집중적으로 동원하기 위해서 이러저러한 형태로 속도전을 하죠. 주요한 설비를 짓는다거나 혹은 발전소를 짓는다거나 하는 정책들을 하고, 그러면 그것이 북한 정권의 성과로 또 선전되고..."

3대 세습으로 권력을 이어받은 김정은 역시 집권 초기부터 속도전에 주력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김정은 시대 최대 업적 가운데 하나로 내세우는 마식령 스키장이다.

<녹취> 최룡해(노동당 비서/2013년 12월) : "남들 같으면 10년이 걸려도 해내지 못할 방대한 공사를 짧은 기간에 성과적으로 끝냄으로서‘마식령 속도’라는 새로운 시대어를 빛낸..."

북한 당국은 이렇게 완공된 건축물들을 경제강국 건설 모델로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마식령 스키장이 위치한 원산 등 다섯 곳을 경제 특구로 정하고, 스물 한 곳의 경제개발구를 지정해 외자유치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KBS가 지난해 단독 입수한 ‘원산-금강산 관광지구’ 개발 계획 최종안.

2025년까지 원산-금강산 지구를 사계절 국제 관광지로 개발해 연 백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구상이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각종 위락시설 건설에도 속도전이 동원됐다.

<녹취> "최고사령관의 의도를 충직하게 받드는 이런 군대가 있기에 못해낼 일이 없다고 하시면서 당 창건 기념일까지 총돌격전, 총결사전을 벌이자는 것을 다시금 호소하셨습니다."

문수물놀이장, 미래과학자 거리 등은 북한이 ‘경제 속도전’의 성과물로 내세우는 대표적인 시설물들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경제는 수치상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10년 마이너스 0.5퍼센트를 기록했던 북한의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김정은 집권 첫 해인 2012년 1.3퍼센트로 올라선 데 이어, 3년 연속 1퍼센트 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건설, 경공업, 농축수산 등에 자원 배분이 집중된 반면, 장기 경제발전에 필수인 제조업과 인프라 분야 투자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 이석기(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큰 인프라를 투자하거나 혹은 김책 제철소 같은 대규모 설비들이 투자를 늘리고 생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외국에서 대규모 자본이 들어와야 되고요. 그 조건들이 갖춰지기 위해선 북한이라는 나라가 신뢰할 수 있는 나라다 안정적인 나라다, 국제사회에 꾸준히 어떤 신뢰성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믿을 수 있는 국제 사회의 일원이다 하는 부분을 말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서 보여주는 노력들이 지속되어야 된다고 봅니다."

새해 벽두 기습적인 핵실험을 감행하며, 또 다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북한!

속도전을 통한 경제회생의 한계가 분명한 상황에서, 충격요법보다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한 조치가 우선되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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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혹독한 北 ‘속도전’의 한계
    • 입력 2016-01-09 08:24:13
    • 수정2016-01-09 08:3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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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연초부터 기습 핵실험으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북한이 내부적으로는 핵실험을 주민 결속의 소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는 5월 열리는 7차 당 대회를 겨냥해 다시 한 번 속도전에 고삐를 죄고 나섰는데요, 혹독하기만 한 북한의 속도전, 그 실태와 한계를 <클로즈업 북한>에서 집중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평양 밤하늘을 배경으로, 화려한 불꽃이 솟아오른다.

2016년 새해를 알리는 북한의 불꽃놀이 모습이다.

<녹취> 평양 시민 : "새해를 맞이하는 저의 심정은 우리 앞날이 이 축포와 같이 더 밝고 창창하리라는 것을 확신할 뿐입니다."

전 세계가 북한의 핵실험 충격에 빠져 있는 사이, 정작 북한 내부는 신년사 관철을 내세우며,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5일 평양 김일성 광장.

김 씨 일가 찬양 플래카드와 당기를 든 주민들이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한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제시한 과업 완수를 다짐하는 대규모 군중대회다.

신년사를 통째로 암기하고 낭독하는 ‘신년사 원문 학습’도 이어졌다.

<녹취> 김철훈(평양시인민위원회 부위원장) : "신년사에는 강성국가 건설의 모든 전역에서 수행하여야 할 투쟁 과업과 방도들이 명백히 밝혀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신년사 원문 학습에 힘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북한 TV는 다양한 현장의 모습을 전하며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자욱이 안개 낀 도로를 덤프트럭 여러 대가 내달린다.

트럭마다 가득 실린 건 고철..

공장의 철강재 생산을 돕는다며 각 지역, 부문 별로 고철을 수집하는 이른바 ‘고철전투’다.

<녹취> 리강파(북한 금속공업성 국장) : "인민경제의 어느 부분이나 요구되는 것이 철강재입니다. 그래서 내부예비와 잠재력을 남김없이 동원해서 많은 파철을 싣고 달려 나왔습니다."

거름을 섞어 퇴비를 만드는 북한 농촌의 모습도 전파를 탔다.

특히 새해 들어 북한 매체가 집중 보도하고 나선 건 건설 현장이다.

지난해 10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한 백두산 1,2호 발전소의 뒤를 이어, 5월 당대회 이전 완공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백두산 3호 발전소.

가뭄, 폭우 등 재해에 대비하기 위한 대규모 물길 공사 등이 대표적이다.

<녹취> 북한 속도전청년돌격대원 : "첫 수소폭탄시험에서의 성공은 최후 진군길에 떨쳐나선 우리 속도전 청년돌격대원들에게 크나큰 힘과 고무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속도전청년돌격대가 현재 맡아 수행하고 있는 모든 대상들을 무조건 최상의 수준에서 끝내겠다는 것을 굳게 결의합니다."

광산 발파 현장과 ‘어로전투’라 불리는 물고기 잡이, 철강사업소 가동 모습 등이 연일 전파를 타고 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대내적으로 가장 강조하고 나선 건 ‘경제강국 건설’이다.

이를 위한 새 구호도 제시됐다.

<녹취> "모든 일꾼들과 근로자들이 당 제 7차대회가 열리는 올해에 강성국가 건설의 최전성기를 열어나가기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한다."

특히 36년 만에 열리는 7차 당 대회를 겨냥한 주민동원은, 북한 전역으로 급속히 확장되는 분위기다.

<인터뷰> 정영태(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일단 7차 당 대회를 목표로 해놓고, 이 이전에 소위 경제력 건설을 위한 여러 가지 실적을 최대화시킴으로서 이 당 대회의 목표를 달성한다, 이런 형태로 지금 나가고 있다고 볼 수가 있죠."

이 과정에서 유용하게 활용되는 수단도 있다.

최근 북한 방송이 반복해 내보내고 있는 기록영화다.

건설 현장에 투입된 군인들이 개울을 가로질러 흙을 나르는 장면..

그런데 군인들이 건너는 건 다름 아닌, 사람이 받치고 있는 ‘인간 다리’이다.

폭포수를 맞으며 벽에 통나무를 박아넣고, 대못을 잡고 있는 동료의 손 위로 망치질을 하는 위험천만한 장면까지..

이 과정에서 강조된 건, 단연 속도다.

<녹취> "인민군대는 최고사령관이 바다를 메우라고 하면 바다를 메우고, 산을 떠 옮기라고 하면 산을 떠 옮겨야 합니다. 대비약 대혁신의 불바람을 세차게 일으켜 건설에서 조선속도를 창조하여야 합니다."

이른바 속도전.

장비와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노동력을 총동원해 최단 기간 최고의 성과를 내려는 북한 특유의 사업 추진 방식이다.

특히 당 창건 70주년이었던 지난해는 북한 전역이 속도전 열풍에 휩싸였던 한 해였다.

미래과학자거리와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등 굵직한 건설 사업을 비롯해, 수해를 입은 나선시 주택복구 사업에도 속도전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해 9월) : "나선시 피해 복구를 당 창건 기념일 전으로 무조건 끝낼 데 대한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랑의 전투명령을 높이 받들고…"

지난 한 해 북한 전역에서 속도전이 진행된 곳은 60여 군데.

속도전의 주축은 북한군과 청년들이다.

지난 해 대규모 공사 중 하나였던 백두산 발전소 건설 역시 청년이 도맡았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은 수시로 건설 현장을 찾아 청년의 역할을 강조하며 속도전을 독려했다.

<인터뷰> 정영태(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사실 청년이라고 하면 노동력에 있어서 핵심이죠. 청년이 모든 부분에 있어서 앞장서서 이러한 노력 동원이라든가 아니면 속도전도 좋고 이런데서 참여하는 그것이 사실은 성공의 관건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 시대 들어와서 청년을 굉장히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속도전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10년 간 ‘건설부대’에 복무하며 속도전 현장에서 일했던 탈북자의 생생한 증언을 들어보자.

<녹취> 엄영남(건설군인 출신 탈북자/2010년 평양아파트 공사 등 참여) : "그냥 말 자체로 속도전이죠. 언제까지 끝내라. 지금 한 6개월 정도 남았는데....장비가 딱히 특별할 게 없으니까 그냥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밖에 없어요. 14층, 15층까지 모래 마대를 메고 그렇게 층계로 해서 다 나르거든요. 현장에서 숙식을 하면서 정말 밥 먹는 시간 내놓고는 거의 잠자는 것 서너 시간 자면서 거의 계속 일하고, 일하는.."

이러한 속도전 현장은, 북중 접경지대를 취재한 남북의 창 카메라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양강도 혜산시의 철길 보수 공사 현장.

체제 선전 노래로 작업을 독려하는 선전대원들 너머로 산허리에서 공사 중인 돌격대원들이 보인다.

중장비도 없이 맨 손으로 흙을 파고 파낸 흙을 나르는 모습.

이같이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진행되는 속도전은 인명 피해로도 이어진다고, 건설 군인 출신 탈북자는 설명한다.

<녹취> 엄영남(건설군인 출신 탈북자/2010년 평양아파트 공사 등 참여) : "골조 공사를 마친 후 그 위에 콘크리트를 붓는데 그 콘크리트가 굳어지는 시간을 양생 기간이라고 해요. 그게 비가 온다거나 환경 조건이 안 좋을 때는 일주일 있어도, 일주일이 되어도 양생이 안 될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걸 어기고 괜찮다 싶어서 그냥 막 뗄 때가 있어요, 속도 때문에..이래서 사고가 나는 거죠, 무너지니까."

실제로 무리한 속도전은 지난 2014년 평양 23층 아파트 붕괴라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작용에도 북한 당국이 속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인터뷰> 이석기(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경제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에 직면하면 북한에서 가장 쉽게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인 노동력을 집중적으로 동원하기 위해서 이러저러한 형태로 속도전을 하죠. 주요한 설비를 짓는다거나 혹은 발전소를 짓는다거나 하는 정책들을 하고, 그러면 그것이 북한 정권의 성과로 또 선전되고..."

3대 세습으로 권력을 이어받은 김정은 역시 집권 초기부터 속도전에 주력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김정은 시대 최대 업적 가운데 하나로 내세우는 마식령 스키장이다.

<녹취> 최룡해(노동당 비서/2013년 12월) : "남들 같으면 10년이 걸려도 해내지 못할 방대한 공사를 짧은 기간에 성과적으로 끝냄으로서‘마식령 속도’라는 새로운 시대어를 빛낸..."

북한 당국은 이렇게 완공된 건축물들을 경제강국 건설 모델로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마식령 스키장이 위치한 원산 등 다섯 곳을 경제 특구로 정하고, 스물 한 곳의 경제개발구를 지정해 외자유치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KBS가 지난해 단독 입수한 ‘원산-금강산 관광지구’ 개발 계획 최종안.

2025년까지 원산-금강산 지구를 사계절 국제 관광지로 개발해 연 백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구상이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각종 위락시설 건설에도 속도전이 동원됐다.

<녹취> "최고사령관의 의도를 충직하게 받드는 이런 군대가 있기에 못해낼 일이 없다고 하시면서 당 창건 기념일까지 총돌격전, 총결사전을 벌이자는 것을 다시금 호소하셨습니다."

문수물놀이장, 미래과학자 거리 등은 북한이 ‘경제 속도전’의 성과물로 내세우는 대표적인 시설물들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경제는 수치상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10년 마이너스 0.5퍼센트를 기록했던 북한의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김정은 집권 첫 해인 2012년 1.3퍼센트로 올라선 데 이어, 3년 연속 1퍼센트 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건설, 경공업, 농축수산 등에 자원 배분이 집중된 반면, 장기 경제발전에 필수인 제조업과 인프라 분야 투자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 이석기(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큰 인프라를 투자하거나 혹은 김책 제철소 같은 대규모 설비들이 투자를 늘리고 생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외국에서 대규모 자본이 들어와야 되고요. 그 조건들이 갖춰지기 위해선 북한이라는 나라가 신뢰할 수 있는 나라다 안정적인 나라다, 국제사회에 꾸준히 어떤 신뢰성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믿을 수 있는 국제 사회의 일원이다 하는 부분을 말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서 보여주는 노력들이 지속되어야 된다고 봅니다."

새해 벽두 기습적인 핵실험을 감행하며, 또 다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북한!

속도전을 통한 경제회생의 한계가 분명한 상황에서, 충격요법보다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한 조치가 우선되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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