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놓치면 안 될 미술전 9선

입력 2016.01.09 (09:03) 수정 2016.01.0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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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의욕적으로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새해 첫 달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잔뜩 움츠러들었던 미술계도 새로운 도약을 위해 야심만만한 전시회들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특히 올해는 여러모로 기념할 만한 거장들의 전시가 예정돼 있어 더 큰 기대를 하게 합니다.

보통 전시회는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씩 준비하는 경우가 많아서 연말연시가 되면 대형 미술관과 박물관, 화랑들은 내년에 이런 전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하고 주요 전시 일정을 발표합니다. 올해 놓쳐서는 안 될 주목할 만한 전시회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백남준 진혼굿백남준 진혼굿


■ 갤러리현대 〈백남준, 서울에서〉(1월 21일~3월 6일)

1990년이죠. 서울 경복궁 앞 현대화랑 뒷마당에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의 굿판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백남준이 자신의 예술적 동지이자 멘토였던 요셉 보이스의 죽음을 추모하는 진혼굿 퍼포먼스를 벌인다는 소식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죠. 당시 굿을 보러 온 어느 무당이 백남준의 어마어마한 기(氣)에 눌려 질겁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굿판 ‘늑대 걸음으로’와 관련된 기록들을 갤러리현대 전시회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마침 오는 1월 29일은 백남준 선생이 타계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지요.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이날 추모행사를 열기로 했고, 특별 전시회를 3월부터 7월까지 마련한다고 합니다.

특히, 올해는 간송미술관 소장품과 백남준 예술을 융합한 새로운 프로젝트가 하반기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선보일 예정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고요. 서울시립미술관도 6월에 자체 소장품을 모아 페스티벌 형식의 추모전을 엽니다. 그 명성에 비해 지금까지도 저평가되고 있는 백남준의 예술 세계가 적어도 10주기를 맞은 올해만큼은 정말 제대로 재조명됐으면 좋겠습니다.

임옥상의 귀로임옥상의 귀로


■ 가나아트센터 〈민중미술전: 시대의 고뇌를 넘어, 다시 현장으로〉(2월 3일~3월 20일)

미술은 격동하는 우리의 현대사를 그동안 어떤 모습으로 담아왔을까요? 1980년대 민중미술이라 불리는 거대한 흐름은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로 남아 있지만, 예술적 측면에서 그 성과를 재평가하는 작업은 지금껏 계속 미뤄져 왔습니다. 한국의 민중미술은 그것이 뿜어내는 강력한 에너지와 높은 예술적 성취 때문에라도 국내는 물론 세계무대에서도 이제는 확실히 주목받아 마땅합니다.

미술사학자인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기획자로 나서서 1980년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분출한 우리 민중미술의 대표작 100여 점을 가나아트센터에서 선보입니다. 국내를 대표하는 상업 화랑에서 왜 민중미술 전시회를 여는 걸까요? 전시회에 직접 가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올해 우리 미술계의 최대 관심 분야를 하나만 꼽으라면 그 자리는 민중미술의 몫이 아닐까 싶네요. 학고재갤러리에서 민중미술 1세대 화가로 꼽히는 주재환 전을 3월에, 한국 민중미술의 대표 작가 신학철 전을 9월에 각각 준비하고 있고요. 서울시립미술관도 4월부터 상설전시관을 마련해 가나아트센터로부터 기증받은 민중미술 작품을 선보입니다.

변월룡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초상변월룡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초상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변월룡 1916~1990〉(3월 1일~5월 8일)

그림 속의 주인공은 러시아의 위대한 소설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입니다.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 기억하시죠? 그 원작 소설을 쓴 작가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선정되고도 소련 정부의 압력으로 인해 수상을 거부해야 했던 사연으로도 잘 알려졌죠.

이 초상화를 그린 화가는 놀랍게도 변월룡이라는 고려인이었습니다. 변월룡, 우리에겐 생소한 이름입니다. 연해주에서 태어나 러시아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화가이자 교육자로 일생을 보낸 분이라고 합니다.

러시아 아카데미즘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변월룡의 작품 세계를 선보이는 국내 첫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립니다. 비록 머나먼 타향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다 갔지만, 한평생을 오롯이 한국인으로 살다간 ‘잊힌 천재 화가’ 변월룡의 예술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해 봄으로써 한국 미술사의 경계와 지평을 한 단계 확장하고 성숙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둘레길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둘레길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문봉선: 붓으로 걷는 백두대간〉(4월 1일~5월 29일)

우리 전통 회화가 결코 과거에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현재의 유산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한국화가 문봉선 화백이 올 상반기 야심 찬 전시를 선보입니다. 문봉선의 한국화는 머물러 정체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혁신과 변화를 보여줍니다. 이번엔 백두대간입니다.

4년 동안 절치부심 준비한 이 작품은 진부령 향로봉부터 지리산 천왕봉까지 우리 국토의 젖줄인 백두대간을 폭 1m, 길이 150m에 이르는 한 폭에 담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엄청난 대작입니다. 작품을 그리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다는군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배움터 안에 있는 나선형 복도를 기억하십니까. 그 긴 벽을 따라 길이 150m짜리 수묵화가 거대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놀랍습니다.

게다가 문봉선 화백은 이 작품에서 지금껏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법을 선보인다고 합니다. 먹을 물에 가는 것이 아니라 마른 먹을 그대로 썼다는군요. 한국화에도 얼마든지 돌파구가 있다는 것을, 우리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말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문봉선 화백의 전시는 그래서 더 기다려집니다.

이중섭의 흰소이중섭의 흰소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이중섭 탄생 100주년〉(6월 1일~9월 25일 예정)

백남준과 함께 올해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이름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이중섭입니다. 올해는 이중섭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박수근과 더불어 이중섭을 ‘한국의 국민화가’라 부르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죠. 그런데 참 놀라운 건 지금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을 필두로 국립 미술관에서 이중섭 전시회를 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 기대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이번 전시에선 이중섭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유화, 수채화, 은지화, 드로잉, 엽서, 편지 등 다시는 한 자리에 모으기 힘든 개인 소장품까지 총망라해서 선보입니다. 여기에 도서와 잡지, 사진 자료 등 각종 자료는 물론 영상, 음악, 사진 등 시청각 자료들이 총동원돼 이중섭이 살다간 시대와 공간을 관람객들이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집니다.

공교롭게도 이중섭과 같은 시대에 ‘신사실파’ 동인으로 활동했던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화백 역시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역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10월 14일부터 내년 2월 5일까지 대규모 회고전이 마련됩니다. 더 놀라운 건 이분들과 나란히 1916년생이면서 지금까지 건강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100세 현역 화가 김병기 개인전이 4월에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는 점입니다.

호안 미로의 지니어스호안 미로의 지니어스


■ 세종미술관 〈호안 미로, 자연에서 예술로〉(6월 26일~9월 24일)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보셨을 겁니다. 스페인에서 가장 존경받는 화가 중 한 명인 호안 미로의 ‘지니어스’라는 작품인데요. 야수파와 입체주의, 초현실주의에서 골고루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연 호안 미로의 회화, 에칭, 동판화, 조각, 석판화, 캘리그래피 등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기회가 국내에서 마련됐습니다.

1981년에 호안 미로 부부가 스튜디오와 작품을 기증하면서 설립된 ‘호안 미로 마요르카 재단’의 소장품 가운데 100여 점을 선보일 예정인데, 재단이 설립된 이후 해외 기획전에 가장 많은 작품을 내보내는 것이라 합니다. 단순한 회고전이 아니라 미로의 예술혼을 이해할 수 있도록 여덟 가지 주제의 섹션으로 나누어 전시장을 입체적으로 구성한다는 게 미술관 측의 설명입니다.

세종미술관에서는 이 밖에도 근현대의 다양한 미인도를 선보이는 〈미인도취〉가 10월 말에,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훈데르트바서의 예술과 건축물을 볼 수 있는 〈건축치료사 훈데르트바서의 그린시티〉가 12월에 각각 준비됩니다.

아니쉬 카푸어의 클라우드 게이트아니쉬 카푸어의 클라우드 게이트


■ 국제갤러리 〈아니쉬 카푸어 전〉(하반기)

사진 속의 작품, 어디선가 많이 보셨죠?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에 있는 ‘구름 문(Cloud Gate)’라는 설치 작품인데요. 영화 〈소스코드〉의 마지막 장면을 포함해서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영화에 등장하며 시카고의 랜드마크가 된 조형물입니다.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 아니쉬 카푸어의 전시는 올해 열리는 해외 유명작가의 국내 개인전으로는 가장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카푸어는 지난해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선보인 대규모 야외 설치 작품으로 성가를 한껏 높였는데요. 하지만 이 전시는 여성 성기 모양의 설치 작품을 베르사유 궁에 설치한다 해서 시작부터 논란이 뜨거웠고, 심지어 전시 기간에 일부 작품이 유대인을 증오하는 내용의 페인트 공격까지 받으면서 외신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카푸어는 1990년에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 작가로 선정됐고 1991년에는 영국 최고 권위의 현대 미술상인 터너상을 받은 거장입니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작품들로 한국의 관람객들을 만나게 될까요. 하반기로 예정돼 있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삼성미술관 야외 정원에 가면 아니쉬 카푸어의 대형 작품을 언제든 만나볼 수 있답니다.

이이남의 초충도이이남의 초충도


■ 포스코미술관 〈이이남 개인전: 세컨드 에디션〉(9월 21일~10월 18일)

지난해 초 가나아트센터에서 ‘다시 태어나는 빛’을 주제로 지금까지는 다른 새로운 작품 세계를 선보여 호평을 받은 이이남 작가가 근 2년 만에 국내에서 여는 개인전입니다. 고전 회화와 조각들을 디지털로 재해석한 미디어 아트 작품 20점은 물론 설치와 조각, 회화, 사진까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이이남 작가의 새로운 면목을 만나볼 수 있을 걸로 기대됩니다.

원작을 퍼스트 에디션이라 한다면 그걸 재해석한 이이남의 작품은 ‘세컨드 에디션’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이를 통해 가상현실과 실재의 경계, 실상과 허상의 차이와 본질에 대한 탐구의 결과를 작품에 담았다는 게 작가의 변입니다. 사실 저도 잘 몰랐습니다만 이이남 작가가 재해석한 동서양의 명화 가운데 생존 작가의 작품은 지금까지 단 한 점도 없었답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처음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현역 작가의 허락을 얻어 한국화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재해석한 신작을 선보인다고 하네요. 과연 어떤 작가의 작품일지 궁금합니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중력의 계단올라퍼 엘리아슨의 중력의 계단


■ 삼성미술관 리움 〈올라퍼 엘리아슨 전〉(10월~내년 2월 예정)

해외 작가 전시로는 위에 소개한 국제갤러리의 아니쉬 카푸어 전시와 함께 가장 눈길을 끕니다. 덴마크 태생의 아이슬란드 작가인 올라퍼 엘리아슨의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마련합니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엘리아슨은 빛과 물, 안개 등의 자연현상을 과학기술에 접목한 설치미술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입니다. 2003년 세계적인 명성의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갤러리에서 선보인 ‘날씨 프로젝트’라는 작품으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요. 전시장에 200개가 넘는 전구로 만든 거대한 인공 태양을 설치한 것인데, 이 작품을 보려고 관람객 수백만 명이 몰려들어 화제가 됐습니다. 엘리아손의 작품은 자연을 닮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시각적으로 워낙 강렬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인 만큼 지금까지와는 전혀 색다른 경험을 해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 밖에도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는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중국의 차세대 작가 리우 웨이의 개인전이 4월부터 열리고, 호암미술관에서도 역시 4월에 우리 미술 속에 표현된 부처와 경전, 승가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는 〈불교미술전〉이 개최됩니다.

※ 자료 협조
갤러리현대, 백남준아트센터, 서울시립미술관, 가나아트센터, 학고재갤러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디자인재단, 이중섭미술관, 세종미술관, 국제갤러리, 포스코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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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놓치면 안 될 미술전 9선
    • 입력 2016-01-09 09:03:35
    • 수정2016-01-09 09:07:57
    컬처 스토리
저마다 의욕적으로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새해 첫 달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잔뜩 움츠러들었던 미술계도 새로운 도약을 위해 야심만만한 전시회들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특히 올해는 여러모로 기념할 만한 거장들의 전시가 예정돼 있어 더 큰 기대를 하게 합니다. 보통 전시회는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씩 준비하는 경우가 많아서 연말연시가 되면 대형 미술관과 박물관, 화랑들은 내년에 이런 전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하고 주요 전시 일정을 발표합니다. 올해 놓쳐서는 안 될 주목할 만한 전시회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백남준 진혼굿
■ 갤러리현대 〈백남준, 서울에서〉(1월 21일~3월 6일) 1990년이죠. 서울 경복궁 앞 현대화랑 뒷마당에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의 굿판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백남준이 자신의 예술적 동지이자 멘토였던 요셉 보이스의 죽음을 추모하는 진혼굿 퍼포먼스를 벌인다는 소식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죠. 당시 굿을 보러 온 어느 무당이 백남준의 어마어마한 기(氣)에 눌려 질겁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굿판 ‘늑대 걸음으로’와 관련된 기록들을 갤러리현대 전시회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마침 오는 1월 29일은 백남준 선생이 타계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지요.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이날 추모행사를 열기로 했고, 특별 전시회를 3월부터 7월까지 마련한다고 합니다. 특히, 올해는 간송미술관 소장품과 백남준 예술을 융합한 새로운 프로젝트가 하반기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선보일 예정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고요. 서울시립미술관도 6월에 자체 소장품을 모아 페스티벌 형식의 추모전을 엽니다. 그 명성에 비해 지금까지도 저평가되고 있는 백남준의 예술 세계가 적어도 10주기를 맞은 올해만큼은 정말 제대로 재조명됐으면 좋겠습니다.
임옥상의 귀로
■ 가나아트센터 〈민중미술전: 시대의 고뇌를 넘어, 다시 현장으로〉(2월 3일~3월 20일) 미술은 격동하는 우리의 현대사를 그동안 어떤 모습으로 담아왔을까요? 1980년대 민중미술이라 불리는 거대한 흐름은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로 남아 있지만, 예술적 측면에서 그 성과를 재평가하는 작업은 지금껏 계속 미뤄져 왔습니다. 한국의 민중미술은 그것이 뿜어내는 강력한 에너지와 높은 예술적 성취 때문에라도 국내는 물론 세계무대에서도 이제는 확실히 주목받아 마땅합니다. 미술사학자인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기획자로 나서서 1980년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분출한 우리 민중미술의 대표작 100여 점을 가나아트센터에서 선보입니다. 국내를 대표하는 상업 화랑에서 왜 민중미술 전시회를 여는 걸까요? 전시회에 직접 가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올해 우리 미술계의 최대 관심 분야를 하나만 꼽으라면 그 자리는 민중미술의 몫이 아닐까 싶네요. 학고재갤러리에서 민중미술 1세대 화가로 꼽히는 주재환 전을 3월에, 한국 민중미술의 대표 작가 신학철 전을 9월에 각각 준비하고 있고요. 서울시립미술관도 4월부터 상설전시관을 마련해 가나아트센터로부터 기증받은 민중미술 작품을 선보입니다.
변월룡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초상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변월룡 1916~1990〉(3월 1일~5월 8일) 그림 속의 주인공은 러시아의 위대한 소설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입니다.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 기억하시죠? 그 원작 소설을 쓴 작가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선정되고도 소련 정부의 압력으로 인해 수상을 거부해야 했던 사연으로도 잘 알려졌죠. 이 초상화를 그린 화가는 놀랍게도 변월룡이라는 고려인이었습니다. 변월룡, 우리에겐 생소한 이름입니다. 연해주에서 태어나 러시아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화가이자 교육자로 일생을 보낸 분이라고 합니다. 러시아 아카데미즘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변월룡의 작품 세계를 선보이는 국내 첫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립니다. 비록 머나먼 타향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다 갔지만, 한평생을 오롯이 한국인으로 살다간 ‘잊힌 천재 화가’ 변월룡의 예술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해 봄으로써 한국 미술사의 경계와 지평을 한 단계 확장하고 성숙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둘레길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문봉선: 붓으로 걷는 백두대간〉(4월 1일~5월 29일) 우리 전통 회화가 결코 과거에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현재의 유산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한국화가 문봉선 화백이 올 상반기 야심 찬 전시를 선보입니다. 문봉선의 한국화는 머물러 정체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혁신과 변화를 보여줍니다. 이번엔 백두대간입니다. 4년 동안 절치부심 준비한 이 작품은 진부령 향로봉부터 지리산 천왕봉까지 우리 국토의 젖줄인 백두대간을 폭 1m, 길이 150m에 이르는 한 폭에 담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엄청난 대작입니다. 작품을 그리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다는군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배움터 안에 있는 나선형 복도를 기억하십니까. 그 긴 벽을 따라 길이 150m짜리 수묵화가 거대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놀랍습니다. 게다가 문봉선 화백은 이 작품에서 지금껏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법을 선보인다고 합니다. 먹을 물에 가는 것이 아니라 마른 먹을 그대로 썼다는군요. 한국화에도 얼마든지 돌파구가 있다는 것을, 우리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말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문봉선 화백의 전시는 그래서 더 기다려집니다.
이중섭의 흰소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이중섭 탄생 100주년〉(6월 1일~9월 25일 예정) 백남준과 함께 올해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이름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이중섭입니다. 올해는 이중섭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박수근과 더불어 이중섭을 ‘한국의 국민화가’라 부르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죠. 그런데 참 놀라운 건 지금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을 필두로 국립 미술관에서 이중섭 전시회를 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 기대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이번 전시에선 이중섭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유화, 수채화, 은지화, 드로잉, 엽서, 편지 등 다시는 한 자리에 모으기 힘든 개인 소장품까지 총망라해서 선보입니다. 여기에 도서와 잡지, 사진 자료 등 각종 자료는 물론 영상, 음악, 사진 등 시청각 자료들이 총동원돼 이중섭이 살다간 시대와 공간을 관람객들이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집니다. 공교롭게도 이중섭과 같은 시대에 ‘신사실파’ 동인으로 활동했던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화백 역시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역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10월 14일부터 내년 2월 5일까지 대규모 회고전이 마련됩니다. 더 놀라운 건 이분들과 나란히 1916년생이면서 지금까지 건강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100세 현역 화가 김병기 개인전이 4월에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는 점입니다.
호안 미로의 지니어스
■ 세종미술관 〈호안 미로, 자연에서 예술로〉(6월 26일~9월 24일)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보셨을 겁니다. 스페인에서 가장 존경받는 화가 중 한 명인 호안 미로의 ‘지니어스’라는 작품인데요. 야수파와 입체주의, 초현실주의에서 골고루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연 호안 미로의 회화, 에칭, 동판화, 조각, 석판화, 캘리그래피 등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기회가 국내에서 마련됐습니다. 1981년에 호안 미로 부부가 스튜디오와 작품을 기증하면서 설립된 ‘호안 미로 마요르카 재단’의 소장품 가운데 100여 점을 선보일 예정인데, 재단이 설립된 이후 해외 기획전에 가장 많은 작품을 내보내는 것이라 합니다. 단순한 회고전이 아니라 미로의 예술혼을 이해할 수 있도록 여덟 가지 주제의 섹션으로 나누어 전시장을 입체적으로 구성한다는 게 미술관 측의 설명입니다. 세종미술관에서는 이 밖에도 근현대의 다양한 미인도를 선보이는 〈미인도취〉가 10월 말에,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훈데르트바서의 예술과 건축물을 볼 수 있는 〈건축치료사 훈데르트바서의 그린시티〉가 12월에 각각 준비됩니다.
아니쉬 카푸어의 클라우드 게이트
■ 국제갤러리 〈아니쉬 카푸어 전〉(하반기) 사진 속의 작품, 어디선가 많이 보셨죠?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에 있는 ‘구름 문(Cloud Gate)’라는 설치 작품인데요. 영화 〈소스코드〉의 마지막 장면을 포함해서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영화에 등장하며 시카고의 랜드마크가 된 조형물입니다.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 아니쉬 카푸어의 전시는 올해 열리는 해외 유명작가의 국내 개인전으로는 가장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카푸어는 지난해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선보인 대규모 야외 설치 작품으로 성가를 한껏 높였는데요. 하지만 이 전시는 여성 성기 모양의 설치 작품을 베르사유 궁에 설치한다 해서 시작부터 논란이 뜨거웠고, 심지어 전시 기간에 일부 작품이 유대인을 증오하는 내용의 페인트 공격까지 받으면서 외신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카푸어는 1990년에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 작가로 선정됐고 1991년에는 영국 최고 권위의 현대 미술상인 터너상을 받은 거장입니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작품들로 한국의 관람객들을 만나게 될까요. 하반기로 예정돼 있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삼성미술관 야외 정원에 가면 아니쉬 카푸어의 대형 작품을 언제든 만나볼 수 있답니다.
이이남의 초충도
■ 포스코미술관 〈이이남 개인전: 세컨드 에디션〉(9월 21일~10월 18일) 지난해 초 가나아트센터에서 ‘다시 태어나는 빛’을 주제로 지금까지는 다른 새로운 작품 세계를 선보여 호평을 받은 이이남 작가가 근 2년 만에 국내에서 여는 개인전입니다. 고전 회화와 조각들을 디지털로 재해석한 미디어 아트 작품 20점은 물론 설치와 조각, 회화, 사진까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이이남 작가의 새로운 면목을 만나볼 수 있을 걸로 기대됩니다. 원작을 퍼스트 에디션이라 한다면 그걸 재해석한 이이남의 작품은 ‘세컨드 에디션’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이를 통해 가상현실과 실재의 경계, 실상과 허상의 차이와 본질에 대한 탐구의 결과를 작품에 담았다는 게 작가의 변입니다. 사실 저도 잘 몰랐습니다만 이이남 작가가 재해석한 동서양의 명화 가운데 생존 작가의 작품은 지금까지 단 한 점도 없었답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처음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현역 작가의 허락을 얻어 한국화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재해석한 신작을 선보인다고 하네요. 과연 어떤 작가의 작품일지 궁금합니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중력의 계단
■ 삼성미술관 리움 〈올라퍼 엘리아슨 전〉(10월~내년 2월 예정) 해외 작가 전시로는 위에 소개한 국제갤러리의 아니쉬 카푸어 전시와 함께 가장 눈길을 끕니다. 덴마크 태생의 아이슬란드 작가인 올라퍼 엘리아슨의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마련합니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엘리아슨은 빛과 물, 안개 등의 자연현상을 과학기술에 접목한 설치미술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입니다. 2003년 세계적인 명성의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갤러리에서 선보인 ‘날씨 프로젝트’라는 작품으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요. 전시장에 200개가 넘는 전구로 만든 거대한 인공 태양을 설치한 것인데, 이 작품을 보려고 관람객 수백만 명이 몰려들어 화제가 됐습니다. 엘리아손의 작품은 자연을 닮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시각적으로 워낙 강렬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인 만큼 지금까지와는 전혀 색다른 경험을 해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 밖에도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는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중국의 차세대 작가 리우 웨이의 개인전이 4월부터 열리고, 호암미술관에서도 역시 4월에 우리 미술 속에 표현된 부처와 경전, 승가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는 〈불교미술전〉이 개최됩니다. ※ 자료 협조 갤러리현대, 백남준아트센터, 서울시립미술관, 가나아트센터, 학고재갤러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디자인재단, 이중섭미술관, 세종미술관, 국제갤러리, 포스코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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