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메르스’ 대응은 어떻게 실종됐나?

입력 2016.01.14 (18:44) 수정 2016.01.14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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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을 강타했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대한 정부 대응은 사전대비 단계부터 확산 차단까지 총체적 부실이었다. 감사원은 오늘(14일) 발표한 보건당국의 메르스 대응에 대한 감사 결과에서 메르스 확산이 예고됐음에도 불구하고 사전 조치와 초동 대응이 부실했다고 밝혔다. 이미 발생했거나 발병이 의심되는 환자에 대해서도 검사를 미루거나 소홀히 해 사태 악화를 부추겼다고 결론내렸다. 삼성서울병원의 비협조도 지적했다.

[연관 기사] ☞ [뉴스9] 감사원 “메르스 대응 부실”…16명 징계 요구



의심환자 신고 받고도 34시간 검사 지연

지난해 5월 18일 서울 강남구보건소는 메르스 환자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있다고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했다. 메르스 1번 환자였다. 하지만 질병본부는 "의심환자가 방문했던 중동 바레인은 메르스 발생국가가 아니니 검사 대상이 아니다"라며 보건소에 신고를 철회할 것을 종용하고 임의로 진단검사를 거부했다. 결국 1번환자의 검체는 신고 접수 뒤 34시간이 지나서야 접수됐다. 방역조치 등 초기 대응이 그만큼 늦어졌다.

5월 20일에는 평택성모병원에 대한 최초 역학조사를 하면서 같은 병실 출입자와 의료진 등 20명만 밀접 접촉자로 파악하고 일상적 접촉자는 따로 파악하지 않았다. 다음날 밀접접촉자(직접 접촉하거나 2m 이내에 머문 환자)가 아닌 3번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질병본부는 3번 환자의 감염경로를 분석하지도, 조사 범위를 확대하지도 않았다. 1번 환자는 채혈실 등에서 197명(추정)과 접촉했다. 5월 21일, 질병본부는 이 사실을 알았지만 조사를 종료했고, 나중에 이 197명 중 3명은 메르스 확진 환자로 판명되기도 했다.

같은 날, 질병본부는 1번 환자가 확진된 삼성서울병원과 함께 격리대상을 파악했다. 이 때 1번 환자와 직접 접촉했다고 병원이 제출한 27명만 보건소에 통보하고 나머지 접촉 직원이나 환자 453명은 병원에서 직접 관리하도록 둬 버렸다. 당시 격리 대상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간호사는 보름 동안 진료에 계속 참여했는데 6월 7일이 돼서야 확진 판정을 받았다.

☞ 감사원 ‘메르스 예방 및 대응실태’ 감사결과

정보, 공유도 공개도 '엉망진창'

정보는 공개되지도 공유되지도 않았다. 삼성서울병원은 14번 환자가 찾아온 5월 27일까지 일주일 전에 찾아와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아갔던 1번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을 거쳤다는 정보를 의료진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때문에 의료진은 14번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의 진료기록을 제출했을 때도 메르스로 의심하지 못했고, 14번 환자를 응급실에 3일 간 머무르게 했다. 이로 인해 81명의 추가 감염자가 발생했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5월 28일 환자와 같은 병실에 있지 않았던 사람이 확진 판정을 받아 초기 방역이 실패했음을 인지했다. 이미 격리대상에서 누락됐던 14번 환자 등 5명은 7개 병원을 돌아다닌 상태였다. 하지만 31일까지 병원명 공개나 의료기관 간 정보공유를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학계와 언론, 시민단체의 공개 요구가 거세지고 서울, 경기 등 지자체장들이 공개를 촉구하고 난 뒤에야 6월 5일 평택성모병원이, 7일 메르스 발생·경유 병원 24곳이 공개됐다.



다급해진 대책본부...'확진일자'도 속여 발표

대책본부는 5월 29일 42번 환자가 첫 3차 감염자임을 확인했고, 6월 1일에는 35번 환자였던 삼성서울병원 의사의 확진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감염 경로가 불투명하다는 등의 사유로 공개하지 않다가 3차 감염자는 6월 5일에, 의사는 6월 4일에 확진판정을 받았다고 뒤늦게 속여 발표했다.

5월 30일 14번째 환자가 확진됐다. 31일에는 대책본부가 병원들로부터 접촉자 일부인 117명의 명단을 제출받았다. 대책본부는 이 명단을 기획총괄반과 현장점검반 담당자 들에게 보냈지만 이들 부서는 정작 자료입력 담당부서인 자료입력팀에 명단을 보내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이후 나머지 561명의 명단을 제출하지 않고 있었지만, 대책 본부의 추가 조치는 없었다. 6월 2일 밤 9시가 돼 전체 명단이 확보됐지만 대책본부는 이를 정작 시도 보건소에 통보하지 않았다. 장관이 질책한 6월 7일에야 명단 통보가 이뤄졌다.

삼성서울병원의 '비협조'...병원이 환자를 늘리다

이 명단을 작성한 곳은 삼성서울병원이었다. 병원은 5차례에 걸친 정부 역학조사관의 요구에 5월 31일 접촉자 117명의 명단을 제출할 당시 다른 접촉자 561명의 명단을 이미 확보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6월 2일까지 업무 지연을 핑계대며 명단을 제출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제출한 명단에는 14번 환자가 응급실에 머물 동안 다녀간 보호자 등이 누락돼 있었다. 결국 40명이접촉자로 파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았는데 이 가운데 6명이 숨졌다. 76번 환자 등은 관리대상에서 누락된 채 강동경희대병원 등을 방문하기도 했고 12명의 4차 감염자가 발생했다. 이 중 2명이 사망했다.



감사원은 메르스 방역 실패의 책임을 물어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에게 해임을 요구했다. 질병관리본부 허용주 감염병관리센터장은 강등, 보건복지부 권준욱 공공보건정책관에 대해서는 정직을 요구하는 등 16명은 징계하도록 권했다. (정직 이상 중징계는 9명) 하지만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징계 요구 대상에서 제외됐다. 감사원 관계자는 "장관의 지시가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등 지휘 감독에 한계가 있었던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삼성서울병원에 대해서는 적정한 제재 조치를 할 것을 복지부에 요구했다.

☞ [취재파일K] ‘우리는 무엇을 배웠나’ 메르스 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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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의 ‘메르스’ 대응은 어떻게 실종됐나?
    • 입력 2016-01-14 18:44:11
    • 수정2016-01-14 22:43:00
    취재K
지난해 한국을 강타했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대한 정부 대응은 사전대비 단계부터 확산 차단까지 총체적 부실이었다. 감사원은 오늘(14일) 발표한 보건당국의 메르스 대응에 대한 감사 결과에서 메르스 확산이 예고됐음에도 불구하고 사전 조치와 초동 대응이 부실했다고 밝혔다. 이미 발생했거나 발병이 의심되는 환자에 대해서도 검사를 미루거나 소홀히 해 사태 악화를 부추겼다고 결론내렸다. 삼성서울병원의 비협조도 지적했다.

[연관 기사] ☞ [뉴스9] 감사원 “메르스 대응 부실”…16명 징계 요구



의심환자 신고 받고도 34시간 검사 지연

지난해 5월 18일 서울 강남구보건소는 메르스 환자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있다고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했다. 메르스 1번 환자였다. 하지만 질병본부는 "의심환자가 방문했던 중동 바레인은 메르스 발생국가가 아니니 검사 대상이 아니다"라며 보건소에 신고를 철회할 것을 종용하고 임의로 진단검사를 거부했다. 결국 1번환자의 검체는 신고 접수 뒤 34시간이 지나서야 접수됐다. 방역조치 등 초기 대응이 그만큼 늦어졌다.

5월 20일에는 평택성모병원에 대한 최초 역학조사를 하면서 같은 병실 출입자와 의료진 등 20명만 밀접 접촉자로 파악하고 일상적 접촉자는 따로 파악하지 않았다. 다음날 밀접접촉자(직접 접촉하거나 2m 이내에 머문 환자)가 아닌 3번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질병본부는 3번 환자의 감염경로를 분석하지도, 조사 범위를 확대하지도 않았다. 1번 환자는 채혈실 등에서 197명(추정)과 접촉했다. 5월 21일, 질병본부는 이 사실을 알았지만 조사를 종료했고, 나중에 이 197명 중 3명은 메르스 확진 환자로 판명되기도 했다.

같은 날, 질병본부는 1번 환자가 확진된 삼성서울병원과 함께 격리대상을 파악했다. 이 때 1번 환자와 직접 접촉했다고 병원이 제출한 27명만 보건소에 통보하고 나머지 접촉 직원이나 환자 453명은 병원에서 직접 관리하도록 둬 버렸다. 당시 격리 대상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간호사는 보름 동안 진료에 계속 참여했는데 6월 7일이 돼서야 확진 판정을 받았다.

☞ 감사원 ‘메르스 예방 및 대응실태’ 감사결과

정보, 공유도 공개도 '엉망진창'

정보는 공개되지도 공유되지도 않았다. 삼성서울병원은 14번 환자가 찾아온 5월 27일까지 일주일 전에 찾아와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아갔던 1번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을 거쳤다는 정보를 의료진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때문에 의료진은 14번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의 진료기록을 제출했을 때도 메르스로 의심하지 못했고, 14번 환자를 응급실에 3일 간 머무르게 했다. 이로 인해 81명의 추가 감염자가 발생했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5월 28일 환자와 같은 병실에 있지 않았던 사람이 확진 판정을 받아 초기 방역이 실패했음을 인지했다. 이미 격리대상에서 누락됐던 14번 환자 등 5명은 7개 병원을 돌아다닌 상태였다. 하지만 31일까지 병원명 공개나 의료기관 간 정보공유를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학계와 언론, 시민단체의 공개 요구가 거세지고 서울, 경기 등 지자체장들이 공개를 촉구하고 난 뒤에야 6월 5일 평택성모병원이, 7일 메르스 발생·경유 병원 24곳이 공개됐다.



다급해진 대책본부...'확진일자'도 속여 발표

대책본부는 5월 29일 42번 환자가 첫 3차 감염자임을 확인했고, 6월 1일에는 35번 환자였던 삼성서울병원 의사의 확진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감염 경로가 불투명하다는 등의 사유로 공개하지 않다가 3차 감염자는 6월 5일에, 의사는 6월 4일에 확진판정을 받았다고 뒤늦게 속여 발표했다.

5월 30일 14번째 환자가 확진됐다. 31일에는 대책본부가 병원들로부터 접촉자 일부인 117명의 명단을 제출받았다. 대책본부는 이 명단을 기획총괄반과 현장점검반 담당자 들에게 보냈지만 이들 부서는 정작 자료입력 담당부서인 자료입력팀에 명단을 보내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이후 나머지 561명의 명단을 제출하지 않고 있었지만, 대책 본부의 추가 조치는 없었다. 6월 2일 밤 9시가 돼 전체 명단이 확보됐지만 대책본부는 이를 정작 시도 보건소에 통보하지 않았다. 장관이 질책한 6월 7일에야 명단 통보가 이뤄졌다.

삼성서울병원의 '비협조'...병원이 환자를 늘리다

이 명단을 작성한 곳은 삼성서울병원이었다. 병원은 5차례에 걸친 정부 역학조사관의 요구에 5월 31일 접촉자 117명의 명단을 제출할 당시 다른 접촉자 561명의 명단을 이미 확보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6월 2일까지 업무 지연을 핑계대며 명단을 제출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제출한 명단에는 14번 환자가 응급실에 머물 동안 다녀간 보호자 등이 누락돼 있었다. 결국 40명이접촉자로 파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았는데 이 가운데 6명이 숨졌다. 76번 환자 등은 관리대상에서 누락된 채 강동경희대병원 등을 방문하기도 했고 12명의 4차 감염자가 발생했다. 이 중 2명이 사망했다.



감사원은 메르스 방역 실패의 책임을 물어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에게 해임을 요구했다. 질병관리본부 허용주 감염병관리센터장은 강등, 보건복지부 권준욱 공공보건정책관에 대해서는 정직을 요구하는 등 16명은 징계하도록 권했다. (정직 이상 중징계는 9명) 하지만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징계 요구 대상에서 제외됐다. 감사원 관계자는 "장관의 지시가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등 지휘 감독에 한계가 있었던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삼성서울병원에 대해서는 적정한 제재 조치를 할 것을 복지부에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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