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타이완인은 “중국말 하는 일본사람?”

입력 2016.01.17 (14:06) 수정 2016.01.17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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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총통 선거는 예상대로 차이잉원 민진당 후보의 당선으로 막을 내렸다.
민진당은 8년만에 다시 총통을 배출했고, 동시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1949년 이래 처음으로 최대 다수당이 됐다.
70년 가까이 타이완 집권당이었던 국민당의 몰락이다.

차이잉원차이잉원


민진당 돌풍과 국민당 몰락은 이미 예상됐던 터였고, 그 이유를 취재해 특파원현장보고에
방송하기 위해 2주일 전 타이완으로 향했다.
타이완을 잘 아는 한 중국 사업가는 내가 타이완에 가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
타이완 사람들을 우스갯소리로 ‘중국말 하는 일본 사람’ 이라고 한다고.
중국어를 쓰지만 중국 일반 시내와는 달리 타이완 시내 거리는 깨끗하고 시민들은 친절한,
그러나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아 그렇게 말하고는 한다고 했다.

타이완 시내타이완 시내


도착한 타이완의 수도 타이베이 시내는 듣던 대로 깨끗하고 조용했다. 타이베이의 상징 101빌딩을 제외하고는 높은 빌딩도 많지 않고, 교통질서도 잘 지켰고 지나가는 사람들 역시 친절했다. 베이징에 살던 기자는 ‘타이완은 선진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 가처분소득 역시 우리나라보다 높고 연금과 의료제도도 잘 완비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1600년대 네덜란드인 점령기 이후 일본 등으로부터 오랜 식민지 생활을 겪은 터라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은 틀린 말이었다.

타이완 101빌딩타이완 101빌딩


타이완에서 처음 만난 리 민 씨. 타이완사범대학 4학년으로 전공은 사회교육학이지만 한국어에 아주 능통하다. 한국 음악과 드라마에 관심이 있어 좋아서 한국어를 배울 뿐이고 장래 희망은 교사다. 타이완에서도 선생님이 되기는 쉽지 않단다. 자신이 타이완 최고 명문 사범대학에 다니지만, 3분의 1 정도만 교사로 임용된다고 한다. 인구가 정체돼 있어 교사 신규 수요가 없는데다, 타이완의 출산율이 1.2명으로 한국보다도 낮다고 한다.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출산율이 낮은 이유를 물어보니, 취업이 잘 안되니까 결혼도 늦어지고 결혼해도 아기를 안 낳으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세대를 ‘22K세대’ 라고 부른다고 한다. ‘22K’. K는 1000 이니까 22000타이완달러.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77만원, 그러니까 청년들은 자신들을 ‘77만원’ 세대 라고 부른다고 한다.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상황과 너무도 비슷했고 우리나라의 ‘88만원’세대가 떠올랐다.

25살의 차오샤오씨. 재작년 대학을 졸업하고 평소 하고 싶던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마케팅 회사에 들어갔다. 월급 100만원이었지만 ‘열정 청춘’ 인데 일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입사했는데 회사는 5일만에 부도가 났다. 이후 백화점과 웨딩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입사 원서를 냈지만 모두 떨어졌다. 결국 택한 것은 공무원시험, 그나마 해마다 정규적으로 뽑고 시험 성적으로만 선발하는 공무원시험이 최종 선택지였다.

타이완 청년들타이완 청년들


타이완의 2015년 경제성장률을 타이완 행정원은 1.06%라고 밝혔다. 그러나 민간경제연구소는 모두 0%대라고 밝혔다. 경제성장은 정체돼 있다. 근로자 평균임금 상승률 또한 8년동안 1%대에 머물러 물가상승률에 한참 못 미친다. 이런 경제상황을 타이완 청년들은 국민당의 과도한 ‘친 중국정책’ 때문이라고 말한다. 2008년 국민당 마잉주 총통의 집권 후 중국 본토 자본의 타이완 투자 허용, 특히 서비스업 개방으로 근로자 평균 임금이 본토 수준으로 하향 평준화 되고 있다, 또 타이완이 자랑하던 많은 중소기업들이 본토 기업과의 경쟁력에서 밀려나면서 도산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15년 중국 칭화유니그룹은 중국 최대 반도체 설비업체 파워텍의 최대주주가 됐고, 스마트폰 부품 제조사 메리도 본토 기업에 인수되는 등 타이완 기업들이 본토 기업에 흡수되고 있다.

마잉주-시진핑 악수 그림마잉주-시진핑 악수 그림


그러면서 친 중국정책을 수정하고 수출의 40%에 이르는 중국 의존도를 낮출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타이완은 타이완 자체의 역사가 있으며 중국 본토와는 다른 정체성이 있다며 타이완 독립을 스스럼 없이 얘기한다. 그러면서 이번 선거에서 민진당을 찍겠다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타이완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청년들은 달랐다.
자신의 의사를 확실히 표출했다.

이번 총통 선거의 투표율은 73%에 이르렀다. 청년 세대들의 투표율이 높았다고 한다.
그리고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는 689만표 56%, 국민당 주리룬 후보는 381만표 31%,
예상보다 큰 차이잉원 후보의 압승이다. 게다가 동시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진당이 60%의 의석을 획득해 1949년 이래 처음으로 제1당이 됐다. 타이완에서는 민진당이 처음 여당이 됐다는데 더 의미를 두고 있는 분위기다.

이번 타이완 총통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타이완인들이 그 어떤 때보다 변화의 열망이 컸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타이완 청년들은 말한다. 자신들은 ‘중국말을 하는 타이완 사람들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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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타이완인은 “중국말 하는 일본사람?”
    • 입력 2016-01-17 14:06:37
    • 수정2016-01-17 21:51:26
    취재후·사건후
타이완 총통 선거는 예상대로 차이잉원 민진당 후보의 당선으로 막을 내렸다.
민진당은 8년만에 다시 총통을 배출했고, 동시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1949년 이래 처음으로 최대 다수당이 됐다.
70년 가까이 타이완 집권당이었던 국민당의 몰락이다.

차이잉원


민진당 돌풍과 국민당 몰락은 이미 예상됐던 터였고, 그 이유를 취재해 특파원현장보고에
방송하기 위해 2주일 전 타이완으로 향했다.
타이완을 잘 아는 한 중국 사업가는 내가 타이완에 가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
타이완 사람들을 우스갯소리로 ‘중국말 하는 일본 사람’ 이라고 한다고.
중국어를 쓰지만 중국 일반 시내와는 달리 타이완 시내 거리는 깨끗하고 시민들은 친절한,
그러나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아 그렇게 말하고는 한다고 했다.

타이완 시내


도착한 타이완의 수도 타이베이 시내는 듣던 대로 깨끗하고 조용했다. 타이베이의 상징 101빌딩을 제외하고는 높은 빌딩도 많지 않고, 교통질서도 잘 지켰고 지나가는 사람들 역시 친절했다. 베이징에 살던 기자는 ‘타이완은 선진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 가처분소득 역시 우리나라보다 높고 연금과 의료제도도 잘 완비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1600년대 네덜란드인 점령기 이후 일본 등으로부터 오랜 식민지 생활을 겪은 터라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은 틀린 말이었다.

타이완 101빌딩


타이완에서 처음 만난 리 민 씨. 타이완사범대학 4학년으로 전공은 사회교육학이지만 한국어에 아주 능통하다. 한국 음악과 드라마에 관심이 있어 좋아서 한국어를 배울 뿐이고 장래 희망은 교사다. 타이완에서도 선생님이 되기는 쉽지 않단다. 자신이 타이완 최고 명문 사범대학에 다니지만, 3분의 1 정도만 교사로 임용된다고 한다. 인구가 정체돼 있어 교사 신규 수요가 없는데다, 타이완의 출산율이 1.2명으로 한국보다도 낮다고 한다.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출산율이 낮은 이유를 물어보니, 취업이 잘 안되니까 결혼도 늦어지고 결혼해도 아기를 안 낳으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세대를 ‘22K세대’ 라고 부른다고 한다. ‘22K’. K는 1000 이니까 22000타이완달러.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77만원, 그러니까 청년들은 자신들을 ‘77만원’ 세대 라고 부른다고 한다.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상황과 너무도 비슷했고 우리나라의 ‘88만원’세대가 떠올랐다.

25살의 차오샤오씨. 재작년 대학을 졸업하고 평소 하고 싶던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마케팅 회사에 들어갔다. 월급 100만원이었지만 ‘열정 청춘’ 인데 일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입사했는데 회사는 5일만에 부도가 났다. 이후 백화점과 웨딩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입사 원서를 냈지만 모두 떨어졌다. 결국 택한 것은 공무원시험, 그나마 해마다 정규적으로 뽑고 시험 성적으로만 선발하는 공무원시험이 최종 선택지였다.

타이완 청년들


타이완의 2015년 경제성장률을 타이완 행정원은 1.06%라고 밝혔다. 그러나 민간경제연구소는 모두 0%대라고 밝혔다. 경제성장은 정체돼 있다. 근로자 평균임금 상승률 또한 8년동안 1%대에 머물러 물가상승률에 한참 못 미친다. 이런 경제상황을 타이완 청년들은 국민당의 과도한 ‘친 중국정책’ 때문이라고 말한다. 2008년 국민당 마잉주 총통의 집권 후 중국 본토 자본의 타이완 투자 허용, 특히 서비스업 개방으로 근로자 평균 임금이 본토 수준으로 하향 평준화 되고 있다, 또 타이완이 자랑하던 많은 중소기업들이 본토 기업과의 경쟁력에서 밀려나면서 도산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15년 중국 칭화유니그룹은 중국 최대 반도체 설비업체 파워텍의 최대주주가 됐고, 스마트폰 부품 제조사 메리도 본토 기업에 인수되는 등 타이완 기업들이 본토 기업에 흡수되고 있다.

마잉주-시진핑 악수 그림


그러면서 친 중국정책을 수정하고 수출의 40%에 이르는 중국 의존도를 낮출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타이완은 타이완 자체의 역사가 있으며 중국 본토와는 다른 정체성이 있다며 타이완 독립을 스스럼 없이 얘기한다. 그러면서 이번 선거에서 민진당을 찍겠다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타이완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청년들은 달랐다.
자신의 의사를 확실히 표출했다.

이번 총통 선거의 투표율은 73%에 이르렀다. 청년 세대들의 투표율이 높았다고 한다.
그리고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는 689만표 56%, 국민당 주리룬 후보는 381만표 31%,
예상보다 큰 차이잉원 후보의 압승이다. 게다가 동시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진당이 60%의 의석을 획득해 1949년 이래 처음으로 제1당이 됐다. 타이완에서는 민진당이 처음 여당이 됐다는데 더 의미를 두고 있는 분위기다.

이번 타이완 총통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타이완인들이 그 어떤 때보다 변화의 열망이 컸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타이완 청년들은 말한다. 자신들은 ‘중국말을 하는 타이완 사람들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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