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정체의 물리·심리학…‘유령정체’와 ‘손실혐오’

입력 2016.02.06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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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 차가 많으면 막힌다. 설 연휴에 예상되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설 연휴가 5일 이상 길고 교통량이 분산될 경우에도 교통체증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차가 많아도 모든 차가 다 함께 정확히 같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같은 속도로 달리면 막히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차 1대가 길이 막히지 않는데 어떤 이유에서, 예를 들면 동승자와 대화를 하다가, 재채기를 하다가 브레이크를 살짝 밟아 속도를 줄이면 뒤쫓아오던 차들도 잇따라 브레이크를 밟게되면서 긴 정체 현상이 생겨난다. 이런 현상을 '유령정체(phantom traffic)'라고 하는데 독일, 캐나다, 미국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결과다.

'유령정체' 현상으로 1차로가 막히면 차량 A는 차가 잘 빠지는 2차로로 차선을 변경하고, 2차로에서 달리던 차량 B도 충돌을 피하기 위해 속도를 줄인다. 그렇게되면 B뒤에 있던 차량 C도 감속하게 되고, C는 더 잘 빠지는 3차로로 차선 변경을 하게 된다. 3차로에 달리던 차량 D도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이면서 '유령정체' 현상이 퍼져간다. 감속과 차로 변경, 차로 변경과 감속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동시다발적으로 교통 체증이 유발되는 원리다. 그리고 이 '유령정체'를 확산시키는 인간 성향이 '손실혐오(loss aversion)'다.



1999년 미국과 캐나다 연구진은 차가 자주 막히는 2차선 고속도로에서 운전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영상을 통해 분석했다. 그 결과 운전자들은 자신이 다른 차를 추월한 횟수보다 옆에서 주행하던 다른 차들이 자신을 추월한 횟수가 더 많은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같은 '손실혐오' 성향으로 인해서 차로 변경을 자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진의 설명은 이렇다.

"내가 추월한 차량은 시야에서 금방 사라지지만 나를 추월해 앞서 간 차량은 시야에 오래 남기 때문에 더 예민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추월할 때 걸리는 시간은 짧지만 내가 추월당할 때엔 자신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게 보여 운행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지는거죠"



'유령정체'가 좀처럼 풀리기 어려운 이유들 또 하나는 운전자의 반응시간이다. 정지해있던 앞 차의 움직임을 보고 '이제 움직여야지'하고 마음먹고 차를 움직이기까지 보통 1초가 걸리고, 가속 페달을 밟아도 차가 적정 속도에 이르기까지 시간은 더 필요하다. 도로 위 차를 굴비 엮듯 모두 엮으면 정지해 있는 차 100대가 시속 60km에 이를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차 1대가 같은 속도에 도달할 때까지 속도와 같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모든 차의 운전자는 앞차가 움직이는 것을 인식하고 나서야 가속페달을 밟기 때문에 100대가 모두 움직이려면 시간은 그만큼 더 걸리고, 맨뒤쪽에는 새로운 정체가 계속 생겨 쌓이게 된다.



교통정체는 폭탄과 같은 연쇄반응과 교란을 일으키기 때문에 멈추기 어렵다. 균일하던 교통 흐름에 작은 교란이 생길 경우, 이 움직임이 호수에 던진 돌멩이가 만드는 물결의 파동처럼 도로 위를 움직이게 된다. 도로 위에 차가 많지 않다면 차 1대가 만든 작은 교란은 뒷차에 영향을 주지않고 곧 사라지겠지만 차가 많아 촘촘하게 움직일 때는 작은 교란도 크게 증폭되고 확대된다. 일단 폭발이 시작되면 멈추기 어려운 것처럼 교통체증도 일단 시작되면 없애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고속도로 서비스의 질은 운전자도 결정

'유령정체'를 연구한 독일 뒤스부르크에센 대학 물리학과의 슈레켄베르크 교수는 "고속도로는 많은 차들을 동시에 통과시키는 능력을 가진 일종의 서비스 제품으로 서비스의 질은 운전자들이 결정하는 것"이라며 "잦은 차로 변경은 도로의 서비스 질을 낮추고 사고 위험성도 높기 때문에 교통 체증이 심할수록 차로 유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도로가 막힌다고 이리저리 차로를 바꿔 가며 운전하는 경우와 차선을 유지하며 운전하는 경우, 두 경우 모두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많은 교통 공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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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통정체의 물리·심리학…‘유령정체’와 ‘손실혐오’
    • 입력 2016-02-06 07:07:17
    취재K
고속도로에 차가 많으면 막힌다. 설 연휴에 예상되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설 연휴가 5일 이상 길고 교통량이 분산될 경우에도 교통체증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차가 많아도 모든 차가 다 함께 정확히 같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같은 속도로 달리면 막히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차 1대가 길이 막히지 않는데 어떤 이유에서, 예를 들면 동승자와 대화를 하다가, 재채기를 하다가 브레이크를 살짝 밟아 속도를 줄이면 뒤쫓아오던 차들도 잇따라 브레이크를 밟게되면서 긴 정체 현상이 생겨난다. 이런 현상을 '유령정체(phantom traffic)'라고 하는데 독일, 캐나다, 미국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결과다.

'유령정체' 현상으로 1차로가 막히면 차량 A는 차가 잘 빠지는 2차로로 차선을 변경하고, 2차로에서 달리던 차량 B도 충돌을 피하기 위해 속도를 줄인다. 그렇게되면 B뒤에 있던 차량 C도 감속하게 되고, C는 더 잘 빠지는 3차로로 차선 변경을 하게 된다. 3차로에 달리던 차량 D도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이면서 '유령정체' 현상이 퍼져간다. 감속과 차로 변경, 차로 변경과 감속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동시다발적으로 교통 체증이 유발되는 원리다. 그리고 이 '유령정체'를 확산시키는 인간 성향이 '손실혐오(loss aversion)'다.



1999년 미국과 캐나다 연구진은 차가 자주 막히는 2차선 고속도로에서 운전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영상을 통해 분석했다. 그 결과 운전자들은 자신이 다른 차를 추월한 횟수보다 옆에서 주행하던 다른 차들이 자신을 추월한 횟수가 더 많은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같은 '손실혐오' 성향으로 인해서 차로 변경을 자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진의 설명은 이렇다.

"내가 추월한 차량은 시야에서 금방 사라지지만 나를 추월해 앞서 간 차량은 시야에 오래 남기 때문에 더 예민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추월할 때 걸리는 시간은 짧지만 내가 추월당할 때엔 자신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게 보여 운행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지는거죠"



'유령정체'가 좀처럼 풀리기 어려운 이유들 또 하나는 운전자의 반응시간이다. 정지해있던 앞 차의 움직임을 보고 '이제 움직여야지'하고 마음먹고 차를 움직이기까지 보통 1초가 걸리고, 가속 페달을 밟아도 차가 적정 속도에 이르기까지 시간은 더 필요하다. 도로 위 차를 굴비 엮듯 모두 엮으면 정지해 있는 차 100대가 시속 60km에 이를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차 1대가 같은 속도에 도달할 때까지 속도와 같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모든 차의 운전자는 앞차가 움직이는 것을 인식하고 나서야 가속페달을 밟기 때문에 100대가 모두 움직이려면 시간은 그만큼 더 걸리고, 맨뒤쪽에는 새로운 정체가 계속 생겨 쌓이게 된다.



교통정체는 폭탄과 같은 연쇄반응과 교란을 일으키기 때문에 멈추기 어렵다. 균일하던 교통 흐름에 작은 교란이 생길 경우, 이 움직임이 호수에 던진 돌멩이가 만드는 물결의 파동처럼 도로 위를 움직이게 된다. 도로 위에 차가 많지 않다면 차 1대가 만든 작은 교란은 뒷차에 영향을 주지않고 곧 사라지겠지만 차가 많아 촘촘하게 움직일 때는 작은 교란도 크게 증폭되고 확대된다. 일단 폭발이 시작되면 멈추기 어려운 것처럼 교통체증도 일단 시작되면 없애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고속도로 서비스의 질은 운전자도 결정

'유령정체'를 연구한 독일 뒤스부르크에센 대학 물리학과의 슈레켄베르크 교수는 "고속도로는 많은 차들을 동시에 통과시키는 능력을 가진 일종의 서비스 제품으로 서비스의 질은 운전자들이 결정하는 것"이라며 "잦은 차로 변경은 도로의 서비스 질을 낮추고 사고 위험성도 높기 때문에 교통 체증이 심할수록 차로 유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도로가 막힌다고 이리저리 차로를 바꿔 가며 운전하는 경우와 차선을 유지하며 운전하는 경우, 두 경우 모두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많은 교통 공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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