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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eye] 난민 끌어안기의 실험장 미국 버팔로
입력 2016.02.06 (08:47) 수정 2016.02.06 (09:55) 특파원 현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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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eye] 난민 끌어안기의 실험장 미국 버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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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난민을 두고 미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트럼프와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힐러리가 벌인 설전입니다.

난민을 둘러싼 이런 신경전, 지난해 파리 테러 이후 두드러졌는데, 올해 미국 대선에서도 핫이슈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자, 그런데 미국 북동부의 자그마한 도시 버팔로에 가면 이런 논란이 자취를 감춥니다.

왜 그럴까요? 이주한 특파원이 난민 끌어안기의 모델, 버팔로를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인 미 공화당의 대선 경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비난 여론이 빗발치고, 발언에 항의하는 무슬림이 유세장을 찾아와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하지만,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녹취> 도널드 트럼프(미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 "발언 이후 제 무슬림 친구들 가운데 일부가 전화를 해서 '고맙다. 믿기지 않는 문제를 알게 해 줬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트럼프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공화당 테드 크루즈 후보도 난민 정책에 있어서만은 뜻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녹취> 테드 크루즈(미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 "대통령이 되면 국경 순찰을 세 배 늘리고, 벽을 세워서 국경을 더욱 강화할 것입니다."

절반 넘는 미국인들이 트럼프의 발언을 반대한다고 하지만, 보수층을 중심으로 형성된 반무슬림, 반 난민 정서는 사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파리 테러 이후 급격히 악화된 미국민의 반 난민 정서.

이런 상황에서 미국 뉴욕 주에 있는 도시 하나가 여론에 파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5년 전, 미국 뉴욕주 버팔로에 정착한 아프리카 출신 이브라힘 씨.

내전에 시달리는 고향 소말리아를 떠나 아프리카 8개 나라를 전전한 끝에 미국으로 왔습니다.

정착 초기 언어 장벽과 경제적 궁핍으로 생활은 순탄치 않았지만, 이제는 안정을 찾았습니다.

<녹취> 이브라힘(소말리아 난민) : "미국에선 삶을 얻었고, 직업도 가졌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난민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언어가 무엇이냐고 묻지도 않습니다.모든 사람들이 하나입니다."

이브라힘 씨처럼 고향을 떠나 버팔로를 찾는 난민들은 최근 몇 년새 부쩍 늘었습니다.

미 국무부 프로그램을 통해 버팔로로 오는 난민은 한 해 평균 천 5백명 정도..

미얀마와 수단, 이라크와 부탄 등 국적도 다양합니다.

덕분에 수 십년 동안 감소세이던 인구는 증가세로 돌아섰습니다.

이곳은 버팔로 시내에 외국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지역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거리에선 각국에서 모여든 이민자와 난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미국하면 떠오르는 말 '인종의 용광로'인 셈입니다.

무엇보다 난민들을 위해 발벗고 나선 지역민들의 힘이 컸습니다.

가톨릭 자선단체입니다.

새로 들어온 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봉사자 530명이 난민들의 직장과 주거지, 의료보험 등 가장 절실한 애로 사항을 해결해 주고 있습니다.

<녹취> 엘리자베스(가톨릭 자선단체) : "공항에서 태워오고 아파트와 가구를 마련하는 등 난민들에게 필요한 모든 과정을 저희가 함께 도와주고 있습니다."

언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지역 공립학교 교사들이 영어 교육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녹취> 압디 모하메드 사이드(케냐 난민) : "여기 왔을 때 어디가 어딘지 몰랐어요. 가톨릭에서 많이 도와줬고, 지금도 큰 힘이 됩니다."

이 같은 지역 사회의 물질적, 심리적 지원에 힘입어 난민들은 자립 터전을 차립니다.

고향 특산품과 전통 음식을 직접 만들어 파는 이곳은 어느덧 지역 명물로 떠올랐습니다.

지구촌 음식의 향연이 펼쳐진 곳에 자그마한 만두 가게를 차린 모모 소 씨.

모국인 미얀마를 등진 채 낯선 땅에서 맨손으로 일어선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이런 난민들을 지켜보며, 지역 주민들도 자긍심을 느낍니다.

<녹취> 제랄드 딕슨(버팔로 주민) : "대단해요. 이들이 우리 동네를 더욱 좋게 만들고 있죠. 저도 단골이 됐어요."

화제가 자연스럽게 정치인들의 난민 관련 발언으로 옮겨가면, 주민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녹취> 폴 더밋(버팔로 시민) : "가끔 '이민자는 안돼'라고 말하는 바보 같은 정치인들이 있죠. 하지만 미국은 이민의 나라입니다. 전 세계에서 오는 사람들을 지원해야 합니다."

<녹취> 메간 라클리(버팔로 시민) : "미국을 안전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나라로부터 온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가져선 안됩니다. "

하지만 버팔로 정착 난민들에게 지역 사회 모두가 호의적인 것은 아닙니다.

모국에서 이미 큰 고통을 당했던 난민들에게 '인종 차별'의 폭력이 도사리는가 하면 학교에선 집단 따돌림도 발생합니다.

<녹취> 린 피카릴로(국제학교 교장) : "가끔씩 아이들은 특정 문화에서 무엇이 용인되고 안 되는지를 잘 모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다 보니 훈련도 시키고, 정학 처분도 내리고 하죠."

최근에는 3백 명 가까운 시리아 난민의 수용 여부를 놓고 버팔로 시 정부와 의회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파리 테러 이후 시 의원 가운데 일부는 시리아 난민 가운데 누가 섞여 들어왔는지 알 수 없다며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녹취> 케빈 하드윅(공화당 시 의원) : "시리아 난민에 있어서만은 남성이 몇 명이고 여성이 몇 명이고 7살 미만 아이들은 몇명인지 철저한 실태 조사가 뒤따라야 합니다.

물론 난민 수용에 대해 긍정적 시각이 강한 버펄로인 만큼, 대규모 항의 시위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난민 정착에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시 정부로선 지금과 같은 적극적인 수용 방침을 바꿀 뜻이 없습니다.

인도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버팔로에 들어온 난민들이 인구 증대는 물론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때문입니다.

<녹취> 바이론 브라운(버팔로 시장) : "난민들에게 직장과 집, 법률적 도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미국이 해야 할 일들입니다."

미 정부 결정에 따라 버팔로에 들어온 난민은 지난 2003년 이후 만여 명에 이릅니다.

갖은 역경을 이겨낸 난민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인구 26만 명의 작은 도시 버팔로의 일원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편견을 극복하고 난민들을 포용한 버팔로 지역 공동체의 실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 [특파원 eye] 난민 끌어안기의 실험장 미국 버팔로
    • 입력 2016.02.06 (08:47)
    • 수정 2016.02.06 (09:55)
    특파원 현장보고
[특파원 eye] 난민 끌어안기의 실험장 미국 버팔로
<앵커 멘트>

난민을 두고 미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트럼프와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힐러리가 벌인 설전입니다.

난민을 둘러싼 이런 신경전, 지난해 파리 테러 이후 두드러졌는데, 올해 미국 대선에서도 핫이슈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자, 그런데 미국 북동부의 자그마한 도시 버팔로에 가면 이런 논란이 자취를 감춥니다.

왜 그럴까요? 이주한 특파원이 난민 끌어안기의 모델, 버팔로를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인 미 공화당의 대선 경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비난 여론이 빗발치고, 발언에 항의하는 무슬림이 유세장을 찾아와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하지만,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녹취> 도널드 트럼프(미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 "발언 이후 제 무슬림 친구들 가운데 일부가 전화를 해서 '고맙다. 믿기지 않는 문제를 알게 해 줬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트럼프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공화당 테드 크루즈 후보도 난민 정책에 있어서만은 뜻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녹취> 테드 크루즈(미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 "대통령이 되면 국경 순찰을 세 배 늘리고, 벽을 세워서 국경을 더욱 강화할 것입니다."

절반 넘는 미국인들이 트럼프의 발언을 반대한다고 하지만, 보수층을 중심으로 형성된 반무슬림, 반 난민 정서는 사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파리 테러 이후 급격히 악화된 미국민의 반 난민 정서.

이런 상황에서 미국 뉴욕 주에 있는 도시 하나가 여론에 파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5년 전, 미국 뉴욕주 버팔로에 정착한 아프리카 출신 이브라힘 씨.

내전에 시달리는 고향 소말리아를 떠나 아프리카 8개 나라를 전전한 끝에 미국으로 왔습니다.

정착 초기 언어 장벽과 경제적 궁핍으로 생활은 순탄치 않았지만, 이제는 안정을 찾았습니다.

<녹취> 이브라힘(소말리아 난민) : "미국에선 삶을 얻었고, 직업도 가졌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난민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언어가 무엇이냐고 묻지도 않습니다.모든 사람들이 하나입니다."

이브라힘 씨처럼 고향을 떠나 버팔로를 찾는 난민들은 최근 몇 년새 부쩍 늘었습니다.

미 국무부 프로그램을 통해 버팔로로 오는 난민은 한 해 평균 천 5백명 정도..

미얀마와 수단, 이라크와 부탄 등 국적도 다양합니다.

덕분에 수 십년 동안 감소세이던 인구는 증가세로 돌아섰습니다.

이곳은 버팔로 시내에 외국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지역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거리에선 각국에서 모여든 이민자와 난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미국하면 떠오르는 말 '인종의 용광로'인 셈입니다.

무엇보다 난민들을 위해 발벗고 나선 지역민들의 힘이 컸습니다.

가톨릭 자선단체입니다.

새로 들어온 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봉사자 530명이 난민들의 직장과 주거지, 의료보험 등 가장 절실한 애로 사항을 해결해 주고 있습니다.

<녹취> 엘리자베스(가톨릭 자선단체) : "공항에서 태워오고 아파트와 가구를 마련하는 등 난민들에게 필요한 모든 과정을 저희가 함께 도와주고 있습니다."

언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지역 공립학교 교사들이 영어 교육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녹취> 압디 모하메드 사이드(케냐 난민) : "여기 왔을 때 어디가 어딘지 몰랐어요. 가톨릭에서 많이 도와줬고, 지금도 큰 힘이 됩니다."

이 같은 지역 사회의 물질적, 심리적 지원에 힘입어 난민들은 자립 터전을 차립니다.

고향 특산품과 전통 음식을 직접 만들어 파는 이곳은 어느덧 지역 명물로 떠올랐습니다.

지구촌 음식의 향연이 펼쳐진 곳에 자그마한 만두 가게를 차린 모모 소 씨.

모국인 미얀마를 등진 채 낯선 땅에서 맨손으로 일어선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이런 난민들을 지켜보며, 지역 주민들도 자긍심을 느낍니다.

<녹취> 제랄드 딕슨(버팔로 주민) : "대단해요. 이들이 우리 동네를 더욱 좋게 만들고 있죠. 저도 단골이 됐어요."

화제가 자연스럽게 정치인들의 난민 관련 발언으로 옮겨가면, 주민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녹취> 폴 더밋(버팔로 시민) : "가끔 '이민자는 안돼'라고 말하는 바보 같은 정치인들이 있죠. 하지만 미국은 이민의 나라입니다. 전 세계에서 오는 사람들을 지원해야 합니다."

<녹취> 메간 라클리(버팔로 시민) : "미국을 안전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나라로부터 온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가져선 안됩니다. "

하지만 버팔로 정착 난민들에게 지역 사회 모두가 호의적인 것은 아닙니다.

모국에서 이미 큰 고통을 당했던 난민들에게 '인종 차별'의 폭력이 도사리는가 하면 학교에선 집단 따돌림도 발생합니다.

<녹취> 린 피카릴로(국제학교 교장) : "가끔씩 아이들은 특정 문화에서 무엇이 용인되고 안 되는지를 잘 모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다 보니 훈련도 시키고, 정학 처분도 내리고 하죠."

최근에는 3백 명 가까운 시리아 난민의 수용 여부를 놓고 버팔로 시 정부와 의회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파리 테러 이후 시 의원 가운데 일부는 시리아 난민 가운데 누가 섞여 들어왔는지 알 수 없다며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녹취> 케빈 하드윅(공화당 시 의원) : "시리아 난민에 있어서만은 남성이 몇 명이고 여성이 몇 명이고 7살 미만 아이들은 몇명인지 철저한 실태 조사가 뒤따라야 합니다.

물론 난민 수용에 대해 긍정적 시각이 강한 버펄로인 만큼, 대규모 항의 시위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난민 정착에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시 정부로선 지금과 같은 적극적인 수용 방침을 바꿀 뜻이 없습니다.

인도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버팔로에 들어온 난민들이 인구 증대는 물론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때문입니다.

<녹취> 바이론 브라운(버팔로 시장) : "난민들에게 직장과 집, 법률적 도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미국이 해야 할 일들입니다."

미 정부 결정에 따라 버팔로에 들어온 난민은 지난 2003년 이후 만여 명에 이릅니다.

갖은 역경을 이겨낸 난민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인구 26만 명의 작은 도시 버팔로의 일원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편견을 극복하고 난민들을 포용한 버팔로 지역 공동체의 실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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