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구정’이란 표현 쓰시나요?

입력 2016.02.07 (09:05) 수정 2016.02.0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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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설을 맞아 고향을 찾기 위해 기차역 매표소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모습(1968년).▲음력설을 맞아 고향을 찾기 위해 기차역 매표소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모습(1968년).


▲음력설을 맞아 호남선 열차를 타기 위해 승차권을 확인받는 광경(1971년). ▲음력설을 맞아 호남선 열차를 타기 위해 승차권을 확인받는 광경(1971년).


설 연휴가 다가오면 여기저기서 '신정' '구정'이란 표현을 쓰며 양력 1월 1일과 음력 1월 1일을 구분해 부른다. 그러나 여기서 '구정'이란 단어가 일제 치하의 잔재라는 점에서, 구정 대신 설이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역사를 살펴보면 '설날'은 많은 부침을 겪어 왔다.

우선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음력 1월 1일 정월 초하루를 가리켜 '설날'이라 하여 명절로 즐겨 왔다.

상황이 바뀐 건 1895년 을미개혁으로 태양력을 받아들이면서다. 정부는 양력 1월 1일을 새로운 '설날'로 지정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음력 1월 1일을 설날로 보냈다. 이날 조상에 제사를 지내고, 어른들께 세배를 드렸다.

상황이 한 차례 더 변한 건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본 식민통치가 시작되면서다. 양력설을 쇠는 일본은 우리나라도 자신들처럼 양력에 설을 쇠길 원했다. 여기에는 우리의 전통문화인 음력설을 없애려는 의도도 있었다.

일본은 우리의 음력설을 '옛날 설'이란 의미로 구정이라 깎아내렸고, 양력설은 신정이라 부르며 쇠기를 강요했다.

이때부터 신정과 구정이란 단어들이 쓰였다.

일제치하에는 음력설 쇠는 걸 막기 위해 공권력 억압은 물론, 물리력까지 행사했다.

음설 설에 각 관청과 학교의 조퇴를 엄금하거나, 흰옷을 입고 세배 다니는 사람에게 물총을 쏘기도 했다.

음력설 억제 정책은 광복 이후에도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동안 계속됐다. 당시 정부는 '이중과세(양력과 음력설을 모두 쇠는 것)' 방지를 명목으로 음력설을 쇠지 말라고 했다.

▲음력설 대신 양력설을 쇨 것으로 강조하는 만화(1981년). width=▲음력설 대신 양력설을 쇨 것으로 강조하는 만화(1981년). width=


그러나 여전히 많은 국민은 음력설을 '설날'로 인식했고, 매년 음력설 때면 고향으로 가는 길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에 전두환 정권 때인 1985년 음력설이 '민속의 날'이란 이름으로 공휴일 지정이 됐고, 노태우 정권 때인 1989년에는 '설날'이란 명칭을 복원하고 3일의 공휴일을 지정했다.

▲국무총리실에서 총무처로 보낸 문서로, 음력설을 강력하게 억제할 것을 지시(1954년).▲국무총리실에서 총무처로 보낸 문서로, 음력설을 강력하게 억제할 것을 지시(1954년).


이후 김대중 정권 때인 1998년에는 양력설을 '설'이 아닌, '1월 1일'로 규정하고 공휴일도 하루로 축소했다.

[연관 기사] ☞ 영상으로 보는 ‘우리 설날의 역사’

지금 우리에겐 구정과 신정이 없다. 우리에게 '설날'은 정월 초하루인 음력 1월 1일 뿐이다. 그러니 구정·신정이란 표현은 되도록 쓰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한때 '설날'이란 이름을 잃었다가 되찾은 정월 초하루 설날. 그만큼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사진 자료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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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도 ‘구정’이란 표현 쓰시나요?
    • 입력 2016-02-07 09:05:20
    • 수정2016-02-07 09:34:45
    문화
▲음력설을 맞아 고향을 찾기 위해 기차역 매표소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모습(1968년).

▲음력설을 맞아 호남선 열차를 타기 위해 승차권을 확인받는 광경(1971년).

설 연휴가 다가오면 여기저기서 '신정' '구정'이란 표현을 쓰며 양력 1월 1일과 음력 1월 1일을 구분해 부른다. 그러나 여기서 '구정'이란 단어가 일제 치하의 잔재라는 점에서, 구정 대신 설이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역사를 살펴보면 '설날'은 많은 부침을 겪어 왔다.

우선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음력 1월 1일 정월 초하루를 가리켜 '설날'이라 하여 명절로 즐겨 왔다.

상황이 바뀐 건 1895년 을미개혁으로 태양력을 받아들이면서다. 정부는 양력 1월 1일을 새로운 '설날'로 지정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음력 1월 1일을 설날로 보냈다. 이날 조상에 제사를 지내고, 어른들께 세배를 드렸다.

상황이 한 차례 더 변한 건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본 식민통치가 시작되면서다. 양력설을 쇠는 일본은 우리나라도 자신들처럼 양력에 설을 쇠길 원했다. 여기에는 우리의 전통문화인 음력설을 없애려는 의도도 있었다.

일본은 우리의 음력설을 '옛날 설'이란 의미로 구정이라 깎아내렸고, 양력설은 신정이라 부르며 쇠기를 강요했다.

이때부터 신정과 구정이란 단어들이 쓰였다.

일제치하에는 음력설 쇠는 걸 막기 위해 공권력 억압은 물론, 물리력까지 행사했다.

음설 설에 각 관청과 학교의 조퇴를 엄금하거나, 흰옷을 입고 세배 다니는 사람에게 물총을 쏘기도 했다.

음력설 억제 정책은 광복 이후에도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동안 계속됐다. 당시 정부는 '이중과세(양력과 음력설을 모두 쇠는 것)' 방지를 명목으로 음력설을 쇠지 말라고 했다.

▲음력설 대신 양력설을 쇨 것으로 강조하는 만화(1981년). width=

그러나 여전히 많은 국민은 음력설을 '설날'로 인식했고, 매년 음력설 때면 고향으로 가는 길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에 전두환 정권 때인 1985년 음력설이 '민속의 날'이란 이름으로 공휴일 지정이 됐고, 노태우 정권 때인 1989년에는 '설날'이란 명칭을 복원하고 3일의 공휴일을 지정했다.

▲국무총리실에서 총무처로 보낸 문서로, 음력설을 강력하게 억제할 것을 지시(1954년).

이후 김대중 정권 때인 1998년에는 양력설을 '설'이 아닌, '1월 1일'로 규정하고 공휴일도 하루로 축소했다.

[연관 기사] ☞ 영상으로 보는 ‘우리 설날의 역사’

지금 우리에겐 구정과 신정이 없다. 우리에게 '설날'은 정월 초하루인 음력 1월 1일 뿐이다. 그러니 구정·신정이란 표현은 되도록 쓰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한때 '설날'이란 이름을 잃었다가 되찾은 정월 초하루 설날. 그만큼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사진 자료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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