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THAAD)와 우려되는 외교지형의 격변

입력 2016.02.09 (17:49) 수정 2016.02.09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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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그대로 급박한 한반도 정세다. 북한이 주도하는 위기국면에 한국 등 주변국들의 대응도 민활하다. 당장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분위기는 아니지만 종국적으로는 그 방향으로 치닫는 정책들이 쏟아진다. 수소폭탄이라고 주장하는 핵실험에 이어 ICBM급 비행 능력을 보여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시험은 엄중한 군사적 도발임에 분명하다. 더욱이 북한의 최고 지도자 지위에 있는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지휘하며 벌인 과시적 공세다. 한국과 미국 등 관련국이 대응책을 내놓는 것은 당위다. 막 나가는 북한 지도자를 이번에 제어하지 못한다면 그 다음에는 더욱 방법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한국과 미국의 지도자가 예전과 다른 각오를 보이며 특단의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 북핵. 미사일 시험에 사드(THAAD) 카드로 맞대응

한국 정부는 북한이 핵실험에 이어 장거리 미사일 발사시험까지 하는 도발을 감행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드(THAAD) 미사일 카드를 꺼냈다. 지난 7일 국방부 당국자가 나서서 ‘사드 배치 방안을 본격적으로 협의하겠다’고 공표했다. 물론 협의 개시를 선언한 초기 단계 움직임으로 간주할 수도 있지만 한미동맹의 구조적 성격과 사드 문제의 민감성을 감안하면 그 정도 상황은 훨씬 뛰어넘는다. 한국 정부가 배치를 수용하기로 결정하지 않고서 이번 발표를 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특별한 돌발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사드 배치 문제는 미국의 형편을 감안하며 주도면밀하게 진행될 것이다. 한국 정부에게는 지역 선정에 따른 주민들의 반발과 총선 등 한국내 정치적 상황이 돌발 변수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책무가 주어지게 됐다.



사드의 진전은 한미관계의 진전을 의미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 직후인 지난 1월 7일 박근혜 대통령과 통화한 데 이어 오늘(9일) 또다시 통화를 갖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 이후의 대북 압박방안을 협의했다. 아베 일본 총리도 오바마 대통령과 전화 협의를 가진 후에 박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한미일 3국 정상 간에는 지난 몇 년 동안에는 볼 수 없었던 공조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각국 정상들의 정치적 셈법이야 제각각이고 당장 뾰족한 방안을 공표하는 것도 아니지만 대북한 압박 메시지와 억지 효과 면에서는 긍정적이다. 정상들이 어울리면 당연 3자간 실무협의도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것이 상례여서 한미일 3국간 공조는 제 모습을 갖춰가는 모양새다.

■ 한미일 공조 강화 속 문제는 중국

문제는 한미일 3국의 협력 강화만으로는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미국 백악관 대변인 죠시 어니스트 말대로 미국은 이 순간에도 115 곳의 북한 관련 대상에 대해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한국도 금강산 관광과 한국 기업의 경협사업을 중단하는 등 개성공단 가동 이외에는 대북 제재조치를 하고 있다. 일본도 총련의 자금줄을 죄는 것을 비롯해서 대북한 압박조치를 실시하고 있다. 한미일이 지금보다 양자제재를 강화한다 해도 효과는 제한적이다. 중국이 북한과 일반적인 교역은 물론 전략물자의 지원을 계속하는 한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는 영향이 있을지언정 지도부의 리더십에는 타격이 없다. 바로 중국의 도움이 절대적이라는 말이다. 대북 제재의 목적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리더십에 타격을 줘서 북한 지도부에 변화를 일으키고 종국에는 핵미사일 같은 도발 정책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라면 중국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중국은 지난 한달 동안 동네북 신세가 됐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남북한 모두로부터 공개적인 망신을 당했다.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시 주석을 모욕했다면 한국 정부는 사드 배치로 내친 셈이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중국의 비분강개하는 입장은 이미 널리 알려져 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한국 정부의 사드 발표는 중국 정부에게는 큰 타격이다. 더욱이 발표 시점이 시진핑 주석이 박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난 직후라는 점은 심각하다. 한국 정부 내에서 ‘시진핑 주석의 전화 직후에 사드를 발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이내 묻혔다고 한다. ‘이미 사드 문제에 대한 방침이 결정된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의 통화로 생긴 돌출 변수를 감안할 경우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는 주장 앞에 힘을 잃은 것이다. 더군다나 시진핑 주석이 통화에서 밝힌 대북한 응징방안은 한국 정부의 기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중국에 대해 배신감을 강조하던 한국 정부 내 강경세력이 예정대로 밀어부칠 여지가 생긴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사드 문제를 공론화하기로 한미양국이 양해를 이룬 상황에서 성사된 시진핑 주석의 통화는 어떻게 보면 한국 정부에게는 달갑지 않은 돌발 변수였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 정부 대중국 강경기류가 사드 카드 옹호

사드에 대한 한미양국 국방당국의 기류 변화는 지난 1월에 본격적으로 시작돼 그 달에 결정 형태로 완성됐다. 박 대통령이 1월 13일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는 국익과 안보에 따라 검토한다’는 원론적인 언급을 한 후에 양국 국방당국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미국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활용했다. 특히 ‘북한 핵실험 이후에도 전화 통화마저 거부하는 중국 시진핑 주석에 대해 박 대통령의 분노가 크다’는 전언들이 한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사드 관련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중국이 정상간 통화는 물론 대북제재 강화에도 소극적이라는 소식까지 보태지면서 중국에 대한 실망감은 사드 배치에 대한 한국내 옹호론이 강화되는 계기로 활용됐다. 급기야 1월말에는 ‘미국이 사드 배치를 결심했다’, ‘미국이 요청하고 협의하고 결정한다는 세가지 언론 대응 지침(PG) 가운데 미국이 요청한다는 첫 항이 사라졌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어 미국 국방당국은 이를 공개적으로 확인해주기나 하듯이 한국 언론을 하와이에 있는 태평양군 사령부로 불러서 ‘사드 배치는 한미동맹의 결정’이라며 미국의 일방적 요청이 아니라 한미양국의 공동 결정과 책무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드 문제는 아직 최종 결정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루비콘 강을 건넜다. 미국 정부가 사정이 생겨 생각을 바꾸거나 한국 내에서 사드 배치가 한미관계를 오히려 위협할 상황이 생기지 않는 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바꾸기 힘들게 됐다. 만일 원칙 없이 우왕좌왕할 경우에는 중국도 잃고 미국도 잃게 된다. 다만 최종 결정을 서두를 필요는 없어 보인다는 점이 남은 변수라면 변수다. 미 국방부 대변인이 9일 브리핑에서 ‘속도를 내겠다’고 했지만 이는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에 불과하다. 사드 배치와 관련된 정치적 결단이 내려졌다 해도 실상 구체적 논의로 들어갈 경우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 간단치 않다.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과정에서 봐서 알 수 있듯이 부지를 구하는 문제는 하루 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폭발성도 잠재돼 있다. 돈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사드 배치를 요구할 때 미국이 국방부가 아닌 한미연합사령관의 요청 형식을 빌린 것은 의미심장하다. 미국 정부가 한반도 사드 배치를 언급할 때 주한미군 보호를 위한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벌써부터 ‘사드 포대 한 개로도 한반도의 절반을 방어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돈 문제와 연관돼 있다. 이미 박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로 지칭해 언명한 바 있다. 이런 마당에 한국군 당국자들이 나서서 종국에는 사드 배치 비용의 상당 부분을 한국이 부담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 경우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많은 국민들이 당면한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을 막기 위해서는 검증 덜된 사드보다는 선제 공격용 무기 등 다른 방위체계에 돈을 쓰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드 카드 잘못 대응하면 외교 격변에 휩쓸려

결론적으로 사드에 대한 한국 국방부의 발표는 한반도 외교지형에 격변을 부르는 중대 요소다. 현 정권을 포함해서 역대 정권이 취해온 친미근중이라는 이른바 균형외교를 탈피하 고 친미외교로 북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개 선언이다. 나아가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져도 이를 감내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어야 가능한 결정이다. 외교 정책에 대한 최종 판단은 국민의 선택을 받은 대통령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참모와 국무위원에게는 대통령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끝까지 보좌해야 할 책무가 있다. 사드 문제는 단순한 군사문제가 아니다. 조금만 깊게 생각해봐도 나라의 장래 운명과 관련될 수 있는 중대 외교사안임을 알 수 있다. 외교는 밖에 나가서 전달하는 프리젠테이션보다도 지휘부가 내부에서 결정하는 정책 방안이 더욱 중요하다. 외교지형을 흔들 사인인 사드 문제와 관련해 통수권자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국방부의 목소리만 들리고 정작 외교 정책 담당자들은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않는 것이야말로 외교 부재에 다름 아니다.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용기를 내서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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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핵. 미사일 시험에 사드(THAAD) 카드로 맞대응

한국 정부는 북한이 핵실험에 이어 장거리 미사일 발사시험까지 하는 도발을 감행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드(THAAD) 미사일 카드를 꺼냈다. 지난 7일 국방부 당국자가 나서서 ‘사드 배치 방안을 본격적으로 협의하겠다’고 공표했다. 물론 협의 개시를 선언한 초기 단계 움직임으로 간주할 수도 있지만 한미동맹의 구조적 성격과 사드 문제의 민감성을 감안하면 그 정도 상황은 훨씬 뛰어넘는다. 한국 정부가 배치를 수용하기로 결정하지 않고서 이번 발표를 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특별한 돌발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사드 배치 문제는 미국의 형편을 감안하며 주도면밀하게 진행될 것이다. 한국 정부에게는 지역 선정에 따른 주민들의 반발과 총선 등 한국내 정치적 상황이 돌발 변수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책무가 주어지게 됐다.



사드의 진전은 한미관계의 진전을 의미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 직후인 지난 1월 7일 박근혜 대통령과 통화한 데 이어 오늘(9일) 또다시 통화를 갖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 이후의 대북 압박방안을 협의했다. 아베 일본 총리도 오바마 대통령과 전화 협의를 가진 후에 박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한미일 3국 정상 간에는 지난 몇 년 동안에는 볼 수 없었던 공조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각국 정상들의 정치적 셈법이야 제각각이고 당장 뾰족한 방안을 공표하는 것도 아니지만 대북한 압박 메시지와 억지 효과 면에서는 긍정적이다. 정상들이 어울리면 당연 3자간 실무협의도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것이 상례여서 한미일 3국간 공조는 제 모습을 갖춰가는 모양새다.

■ 한미일 공조 강화 속 문제는 중국

문제는 한미일 3국의 협력 강화만으로는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미국 백악관 대변인 죠시 어니스트 말대로 미국은 이 순간에도 115 곳의 북한 관련 대상에 대해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한국도 금강산 관광과 한국 기업의 경협사업을 중단하는 등 개성공단 가동 이외에는 대북 제재조치를 하고 있다. 일본도 총련의 자금줄을 죄는 것을 비롯해서 대북한 압박조치를 실시하고 있다. 한미일이 지금보다 양자제재를 강화한다 해도 효과는 제한적이다. 중국이 북한과 일반적인 교역은 물론 전략물자의 지원을 계속하는 한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는 영향이 있을지언정 지도부의 리더십에는 타격이 없다. 바로 중국의 도움이 절대적이라는 말이다. 대북 제재의 목적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리더십에 타격을 줘서 북한 지도부에 변화를 일으키고 종국에는 핵미사일 같은 도발 정책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라면 중국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중국은 지난 한달 동안 동네북 신세가 됐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남북한 모두로부터 공개적인 망신을 당했다.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시 주석을 모욕했다면 한국 정부는 사드 배치로 내친 셈이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중국의 비분강개하는 입장은 이미 널리 알려져 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한국 정부의 사드 발표는 중국 정부에게는 큰 타격이다. 더욱이 발표 시점이 시진핑 주석이 박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난 직후라는 점은 심각하다. 한국 정부 내에서 ‘시진핑 주석의 전화 직후에 사드를 발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이내 묻혔다고 한다. ‘이미 사드 문제에 대한 방침이 결정된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의 통화로 생긴 돌출 변수를 감안할 경우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는 주장 앞에 힘을 잃은 것이다. 더군다나 시진핑 주석이 통화에서 밝힌 대북한 응징방안은 한국 정부의 기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중국에 대해 배신감을 강조하던 한국 정부 내 강경세력이 예정대로 밀어부칠 여지가 생긴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사드 문제를 공론화하기로 한미양국이 양해를 이룬 상황에서 성사된 시진핑 주석의 통화는 어떻게 보면 한국 정부에게는 달갑지 않은 돌발 변수였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 정부 대중국 강경기류가 사드 카드 옹호

사드에 대한 한미양국 국방당국의 기류 변화는 지난 1월에 본격적으로 시작돼 그 달에 결정 형태로 완성됐다. 박 대통령이 1월 13일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는 국익과 안보에 따라 검토한다’는 원론적인 언급을 한 후에 양국 국방당국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미국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활용했다. 특히 ‘북한 핵실험 이후에도 전화 통화마저 거부하는 중국 시진핑 주석에 대해 박 대통령의 분노가 크다’는 전언들이 한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사드 관련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중국이 정상간 통화는 물론 대북제재 강화에도 소극적이라는 소식까지 보태지면서 중국에 대한 실망감은 사드 배치에 대한 한국내 옹호론이 강화되는 계기로 활용됐다. 급기야 1월말에는 ‘미국이 사드 배치를 결심했다’, ‘미국이 요청하고 협의하고 결정한다는 세가지 언론 대응 지침(PG) 가운데 미국이 요청한다는 첫 항이 사라졌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어 미국 국방당국은 이를 공개적으로 확인해주기나 하듯이 한국 언론을 하와이에 있는 태평양군 사령부로 불러서 ‘사드 배치는 한미동맹의 결정’이라며 미국의 일방적 요청이 아니라 한미양국의 공동 결정과 책무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드 문제는 아직 최종 결정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루비콘 강을 건넜다. 미국 정부가 사정이 생겨 생각을 바꾸거나 한국 내에서 사드 배치가 한미관계를 오히려 위협할 상황이 생기지 않는 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바꾸기 힘들게 됐다. 만일 원칙 없이 우왕좌왕할 경우에는 중국도 잃고 미국도 잃게 된다. 다만 최종 결정을 서두를 필요는 없어 보인다는 점이 남은 변수라면 변수다. 미 국방부 대변인이 9일 브리핑에서 ‘속도를 내겠다’고 했지만 이는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에 불과하다. 사드 배치와 관련된 정치적 결단이 내려졌다 해도 실상 구체적 논의로 들어갈 경우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 간단치 않다.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과정에서 봐서 알 수 있듯이 부지를 구하는 문제는 하루 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폭발성도 잠재돼 있다. 돈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사드 배치를 요구할 때 미국이 국방부가 아닌 한미연합사령관의 요청 형식을 빌린 것은 의미심장하다. 미국 정부가 한반도 사드 배치를 언급할 때 주한미군 보호를 위한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벌써부터 ‘사드 포대 한 개로도 한반도의 절반을 방어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돈 문제와 연관돼 있다. 이미 박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로 지칭해 언명한 바 있다. 이런 마당에 한국군 당국자들이 나서서 종국에는 사드 배치 비용의 상당 부분을 한국이 부담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 경우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많은 국민들이 당면한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을 막기 위해서는 검증 덜된 사드보다는 선제 공격용 무기 등 다른 방위체계에 돈을 쓰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드 카드 잘못 대응하면 외교 격변에 휩쓸려

결론적으로 사드에 대한 한국 국방부의 발표는 한반도 외교지형에 격변을 부르는 중대 요소다. 현 정권을 포함해서 역대 정권이 취해온 친미근중이라는 이른바 균형외교를 탈피하 고 친미외교로 북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개 선언이다. 나아가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져도 이를 감내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어야 가능한 결정이다. 외교 정책에 대한 최종 판단은 국민의 선택을 받은 대통령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참모와 국무위원에게는 대통령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끝까지 보좌해야 할 책무가 있다. 사드 문제는 단순한 군사문제가 아니다. 조금만 깊게 생각해봐도 나라의 장래 운명과 관련될 수 있는 중대 외교사안임을 알 수 있다. 외교는 밖에 나가서 전달하는 프리젠테이션보다도 지휘부가 내부에서 결정하는 정책 방안이 더욱 중요하다. 외교지형을 흔들 사인인 사드 문제와 관련해 통수권자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국방부의 목소리만 들리고 정작 외교 정책 담당자들은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않는 것이야말로 외교 부재에 다름 아니다.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용기를 내서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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