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200억 원 산약초 타운 ‘애물단지’ 전락

입력 2016.02.1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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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약초 타운'에 산약초는 어디에?

강원도 화천에 조성한 '산약초 타운'. 겨울임을 고려해도 너무나도 썰렁했습니다. 전시관과 식당을 겸해 만든 나뭇잎 모양의 멋들어진 건물은 유명 건축상을 받았다는 표지만 덩그러니 남긴 채 굳게 잠겨있었고, 체험시설 방문객들이 사우나나 족욕을 하라고 만든 시설에는 동네 주민 몇 명이 전부였습니다.

칼바람을 맞으며 시설 뒤편 약초 재배지를 찾았지만, 시범 포를 심었다는 시설하우스에는 말라죽은 약초와 비닐만 굴러다니고, 재배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은 엉뚱한 곳에 붙어 있었습니다. 산천어 축제로 강원도 화천엔 매년 백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온다는데, '산약초 타운'은 이 축제와 연계 이벤트를 진행해도 지난 1월 한 달간 방문객이 고작 200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곳은 어떨까요?

경북 청송 산약초 타운경북 청송 산약초 타운


네 시간을 달려 찾아간 경북 청송의 또 다른 '산약초 타운'은 큰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연구원과 유리온실 체험 건물까지.... 눈 쌓인 산 위에 자리 잡은 그곳은 꽤 근사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내부를 들여다보니 이곳도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연구원 안에는 건조기 한 대만 1년 넘게 먼지만 쌓인 채 방치돼 있었고, 그나마 대학생들 워크숍 장소나 펜션 용도로 근근이 사용될 뿐이었습니다. 급기야 청송군은 지난해 이 '산약초 타운' 관리를 포기하고, 모 여자대학교에 매년 8천만 원의 관리비를 주는 조건으로 위탁 관리 계약을 맺었습니다.

충북 제천의 '산약초 타운'도 한술 더 떠 문도 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제천시가 설립과 운영을 맡긴 영농조합 전 대표의 비리 논란이 불거지면서 전시관을 준공하고도 방치하고 있는 겁니다. 전북 진안의 '산약초 타운'도 사정이 비슷해 70억 원을 들여 지은 건물엔 방문객이 없어, 아예 방문객 숫자조차 집계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경북 청송 산약초 타운 유리온실경북 청송 산약초 타운 유리온실


■ "좋기는?... 차 때문에 먼지만 날려!"

산림청이 전국 지자체에 사업을 공모하고, 국민 세금을 지원해 추진한 '산약초 타운' 사업은 본래 지역 주민들의 소득 향상과 지역 경기 활성화를 위해 시작된 겁니다. 주민들이 산약초 재배와 가공, 관리에 직접 참여해 소득을 얻도록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농촌 주민들이 대부분이 고령인 데다 이미 생업에 종사하고 있어서, 추가로 이 사업에 참여할 여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려웠던 겁니다.

또 산림청 공모사업에 선정된 지자체라고 하더라도 대부분 재정자립도가 현격히 낮은 상황에서 지자체가 추가로 시설에 투자하거나, 운영 재원을 마련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실제 강원도 화천과 충북 청송의 경우 '산약초 타운' 진입 도로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공사 차량 오가느라 먼지만 날리지 도움되는 건 하나도 없어!" 산약초 타운 인근 마을 주민이 던진 말입니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산약초 타운' 현실을 한마디로 말해주는 듯합니다.

산약초타운산약초타운


■ 산림청 "산약초 타운 활로 찾겠다"...글쎄요?

지난 15일 KBS 뉴스9에서 200억 원을 투입하고도 폐허나 다름없이 방치된 '산약초 타운'의 실태를 보도했습니다. 다음 날 사업 주관부처인 산림청은 '산약초 타운 개선 대책'을 담은 보도자료를 내놓았습니다. 현장 실사를 거쳐 운영 주체인 지자체와 새로운 운영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후 이 같은 공모사업을 진행할 때는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타당성 검증을 강화하고, 모니터링도 지속적으로 하겠다는 건데요.

'산약초 타운'이 처음 추진된 것은 지난 2009년 10월입니다. 비록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를 겪는다고 하더라도 햇수로 7년을 맞은 지금쯤에는 이미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산림청이 과연 어떤 새로운 운영방안을 내놓을지도 의문입니다. 지자체가 벌써 관리를 포기해 외부에 위탁을 맡기고, 산약초 재배보다는 체험시설과 공원으로 사업을 대폭 수정한 상황에서 과연 어떤 대안이 나올까요?

충북 제천 산약초 타운 전시관충북 제천 산약초 타운 전시관


그리고 2009년 이 사업의 최초 추진 과정을 보면 산림청은 공모에 응한 지자체가 내놓은 사업계획서만 보고 '산약초 타운 조성' 지자체를 결정합니다. 한마디로 서류 심사만 한 겁니다. 현장 실사는 물론 사업 참여가 가능한 주민이 얼마나 되는지? 지자체 재정상황은 어떤지 등에 대한 꼼꼼한 검토가 없었던 겁니다.

이에 더해 전국 4곳에 '산약초 타운'을 조성하고도 이후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도 없었습니다. 국민 세금 200억 원을 투입하고도, 헛돈만 쓴 애물단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곳곳에 있었던 겁니다.

정부 부처의 공모사업은 사업을 시행하는 부처, 또 선정돼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 모두의 책임입니다. 예산 지원을 했으니 관리는 너희가 해라, 혹은 이미 선정돼 국비를 받았으니 뒷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이런 식으로 공모사업이 추진돼서는 안 됩니다. 더는 국민 세금으로 진행하는 공모 사업이 엉뚱하게 표류하지 않길 바랍니다.

[연관 기사] ☞ [현장추적] 텅 빈 산약초타운…200억 예산 ‘줄줄’ (201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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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200억 원 산약초 타운 ‘애물단지’ 전락
    • 입력 2016-02-19 09:07:51
    취재후·사건후
■ '산약초 타운'에 산약초는 어디에?

강원도 화천에 조성한 '산약초 타운'. 겨울임을 고려해도 너무나도 썰렁했습니다. 전시관과 식당을 겸해 만든 나뭇잎 모양의 멋들어진 건물은 유명 건축상을 받았다는 표지만 덩그러니 남긴 채 굳게 잠겨있었고, 체험시설 방문객들이 사우나나 족욕을 하라고 만든 시설에는 동네 주민 몇 명이 전부였습니다.

칼바람을 맞으며 시설 뒤편 약초 재배지를 찾았지만, 시범 포를 심었다는 시설하우스에는 말라죽은 약초와 비닐만 굴러다니고, 재배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은 엉뚱한 곳에 붙어 있었습니다. 산천어 축제로 강원도 화천엔 매년 백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온다는데, '산약초 타운'은 이 축제와 연계 이벤트를 진행해도 지난 1월 한 달간 방문객이 고작 200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곳은 어떨까요?

경북 청송 산약초 타운

네 시간을 달려 찾아간 경북 청송의 또 다른 '산약초 타운'은 큰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연구원과 유리온실 체험 건물까지.... 눈 쌓인 산 위에 자리 잡은 그곳은 꽤 근사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내부를 들여다보니 이곳도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연구원 안에는 건조기 한 대만 1년 넘게 먼지만 쌓인 채 방치돼 있었고, 그나마 대학생들 워크숍 장소나 펜션 용도로 근근이 사용될 뿐이었습니다. 급기야 청송군은 지난해 이 '산약초 타운' 관리를 포기하고, 모 여자대학교에 매년 8천만 원의 관리비를 주는 조건으로 위탁 관리 계약을 맺었습니다.

충북 제천의 '산약초 타운'도 한술 더 떠 문도 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제천시가 설립과 운영을 맡긴 영농조합 전 대표의 비리 논란이 불거지면서 전시관을 준공하고도 방치하고 있는 겁니다. 전북 진안의 '산약초 타운'도 사정이 비슷해 70억 원을 들여 지은 건물엔 방문객이 없어, 아예 방문객 숫자조차 집계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경북 청송 산약초 타운 유리온실

■ "좋기는?... 차 때문에 먼지만 날려!"

산림청이 전국 지자체에 사업을 공모하고, 국민 세금을 지원해 추진한 '산약초 타운' 사업은 본래 지역 주민들의 소득 향상과 지역 경기 활성화를 위해 시작된 겁니다. 주민들이 산약초 재배와 가공, 관리에 직접 참여해 소득을 얻도록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농촌 주민들이 대부분이 고령인 데다 이미 생업에 종사하고 있어서, 추가로 이 사업에 참여할 여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려웠던 겁니다.

또 산림청 공모사업에 선정된 지자체라고 하더라도 대부분 재정자립도가 현격히 낮은 상황에서 지자체가 추가로 시설에 투자하거나, 운영 재원을 마련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실제 강원도 화천과 충북 청송의 경우 '산약초 타운' 진입 도로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공사 차량 오가느라 먼지만 날리지 도움되는 건 하나도 없어!" 산약초 타운 인근 마을 주민이 던진 말입니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산약초 타운' 현실을 한마디로 말해주는 듯합니다.

산약초타운

■ 산림청 "산약초 타운 활로 찾겠다"...글쎄요?

지난 15일 KBS 뉴스9에서 200억 원을 투입하고도 폐허나 다름없이 방치된 '산약초 타운'의 실태를 보도했습니다. 다음 날 사업 주관부처인 산림청은 '산약초 타운 개선 대책'을 담은 보도자료를 내놓았습니다. 현장 실사를 거쳐 운영 주체인 지자체와 새로운 운영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후 이 같은 공모사업을 진행할 때는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타당성 검증을 강화하고, 모니터링도 지속적으로 하겠다는 건데요.

'산약초 타운'이 처음 추진된 것은 지난 2009년 10월입니다. 비록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를 겪는다고 하더라도 햇수로 7년을 맞은 지금쯤에는 이미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산림청이 과연 어떤 새로운 운영방안을 내놓을지도 의문입니다. 지자체가 벌써 관리를 포기해 외부에 위탁을 맡기고, 산약초 재배보다는 체험시설과 공원으로 사업을 대폭 수정한 상황에서 과연 어떤 대안이 나올까요?

충북 제천 산약초 타운 전시관

그리고 2009년 이 사업의 최초 추진 과정을 보면 산림청은 공모에 응한 지자체가 내놓은 사업계획서만 보고 '산약초 타운 조성' 지자체를 결정합니다. 한마디로 서류 심사만 한 겁니다. 현장 실사는 물론 사업 참여가 가능한 주민이 얼마나 되는지? 지자체 재정상황은 어떤지 등에 대한 꼼꼼한 검토가 없었던 겁니다.

이에 더해 전국 4곳에 '산약초 타운'을 조성하고도 이후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도 없었습니다. 국민 세금 200억 원을 투입하고도, 헛돈만 쓴 애물단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곳곳에 있었던 겁니다.

정부 부처의 공모사업은 사업을 시행하는 부처, 또 선정돼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 모두의 책임입니다. 예산 지원을 했으니 관리는 너희가 해라, 혹은 이미 선정돼 국비를 받았으니 뒷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이런 식으로 공모사업이 추진돼서는 안 됩니다. 더는 국민 세금으로 진행하는 공모 사업이 엉뚱하게 표류하지 않길 바랍니다.

[연관 기사] ☞ [현장추적] 텅 빈 산약초타운…200억 예산 ‘줄줄’ (201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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