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긴급 르포> 北 해외 외화벌이 실태

입력 2016.02.20 (08:06) 수정 2016.02.2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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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의 핵심 돈줄 가운데 하나는 해외 외화벌이 사업인데요,

건설 근로자 파견과 식당 운영 등에서 한발 더 나아가 최근엔 해외에 박물관까지 세우며 형태를 다양화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현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북한의 해외 외화벌이 실태를 강나루 기자가 직접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캄보디아 북서부에 위치한 시엠립.

줄지어 늘어선 수상가옥과 거리 풍경이 여느 동남아 도시와 다르지 않지만, 이곳은 1년 내내 관광객들로 붐빕니다.

바로 세계 최대의 불교 유적지, ‘앙코르와트’ 때문입니다.

거대한 수풀 사이에 가려진 이 신비로운 유적지를 찾는 관광객은 연간 200만 명.

지난해 말에는 새 박물관도 문을 열었습니다.

앙코르와트에서 차로 10여 분을 달려 도착한 박물관...

취재진을 맞이한 건, 우리말을 쓰는 북한 남성입니다.

<녹취> 북한 박물관 직원 : "조선말 하세요? 우리 조선말 안내를 붙여드릴까요? (그럼 저희는 좋죠.) 어이. 여기 동지들 왔는데 나와서 안내 좀 해주지?"

북한이 지난해 12월 문을 연 ‘앙코르 파노라마 박물관’입니다.

캄보디아 역사를 구현한 박물관 내부..

인근의 사원을 축소시켜 만든 대형 조형물 앞에서, 북한 안내원의 자랑이 이어집니다.

<녹취> 북한 박물관 직원 : "나무로 지금 공예를 했는데 이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공예공들입니다. 만수대 창작사라고 아십니까? 이거만 만드는 것도 그저 한 거의 1년 걸렸는데..."

2층으로 올라가자, 벽면 전체에 그려진 대형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박물관의 자랑거리라고 하는 360도 ‘파노라마 벽화’입니다.

<녹취> 북한 박물관 직원 : "이게 총 길이가 123m입니다. 전체 길이가 123m. 그 다음에 높이가 13m. 이거 준비기간만 1년이 넘었습니다. 준비기간만. 실제 창작은 63명의 화가들이 와서 단기간 내로 그렸습니다. 그래서 7달 정도.."

영화 상영관까지 갖춘 이 박물관 건립에 북한이 쏟아 부은 돈은 우리 돈 280억 원.

눈여겨 볼만한 건 독특한 운영 방식입니다.

<인터뷰> 조봉현(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북한이 투자를 해서 건물을 완공하고, 10년이나 20년 정도 운영한 이후에 그 소유권 자체를 앙코르 정부에 넘기는 일종의 BOT 방식을 도입했다고 하겠습니다. 거금의 외화를 투자해가지고 그보다 몇 배 이상의 이득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러한 어떤 새로운 방식의 외화벌이 사업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새로운 외화벌이 방식으로 야심차게 추진한 사업이지만, 운영은 여의치 않아 보입니다.

실제로 박물관을 찾은 사흘간, 취재진이 만난 관람객은 고작 다섯 명뿐이었습니다.

<녹취> 독일 관광객 : "(방문객이 왜 안 온다고 생각하세요?) 아무도 몰라요. 이곳을 아무도 모르니까 오지 않죠."

지금 시간이 현지시각으로 10시 정도인데요. 원래는 한창 관광객으로 붐벼야 할 시간이지만 보시는 것처럼 주차장이 텅 비어있습니다.

기념품 매장에 들어서자 북한 만수대 창작사 예술가들의 그림들이 눈에 띕니다.

취재진이 관심을 보이자, 직원이 그림을 바닥에 펼쳐 보이며 적극적으로 판매에 나섭니다.

<녹취> 북한 박물관 직원 : "만수대 창작사에서 직접 나와 있으니까 그렇지, 우리 위탁으로 들어가 있는 베이징 다른 전시관에는 굉장히 비싼...만 불을 넘어간단 말입니다."

박물관만으론 투자금 회수조차 불투명한 상황이 되자, 예술가들을 남겨 그림으로 외화벌이에 나선 겁니다.

운영난에 허덕이는 박물관과 달리, 외화벌이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곳도 있습니다.

취재진이 찾은 시엠립의 한 북한 식당.

대형 관광버스들이 식당 앞에 모여들더니, 관광객들이 차례로 내려 식당으로 향합니다.

앞으로 30분 후면 제 옆으로 보이는 이 평양냉면관에서 북한 종업원들의 공연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주차장은 이미 한국 관광객들이 타고 온 버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입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한번에 8백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넓은 실내가 한국 관광객들로 가득 찼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종업원이 다가와 주문을 받습니다.

<녹취> 북한 식당 종업원 : "비빔냉면, 물냉면..주류는 무엇으로 드시겠습니까? (저희 생각할 시간, 저희가 좀 이야기해 볼게요.)"

하지만 채 1분도 안 돼, 다시 다가와 술을 권합니다.

<녹취> 북한 식당 종업원 : "술은 저희들도 종류가 많은데 들쭉술이 인터넷에서 제일 많이 떴습니다. (한 5분 정도만 있다가 (주문할게요)) 아, 왜냐하면 제가 첫 출연해서 공연..빨리 (주문)해야 합니다."

음식을 접대하는 여종업원들이, 공연까지 하고 있는 겁니다.

<녹취> 북한 식당 종업원 : “여러분 반갑습니다. 여러분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식당 한 켠에 마련된 무대에서 모란봉악단을 본뜬 듯한 현란한 율동이 이어집니다.

외국 영화 주제곡 등을 부르며 20대의 젊은 여성들이 펼치는 공연이 북한 식당의 최대 인기 비결입니다.

시엠립 시내의 또 다른 북한 식당.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 뒤편으로 대여섯 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납니다.

이른바 ‘룸’으로 불리는 식당 내 별도 공간입니다.

자리에 앉자 곧바로 값비싼 술을 권하는 종업원들.

<녹취> 북한 식당 종업원 : "산삼주는 되게 비쌉니다. (얼마죠?) 500불입니다 (500불이요?) 진짜 산삼이 그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저렴한 술을 주문하려 하자, 판매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녹취> 북한 식당 종업원 : "(북한 맥주 이런 것도 있어요?) 맥주는 없습니다. (평양소주도 있나요, 아직?) 소주도 다 나갔습니다."

음식을 잘라주는 등 일반적인 접대에서 나아가, 악기를 가져와 귀에 익은 우리의 노래도 불러줍니다.

<녹취> ‘아침이슬’ :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분위기가 무르익자 종업원이 슬그머니 추가 주문을 부추깁니다.

<녹취> 북한 식당 종업원 : "도수 낮은 걸로 한 잔 더 드십시오. 들쭉술이나 많이 드시고 가셔야죠. 이건 180불(달러), 이건 200불(달러)."

하지만 한 병에 2백 달러라는 들쭉술의 북한 원가는 5달러 안팎, 무려 40배나 되는 '바가지'입니다.

외화벌이에 혈안이 된 건 다른 캄보디아 식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상을 올리기 위해 거리낌 없이 남한 노래를 부르며 술시중 드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녹취> 북한 식당 종업원 : "홍도야 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

북한 제품 판매 역시, 북한 식당의 주 수입원입니다.

<녹취> 북한 식당 여종업원 : "혈궁불로정..(이거 어디다 써요?) 제가 읽어드릴게요."

심지어 한약재로 만든 '북한판 비아그라'까지 버젓이 판매됩니다.

<녹취> 북한 식당 여종업원 : "(요즘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가요?) 예. 이거 사러 비행기 타고 굉장히 많이 옵니다."

바가지 영업 등 온갖 편법을 동원해 전 세계 130여 곳의 북한 식당이 평양에 보내는 이른바 ‘충성자금’은 연간 3천만 달러로 추정됩니다.

외화벌이 선봉에 나선 북한식당 종업원들은 20대 초반의 평양 고위층 자녀들.

주로 3년간 해외에 머무는데, 현지 파견된 북한 보위부 요원의 감시하에 장기간 집단생활을 하면서 우울증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녹취> 캄보디아 현지 약사 : "승합차에 남자 한 사람이 여자 종업원들 네다섯 명 데리고 단체로 오고... (종업원이) 공연도 못 나갈 정도로 우울증까지 간 거죠."

실제로 이들의 노동 환경은 상상 이상으로 열악하다는 게 외화벌이 책임자 출신 고위 탈북자의 증언입니다.

<인터뷰> 김철수(가명/‘외화벌이 책임자’ 출신 탈북자) : "영업이 끝나면 열한시쯤에는 지배인하고 보위지도원이 와서 버스에 태워가지고 같이 똑같이 이동을 하죠. 아침부터 10시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고는 또 그 다음에 타고 들어가서 또 호상비판하고, 그 다음에 자고 아침에 깨우고 하니까 진짜 피곤하죠. 자유가 없는 거죠, 자유가."

장시간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그나마 받는 임금의 대부분은 노동당 상납금으로 들어갑니다.

<인터뷰> 김철수(가명/‘외화벌이 책임자’ 출신 탈북자) : "한 달에 3000불은 얘들이 나한테 주는 돈이에요, 회사에서. 회사에서 주는데 10%는 내가 가지고 나머지 90%는 국가에 바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되죠, 일반 근로자도 400불을 받으면 100불만 먹고 나머지 바치고, 그런 식으로 되거든요."

하지만 정작 해외 파견 일꾼들을 관리하는 현지 간부들의 생활은 정반대입니다.

프놈펜의 한 대형 카지노.

관광객들 사이로 담배를 입에 물고 여유롭게 카지노를 즐기는 한 남성이 눈에 띕니다.

김정은의 사금고를 관리하는 노동당 39호실 산하 ‘영풍무역총회사’ 소속 간부입니다.

<녹취> 현지 교민(음성변조) : "주말에 제가 한 번씩 가는데 자주 보입니다. 카지노 하는 걸 지켜보면 100에서 300불 정도 (씁니다). 전체 금액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한참 앉아서 하니까.."

이는 해외에 파견된 간부들 사이에선 만연한 일이라는 게, 관계자의 증언입니다.

<인터뷰> 김철수(가명/‘외화벌이 책임자’ 출신 탈북자) : "자기(관리자)들끼리 모여서 도박도 하고 술도 먹고 골프 치러 가기도 하고 하거든요. 그걸 누가 말리지 못해요, 그걸. 걔네가 총, 칼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누가 관리를 못 하니까."

북한 당국이 요구하는 ‘충성자금’을 헌납하는 게 이들 책임자의 주된 업무..

하지만 할당액을 채우지 못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근로자들의 몫으로 돌아옵니다.

<인터뷰> 김철수(가명/‘외화벌이 책임자’ 출신 탈북자) : "(노동당) 39호실 산하도 있고. 거기서 1년에 얼마를 바쳐라, 국가에 바쳐라 하거든요. 목표 금액을 못 채웠으면 조직을, 중앙당에서 검사, 조직 ‘그루빠’가 와요. 쭉 조사를 해서 실제 이 사람들이 못했구나, 인정을 하면 그 대신 지배인이 월급, 노동자들 월급을 조금씩 까요."

이런 방식으로 북한 당국이 식당과 건설 현장 등 해외 파견 근로자를 통해 벌어들이는 외화는 연간 2억 5천만 달러로 추정됩니다.

이들의 임금을 비롯해 북중 교역, 그리고 각종 불법거래를 통해 입금된 외화는 핵, 미사일 개발 등 김정은의 통치 자금으로 활용된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입니다.

<인터뷰> 조봉현(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북한이 현재 군사 강국을 계속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핵 개발이나 미사일 개발에 또 엄청난 외화들이 확보되고, 엄청난 외화들이 소요되기 때문에 북한이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외화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이러한 도발적 행위로 인해서 국제 사회가 북한에 대해서 제재를 가하면 가할수록 북한은 이러한 외화벌이 사업에도 한계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부족한 외화와 통치자금 충당을 위해 근로자들을 대거 해외로 파견해 외화벌이에 적극 나서고 있는 북한!

하지만 북한의 돈줄을 죄기 위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가속화되면서 북한의 해외 외화벌이 사업도 갈수록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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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긴급 르포> 北 해외 외화벌이 실태
    • 입력 2016-02-20 08:27:33
    • 수정2016-02-20 08:36:11
    남북의 창
<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의 핵심 돈줄 가운데 하나는 해외 외화벌이 사업인데요,

건설 근로자 파견과 식당 운영 등에서 한발 더 나아가 최근엔 해외에 박물관까지 세우며 형태를 다양화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현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북한의 해외 외화벌이 실태를 강나루 기자가 직접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캄보디아 북서부에 위치한 시엠립.

줄지어 늘어선 수상가옥과 거리 풍경이 여느 동남아 도시와 다르지 않지만, 이곳은 1년 내내 관광객들로 붐빕니다.

바로 세계 최대의 불교 유적지, ‘앙코르와트’ 때문입니다.

거대한 수풀 사이에 가려진 이 신비로운 유적지를 찾는 관광객은 연간 200만 명.

지난해 말에는 새 박물관도 문을 열었습니다.

앙코르와트에서 차로 10여 분을 달려 도착한 박물관...

취재진을 맞이한 건, 우리말을 쓰는 북한 남성입니다.

<녹취> 북한 박물관 직원 : "조선말 하세요? 우리 조선말 안내를 붙여드릴까요? (그럼 저희는 좋죠.) 어이. 여기 동지들 왔는데 나와서 안내 좀 해주지?"

북한이 지난해 12월 문을 연 ‘앙코르 파노라마 박물관’입니다.

캄보디아 역사를 구현한 박물관 내부..

인근의 사원을 축소시켜 만든 대형 조형물 앞에서, 북한 안내원의 자랑이 이어집니다.

<녹취> 북한 박물관 직원 : "나무로 지금 공예를 했는데 이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공예공들입니다. 만수대 창작사라고 아십니까? 이거만 만드는 것도 그저 한 거의 1년 걸렸는데..."

2층으로 올라가자, 벽면 전체에 그려진 대형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박물관의 자랑거리라고 하는 360도 ‘파노라마 벽화’입니다.

<녹취> 북한 박물관 직원 : "이게 총 길이가 123m입니다. 전체 길이가 123m. 그 다음에 높이가 13m. 이거 준비기간만 1년이 넘었습니다. 준비기간만. 실제 창작은 63명의 화가들이 와서 단기간 내로 그렸습니다. 그래서 7달 정도.."

영화 상영관까지 갖춘 이 박물관 건립에 북한이 쏟아 부은 돈은 우리 돈 280억 원.

눈여겨 볼만한 건 독특한 운영 방식입니다.

<인터뷰> 조봉현(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북한이 투자를 해서 건물을 완공하고, 10년이나 20년 정도 운영한 이후에 그 소유권 자체를 앙코르 정부에 넘기는 일종의 BOT 방식을 도입했다고 하겠습니다. 거금의 외화를 투자해가지고 그보다 몇 배 이상의 이득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러한 어떤 새로운 방식의 외화벌이 사업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새로운 외화벌이 방식으로 야심차게 추진한 사업이지만, 운영은 여의치 않아 보입니다.

실제로 박물관을 찾은 사흘간, 취재진이 만난 관람객은 고작 다섯 명뿐이었습니다.

<녹취> 독일 관광객 : "(방문객이 왜 안 온다고 생각하세요?) 아무도 몰라요. 이곳을 아무도 모르니까 오지 않죠."

지금 시간이 현지시각으로 10시 정도인데요. 원래는 한창 관광객으로 붐벼야 할 시간이지만 보시는 것처럼 주차장이 텅 비어있습니다.

기념품 매장에 들어서자 북한 만수대 창작사 예술가들의 그림들이 눈에 띕니다.

취재진이 관심을 보이자, 직원이 그림을 바닥에 펼쳐 보이며 적극적으로 판매에 나섭니다.

<녹취> 북한 박물관 직원 : "만수대 창작사에서 직접 나와 있으니까 그렇지, 우리 위탁으로 들어가 있는 베이징 다른 전시관에는 굉장히 비싼...만 불을 넘어간단 말입니다."

박물관만으론 투자금 회수조차 불투명한 상황이 되자, 예술가들을 남겨 그림으로 외화벌이에 나선 겁니다.

운영난에 허덕이는 박물관과 달리, 외화벌이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곳도 있습니다.

취재진이 찾은 시엠립의 한 북한 식당.

대형 관광버스들이 식당 앞에 모여들더니, 관광객들이 차례로 내려 식당으로 향합니다.

앞으로 30분 후면 제 옆으로 보이는 이 평양냉면관에서 북한 종업원들의 공연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주차장은 이미 한국 관광객들이 타고 온 버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입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한번에 8백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넓은 실내가 한국 관광객들로 가득 찼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종업원이 다가와 주문을 받습니다.

<녹취> 북한 식당 종업원 : "비빔냉면, 물냉면..주류는 무엇으로 드시겠습니까? (저희 생각할 시간, 저희가 좀 이야기해 볼게요.)"

하지만 채 1분도 안 돼, 다시 다가와 술을 권합니다.

<녹취> 북한 식당 종업원 : "술은 저희들도 종류가 많은데 들쭉술이 인터넷에서 제일 많이 떴습니다. (한 5분 정도만 있다가 (주문할게요)) 아, 왜냐하면 제가 첫 출연해서 공연..빨리 (주문)해야 합니다."

음식을 접대하는 여종업원들이, 공연까지 하고 있는 겁니다.

<녹취> 북한 식당 종업원 : “여러분 반갑습니다. 여러분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식당 한 켠에 마련된 무대에서 모란봉악단을 본뜬 듯한 현란한 율동이 이어집니다.

외국 영화 주제곡 등을 부르며 20대의 젊은 여성들이 펼치는 공연이 북한 식당의 최대 인기 비결입니다.

시엠립 시내의 또 다른 북한 식당.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 뒤편으로 대여섯 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납니다.

이른바 ‘룸’으로 불리는 식당 내 별도 공간입니다.

자리에 앉자 곧바로 값비싼 술을 권하는 종업원들.

<녹취> 북한 식당 종업원 : "산삼주는 되게 비쌉니다. (얼마죠?) 500불입니다 (500불이요?) 진짜 산삼이 그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저렴한 술을 주문하려 하자, 판매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녹취> 북한 식당 종업원 : "(북한 맥주 이런 것도 있어요?) 맥주는 없습니다. (평양소주도 있나요, 아직?) 소주도 다 나갔습니다."

음식을 잘라주는 등 일반적인 접대에서 나아가, 악기를 가져와 귀에 익은 우리의 노래도 불러줍니다.

<녹취> ‘아침이슬’ :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분위기가 무르익자 종업원이 슬그머니 추가 주문을 부추깁니다.

<녹취> 북한 식당 종업원 : "도수 낮은 걸로 한 잔 더 드십시오. 들쭉술이나 많이 드시고 가셔야죠. 이건 180불(달러), 이건 200불(달러)."

하지만 한 병에 2백 달러라는 들쭉술의 북한 원가는 5달러 안팎, 무려 40배나 되는 '바가지'입니다.

외화벌이에 혈안이 된 건 다른 캄보디아 식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상을 올리기 위해 거리낌 없이 남한 노래를 부르며 술시중 드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녹취> 북한 식당 종업원 : "홍도야 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

북한 제품 판매 역시, 북한 식당의 주 수입원입니다.

<녹취> 북한 식당 여종업원 : "혈궁불로정..(이거 어디다 써요?) 제가 읽어드릴게요."

심지어 한약재로 만든 '북한판 비아그라'까지 버젓이 판매됩니다.

<녹취> 북한 식당 여종업원 : "(요즘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가요?) 예. 이거 사러 비행기 타고 굉장히 많이 옵니다."

바가지 영업 등 온갖 편법을 동원해 전 세계 130여 곳의 북한 식당이 평양에 보내는 이른바 ‘충성자금’은 연간 3천만 달러로 추정됩니다.

외화벌이 선봉에 나선 북한식당 종업원들은 20대 초반의 평양 고위층 자녀들.

주로 3년간 해외에 머무는데, 현지 파견된 북한 보위부 요원의 감시하에 장기간 집단생활을 하면서 우울증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녹취> 캄보디아 현지 약사 : "승합차에 남자 한 사람이 여자 종업원들 네다섯 명 데리고 단체로 오고... (종업원이) 공연도 못 나갈 정도로 우울증까지 간 거죠."

실제로 이들의 노동 환경은 상상 이상으로 열악하다는 게 외화벌이 책임자 출신 고위 탈북자의 증언입니다.

<인터뷰> 김철수(가명/‘외화벌이 책임자’ 출신 탈북자) : "영업이 끝나면 열한시쯤에는 지배인하고 보위지도원이 와서 버스에 태워가지고 같이 똑같이 이동을 하죠. 아침부터 10시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고는 또 그 다음에 타고 들어가서 또 호상비판하고, 그 다음에 자고 아침에 깨우고 하니까 진짜 피곤하죠. 자유가 없는 거죠, 자유가."

장시간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그나마 받는 임금의 대부분은 노동당 상납금으로 들어갑니다.

<인터뷰> 김철수(가명/‘외화벌이 책임자’ 출신 탈북자) : "한 달에 3000불은 얘들이 나한테 주는 돈이에요, 회사에서. 회사에서 주는데 10%는 내가 가지고 나머지 90%는 국가에 바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되죠, 일반 근로자도 400불을 받으면 100불만 먹고 나머지 바치고, 그런 식으로 되거든요."

하지만 정작 해외 파견 일꾼들을 관리하는 현지 간부들의 생활은 정반대입니다.

프놈펜의 한 대형 카지노.

관광객들 사이로 담배를 입에 물고 여유롭게 카지노를 즐기는 한 남성이 눈에 띕니다.

김정은의 사금고를 관리하는 노동당 39호실 산하 ‘영풍무역총회사’ 소속 간부입니다.

<녹취> 현지 교민(음성변조) : "주말에 제가 한 번씩 가는데 자주 보입니다. 카지노 하는 걸 지켜보면 100에서 300불 정도 (씁니다). 전체 금액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한참 앉아서 하니까.."

이는 해외에 파견된 간부들 사이에선 만연한 일이라는 게, 관계자의 증언입니다.

<인터뷰> 김철수(가명/‘외화벌이 책임자’ 출신 탈북자) : "자기(관리자)들끼리 모여서 도박도 하고 술도 먹고 골프 치러 가기도 하고 하거든요. 그걸 누가 말리지 못해요, 그걸. 걔네가 총, 칼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누가 관리를 못 하니까."

북한 당국이 요구하는 ‘충성자금’을 헌납하는 게 이들 책임자의 주된 업무..

하지만 할당액을 채우지 못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근로자들의 몫으로 돌아옵니다.

<인터뷰> 김철수(가명/‘외화벌이 책임자’ 출신 탈북자) : "(노동당) 39호실 산하도 있고. 거기서 1년에 얼마를 바쳐라, 국가에 바쳐라 하거든요. 목표 금액을 못 채웠으면 조직을, 중앙당에서 검사, 조직 ‘그루빠’가 와요. 쭉 조사를 해서 실제 이 사람들이 못했구나, 인정을 하면 그 대신 지배인이 월급, 노동자들 월급을 조금씩 까요."

이런 방식으로 북한 당국이 식당과 건설 현장 등 해외 파견 근로자를 통해 벌어들이는 외화는 연간 2억 5천만 달러로 추정됩니다.

이들의 임금을 비롯해 북중 교역, 그리고 각종 불법거래를 통해 입금된 외화는 핵, 미사일 개발 등 김정은의 통치 자금으로 활용된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입니다.

<인터뷰> 조봉현(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북한이 현재 군사 강국을 계속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핵 개발이나 미사일 개발에 또 엄청난 외화들이 확보되고, 엄청난 외화들이 소요되기 때문에 북한이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외화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이러한 도발적 행위로 인해서 국제 사회가 북한에 대해서 제재를 가하면 가할수록 북한은 이러한 외화벌이 사업에도 한계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부족한 외화와 통치자금 충당을 위해 근로자들을 대거 해외로 파견해 외화벌이에 적극 나서고 있는 북한!

하지만 북한의 돈줄을 죄기 위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가속화되면서 북한의 해외 외화벌이 사업도 갈수록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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