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들의 막춤, 프랑스 사로잡다

입력 2016.02.2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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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이 춤을 춘다. 유흥지에서, 관광버스에서, 논밭에서 흥에 겨워 무아지경으로 추던 그 춤을 춘다. 더러는 눈총을 사고, 더러는 손가락질받아도 "나 몰라라" 제멋에 겨워 췄던 막춤을 무대 위에서 춘다. 그리고 갈채를 모은다. 기립박수를 받는다.

현대무용가 안은미현대무용가 안은미


빡빡머리에 현란한 의상, 딱 봐도 '센 언니'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현대무용가 안은미다. 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안무가인데, 이번엔 프랑스에서 제대로 일을 냈다. 그것도 한국의 막춤으로.

프랑스 관객 홀린 한국 할머니들의 막춤

공연의 제목은 '땐스 3부작'으로, '사심없는 땐스',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스'로 짜여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한 번도 춤을 배워본 적 없는 할머니 11명이 무대를 꾸미는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는 파리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할머니들은 '울릉도 트위스트'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든다. 딱히 정해진 안무도 없다. 추는 사람마다 제각각, 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다. 그저 몸이 반응하는 대로 움직인다. 부끄럽게 여겼던 '관광버스 춤'이 예술이 된 현장, 화려한 미러볼이 흥을 더한다. 세상에도 없는 한국식 막춤이다.



관객들도 저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마지막엔 관객들도 흥에 못 이겨 무대로 올라가 할머니들과 함께 춤판을 벌인다.

지난해 9월부터 이달 초까지 프랑스에서만 23번 공연이 열렸다. 한국 공연단체가 프랑스에서 23번의 장기 투어를 한 것은 안은미 무용단이 처음이다. 가는 곳마다 만원 관중이 들어찼고, 반응은 뜨거웠다. 격식 있는 무대에 익숙했던 프랑스 관객들은 안은미의 막춤에 완전히 무장해제됐다.

춤은 우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한국인의 몸에 밴 특유의 '흥'을 아낌없이 드러낸 '막춤'에서 공연을 본 모두가 짜릿한 해방감을 맛봤다. 프랑스 언론들은 20세의 가장 위대한 무용가였던 피나 바우슈와 견주어 안은미를 '아시아의 피나 바우슈'라고 치켜세웠다.

인생의 페이소스로 공감대 나누는 '막춤'

2010년 10월 안은미는 길과 풍경과 사람을 따라 전국 일주를 시작했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를 돌면서 마주치는 할머니마다 춤을 권하고 그 몸짓을 카메라에 기록했다. 평생 춤을 배워본 적 없는 평범한 시골 어르신들의 소박한 리듬과 몸짓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땐스 3부작'의 시작이었다.





안은미가 말하는 '막춤'은 못 추는 춤, 나쁜 춤이 아니다. 여기서 '막'은 즉흥이다. 할머니들에겐 그들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든 몸짓이 있고, 그것이 기쁨의 순간 춤으로 나온다. 젊은 무용수들의 절도 있고 유행을 이끄는 혁신적인 춤은 아니지만 그 춤은 아름답다. 안은미는 소박하고 근원적인 몸의 리듬, 그 움직임에서 춤의 생명력과 원초적인 힘을 발견했다.

안은미는 "할머니들이 춤을 출 때 늘 웃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어려운 역사를 이겨낸 긍정의 힘으로 보인다"며 "다른 나라 관객들에게 이것은 한국의 이야기이면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지면서 묘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통무용을 전공했지만 현대무용의 최전선에서 가장 실험적인 무대를 만들어온 안은미. 수많은 편견과 싸워온 그의 삶처럼 그의 춤 역시 끊임없이 금기에 도전한다. 체면과 사회적 지위를 떠나 동시대 사람들의 몸을 들썩이게 하는 것, 그런 과정을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안은미의 관심사다. 안은미의 아름다운 실험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벌써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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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매들의 막춤, 프랑스 사로잡다
    • 입력 2016-02-21 11:06:02
    취재K
할머니들이 춤을 춘다. 유흥지에서, 관광버스에서, 논밭에서 흥에 겨워 무아지경으로 추던 그 춤을 춘다. 더러는 눈총을 사고, 더러는 손가락질받아도 "나 몰라라" 제멋에 겨워 췄던 막춤을 무대 위에서 춘다. 그리고 갈채를 모은다. 기립박수를 받는다.

현대무용가 안은미


빡빡머리에 현란한 의상, 딱 봐도 '센 언니'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현대무용가 안은미다. 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안무가인데, 이번엔 프랑스에서 제대로 일을 냈다. 그것도 한국의 막춤으로.

프랑스 관객 홀린 한국 할머니들의 막춤

공연의 제목은 '땐스 3부작'으로, '사심없는 땐스',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스'로 짜여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한 번도 춤을 배워본 적 없는 할머니 11명이 무대를 꾸미는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는 파리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할머니들은 '울릉도 트위스트'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든다. 딱히 정해진 안무도 없다. 추는 사람마다 제각각, 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다. 그저 몸이 반응하는 대로 움직인다. 부끄럽게 여겼던 '관광버스 춤'이 예술이 된 현장, 화려한 미러볼이 흥을 더한다. 세상에도 없는 한국식 막춤이다.



관객들도 저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마지막엔 관객들도 흥에 못 이겨 무대로 올라가 할머니들과 함께 춤판을 벌인다.

지난해 9월부터 이달 초까지 프랑스에서만 23번 공연이 열렸다. 한국 공연단체가 프랑스에서 23번의 장기 투어를 한 것은 안은미 무용단이 처음이다. 가는 곳마다 만원 관중이 들어찼고, 반응은 뜨거웠다. 격식 있는 무대에 익숙했던 프랑스 관객들은 안은미의 막춤에 완전히 무장해제됐다.

춤은 우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한국인의 몸에 밴 특유의 '흥'을 아낌없이 드러낸 '막춤'에서 공연을 본 모두가 짜릿한 해방감을 맛봤다. 프랑스 언론들은 20세의 가장 위대한 무용가였던 피나 바우슈와 견주어 안은미를 '아시아의 피나 바우슈'라고 치켜세웠다.

인생의 페이소스로 공감대 나누는 '막춤'

2010년 10월 안은미는 길과 풍경과 사람을 따라 전국 일주를 시작했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를 돌면서 마주치는 할머니마다 춤을 권하고 그 몸짓을 카메라에 기록했다. 평생 춤을 배워본 적 없는 평범한 시골 어르신들의 소박한 리듬과 몸짓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땐스 3부작'의 시작이었다.





안은미가 말하는 '막춤'은 못 추는 춤, 나쁜 춤이 아니다. 여기서 '막'은 즉흥이다. 할머니들에겐 그들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든 몸짓이 있고, 그것이 기쁨의 순간 춤으로 나온다. 젊은 무용수들의 절도 있고 유행을 이끄는 혁신적인 춤은 아니지만 그 춤은 아름답다. 안은미는 소박하고 근원적인 몸의 리듬, 그 움직임에서 춤의 생명력과 원초적인 힘을 발견했다.

안은미는 "할머니들이 춤을 출 때 늘 웃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어려운 역사를 이겨낸 긍정의 힘으로 보인다"며 "다른 나라 관객들에게 이것은 한국의 이야기이면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지면서 묘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통무용을 전공했지만 현대무용의 최전선에서 가장 실험적인 무대를 만들어온 안은미. 수많은 편견과 싸워온 그의 삶처럼 그의 춤 역시 끊임없이 금기에 도전한다. 체면과 사회적 지위를 떠나 동시대 사람들의 몸을 들썩이게 하는 것, 그런 과정을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안은미의 관심사다. 안은미의 아름다운 실험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벌써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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