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7명, 빚으로 집 샀다

입력 2016.02.24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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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가계부채가 사상 처음 1,200조 원을 넘어섰다. 신용카드 사용액 등 판매신용을 뺀 순수 가계 대출만 따져도 1,141조 8천억 원이다. 우리 국민 한 사람당 평균 2천4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눈에 띈다. 금리를 낮추고 부동산 규제를 완화해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해온 결과다.

☞ [바로가기] 한국은행 가계신용 잔액 집계(잠정) 보도자료

금융당국은 경제 전체적으로 가계 빚보다 가계가 보유한 금융 자산의 규모가 더 큰 데다 상위 20%에 가계 부채가 집중되어 있다는 이유를 들어 큰 문제가 없다고 장담해 왔다. 한국은행의 통계 외에 가계부채 증가를 체감할 수 있는 다른 자료는 없을까? KBS는 지난해 입주한 서울과 수도권 신도시 아파트 단지 각각 한 곳에서 모두 1,096가구의 등기부 등본을 전수 조사했다.

우리는 얼마나 빚을 지고 있을까?...등기부등본 분석

경기도 화성 동탄의 A 아파트는 지난해 1월 준공했다. 최고 24층 15개 동으로 모두 656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이 아파트 단지의 등기부 등본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전체 656가구 가운데 67.7%인 444가구가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 소유주 10명 중 7명꼴로 돈을 빌려 집을 샀다는 얘기다.

빚을 내 집을 마련한 444가구 가운데 299가구는 84㎡ 형에 입주했다. 이 299가구의 평균 대출액은 2억 4백만 원이다. 평균 거래가격이 3억 7천만 원이니 거래가의 55%를 빚으로 충당한 셈이다. 가장 빚을 많이 진 가구는 거래가의 96.5%를 은행에서 빌렸다.

더 넓은 101㎡형에 빚을 지고 입주한 가구는 145가구다. 이들은 평균 2억 8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다. 평균 거래가격은 4억 7천7백만 원으로 집값의 60% 가까이 대출받았다.



서울 마포구의 B 아파트는 최고 24층 8개 동으로 모두 439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225가구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등기부 등본 분석 결과 빚을 내 84㎡형에 입주한 162가구는 평균 3억 8천5백만 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거래가는 7억 원으로 집값의 55%를 빚으로 충당했다.

이렇게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들 가운데는 30대 이하 젊은 층이 많았다. 마포구 B 아파트 단지 439가구에서 30대 이하가 소유하고 있는 곳은 모두 109가구. 이 가운데 70%인 76가구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 656가구의 화성 동탄 A 아파트는 30대 이하가 소유한 242가구 가운데 75%인 182가구가 빚을 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난에 지친 젊은층들이 여유 자금 없이 은행 돈을 끌어다 집을 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반면 40대는 52%(마포)와 64%(동탄)가, 50대는 42%(마포)와 63%(동탄)가, 60대 이상은 38%(마포)와 53%(동탄)가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대출 가구 중 90%는 '집단대출'

주택 가격의 70%에 이르는 돈을 비교적 손쉽게 빌릴 수 있었던 건 신규 분양 아파트에 대해 적용되는 '집단대출' 덕분이다. 등기부 등본을 분석한 두 단지 아파트의 대출 가구 가운데 90%는 집단대출을 이용했다.

집단대출은 신규 아파트를 분양할 때 계약자에 대한 개별 소득심사 없이 중도금이나 잔금을 분양가의 60~70% 수준까지 빌려주는 대출이다. 계약자의 신용과 상관없이 건설사 보증으로만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

집단대출 잔액은 111조 4천억 원으로 전체 주택담보대출에서 40%를 차지한다. 증가세도 가파르다. 2011년 102조 4천억 원, 2012년 104조 원, 2013년 100조 6천억 원, 2014년 101조 5천억 원으로 수년간 소폭 늘거나 감소하는 추세였지만 지난해 10조 원 가까이 폭증했다.

정부는 이달부터 원리금을 처음부터 나눠 갚도록 대출 규제를 강화했지만 여기에 집단대출을 제외됐다. 주택시장에 미칠 충격을 우려한 것이다. 앞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집단대출 관련 규제 신설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2015년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잠정치)이 1천207조원으로 집계됐다고 24일 발표했다. 이는 한국은행이 가계신용 통계를 작성한 2002년 4분기 이후 처음으로 1천200조원선을 넘은 것이다. 이날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은행 외벽 유리에 전세자금대출 홍보문이 붙어 있다.(사진 연합뉴스)한국은행은 2015년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잠정치)이 1천207조원으로 집계됐다고 24일 발표했다. 이는 한국은행이 가계신용 통계를 작성한 2002년 4분기 이후 처음으로 1천200조원선을 넘은 것이다. 이날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은행 외벽 유리에 전세자금대출 홍보문이 붙어 있다.(사진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집단대출이 가계대출의 또 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으로 금융 시장에 어떤 충격이 주어졌을 경우 분양자의 부채상환 능력을 심사하지 않는 집단대출이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분양가의 절반 이상을 빚으로 충당해 투자했다면 집값이 5%만 하락해도 투자 금액의 10%를 손해 보기 때문에 집값 하락의 충격이 훨씬 크다는 뜻이다.

또 다른 문제는 30대 이하가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비율이 중장년층보다 높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가 원리금을 갚느라 오랜 세월에 걸쳐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 건설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경기부양책이 단기적 효과를 노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미래 소비 여력을 위축시킬 위험이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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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명 중 7명, 빚으로 집 샀다
    • 입력 2016-02-24 18:42:29
    취재K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사상 처음 1,200조 원을 넘어섰다. 신용카드 사용액 등 판매신용을 뺀 순수 가계 대출만 따져도 1,141조 8천억 원이다. 우리 국민 한 사람당 평균 2천4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눈에 띈다. 금리를 낮추고 부동산 규제를 완화해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해온 결과다.

☞ [바로가기] 한국은행 가계신용 잔액 집계(잠정) 보도자료

금융당국은 경제 전체적으로 가계 빚보다 가계가 보유한 금융 자산의 규모가 더 큰 데다 상위 20%에 가계 부채가 집중되어 있다는 이유를 들어 큰 문제가 없다고 장담해 왔다. 한국은행의 통계 외에 가계부채 증가를 체감할 수 있는 다른 자료는 없을까? KBS는 지난해 입주한 서울과 수도권 신도시 아파트 단지 각각 한 곳에서 모두 1,096가구의 등기부 등본을 전수 조사했다.

우리는 얼마나 빚을 지고 있을까?...등기부등본 분석

경기도 화성 동탄의 A 아파트는 지난해 1월 준공했다. 최고 24층 15개 동으로 모두 656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이 아파트 단지의 등기부 등본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전체 656가구 가운데 67.7%인 444가구가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 소유주 10명 중 7명꼴로 돈을 빌려 집을 샀다는 얘기다.

빚을 내 집을 마련한 444가구 가운데 299가구는 84㎡ 형에 입주했다. 이 299가구의 평균 대출액은 2억 4백만 원이다. 평균 거래가격이 3억 7천만 원이니 거래가의 55%를 빚으로 충당한 셈이다. 가장 빚을 많이 진 가구는 거래가의 96.5%를 은행에서 빌렸다.

더 넓은 101㎡형에 빚을 지고 입주한 가구는 145가구다. 이들은 평균 2억 8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다. 평균 거래가격은 4억 7천7백만 원으로 집값의 60% 가까이 대출받았다.



서울 마포구의 B 아파트는 최고 24층 8개 동으로 모두 439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225가구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등기부 등본 분석 결과 빚을 내 84㎡형에 입주한 162가구는 평균 3억 8천5백만 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거래가는 7억 원으로 집값의 55%를 빚으로 충당했다.

이렇게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들 가운데는 30대 이하 젊은 층이 많았다. 마포구 B 아파트 단지 439가구에서 30대 이하가 소유하고 있는 곳은 모두 109가구. 이 가운데 70%인 76가구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 656가구의 화성 동탄 A 아파트는 30대 이하가 소유한 242가구 가운데 75%인 182가구가 빚을 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난에 지친 젊은층들이 여유 자금 없이 은행 돈을 끌어다 집을 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반면 40대는 52%(마포)와 64%(동탄)가, 50대는 42%(마포)와 63%(동탄)가, 60대 이상은 38%(마포)와 53%(동탄)가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대출 가구 중 90%는 '집단대출'

주택 가격의 70%에 이르는 돈을 비교적 손쉽게 빌릴 수 있었던 건 신규 분양 아파트에 대해 적용되는 '집단대출' 덕분이다. 등기부 등본을 분석한 두 단지 아파트의 대출 가구 가운데 90%는 집단대출을 이용했다.

집단대출은 신규 아파트를 분양할 때 계약자에 대한 개별 소득심사 없이 중도금이나 잔금을 분양가의 60~70% 수준까지 빌려주는 대출이다. 계약자의 신용과 상관없이 건설사 보증으로만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

집단대출 잔액은 111조 4천억 원으로 전체 주택담보대출에서 40%를 차지한다. 증가세도 가파르다. 2011년 102조 4천억 원, 2012년 104조 원, 2013년 100조 6천억 원, 2014년 101조 5천억 원으로 수년간 소폭 늘거나 감소하는 추세였지만 지난해 10조 원 가까이 폭증했다.

정부는 이달부터 원리금을 처음부터 나눠 갚도록 대출 규제를 강화했지만 여기에 집단대출을 제외됐다. 주택시장에 미칠 충격을 우려한 것이다. 앞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집단대출 관련 규제 신설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2015년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잠정치)이 1천207조원으로 집계됐다고 24일 발표했다. 이는 한국은행이 가계신용 통계를 작성한 2002년 4분기 이후 처음으로 1천200조원선을 넘은 것이다. 이날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은행 외벽 유리에 전세자금대출 홍보문이 붙어 있다.(사진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집단대출이 가계대출의 또 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으로 금융 시장에 어떤 충격이 주어졌을 경우 분양자의 부채상환 능력을 심사하지 않는 집단대출이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분양가의 절반 이상을 빚으로 충당해 투자했다면 집값이 5%만 하락해도 투자 금액의 10%를 손해 보기 때문에 집값 하락의 충격이 훨씬 크다는 뜻이다.

또 다른 문제는 30대 이하가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비율이 중장년층보다 높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가 원리금을 갚느라 오랜 세월에 걸쳐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 건설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경기부양책이 단기적 효과를 노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미래 소비 여력을 위축시킬 위험이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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