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중노동에 폭행 당해도…“갈 곳 없어 못 떠났다”

입력 2016.02.25 (08:34) 수정 2016.02.25 (09:2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무려 15년 동안 매일 고된 농사일만 하며 노예처럼 살아온 남성이 있습니다.

50대 이광길 씨입니다.

한 달에 받는 돈은 고작 13만 원, 제대로 된 밥은커녕 주인집의 폭언과 폭행도 견뎌야 했다는데, 요즘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KBS 뉴스를 통해 알려진 이 씨의 사연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경찰과 고용노동청은 수사를 시작했고, 상주시는 이 씨를 돕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대체 광길 씨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 했을까요? 그 사연을 오늘 뉴스 따라잡기에서 전합니다.

<리포트>

경북 상주의 한 모텔.

50대 이광길 씨는 얼마 전 살던 집을 도망치듯 나와 이 모텔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월급 13만 원에 고된 농사일을 하며 힘들게 살아온 이 씨, 계속 불안해 보였는데요.

<인터뷰> 이광길 씨(농민) : "(주인이) "방송 나가면 너도 큰일 난다, 너 어디 갈 데까지 가봐라." 그러더라고요. 겁이 나고 죽어도 가기 싫고…….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다리 밑에 숨고 그랬어요."

15년간 쉬지 않고 일해 남은 건 굳은살이 벤 거친 두 손뿐, 당장 지낼 곳도 수중에 돈도 별로 없지만 과거로 다시 가고 싶진 않습니다.

<인터뷰> 이광길 씨(농민) : "아이고 나 그 꼴 보기 싫어요. 무섭고 하도 정이 떨어져서……."

이 씨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50대인 광길 씨가 경북 상주의 이 마을에 온건 15년 전.

일자리가 있다는 말에 주인집 방 한 칸에 자리를 잡은 게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인터뷰> 이광길 씨(농민) : "집도 절도 없고 오갈 데도 없고 친척도 없고 (그래서) 여기 왔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심하게 할 줄은 몰랐거든요. 그런데 한 해 두 해 넘어가니까 달라지더라고요."

그렇게 중노동에 시달려 왔다는 이 씨.

농번기가 아닌 겨울에도 매일같이 아침 일찍부터 소에게 줄 볏짚을 모아야 했고, 바깥일이 끝나면 잠시 쉴 틈도 없이 소 사료까지 먹여야 오전 일이 겨우 끝나곤 했습니다.

<인터뷰> 이광길 씨(농민) : "밭농사도 있고 가을에는 벼농사를 많이 해요. (겨울에는) 볏짚을 묶고……. 아침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고 그랬어요. 너무 힘들죠. 보통 일 아닙니다."

주인집은 10만 제곱미터 규모로 벼농사를 짓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씨가 농사일을 사실상 도맡았다고 말합니다.

<녹취> 마을 주민(음성변조) : "힘든 건 그 사람이 다 하죠. 기계로 하는 건 주인이 하고 손으로 된다 싶은 건 전부 다 얘가 하는 셈이죠."

<녹취> 마을 주민(음성변조) : "일이 바쁠 때는 (좋은 말로) 애를 살살 꾀고 일이 없을 때는 애를 잡습니다. 반 잡습니다. 완전 노예입니다, 노예."

그렇게 15년을 일했지만 주인집은 이 씨에게 야박하기만 했다는데요,

<녹취> 마을 주민(음성변조) :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해도 통닭이든 뭐든 맛있는 게 있으면 자식들하고 먹으면서 (이 씨가) 보는데도 먹으라는 소리를 한 번도 안 하고……."

끼니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 듯했습니다.

반찬이라고는 된장 하나가 전부, 맨밥을 물에 말아 겨우 끼니를 때우는 게 이 씨에겐 흔한 일이었습니다.

<인터뷰> 이광길 씨(농민) : "어떤 때는 (주인집에) 밥 푸러 가면 문을 꼭 잠가놓고 어디 나가고 없어요. 그러면 그날은 밥을 굶는 거예요."

이렇게 일해 이 씨가 받는 월급은 고작 13만 원. 일당 5천 원도 못 받는 겁니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주인의 폭언에 시달렸다는데요.

<인터뷰> 이광길 씨(농민) : "이런 식으로 하려면 필요 없다, 나가라, 너 없이도 다 농사짓는다……. 욕도 입에 담지도 못할 XXXXX……. 하도 들으니까 진저리가 나더라고요."

일을 못 한다는 이유로 삽에 맞아 정신을 잃는 등 폭행까지 당했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이광길 씨(농민) : "한번은 밤에 논에 물 대놓은 걸 보려고 하는데 그걸 본다고 삽자루로 때려서 그 자리에서 기절했어요. 나는 내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

그런 모습을 본 이웃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이 씨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씨는 이곳을 떠나지 않았는데요,

갈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녹취> 마을 주민(음성변조) : "주민들이 "제발 좀 나가라." 이야기를 해도 "나는 나가면 살 곳이 없소." (하면서) 말을 안 듣습니다. 참 불쌍합니다."

사실 이 씨는, 이미 10여 년 전 주인의 폭언과 폭행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절에 들어가 허드렛일을 해 돈을 벌지만 그 돈을 빼앗겼습니다.

사회복지 시설에 들어가려 했지만 장애가 없다는 이유로 입소를 거부당했습니다.

결국 1년도 안 돼 이 씨는 다시 돌아왔고, 이후 10여 년을 더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녹취> 주민센터 관계자(음성변조) : "(장애) 진단서가 나온다면 장애 등록을 하는 게 맞고 안 나온다고 하면 어쩔 수가 없는 상태인데 그 경계선에서 오락가락하는 거죠. 그러니까 거기서 그만 포기한 것 같은데……."

이 씨의 이 같은 사연이 KBS 뉴스를 통해 보도됐습니다.

이후 경찰과 고용노동청은 집주인에 대해 폭력과 임금체불 등의 혐의가 있는지 수사를 착수했습니다.

고용노동청 관계자가 어제 현장을 찾기도 했는데요.

집주인은 임금을 적게 준 것은 인정했지만 대신 평소에 용돈을 자주 줬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이광길 씨 고용 농민(음성변조) : "1년에 200만 원을 (주기로) 결정을 했어요. 선불로 주면 얘는 다 쓰고 그러니까 (다달이) 나눠주고 조금 힘들다 싶을 때는 조금 더 많이 주기도 하고 이번에도 명절에 5만 원을 줬어요. 수시로 주는 것은 줘요."

또 이 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폭행한 적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광길 씨 고용 농민(음성변조) : "감금한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전혀. 내가 때리지도 않아요. 제가 불쌍한 인간을 왜 때리겠습니까?"

한편 상주시청은 이 씨를 돕기 위해 복지담당 공무원을 현장에 파견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이 씨를 돕겠다는 독지가들의 문의도 잇따르고 있는데요.

<인터뷰> 이광길 씨(농민) : "마음 편안하게 나대로 독립해서 살고 싶어요. 내가 손수 밥 해먹고……."

뒤늦게나마 이 씨의 소박한 바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좀 더 탄탄한 사회안전망과 주변의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뉴스 따라잡기] 중노동에 폭행 당해도…“갈 곳 없어 못 떠났다”
    • 입력 2016-02-25 08:35:14
    • 수정2016-02-25 09:21:04
    아침뉴스타임
<앵커 멘트>

무려 15년 동안 매일 고된 농사일만 하며 노예처럼 살아온 남성이 있습니다.

50대 이광길 씨입니다.

한 달에 받는 돈은 고작 13만 원, 제대로 된 밥은커녕 주인집의 폭언과 폭행도 견뎌야 했다는데, 요즘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KBS 뉴스를 통해 알려진 이 씨의 사연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경찰과 고용노동청은 수사를 시작했고, 상주시는 이 씨를 돕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대체 광길 씨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 했을까요? 그 사연을 오늘 뉴스 따라잡기에서 전합니다.

<리포트>

경북 상주의 한 모텔.

50대 이광길 씨는 얼마 전 살던 집을 도망치듯 나와 이 모텔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월급 13만 원에 고된 농사일을 하며 힘들게 살아온 이 씨, 계속 불안해 보였는데요.

<인터뷰> 이광길 씨(농민) : "(주인이) "방송 나가면 너도 큰일 난다, 너 어디 갈 데까지 가봐라." 그러더라고요. 겁이 나고 죽어도 가기 싫고…….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다리 밑에 숨고 그랬어요."

15년간 쉬지 않고 일해 남은 건 굳은살이 벤 거친 두 손뿐, 당장 지낼 곳도 수중에 돈도 별로 없지만 과거로 다시 가고 싶진 않습니다.

<인터뷰> 이광길 씨(농민) : "아이고 나 그 꼴 보기 싫어요. 무섭고 하도 정이 떨어져서……."

이 씨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50대인 광길 씨가 경북 상주의 이 마을에 온건 15년 전.

일자리가 있다는 말에 주인집 방 한 칸에 자리를 잡은 게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인터뷰> 이광길 씨(농민) : "집도 절도 없고 오갈 데도 없고 친척도 없고 (그래서) 여기 왔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심하게 할 줄은 몰랐거든요. 그런데 한 해 두 해 넘어가니까 달라지더라고요."

그렇게 중노동에 시달려 왔다는 이 씨.

농번기가 아닌 겨울에도 매일같이 아침 일찍부터 소에게 줄 볏짚을 모아야 했고, 바깥일이 끝나면 잠시 쉴 틈도 없이 소 사료까지 먹여야 오전 일이 겨우 끝나곤 했습니다.

<인터뷰> 이광길 씨(농민) : "밭농사도 있고 가을에는 벼농사를 많이 해요. (겨울에는) 볏짚을 묶고……. 아침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고 그랬어요. 너무 힘들죠. 보통 일 아닙니다."

주인집은 10만 제곱미터 규모로 벼농사를 짓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씨가 농사일을 사실상 도맡았다고 말합니다.

<녹취> 마을 주민(음성변조) : "힘든 건 그 사람이 다 하죠. 기계로 하는 건 주인이 하고 손으로 된다 싶은 건 전부 다 얘가 하는 셈이죠."

<녹취> 마을 주민(음성변조) : "일이 바쁠 때는 (좋은 말로) 애를 살살 꾀고 일이 없을 때는 애를 잡습니다. 반 잡습니다. 완전 노예입니다, 노예."

그렇게 15년을 일했지만 주인집은 이 씨에게 야박하기만 했다는데요,

<녹취> 마을 주민(음성변조) :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해도 통닭이든 뭐든 맛있는 게 있으면 자식들하고 먹으면서 (이 씨가) 보는데도 먹으라는 소리를 한 번도 안 하고……."

끼니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 듯했습니다.

반찬이라고는 된장 하나가 전부, 맨밥을 물에 말아 겨우 끼니를 때우는 게 이 씨에겐 흔한 일이었습니다.

<인터뷰> 이광길 씨(농민) : "어떤 때는 (주인집에) 밥 푸러 가면 문을 꼭 잠가놓고 어디 나가고 없어요. 그러면 그날은 밥을 굶는 거예요."

이렇게 일해 이 씨가 받는 월급은 고작 13만 원. 일당 5천 원도 못 받는 겁니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주인의 폭언에 시달렸다는데요.

<인터뷰> 이광길 씨(농민) : "이런 식으로 하려면 필요 없다, 나가라, 너 없이도 다 농사짓는다……. 욕도 입에 담지도 못할 XXXXX……. 하도 들으니까 진저리가 나더라고요."

일을 못 한다는 이유로 삽에 맞아 정신을 잃는 등 폭행까지 당했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이광길 씨(농민) : "한번은 밤에 논에 물 대놓은 걸 보려고 하는데 그걸 본다고 삽자루로 때려서 그 자리에서 기절했어요. 나는 내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

그런 모습을 본 이웃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이 씨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씨는 이곳을 떠나지 않았는데요,

갈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녹취> 마을 주민(음성변조) : "주민들이 "제발 좀 나가라." 이야기를 해도 "나는 나가면 살 곳이 없소." (하면서) 말을 안 듣습니다. 참 불쌍합니다."

사실 이 씨는, 이미 10여 년 전 주인의 폭언과 폭행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절에 들어가 허드렛일을 해 돈을 벌지만 그 돈을 빼앗겼습니다.

사회복지 시설에 들어가려 했지만 장애가 없다는 이유로 입소를 거부당했습니다.

결국 1년도 안 돼 이 씨는 다시 돌아왔고, 이후 10여 년을 더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녹취> 주민센터 관계자(음성변조) : "(장애) 진단서가 나온다면 장애 등록을 하는 게 맞고 안 나온다고 하면 어쩔 수가 없는 상태인데 그 경계선에서 오락가락하는 거죠. 그러니까 거기서 그만 포기한 것 같은데……."

이 씨의 이 같은 사연이 KBS 뉴스를 통해 보도됐습니다.

이후 경찰과 고용노동청은 집주인에 대해 폭력과 임금체불 등의 혐의가 있는지 수사를 착수했습니다.

고용노동청 관계자가 어제 현장을 찾기도 했는데요.

집주인은 임금을 적게 준 것은 인정했지만 대신 평소에 용돈을 자주 줬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이광길 씨 고용 농민(음성변조) : "1년에 200만 원을 (주기로) 결정을 했어요. 선불로 주면 얘는 다 쓰고 그러니까 (다달이) 나눠주고 조금 힘들다 싶을 때는 조금 더 많이 주기도 하고 이번에도 명절에 5만 원을 줬어요. 수시로 주는 것은 줘요."

또 이 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폭행한 적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광길 씨 고용 농민(음성변조) : "감금한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전혀. 내가 때리지도 않아요. 제가 불쌍한 인간을 왜 때리겠습니까?"

한편 상주시청은 이 씨를 돕기 위해 복지담당 공무원을 현장에 파견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이 씨를 돕겠다는 독지가들의 문의도 잇따르고 있는데요.

<인터뷰> 이광길 씨(농민) : "마음 편안하게 나대로 독립해서 살고 싶어요. 내가 손수 밥 해먹고……."

뒤늦게나마 이 씨의 소박한 바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좀 더 탄탄한 사회안전망과 주변의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