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경찰의 변명 “잡은 적 없으니 도주 아니다”

입력 2016.02.26 (09:11) 수정 2016.02.2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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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에 철저히 준비된 도주극

49살 노 모 씨는 금융 사기로 피해자 20여 명의 돈 25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노 씨는 고소를 당하자 곧바로 잠적했지만 화가 난 피해자들이 2주 동안 추적한 끝에 노 씨를 직접 붙잡았습니다. 노 씨는 피해자들을 피해 도주하다 건물에서 떨어져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고, 피해자들은 병원에 입원한 노 씨를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꼼짝없이 경찰 조사를 받게 된 노 씨는 이때부터 도주극을 치밀하게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8일 저녁 8시, 노 씨와 노 씨의 남동생, 여동생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남양주의 병원으로 이동하다 한 마트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노 씨가 병원을 옮기겠다고 떼를 써 경찰과 함께 이동하던 중이었습니다. 노 씨의 차를 따라가고 있던 경찰 2명도 차를 세우고 멈췄습니다.

곧장 편의점 뒷문으로 향하는 노 모 씨곧장 편의점 뒷문으로 향하는 노 모 씨


노 씨는 담배를 사겠다는 시늉을 하면서 마트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노 씨는 물건을 쳐다보지도 않고 곧바로 마트 뒷문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엔 미리 대기하고 있던 남성들이 있었고, 그 남성들은 노 씨를 차에 태우고 사라졌습니다.

취재 결과 노 씨가 도주하기 며칠 전부터 건장한 남성들이 그 마트를 찾아와서 주차 공간을 물어보고 마트 내부 동선, 외부 지리를 살펴본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모든 게 미리 짜놓은 도주극이었습니다.

■ 경찰 “도주 아니다. 우린 목적지가 같았을 뿐…”

먼저 경찰에게 "도주 우려가 있는 노 씨가 마트 안으로 들어갔을 때 왜 마트 안으로 따라가지 않았나?"라고 물었습니다. 경찰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도주'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도주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는 대답이었습니다. 노 씨에 대한 영장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들이 '검거'를 한 것이 아니라는 논리였습니다. 잡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도주라는 말을 쓸 수 있느냐는 것이 경찰의 해명이었습니다.



"동행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에도 정색했습니다. 동행을 했다는 건 신병을 확보했을 때 쓸 수 있는 말이고, 그 당시에는 신병을 확보한 게 아니라 다만 같은 목적지에 가고 있었을 뿐이란 아리송한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임의 조사 단계였기 때문에 경찰이 강제로 신병을 확보할 수 없고, 노 씨는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조사받을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럼 경찰은 도대체 왜 노 씨와 함께 이동하고 있었나요? 노 씨가 경찰서에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경찰이 병원에 찾아가서 조사하면 되지 않나요?"

■ 피해자 단체 측 “경찰도 도주 가능성 알고 있었다”

경찰은 "최대한 빨리 조사를 하기 위해 따라가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영장도 없었고, 신병을 확보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빠른 조사를 위해서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니, 피의자가 현장을 이탈했더라도 책임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3일 동안이나 입원해 있을 때는 조사를 못 하고 있다가 뭐가 그리 급해 병원을 옮기자마자 조사하려고 따라갔을까요?

피해자 단체 측은 경찰이 처음부터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하소연합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있을 때도 노 씨가 몇 번이나 도주를 시도했고, 그때마다 경찰이 아닌 피해자들이 막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경찰에게도 노 씨가 언제 도주할지 모른다며 빠른 수사를 촉구했다고 합니다.

경찰도 분명히 도주 우려를 인지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때문에 경찰은 굳이 임의조사 단계에서 노 씨가 병원을 옮길 때 같이 이동했던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노 씨가 도주한 사실에 대해 아무 책임이 없다는 경찰의 항변이 궁색한 까닭입니다.

■ 뒤늦게 수사에 열 올리는 경찰

노 씨의 도주를 도운 일당노 씨의 도주를 도운 일당


그나마 다행스럽게 경찰은 도주 이틀째인 지난 20일에 노 씨를 다시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취재진에게 노 씨의 도주를 도운 일당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과정이 다소 아쉽지만 뒤늦게나마 수사에 속도를 내는 상황입니다.

피해자들 가운데 일부는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등 사기로 인한 피해가 심각합니다. 노 씨는 이번 사기뿐 아니라 그전에도 비슷한 수법으로 사기 행각을 벌인 적이 있다고 합니다. 노 씨에 대한 엄정한 사법처리는 물론 피해자 구제도 제대로 이뤄지길 기대해 봅니다.

[연관 기사]

☞ 피해자가 잡은 피의자, 경찰 눈앞에서 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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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경찰의 변명 “잡은 적 없으니 도주 아니다”
    • 입력 2016-02-26 09:11:10
    • 수정2016-02-26 09:12:36
    취재후·사건후
■ 사전에 철저히 준비된 도주극 49살 노 모 씨는 금융 사기로 피해자 20여 명의 돈 25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노 씨는 고소를 당하자 곧바로 잠적했지만 화가 난 피해자들이 2주 동안 추적한 끝에 노 씨를 직접 붙잡았습니다. 노 씨는 피해자들을 피해 도주하다 건물에서 떨어져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고, 피해자들은 병원에 입원한 노 씨를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꼼짝없이 경찰 조사를 받게 된 노 씨는 이때부터 도주극을 치밀하게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8일 저녁 8시, 노 씨와 노 씨의 남동생, 여동생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남양주의 병원으로 이동하다 한 마트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노 씨가 병원을 옮기겠다고 떼를 써 경찰과 함께 이동하던 중이었습니다. 노 씨의 차를 따라가고 있던 경찰 2명도 차를 세우고 멈췄습니다.
곧장 편의점 뒷문으로 향하는 노 모 씨
노 씨는 담배를 사겠다는 시늉을 하면서 마트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노 씨는 물건을 쳐다보지도 않고 곧바로 마트 뒷문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엔 미리 대기하고 있던 남성들이 있었고, 그 남성들은 노 씨를 차에 태우고 사라졌습니다. 취재 결과 노 씨가 도주하기 며칠 전부터 건장한 남성들이 그 마트를 찾아와서 주차 공간을 물어보고 마트 내부 동선, 외부 지리를 살펴본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모든 게 미리 짜놓은 도주극이었습니다. ■ 경찰 “도주 아니다. 우린 목적지가 같았을 뿐…” 먼저 경찰에게 "도주 우려가 있는 노 씨가 마트 안으로 들어갔을 때 왜 마트 안으로 따라가지 않았나?"라고 물었습니다. 경찰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도주'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도주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는 대답이었습니다. 노 씨에 대한 영장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들이 '검거'를 한 것이 아니라는 논리였습니다. 잡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도주라는 말을 쓸 수 있느냐는 것이 경찰의 해명이었습니다.
"동행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에도 정색했습니다. 동행을 했다는 건 신병을 확보했을 때 쓸 수 있는 말이고, 그 당시에는 신병을 확보한 게 아니라 다만 같은 목적지에 가고 있었을 뿐이란 아리송한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임의 조사 단계였기 때문에 경찰이 강제로 신병을 확보할 수 없고, 노 씨는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조사받을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럼 경찰은 도대체 왜 노 씨와 함께 이동하고 있었나요? 노 씨가 경찰서에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경찰이 병원에 찾아가서 조사하면 되지 않나요?" ■ 피해자 단체 측 “경찰도 도주 가능성 알고 있었다” 경찰은 "최대한 빨리 조사를 하기 위해 따라가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영장도 없었고, 신병을 확보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빠른 조사를 위해서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니, 피의자가 현장을 이탈했더라도 책임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3일 동안이나 입원해 있을 때는 조사를 못 하고 있다가 뭐가 그리 급해 병원을 옮기자마자 조사하려고 따라갔을까요? 피해자 단체 측은 경찰이 처음부터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하소연합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있을 때도 노 씨가 몇 번이나 도주를 시도했고, 그때마다 경찰이 아닌 피해자들이 막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경찰에게도 노 씨가 언제 도주할지 모른다며 빠른 수사를 촉구했다고 합니다. 경찰도 분명히 도주 우려를 인지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때문에 경찰은 굳이 임의조사 단계에서 노 씨가 병원을 옮길 때 같이 이동했던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노 씨가 도주한 사실에 대해 아무 책임이 없다는 경찰의 항변이 궁색한 까닭입니다. ■ 뒤늦게 수사에 열 올리는 경찰
노 씨의 도주를 도운 일당
그나마 다행스럽게 경찰은 도주 이틀째인 지난 20일에 노 씨를 다시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취재진에게 노 씨의 도주를 도운 일당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과정이 다소 아쉽지만 뒤늦게나마 수사에 속도를 내는 상황입니다. 피해자들 가운데 일부는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등 사기로 인한 피해가 심각합니다. 노 씨는 이번 사기뿐 아니라 그전에도 비슷한 수법으로 사기 행각을 벌인 적이 있다고 합니다. 노 씨에 대한 엄정한 사법처리는 물론 피해자 구제도 제대로 이뤄지길 기대해 봅니다. [연관 기사] ☞ 피해자가 잡은 피의자, 경찰 눈앞에서 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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