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사드 출구전략과 병형상수(兵形象水)의 지혜

입력 2016.02.26 (12:00) 수정 2016.02.26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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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전 10시 15분 쯤, 국방부 관계자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기자실에 들어섰습니다. 11시로 예정된 사드 배치를 논의하기 위한 한미 공동실무단 약정 체결이 갑자기 지연되게 됐다는 것입니다. 전날 예정 사항을 회사에 보고하고 기사 발제까지 마친 기자들은 순간 허탈해졌습니다.

이어진 브리핑은 더욱 황당했습니다. 대변인은 한미 간 최종 조율할 부분이 남아 있어 하루 이틀 정도 지연될 것이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한미가 합의해 발표하기로 한 시간을 불과 한 시간도 남겨놓지 않고 번복하게 된 이유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사드 약정식 체결이 번복되다

공교롭게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같은날 미국 공식 방문일정을 시작했습니다. 미중 회담에 올라갈 현안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채택될 대북 제재 수위를 조율하는 문제, 남중국해 갈등, 그리고 사드 배치 등입니다.

미국으로선 고강도 대북 제재에 중국의 협조가 필요하고, 중국은 미국이 사드를 주한미군에 배치하면 미사일방어망(MD) 체계에 한국까지 편입될 수 있다는 의심을 갖고 있어, 그동안 반대 목소리를 높여왔죠. 이 때문에 미국 정부가 미-중 회동 결과에 따라 약정 체결 수위를 조절하려 했고, 이같은 방침이 주한미군사령부에 전달되면서 체결 일정이 지연됐다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동을 마치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케리 국무장관은 다소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지만, 말투는 단호했습니다. 먼저, 사드 배치를 고려하지 않을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한반도 비핵화를 이룰 수 있다면 사드를 배치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드는 북핵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이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한 뜻으로 풀이됩니다.

또,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사드 배치는 불가피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그러면서 사드 배치에 급급해 한다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며,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가 아직 최종 결정되지는 않았다고 여지를 남겼습니다.



지난 7일 한미가 사드 배치를 공식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힌 미국이, 아직 배치 결정이 나지 않았다고 말한 배경은 또 뭘까요?

[전문]☞ 미중 외교장관회담 공동 기자회견

[동영상]☞ 미중 외교장관회담 공동 기자회견

사드는 아직 생산 단계…당장 배치 못해

지난해 4월 10일, 한미 국방장관 회담이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 관심은 온통 사드 문제에 집중됐습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 한국 속담까지 동원해 사드 논의의 진실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의 답변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카터 장관은 "사드는 아직 생산 단계에 있기 때문에 어디에 배치할지 그리고 배치할 곳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 그 누구와도 아직까지 사드 배치에 대한 논의를 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라고 밝혔습니다. 그로부터 8개월 만에 한미가 사드 배치를 논의한다니 이상하지 않나요?

미국 정부는 모두 7개의 사드 포대 배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3개의 포대는 이미 배치됐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 등에 대비해 괌 앤더슨 기지에 1개 포대가, 2개 포대는 텍사스 포트 블리스(Fort Bliss)의 육군 항공미사일방어사령부(AAMDC)에 있습니다. 데이비드 만 사령관은 지난해 3월 하원 군사위원회 전략소위에 출석해 4번째 포대가 훈련을 받는 중이며 2016년에, 5번째 포대는 이듬해인 2017년에 운용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014년에 계약을 맺은 나머지 6번째 포대와 7번째 포대는 2019년까지 개발을 완료할 계획입니다.



종합해 보면, 애슈턴 카터 장관이 말한 생산 단계라고 말한 사드는 6번째와 7번째 포대를 지목한 것입니다. 그럼 2019년 이후에나 배치가 가능하다는 것이죠. 반면 스카파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은 주한미군과 수도권 방위를 위해 이미 운용 중이거나 곧 배치될 실전 사드를 배치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 국방부와 지역 전투 사령부 간 논의는 진행 중입니다. 더 나아가 미국이 시퀘스트(예산 자동감축)를 발동해 국방 예산이 대폭 삭감된 상태여서, 비용 분담 문제를 두고도 미 의회와 국방부 간 의견이 최종 조율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미-중 회동 담판장에 오른 사드(THAAD)

결국 사드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복잡한 이해 관계와 국익 관철을 위한 카드로 사용된 걸까요? 북한 제재에 지렛대 역할을 하는 중국, 사드의 몇 번째 포대 배치로 속도 조절을 하는 미국,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안보를 위한 자위권 차원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맞서 다층 방어를 하기 위해 사드 체계가 꼭 필요하지만, 사드 포대는 어디까지나 미군의 전략 자산입니다. 우리가 필요하다고 미국이 즉각 배치해 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카드로만 활용하다가 접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국제 관계의 냉혹한 현실입니다. 스카파로티 사령관이 공동실무단은 앞으로 1주일 이내에 첫 회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미 미중이 외교적 거래를 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국익은 손상될 우려가 큽니다.

병형상수(兵形象水)의 지혜

우리 군이 대안으로 제시해왔던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킬체인', 'KAMD'도 사드 논의가 시작되면서 갈 길을 잃고 있습니다. KAMD 장거리 미사일 요격 체계로 개발중인 L-SAM에도 북한 전역을 감시하는 레이더가 포함돼 있지만 중국은 한번도 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습니다. 중국은 미국 미사일방어망(MD)이 일본을 넘어 한반도까지 묶을 수 있기 때문에 사드 레이더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강대국들 논리의 허점을 잘 활용해 수싸움을 벌였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복잡한 셈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직후 덜컥 사드 배치를 공식 협의하겠다고 발표한 국방부가 너무 일찍 카드를 보여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겁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지난 18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비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의 사드와 관련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지난 18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비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의 사드와 관련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손자병법에 이런 말이 있죠.'병형상수(兵形象水)' 즉, 흐르는 물처럼 주변 형세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군대가 전쟁에서 이긴다는 의미인데요. 전술은 물과 같아 물이 지형에 따라 그 흐름과 몸체를 바꾸듯 장수는 상대에 따라 방법을 다르게 궁리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출구 전략을 다시 짤 때입니다.

[연관 기사]☞ [뉴스9] “사드 배치 결정 안돼”…美 속도 조절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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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사드 출구전략과 병형상수(兵形象水)의 지혜
    • 입력 2016-02-26 12:00:39
    • 수정2016-02-26 21:32:18
    취재후·사건후
지난 23일 오전 10시 15분 쯤, 국방부 관계자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기자실에 들어섰습니다. 11시로 예정된 사드 배치를 논의하기 위한 한미 공동실무단 약정 체결이 갑자기 지연되게 됐다는 것입니다. 전날 예정 사항을 회사에 보고하고 기사 발제까지 마친 기자들은 순간 허탈해졌습니다.

이어진 브리핑은 더욱 황당했습니다. 대변인은 한미 간 최종 조율할 부분이 남아 있어 하루 이틀 정도 지연될 것이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한미가 합의해 발표하기로 한 시간을 불과 한 시간도 남겨놓지 않고 번복하게 된 이유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사드 약정식 체결이 번복되다

공교롭게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같은날 미국 공식 방문일정을 시작했습니다. 미중 회담에 올라갈 현안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채택될 대북 제재 수위를 조율하는 문제, 남중국해 갈등, 그리고 사드 배치 등입니다.

미국으로선 고강도 대북 제재에 중국의 협조가 필요하고, 중국은 미국이 사드를 주한미군에 배치하면 미사일방어망(MD) 체계에 한국까지 편입될 수 있다는 의심을 갖고 있어, 그동안 반대 목소리를 높여왔죠. 이 때문에 미국 정부가 미-중 회동 결과에 따라 약정 체결 수위를 조절하려 했고, 이같은 방침이 주한미군사령부에 전달되면서 체결 일정이 지연됐다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동을 마치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케리 국무장관은 다소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지만, 말투는 단호했습니다. 먼저, 사드 배치를 고려하지 않을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한반도 비핵화를 이룰 수 있다면 사드를 배치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드는 북핵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이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한 뜻으로 풀이됩니다.

또,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사드 배치는 불가피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그러면서 사드 배치에 급급해 한다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며,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가 아직 최종 결정되지는 않았다고 여지를 남겼습니다.



지난 7일 한미가 사드 배치를 공식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힌 미국이, 아직 배치 결정이 나지 않았다고 말한 배경은 또 뭘까요?

[전문]☞ 미중 외교장관회담 공동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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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는 아직 생산 단계…당장 배치 못해

지난해 4월 10일, 한미 국방장관 회담이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 관심은 온통 사드 문제에 집중됐습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 한국 속담까지 동원해 사드 논의의 진실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의 답변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카터 장관은 "사드는 아직 생산 단계에 있기 때문에 어디에 배치할지 그리고 배치할 곳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 그 누구와도 아직까지 사드 배치에 대한 논의를 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라고 밝혔습니다. 그로부터 8개월 만에 한미가 사드 배치를 논의한다니 이상하지 않나요?

미국 정부는 모두 7개의 사드 포대 배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3개의 포대는 이미 배치됐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 등에 대비해 괌 앤더슨 기지에 1개 포대가, 2개 포대는 텍사스 포트 블리스(Fort Bliss)의 육군 항공미사일방어사령부(AAMDC)에 있습니다. 데이비드 만 사령관은 지난해 3월 하원 군사위원회 전략소위에 출석해 4번째 포대가 훈련을 받는 중이며 2016년에, 5번째 포대는 이듬해인 2017년에 운용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014년에 계약을 맺은 나머지 6번째 포대와 7번째 포대는 2019년까지 개발을 완료할 계획입니다.



종합해 보면, 애슈턴 카터 장관이 말한 생산 단계라고 말한 사드는 6번째와 7번째 포대를 지목한 것입니다. 그럼 2019년 이후에나 배치가 가능하다는 것이죠. 반면 스카파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은 주한미군과 수도권 방위를 위해 이미 운용 중이거나 곧 배치될 실전 사드를 배치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 국방부와 지역 전투 사령부 간 논의는 진행 중입니다. 더 나아가 미국이 시퀘스트(예산 자동감축)를 발동해 국방 예산이 대폭 삭감된 상태여서, 비용 분담 문제를 두고도 미 의회와 국방부 간 의견이 최종 조율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미-중 회동 담판장에 오른 사드(THAAD)

결국 사드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복잡한 이해 관계와 국익 관철을 위한 카드로 사용된 걸까요? 북한 제재에 지렛대 역할을 하는 중국, 사드의 몇 번째 포대 배치로 속도 조절을 하는 미국,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안보를 위한 자위권 차원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맞서 다층 방어를 하기 위해 사드 체계가 꼭 필요하지만, 사드 포대는 어디까지나 미군의 전략 자산입니다. 우리가 필요하다고 미국이 즉각 배치해 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카드로만 활용하다가 접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국제 관계의 냉혹한 현실입니다. 스카파로티 사령관이 공동실무단은 앞으로 1주일 이내에 첫 회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미 미중이 외교적 거래를 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국익은 손상될 우려가 큽니다.

병형상수(兵形象水)의 지혜

우리 군이 대안으로 제시해왔던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킬체인', 'KAMD'도 사드 논의가 시작되면서 갈 길을 잃고 있습니다. KAMD 장거리 미사일 요격 체계로 개발중인 L-SAM에도 북한 전역을 감시하는 레이더가 포함돼 있지만 중국은 한번도 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습니다. 중국은 미국 미사일방어망(MD)이 일본을 넘어 한반도까지 묶을 수 있기 때문에 사드 레이더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강대국들 논리의 허점을 잘 활용해 수싸움을 벌였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복잡한 셈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직후 덜컥 사드 배치를 공식 협의하겠다고 발표한 국방부가 너무 일찍 카드를 보여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겁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지난 18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비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의 사드와 관련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손자병법에 이런 말이 있죠.'병형상수(兵形象水)' 즉, 흐르는 물처럼 주변 형세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군대가 전쟁에서 이긴다는 의미인데요. 전술은 물과 같아 물이 지형에 따라 그 흐름과 몸체를 바꾸듯 장수는 상대에 따라 방법을 다르게 궁리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출구 전략을 다시 짤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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