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노예로 산 지적장애 여성…가해자 처벌은 ‘요원’

입력 2016.02.26 (17:13) 수정 2016.02.2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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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야 이 모든 것이 끝나겠다고 생각했어요"

단정한 외모의 평범한 20대로 보이는 정모(29·여)씨. 하지만 지적장애 3급인 정 씨의 IQ(지능지수)는 62로 초등학생 수준이다. 일상적인 대화는 할 수 있지만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긴 쉽지 않다. 이런 정 씨에게 20대의 7년은 지옥이었다. 정 씨는 "높은 곳만 보면 뛰어내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죽어야지 내가 편해지겠구나."라고 말할 때는 창백한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시작은 2008년이었다. 우연히 만나 연인이 된 한 살 연하의 A(28·남)씨는 정 씨에게 돈을 요구했다. 단순노동을 했던 정 씨가 받은 월급은 100만 원 남짓. 한푼 두푼 정 씨에게 돈을 받아간 A씨는 어느 순간부터 월급 전부를 가져갔다. 정 씨는 "(A씨가) 돈을 주지 않으면 욕을 하고 때렸다"고 말했다. 목을 조르고 흉기로 위협한 날도 있었다. 돈이 더 필요할 땐 정 씨에게 사채까지 짊어지게 한 뒤 돈을 챙겨갔다. 그렇게 정 씨가 빼앗긴 돈은 4천만 원에 이른다. 21살이었던 정 씨는 직장을 잃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A씨의 폭행에도 정 씨는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하는지 알지 못했다. 정 씨는 심지어 자신이 장애인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2011년 A씨는 정 씨를 유흥업소에 팔아넘기려했다.

지적장애 3급인 정 씨는 7년간 지옥 같은 생활을 했다.지적장애 3급인 정 씨는 7년간 지옥 같은 생활을 했다.


유흥업소 사장인 B씨는 조폭 출신이라며 으스댔다. 월급 70만 원을 약속했지만 말뿐이었다. 정 씨가 일했던 2년 3개월 동안 월급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정 씨는 안마시술소에서 손님을 받으며 생활했다. 돈을 달라고 요구하지도, 항의하지도 못하는 정 씨에게 사장은 1억 원이 넘는 빚을 졌다고 인정하는 공증문서를 만들어 서명하게 했다. 월급을 주지 않는 것도 모자라 없는 빚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정 씨는 사장과 종업원들로부터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장애여성 노예처럼 부린 유흥업소 사장

2013년 업소를 찾은 손님 C씨는 정 씨에게 도망칠 것을 권했다. C씨는 업소 사장이나 종업원들과 달라 보였다. 의지할 곳 없던 정 씨는 C씨를 따라 나섰다. 하지만 C씨도 이내 돌변했다. 정 씨는 다시 폭행에 시달렸다. C씨는 정 씨에게 돈을 요구했다. 가진 것이 없는 정 씨는 지인을 찾아 돈을 빌려 C씨에게 바쳤다. 그렇게 뜯어간 돈이 2천만 원을 넘었다.

C씨는 동남아의 유흥 업소에 정 씨를 팔아넘길 계획을 세웠다. 실제로 정 씨는 C씨의 요구에 따라 여권까지 만들었다. 다행히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정 씨가 돈을 빌리려 했던 지인이 정 씨의 행동을 수상히 여겨 캐물은 끝에 피해 사실을 알게됐다. 정 씨의 지인은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는 정 씨의 상태를 알게 되면서 사실상 노예처럼 부렸다"며 "그동안 정 씨가 만난 남자들은 정 씨를 이용하려고만 했다"고 말했다.

정 씨는 2014년 지인의 도움으로 구조됐다. 하지만 고난은 계속됐다. A씨 등 그동안의 가해자 여러 명을 고소했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경찰은 유흥업소 업주 등을 임금체불 등의 혐의로 입건했지만 돈을 뜯어낸 남자친구 A씨는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돈이 흘러간 정황만 있을 뿐 증거는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애인 사이의 돈거래로 볼 수도 있어 정 씨의 주장대로 협박에 의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는 설명이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 정 씨가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은 건 2014년 11월로 경찰이 가해자들 일부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린 뒤다. 경찰은 수사 당시에는 장애인 등록이 안 돼 있었다는 이유로 정 씨가 장애인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정 씨가 당한 인권유린에 대해 비장애인의 잣대로 수사했다는 말이다.

"그 당시 정 씨가 지적 장애인이었다는 증거가 있나요?" 수사를 담당한 경찰은 "절차에 문제가 없었다"며 취재진이게 되물었다.

탈출 돕는척 인신매매 계획...경찰 "지적장애 등록 안 됐다" 일부 무혐의

정 씨 사건의 수사는 부산 남부경찰서와 금정경찰서, 북부경찰서, 해운대경찰서, 사하경찰서 등 다섯 곳에서 이뤄졌다. 부산지방경찰청과 노동청에서도 조사를 받았다. 성적 학대를 당한 정 씨는 매번 고통스러운 진술과 가해자와의 대질 심문을 견뎌야 했다. 정 씨에겐 이중 삼중의 폭력이었다.

정 씨가 발급받은 장애인증명서. 경찰은 수사 당시에는 장애인 등록이 안 돼 있어 정 씨가 장애인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정 씨가 발급받은 장애인증명서. 경찰은 수사 당시에는 장애인 등록이 안 돼 있어 정 씨가 장애인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정 씨 사건을 전형적인 여성 지적 장애인에 대한 노예노동이라고 지적한다. 장애인 인권침해예방센터 이미현 간사는 "지적 장애인 피해자들은 자신이 장애가 있는지, 학대 피해를 당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체계적인 신고를 위한 절차를 보완하고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고를 통해 어렵게 구조된 뒤 가해자를 찾았더라도 제대로 수사받기 어렵다. 지적 장애인 가운데 상당수는 장애등급 판정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인식이 없어 경찰이 적극적으로 장애 판정을 받게 하고 장애인 보호 절차로 들어가지 않는 한 수사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 또 지적 장애인 고용률이 15%에 불과해 사회로 복귀하기 어렵다는 현실도 피해를 키우는 원인이다. 이미현 간사는 "지적 장애인 피해자가 피해를 당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일까지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정 씨는 2년 동안 치료를 받아왔지만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는 그녀에게 어떻게 지난 7년을 견딜 수 있었냐고 묻자 "원래 그런 건 줄 알았다"고 답했다. 정 씨는 현재 부산시 북구에서 마찬가지로 지적장애를 가진 부모와 함께 수급비에 의지해 살고 있다.

[연관 기사] ☞ [단독] 지적장애 여성도 ‘학대’…왜 반복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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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2-26 17:13:23
    • 수정2016-02-26 18:34:04
    취재K
"내가 죽어야 이 모든 것이 끝나겠다고 생각했어요" 단정한 외모의 평범한 20대로 보이는 정모(29·여)씨. 하지만 지적장애 3급인 정 씨의 IQ(지능지수)는 62로 초등학생 수준이다. 일상적인 대화는 할 수 있지만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긴 쉽지 않다. 이런 정 씨에게 20대의 7년은 지옥이었다. 정 씨는 "높은 곳만 보면 뛰어내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죽어야지 내가 편해지겠구나."라고 말할 때는 창백한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시작은 2008년이었다. 우연히 만나 연인이 된 한 살 연하의 A(28·남)씨는 정 씨에게 돈을 요구했다. 단순노동을 했던 정 씨가 받은 월급은 100만 원 남짓. 한푼 두푼 정 씨에게 돈을 받아간 A씨는 어느 순간부터 월급 전부를 가져갔다. 정 씨는 "(A씨가) 돈을 주지 않으면 욕을 하고 때렸다"고 말했다. 목을 조르고 흉기로 위협한 날도 있었다. 돈이 더 필요할 땐 정 씨에게 사채까지 짊어지게 한 뒤 돈을 챙겨갔다. 그렇게 정 씨가 빼앗긴 돈은 4천만 원에 이른다. 21살이었던 정 씨는 직장을 잃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A씨의 폭행에도 정 씨는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하는지 알지 못했다. 정 씨는 심지어 자신이 장애인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2011년 A씨는 정 씨를 유흥업소에 팔아넘기려했다. 지적장애 3급인 정 씨는 7년간 지옥 같은 생활을 했다. 유흥업소 사장인 B씨는 조폭 출신이라며 으스댔다. 월급 70만 원을 약속했지만 말뿐이었다. 정 씨가 일했던 2년 3개월 동안 월급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정 씨는 안마시술소에서 손님을 받으며 생활했다. 돈을 달라고 요구하지도, 항의하지도 못하는 정 씨에게 사장은 1억 원이 넘는 빚을 졌다고 인정하는 공증문서를 만들어 서명하게 했다. 월급을 주지 않는 것도 모자라 없는 빚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정 씨는 사장과 종업원들로부터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장애여성 노예처럼 부린 유흥업소 사장 2013년 업소를 찾은 손님 C씨는 정 씨에게 도망칠 것을 권했다. C씨는 업소 사장이나 종업원들과 달라 보였다. 의지할 곳 없던 정 씨는 C씨를 따라 나섰다. 하지만 C씨도 이내 돌변했다. 정 씨는 다시 폭행에 시달렸다. C씨는 정 씨에게 돈을 요구했다. 가진 것이 없는 정 씨는 지인을 찾아 돈을 빌려 C씨에게 바쳤다. 그렇게 뜯어간 돈이 2천만 원을 넘었다. C씨는 동남아의 유흥 업소에 정 씨를 팔아넘길 계획을 세웠다. 실제로 정 씨는 C씨의 요구에 따라 여권까지 만들었다. 다행히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정 씨가 돈을 빌리려 했던 지인이 정 씨의 행동을 수상히 여겨 캐물은 끝에 피해 사실을 알게됐다. 정 씨의 지인은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는 정 씨의 상태를 알게 되면서 사실상 노예처럼 부렸다"며 "그동안 정 씨가 만난 남자들은 정 씨를 이용하려고만 했다"고 말했다. 정 씨는 2014년 지인의 도움으로 구조됐다. 하지만 고난은 계속됐다. A씨 등 그동안의 가해자 여러 명을 고소했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경찰은 유흥업소 업주 등을 임금체불 등의 혐의로 입건했지만 돈을 뜯어낸 남자친구 A씨는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돈이 흘러간 정황만 있을 뿐 증거는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애인 사이의 돈거래로 볼 수도 있어 정 씨의 주장대로 협박에 의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는 설명이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 정 씨가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은 건 2014년 11월로 경찰이 가해자들 일부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린 뒤다. 경찰은 수사 당시에는 장애인 등록이 안 돼 있었다는 이유로 정 씨가 장애인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정 씨가 당한 인권유린에 대해 비장애인의 잣대로 수사했다는 말이다. "그 당시 정 씨가 지적 장애인이었다는 증거가 있나요?" 수사를 담당한 경찰은 "절차에 문제가 없었다"며 취재진이게 되물었다. 탈출 돕는척 인신매매 계획...경찰 "지적장애 등록 안 됐다" 일부 무혐의 정 씨 사건의 수사는 부산 남부경찰서와 금정경찰서, 북부경찰서, 해운대경찰서, 사하경찰서 등 다섯 곳에서 이뤄졌다. 부산지방경찰청과 노동청에서도 조사를 받았다. 성적 학대를 당한 정 씨는 매번 고통스러운 진술과 가해자와의 대질 심문을 견뎌야 했다. 정 씨에겐 이중 삼중의 폭력이었다. 정 씨가 발급받은 장애인증명서. 경찰은 수사 당시에는 장애인 등록이 안 돼 있어 정 씨가 장애인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정 씨 사건을 전형적인 여성 지적 장애인에 대한 노예노동이라고 지적한다. 장애인 인권침해예방센터 이미현 간사는 "지적 장애인 피해자들은 자신이 장애가 있는지, 학대 피해를 당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체계적인 신고를 위한 절차를 보완하고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고를 통해 어렵게 구조된 뒤 가해자를 찾았더라도 제대로 수사받기 어렵다. 지적 장애인 가운데 상당수는 장애등급 판정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인식이 없어 경찰이 적극적으로 장애 판정을 받게 하고 장애인 보호 절차로 들어가지 않는 한 수사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 또 지적 장애인 고용률이 15%에 불과해 사회로 복귀하기 어렵다는 현실도 피해를 키우는 원인이다. 이미현 간사는 "지적 장애인 피해자가 피해를 당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일까지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정 씨는 2년 동안 치료를 받아왔지만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는 그녀에게 어떻게 지난 7년을 견딜 수 있었냐고 묻자 "원래 그런 건 줄 알았다"고 답했다. 정 씨는 현재 부산시 북구에서 마찬가지로 지적장애를 가진 부모와 함께 수급비에 의지해 살고 있다. [연관 기사] ☞ [단독] 지적장애 여성도 ‘학대’…왜 반복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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