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의 특별한 흥행…“문화적 증거물”

입력 2016.02.28 (17:14) 수정 2016.02.2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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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7일, 토요일 하루에 30만 명 가까운 관객이 영화 '귀향'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전국에서 문을 연 스크린 수는 769개, 상영 횟수 3천215회, 관람객은 29만6천524명이었다. 막대한 제작비를 들인 마블 히어로 영화 '데드풀'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다. 이 영화를 개봉하는 스크린 수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3.1절, 관객수 100만명 돌파 예상

지난 24일 15만3천783명이 영화 '귀향'을 본 이후 나흘 동안 누적 관객 수는 75만 6천 명을 넘었다. 3.1절에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할 가능성이 크다. 영화 '귀향'은 14년의 제작 기간, 국민적 후원, 너무 잘 아는 '슬픈 역사'로 만들어진 '특별한' 영화다. 그러나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지면 관객의 외면을 받는다는 차가운 사실을 두고 볼 때, '귀향'의 흥행 또한 '특별'하다.

영화 관람평을 압축하는 단어는 '슬픔'이다.

"'언니야 가자' 그 한마디에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던지..."
"너무 해맑아서 가슴 아팠다"
"엊그제 봤는데 여운이 가시지 않네요. 또 울겠지만 다음 주에 다시 보렵니다"
"자극적인 감정 과잉의 슬픔이 아닌, 무거운 가슴 아픈 슬픔이 마지막에 올라온다"
"나비가 되어 부디 돌아오소서, 눈물 속 그리운 집으로"

이밖에 '분노'와 '잊지 말자', '기억하자'는 말들도 영화평에 자주 등장한다. "영화를 후원하지 못한 게 한으로 남는다"는 관객도 있다. 영화를 보게 하는 힘은 '슬픔'에 대한 공감과 자연스러운 '분노'다.

영화 ‘귀향’에 재능 기부로 출연한 배우 손숙은 “시나리오를 읽고 울긴 처음이다. 조정래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너무 절절했다”고 말했다.영화 ‘귀향’에 재능 기부로 출연한 배우 손숙은 “시나리오를 읽고 울긴 처음이다. 조정래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너무 절절했다”고 말했다.


"너무 해맑아서 가슴 아팠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게 요약될 수 있다. 1943년 14살 정민이 이유도 없이 일본군에 끌려가 전쟁터에서 친구와 함께 겪는 끔찍한 고통과 아픔을 그린,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작품이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다 아는 일본군 위안부의 고통은, 그러나 간단하게 요약될 수도, 쉽게 그려질 수도 없는 소재다. 그 고통의 세계는 어쩌면 우주의 크기만큼 크고,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의 깊이일지도 모를 영역일 것이다. 감히 '공감'과 '이해'를 말하기엔 너무 특별한 역사다.

2월 27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제 및 추모관·유품기록관 착공식’에서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 배우 최리, 서미지가 이옥선 할머니를 모시고 이동하고 있다. 2월 27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제 및 추모관·유품기록관 착공식’에서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 배우 최리, 서미지가 이옥선 할머니를 모시고 이동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일본 제국주의와 만행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데 치중하지 않는다. 감독의 눈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계에 가 있는 듯하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백발의 된 70대 노인의 뼛속 깊은 한과 아픔을 이야기한다. 자극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넋을 위로하는데 연출 의도가 있는듯하다. 당시의 상황 묘사보다 절제의 미덕이 돋보이는 영상미와 서글픈 노랫가락에 눈과 귀가 열린다. 사실적이기보다는 예술적인 영화에 가깝다.

영화 ‘귀향’을 만든 조정래 감독. 조 감독은 “증거가 없었다는 말에 화가 났고, 문화적 증거물의 역할을 하고자”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영화 ‘귀향’을 만든 조정래 감독. 조 감독은 “증거가 없었다는 말에 화가 났고, 문화적 증거물의 역할을 하고자”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영화를 만든 조정래 감독은 시사회 기자간담회에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영화처럼 문화적 증거물의 역할을 하고자 하는 진심에서 출발했다"며 "증거가 없었다는 말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증언집에는 수많은 학살의 기록이 등장한다.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되면 산에 끌고 가 죽여버렸다는 표현들도 많다. 이것들은 모두 죽음의 기록이다, 그러나 또한 산 사람들의 기록이기도 하다"며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증거물'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유대인 작가 프리모 레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후 증언 문학을 써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1987년 자살했다.이탈리아의 유대인 작가 프리모 레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후 증언 문학을 써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1987년 자살했다.


이탈리아의 '프리모 레비'라는 유대인 작가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4년 체포돼 11개월 동안 아우슈비치 수용소에 갇혀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이다. 당시 수용소 수감자의 평균 생존 기간은 3개월이었다. '프리모 레비'는 풀려난 이후 '이것이 인간인가', '주기율표', '휴전' 등 수용소의 경험을 책으로 써서 많은 상을 수상한 작가이며 화학자이다. '증언의 기록물'을 쓴 '프리모 레비'는 1987년 이탈리아 자택에서 자살했다.

"기억의 고통이 죽음으로 인도"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의 세월 속에서 얻어진 처절한 기억들, 그 상처들을 불굴의 정신으로 이겨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은 잔혹했을 것이다. 나는 그 기억들이 결국 그를 죽음으로 인도했다고 생각한다" 며 한 동료 유대인 작가는 썼다. 역사의 만행으로 생겨난 '기억의 고통'이 레비를 '자살'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기억의 고통'과는 무관하게 세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대학살의 기억을 잊었고, 그렇게 관습적으로 작동하는 세계를 보면서 절망했다는 분석도 있었다.



'귀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극영화다. 제작사의 거절로, 영화는 제작에 착수한 지 14년 만에 7만 5천 명이 넘는 국민적 후원과 배우·제작진의 재능기부로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감독은 "영화를 보고 영령이든 옆에 있는 분들이든 피해자분들을 안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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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2-28 17:14:33
    • 수정2016-02-28 17:15:39
    취재K
2월 27일, 토요일 하루에 30만 명 가까운 관객이 영화 '귀향'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전국에서 문을 연 스크린 수는 769개, 상영 횟수 3천215회, 관람객은 29만6천524명이었다. 막대한 제작비를 들인 마블 히어로 영화 '데드풀'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다. 이 영화를 개봉하는 스크린 수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3.1절, 관객수 100만명 돌파 예상 지난 24일 15만3천783명이 영화 '귀향'을 본 이후 나흘 동안 누적 관객 수는 75만 6천 명을 넘었다. 3.1절에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할 가능성이 크다. 영화 '귀향'은 14년의 제작 기간, 국민적 후원, 너무 잘 아는 '슬픈 역사'로 만들어진 '특별한' 영화다. 그러나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지면 관객의 외면을 받는다는 차가운 사실을 두고 볼 때, '귀향'의 흥행 또한 '특별'하다. 영화 관람평을 압축하는 단어는 '슬픔'이다. "'언니야 가자' 그 한마디에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던지..." "너무 해맑아서 가슴 아팠다" "엊그제 봤는데 여운이 가시지 않네요. 또 울겠지만 다음 주에 다시 보렵니다" "자극적인 감정 과잉의 슬픔이 아닌, 무거운 가슴 아픈 슬픔이 마지막에 올라온다" "나비가 되어 부디 돌아오소서, 눈물 속 그리운 집으로" 이밖에 '분노'와 '잊지 말자', '기억하자'는 말들도 영화평에 자주 등장한다. "영화를 후원하지 못한 게 한으로 남는다"는 관객도 있다. 영화를 보게 하는 힘은 '슬픔'에 대한 공감과 자연스러운 '분노'다.
영화 ‘귀향’에 재능 기부로 출연한 배우 손숙은 “시나리오를 읽고 울긴 처음이다. 조정래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너무 절절했다”고 말했다.
"너무 해맑아서 가슴 아팠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게 요약될 수 있다. 1943년 14살 정민이 이유도 없이 일본군에 끌려가 전쟁터에서 친구와 함께 겪는 끔찍한 고통과 아픔을 그린,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작품이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다 아는 일본군 위안부의 고통은, 그러나 간단하게 요약될 수도, 쉽게 그려질 수도 없는 소재다. 그 고통의 세계는 어쩌면 우주의 크기만큼 크고,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의 깊이일지도 모를 영역일 것이다. 감히 '공감'과 '이해'를 말하기엔 너무 특별한 역사다.
2월 27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제 및 추모관·유품기록관 착공식’에서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 배우 최리, 서미지가 이옥선 할머니를 모시고 이동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일본 제국주의와 만행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데 치중하지 않는다. 감독의 눈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계에 가 있는 듯하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백발의 된 70대 노인의 뼛속 깊은 한과 아픔을 이야기한다. 자극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넋을 위로하는데 연출 의도가 있는듯하다. 당시의 상황 묘사보다 절제의 미덕이 돋보이는 영상미와 서글픈 노랫가락에 눈과 귀가 열린다. 사실적이기보다는 예술적인 영화에 가깝다.
영화 ‘귀향’을 만든 조정래 감독. 조 감독은 “증거가 없었다는 말에 화가 났고, 문화적 증거물의 역할을 하고자”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영화를 만든 조정래 감독은 시사회 기자간담회에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영화처럼 문화적 증거물의 역할을 하고자 하는 진심에서 출발했다"며 "증거가 없었다는 말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증언집에는 수많은 학살의 기록이 등장한다.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되면 산에 끌고 가 죽여버렸다는 표현들도 많다. 이것들은 모두 죽음의 기록이다, 그러나 또한 산 사람들의 기록이기도 하다"며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증거물'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유대인 작가 프리모 레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후 증언 문학을 써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1987년 자살했다.
이탈리아의 '프리모 레비'라는 유대인 작가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4년 체포돼 11개월 동안 아우슈비치 수용소에 갇혀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이다. 당시 수용소 수감자의 평균 생존 기간은 3개월이었다. '프리모 레비'는 풀려난 이후 '이것이 인간인가', '주기율표', '휴전' 등 수용소의 경험을 책으로 써서 많은 상을 수상한 작가이며 화학자이다. '증언의 기록물'을 쓴 '프리모 레비'는 1987년 이탈리아 자택에서 자살했다. "기억의 고통이 죽음으로 인도"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의 세월 속에서 얻어진 처절한 기억들, 그 상처들을 불굴의 정신으로 이겨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은 잔혹했을 것이다. 나는 그 기억들이 결국 그를 죽음으로 인도했다고 생각한다" 며 한 동료 유대인 작가는 썼다. 역사의 만행으로 생겨난 '기억의 고통'이 레비를 '자살'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기억의 고통'과는 무관하게 세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대학살의 기억을 잊었고, 그렇게 관습적으로 작동하는 세계를 보면서 절망했다는 분석도 있었다.
'귀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극영화다. 제작사의 거절로, 영화는 제작에 착수한 지 14년 만에 7만 5천 명이 넘는 국민적 후원과 배우·제작진의 재능기부로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감독은 "영화를 보고 영령이든 옆에 있는 분들이든 피해자분들을 안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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