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암살’ 주인공 같은 女운동가 많았다

입력 2016.03.0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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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우리 국민은 '안옥윤'이라는 여성 무장 독립 운동가에 매료되었다. 안옥윤은 영화 '암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조선 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을 처단하기 위해 국내에 잠입 시킨 '비밀 암살단'의 대장이다.

목숨을 건 전투 끝에 안옥윤은 카와구치 마모루와 자신의 친부로 확인된 강인국, 그리고 일본군에 매수된 임시정부 경무대장 염석진을 사살하고 임무 완수를 보고한다.

영화 ‘암살’(2015) 중 안옥윤(전지현분)이 총을 겨누는 장면영화 ‘암살’(2015) 중 안옥윤(전지현분)이 총을 겨누는 장면


영화 ‘암살’의 실제 모델 ‘여자 안중근’ 남자현 지사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연기한 여주인공 안옥윤은 경북 영양 출신의 항일 투사로 '여자 안중근' '독립군 어머니'로 통하는 남자현(南慈賢·1872∼1933) 지사를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 지사의 남편은 을미의병 때 경북 영양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그 뒤 남 지사는 유복자를 키우며 고향에서 의병활동을 지원하다가 3·1 운동 직후 만주로 건너갔다. 만주에서는 '서로군정서'에 가입해 여성 의식개혁과 여성의 독립운동 참여를 독려하는 운동을 전개하다가1926년 사이토 총독 암살 시도를 기점으로 무장투쟁에도 가담했다. 1932년에는 만주사변 진상을 밝히기 위해 만주를 찾은 국제연맹 조사단에 손가락을 잘라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이라는 혈서를 쓴 뒤 손가락과 함께 조사단에 보내 우리 민족의 강렬했던 독립의지를 대변하기도 했다. 이후 남 지사는 1933년 만주국 전권대사 부토 노부요시를 처단하려다 실패하고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견디며 17일 동안 단식투쟁을 하다가 61살을 일기로 순국했다.

독립지사 김 마리아(1982~ 1944)선생독립지사 김 마리아(1982~ 1944)선생


‘죽어서도 독립만세’ 결사대 조직한 여성 독립운동가

남 지사 이외에도 일제와 맞서 싸운 여성 독립 운동가는 수없이 많다.

오광심, 지복영, 박차정, 권기옥 지사는 남 지사처럼 직접 독립 전쟁에 참전했고 특히 권기옥 지사는 중국 항일 대전에 참전하고자 여성 비행사가 되기도 했다. 김마리아 선생은 '대한독립여자선언서'발표와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활동을 통해 여성의 독립운동을 독려했고 김경희 지사는 '죽어서도 독립만세를 부르리라'고 외치며 '송죽비밀 결사대'를 조직했다.

또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고 한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와 '나의 아들이 되기보다 나라의 아들이 되어라'라고 한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는 독립운동 영웅을 키운 어머니로 추앙받고 있다.

유관순 열사 수형 기록표 (사진 연합/백석대)유관순 열사 수형 기록표 (사진 연합/백석대)


올해로 97주년을 맞는 3.1 독립 만세 운동에도 우리가 잘 아는 유관순 열사 이외에도 수많은 여성 운동가들이 참가했다 붙잡혀 서대문 형무소 등에서 혹독한 옥고를 치른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기록원, 여성 독립운동가 54명 정리…연구 부족 ‘과제’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3·1 운동 97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판결문과 형무소 수형기록카드를 바탕으로 유관순 열사를 포함한 여성독립운동가 54명의 인적 사항을 정리했다. 이들의 직업으로는 학생이 26명으로 가장 많고, 뒤를 이어 교사 9명, 간호사 5명, 개신교 전도사 3명, 기생 2명 등으로 분류됐고, 연령대는 10대가 27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20대 18명, 30대 6명, 50대 2명 순으로 나타났다.

[연관 기사]☞ 국가기록원 여성독립운동사 자료총서

이들 가운데 강원도 철원의 곽진근(郭鎭根)은 당시로써는 고령인 57살에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1919년 3월 10∼11일 철원군 일대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주민 300∼400명을 이끌고 친일파 박의병(朴義秉)의 집으로 몰려가 "너희 집에 머무르는 이완용 부부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등 일제와 친일세력에도 항거했다.

충남 천안시 입장면 양대리시장에서 직접 만든 태극기를 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친 한이순은 겨우 13세 소녀였다. 일제 법원은 한이순에게 1년 형을 선고했다.

통영 기생 이소선·정막래는 같은 해 4월 '기생단'을 조직하고 금반지를 팔아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활약상에도 불구하고 여성 독립운동에 대한 연구가 부족해 지금까지 유관순 열사 등 극소수를 빼고는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독립 유공 포상자 1만 4,264명 가운데 여성은 270명(1.9%)에 불과하다. 3·1 운동 포상자 4,832명 중에는 87명(1.8%)에 그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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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절] ‘암살’ 주인공 같은 女운동가 많았다
    • 입력 2016-03-01 09:03:11
    취재K
지난해 여름 우리 국민은 '안옥윤'이라는 여성 무장 독립 운동가에 매료되었다. 안옥윤은 영화 '암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조선 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을 처단하기 위해 국내에 잠입 시킨 '비밀 암살단'의 대장이다.

목숨을 건 전투 끝에 안옥윤은 카와구치 마모루와 자신의 친부로 확인된 강인국, 그리고 일본군에 매수된 임시정부 경무대장 염석진을 사살하고 임무 완수를 보고한다.

영화 ‘암살’(2015) 중 안옥윤(전지현분)이 총을 겨누는 장면


영화 ‘암살’의 실제 모델 ‘여자 안중근’ 남자현 지사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연기한 여주인공 안옥윤은 경북 영양 출신의 항일 투사로 '여자 안중근' '독립군 어머니'로 통하는 남자현(南慈賢·1872∼1933) 지사를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 지사의 남편은 을미의병 때 경북 영양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그 뒤 남 지사는 유복자를 키우며 고향에서 의병활동을 지원하다가 3·1 운동 직후 만주로 건너갔다. 만주에서는 '서로군정서'에 가입해 여성 의식개혁과 여성의 독립운동 참여를 독려하는 운동을 전개하다가1926년 사이토 총독 암살 시도를 기점으로 무장투쟁에도 가담했다. 1932년에는 만주사변 진상을 밝히기 위해 만주를 찾은 국제연맹 조사단에 손가락을 잘라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이라는 혈서를 쓴 뒤 손가락과 함께 조사단에 보내 우리 민족의 강렬했던 독립의지를 대변하기도 했다. 이후 남 지사는 1933년 만주국 전권대사 부토 노부요시를 처단하려다 실패하고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견디며 17일 동안 단식투쟁을 하다가 61살을 일기로 순국했다.

독립지사 김 마리아(1982~ 1944)선생


‘죽어서도 독립만세’ 결사대 조직한 여성 독립운동가

남 지사 이외에도 일제와 맞서 싸운 여성 독립 운동가는 수없이 많다.

오광심, 지복영, 박차정, 권기옥 지사는 남 지사처럼 직접 독립 전쟁에 참전했고 특히 권기옥 지사는 중국 항일 대전에 참전하고자 여성 비행사가 되기도 했다. 김마리아 선생은 '대한독립여자선언서'발표와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활동을 통해 여성의 독립운동을 독려했고 김경희 지사는 '죽어서도 독립만세를 부르리라'고 외치며 '송죽비밀 결사대'를 조직했다.

또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고 한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와 '나의 아들이 되기보다 나라의 아들이 되어라'라고 한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는 독립운동 영웅을 키운 어머니로 추앙받고 있다.

유관순 열사 수형 기록표 (사진 연합/백석대)


올해로 97주년을 맞는 3.1 독립 만세 운동에도 우리가 잘 아는 유관순 열사 이외에도 수많은 여성 운동가들이 참가했다 붙잡혀 서대문 형무소 등에서 혹독한 옥고를 치른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기록원, 여성 독립운동가 54명 정리…연구 부족 ‘과제’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3·1 운동 97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판결문과 형무소 수형기록카드를 바탕으로 유관순 열사를 포함한 여성독립운동가 54명의 인적 사항을 정리했다. 이들의 직업으로는 학생이 26명으로 가장 많고, 뒤를 이어 교사 9명, 간호사 5명, 개신교 전도사 3명, 기생 2명 등으로 분류됐고, 연령대는 10대가 27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20대 18명, 30대 6명, 50대 2명 순으로 나타났다.

[연관 기사]☞ 국가기록원 여성독립운동사 자료총서

이들 가운데 강원도 철원의 곽진근(郭鎭根)은 당시로써는 고령인 57살에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1919년 3월 10∼11일 철원군 일대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주민 300∼400명을 이끌고 친일파 박의병(朴義秉)의 집으로 몰려가 "너희 집에 머무르는 이완용 부부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등 일제와 친일세력에도 항거했다.

충남 천안시 입장면 양대리시장에서 직접 만든 태극기를 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친 한이순은 겨우 13세 소녀였다. 일제 법원은 한이순에게 1년 형을 선고했다.

통영 기생 이소선·정막래는 같은 해 4월 '기생단'을 조직하고 금반지를 팔아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활약상에도 불구하고 여성 독립운동에 대한 연구가 부족해 지금까지 유관순 열사 등 극소수를 빼고는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독립 유공 포상자 1만 4,264명 가운데 여성은 270명(1.9%)에 불과하다. 3·1 운동 포상자 4,832명 중에는 87명(1.8%)에 그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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