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퍼] 오이에 격분한 원숭이…우리 사회도 똑같다

입력 2016.03.07 (09:04) 수정 2016.03.0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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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란스 드발/미국 애모리대 교수 2011년 11월 TED 강연]

미국 한 대학 연구팀이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불평등에 대한 실험입니다. 같은 작업을 수행하던 원숭이에게 보상을 달리한 겁니다. 한 원숭이에게는 포도를 줬지만 다른 원숭이에게는 오이를 줬습니다. 오이를 받은 원숭이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연구를 수행한 애모리 대학 프란스 드발 교수는 이 실험의 결과가 2011년 미국 월가에서 촉발된 청년들의 불평등 항의 시위와 같은 거라고 말합니다. 같은 노력에 대해 불평등한 보상이 주어질 때 사회적 관계가 훼손된다는 메시지입니다.



졸업과 입학 시즌입니다. 희망과 격려가 넘쳐야 할 자리지만 청년들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취업난 때문입니다.

홍은설(가명, 중소기업 취업)씨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6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은설씨는 부모님 사업이 기울면서 대학 2학년 때부터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했습니다. 아이스크림 가게, 도서관 자료 정리, 독서실 감독... 빚 지지 않고 학점도 놓치지 않겠다며 6년을 꿋꿋이 버텼습니다. 취업준비로 학자금을 대출했던 마지막 학기를 빼고 말입니다.



은설씨는 의지가 매우 강해 보였습니다. 재학 중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았습니다. 과로로 쓰러질 때도 있었습니다. 졸업학점은 4.0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취업시장에서 겪은 기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도전이 무엇이었냐는 면접관들의 질문에 취업 지원자들은 대학 시절 국토대장정과 히말라야 등반 등의 답변을 내놨다는 것. 은설씨는 대학 생활 자체가 도전이었다고 답해 심한 격차를 느꼈다는 것입니다.

인터뷰하는 사이 은설씨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애써 억눌렀습니다.

"그때 면접관들에게 뭐라고 답했는데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은설씨는 "지금이 제일 도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다 이런 상황이고 여기 면접을 보러 온 것도 정말 저한테는 큰 도전인데…. 면접관들 입장에서는 제가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 그런 게 무슨 도전인지 이해가 안 가는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녀 이력서의 각종 아르바이트 경험은 기업이 관심을 끄는 이른바 스펙이 될 수 없었다고 느낀겁니다.



올해 졸업학기를 맞는 김명준씨 역시 사교육을 받지 않고 서울대에 입학한 노력파입니다. 지방 출신인 그는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대야 합니다. 서민 가정의 수재이지만 그는 주경야독 생활을 더는 이어갈 수 없어 원하던 대학원 대신 취업을 마음 먹었습니다.

좋은 대학에 부유층 자녀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얘기는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입학 당시 친구들 상당수가 특목고나 자사고 출신이고 재수학원에서 재수를 했고 한 두 번쯤 해외여행 경험이 있다는 사실은 그에겐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명준씨는 인터뷰 중에 결과의 차이가 나는 건 노력의 부족이 아니라 노력할 기회 자체를 빼앗겼기 때문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은설씨와 명준씨는 꽤 이름 있는 대학의 학생들이었습니다. 이른바 '노오오력'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허탈감이 단순히 우리 사회가 먹고 살기 힘든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일까요? 청년들의 좌절은 빈부의 대물림을 극복하기 어려워진 시대가 됐다는 절망감 때문입니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는 부모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가 자녀 미래에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아버지가 대졸 이상일 경우 자녀의 대학 진학률은 90%인 반면 중졸 이하 아버지를 둔 자녀는 62%에 그쳤습니다.



직업의 대물림은 더 뚜렷했습니다. 단순노무직 아버지에 단순노무직 자녀, 관리전문직 아버지에 자녀도 관리전문직. 주목할 점은 이런 현상이 과거보다 현재 더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각국이 성장과 분배, 청년층의 불평등 문제에 해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몇몇 국가들은 더 나아가 그 해법을 적극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이른바 '수저 계급론', 좌절감에 우리는 시스템에 대한 고민은 방치한채 그들의 '노오오력'만을 강조하고 있진 않나요?

이 기사는 3월 8일 화요일 밤 10시 KBS 1TV 시사기획 창 [청년 대한민국 '개천의 용' 살아있나]에서 더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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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6-03-08 09:21:53
    디지털퍼스트
[출처: 프란스 드발/미국 애모리대 교수 2011년 11월 TED 강연] 미국 한 대학 연구팀이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불평등에 대한 실험입니다. 같은 작업을 수행하던 원숭이에게 보상을 달리한 겁니다. 한 원숭이에게는 포도를 줬지만 다른 원숭이에게는 오이를 줬습니다. 오이를 받은 원숭이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연구를 수행한 애모리 대학 프란스 드발 교수는 이 실험의 결과가 2011년 미국 월가에서 촉발된 청년들의 불평등 항의 시위와 같은 거라고 말합니다. 같은 노력에 대해 불평등한 보상이 주어질 때 사회적 관계가 훼손된다는 메시지입니다.
졸업과 입학 시즌입니다. 희망과 격려가 넘쳐야 할 자리지만 청년들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취업난 때문입니다. 홍은설(가명, 중소기업 취업)씨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6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은설씨는 부모님 사업이 기울면서 대학 2학년 때부터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했습니다. 아이스크림 가게, 도서관 자료 정리, 독서실 감독... 빚 지지 않고 학점도 놓치지 않겠다며 6년을 꿋꿋이 버텼습니다. 취업준비로 학자금을 대출했던 마지막 학기를 빼고 말입니다.
은설씨는 의지가 매우 강해 보였습니다. 재학 중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았습니다. 과로로 쓰러질 때도 있었습니다. 졸업학점은 4.0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취업시장에서 겪은 기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도전이 무엇이었냐는 면접관들의 질문에 취업 지원자들은 대학 시절 국토대장정과 히말라야 등반 등의 답변을 내놨다는 것. 은설씨는 대학 생활 자체가 도전이었다고 답해 심한 격차를 느꼈다는 것입니다. 인터뷰하는 사이 은설씨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애써 억눌렀습니다. "그때 면접관들에게 뭐라고 답했는데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은설씨는 "지금이 제일 도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다 이런 상황이고 여기 면접을 보러 온 것도 정말 저한테는 큰 도전인데…. 면접관들 입장에서는 제가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 그런 게 무슨 도전인지 이해가 안 가는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녀 이력서의 각종 아르바이트 경험은 기업이 관심을 끄는 이른바 스펙이 될 수 없었다고 느낀겁니다.
올해 졸업학기를 맞는 김명준씨 역시 사교육을 받지 않고 서울대에 입학한 노력파입니다. 지방 출신인 그는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대야 합니다. 서민 가정의 수재이지만 그는 주경야독 생활을 더는 이어갈 수 없어 원하던 대학원 대신 취업을 마음 먹었습니다. 좋은 대학에 부유층 자녀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얘기는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입학 당시 친구들 상당수가 특목고나 자사고 출신이고 재수학원에서 재수를 했고 한 두 번쯤 해외여행 경험이 있다는 사실은 그에겐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명준씨는 인터뷰 중에 결과의 차이가 나는 건 노력의 부족이 아니라 노력할 기회 자체를 빼앗겼기 때문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은설씨와 명준씨는 꽤 이름 있는 대학의 학생들이었습니다. 이른바 '노오오력'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허탈감이 단순히 우리 사회가 먹고 살기 힘든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일까요? 청년들의 좌절은 빈부의 대물림을 극복하기 어려워진 시대가 됐다는 절망감 때문입니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는 부모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가 자녀 미래에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아버지가 대졸 이상일 경우 자녀의 대학 진학률은 90%인 반면 중졸 이하 아버지를 둔 자녀는 62%에 그쳤습니다.
직업의 대물림은 더 뚜렷했습니다. 단순노무직 아버지에 단순노무직 자녀, 관리전문직 아버지에 자녀도 관리전문직. 주목할 점은 이런 현상이 과거보다 현재 더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각국이 성장과 분배, 청년층의 불평등 문제에 해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몇몇 국가들은 더 나아가 그 해법을 적극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이른바 '수저 계급론', 좌절감에 우리는 시스템에 대한 고민은 방치한채 그들의 '노오오력'만을 강조하고 있진 않나요? 이 기사는 3월 8일 화요일 밤 10시 KBS 1TV 시사기획 창 [청년 대한민국 '개천의 용' 살아있나]에서 더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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