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퍼] 그들이 ‘개천의 용’을 원하는 이유

입력 2016.03.08 (06:55) 수정 2016.03.0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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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회 균등, 개천의 '미꾸라지' 만든다?

2007년, 정부는 대학입시에 기회균형 할당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합니다. 대학이 정원 11% 범위에서 가난하지만 똑똑한 인재를 뽑고 등록금은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진학할 수 있어 경쟁 대열에서 낙오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개천의 용은 커녕 미꾸라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쏟아 냈습니다. 주로 대학으로부터 나온 비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9년, 논란은 기우였습니다.

정부 지원을 받았던 서울의 주요대학들의 기회균형 선발비율이 전국 평균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던 겁니다. 이수연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특정 대학에 재정지원을 더 주는 간접지원방식으로 기회균형선발을 확대하려 했지만, 대학들이 기회균등 선발에 관심이 없었고, 또 정부의 간접지원도 실효가 없었다고 이유를 밝힙니다.

용이 미꾸라지가 될 걱정은 애초부터 할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빈민가에서 자란 미혼모 아들, 동남아 이주 근로자 자녀가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나와 당당히 사회의 일꾼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트레비스(사진 상단. 23세)는 15살에 미혼모가 된 엄마, 두 동생과 미국 남부 미시시피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고향을 떠나 미 동부 뉴헤이븐으로 왔을때 적지 않은 충격에 빠졌다고 합니다. 주민의 97%가 흑인인 고향과 달리 뉴헤이븐에는 정말 다양한 인종이 있었다는 거죠. 마약과 범죄를 걱정하는 고향 동네와 뉴헤이븐의 생활 수준이 전혀 달랐던 겁니다.

롸이언(사진 하단. 28세)은 필리핀 출신 이민 1세대입니다. 엄마는 간호사 아빠는 도장공, 뉴욕의 빈민가 브롱스에서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며 살았습니다. 고교시절 그는 대학을 갈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흙수저중의 흙수저인 두 사람, 한 명은 미국 예일대에 재학 중이고 다른 한 명은 온라인 미디어 회사 넥스트데이베터(NextDayBetter)의 대표입니다.

예일대 재학생인 트레비스는 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있습니다. 1년에 만 4천 달러의 생활비도 받습니다. 트레비스는 그 돈으로 월세를 내고 생활비가 부족하면 학교에서 제공하는 시급 12달러의 교내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넥스트데이 롸이언 대표는 매사추세츠 윗튼 대학을 전액 장학생으로 졸업했습니다. 미국의 민간단체인 파시 재단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파시 재단은 가난하지만 재능있는 학생들을 선발해 대학과 연결해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만약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가끔 궁금해요. 내 인생이 어땠을까? 파시가 아니었다면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인터뷰를 못 했거나 제가 무척 사랑하는 사업을 못 했을 거에요." 롸이언 대표의 말입니다.



예일대의 학비보조 기준표입니다. 부모소득이 연간 6만 5천 달러, 우리 돈 8천만 원 이하면 학비가 전액 면제됩니다. 또 연간 20만 달러, 우리 돈 2억 4천만 원 미만인 중산층까지 학비 감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의 학비 보조를 받는 학생은 52%, 이중 전액 장학생은 12%입니다. 예일대는 이런 장학금을 위해 총장, 교수, 동문들이 장학금 모금 행사를 벌입니다. 또 매년 재학생들을 고향 마을에 보내 후배들에게 장학 정책을 소개하도록 합니다.

잘 나가는 예일대만의 얘기일까요?

앞서 소개한 민간단체 파시 재단측은 미국의 대학 진학을 위해 가계 소득과 재능을 기반으로 한두 가지 지원을 얘기합니다. 가계 소득이 낮을수록 더 많은 지원을 받게 하고 예체능 재능을 기반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다시 반문을 해봅니다. 미국이 부자라서? 네, 부자 맞습니다. 개인 자산 1조 원이 넘는 부호들이 가장 많은 나라이니 말이죠. 그러나 계층간 소득격차가 가장 큰 나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육은 다양성을 중요시하고 사회와 국가의 경쟁력으로 키워가고 있습니다. 예일대 입학처 차장은 사회 경제적 배경이 다양한 학생들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 노력이 학생들에게는 배움의 값진 경험으로 다가오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부유한 집안의 학생들만 진학하게 되면 교육은 걱정된다는 겁니다. 다양한 학생들로 구성된 교육이 빛을 보고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미국이 소득격차, 교육 양극화의 문제를 학교를 통해 풀어 보려 노력하는 것은 단순히 저소득층의 신분 상승만을 위한 일은 아닙니다. 미국 신시네티의 청소년 상담가인 라마르케 워드 씨(미국 신시네티 거주, 38세). 그는 뉴욕 인근 4년제 대학의 농구 장학생이었습니다. 스위스와 페루에서 프로농구선수 생활을 하다 지금은 고향에 정착했습니다. 그와 같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고향 후배들에게 꿈을 나누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상담사가 되기 위해 그는 교육학 석사 학위도 땄습니다.

워드 씨의 집은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생계를 유지할 만큼 어려워 워드 씨는 학교 수업을 마치면 하루 6시간씩 접시를 닦아야만 했습니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낸 끝에 15살에 아이 아빠가 된 워드 씨, 모든 걸 포기하고 싶던 순간, 워드 씨에겐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고교 농구팀 코치가 그의 재능을 알아본 것이었습니다.

사고뭉치였던 라마르케 워드의 마음을 움직인 선생님의 얘기는 어떤 얘기였을까요?



그는 농구를 열심히 하면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코치의 조언을 듣고 하루 1,000개씩 슈팅 연습을 하며 농구에 열정을 쏟았고 이후 미 전역 상위 100위권에 드는 우수한 성적으로 페얼리 디킨슨 대학의 전액 장학생이 됐습니다.



제작진이 그를 만났을때 그는 한 고등학교를 방문해 강연에 나섰습니다. 전교생의 40% 정도가 졸업 전 학업을 포기하는 가난한 학교의 후배들에게 힘주어 희망을 전했습니다.

남들을 탓하지 말고 개인의 책임이 중요하다, 노력하고 헌신하는 법을 배우라고...

미국이 추구하는 기회균등의 진정한 가치는 이들이 지역 사회로 돌아가 취약한 사회구조를 일으켜 세우는 인재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한국의 대학입시는 복잡해지고 대학의 등록금은 치솟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자녀들이 입학하기 어렵게 되고 있습니다. 교육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아니라 빈부의 대물림을 고착화시키는 수단이 됐다는 절망감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이유입니다.

가난의 가장 큰 문제는 미래세대의 꿈을 갉아 먹는다는 것입니다.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서구 사회가 법과 제도를 바탕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이뤄내 제 2, 제 3의 기회를 만들어 내려 노력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이 기사는 3월 8일 화요일 밤 10시 KBS 1TV 시사기획 창 [청년 대한민국 '개천의 용' 살아있나]에서 더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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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3-08 06:55:52
    • 수정2016-03-08 09: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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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회 균등, 개천의 '미꾸라지' 만든다? 2007년, 정부는 대학입시에 기회균형 할당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합니다. 대학이 정원 11% 범위에서 가난하지만 똑똑한 인재를 뽑고 등록금은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진학할 수 있어 경쟁 대열에서 낙오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개천의 용은 커녕 미꾸라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쏟아 냈습니다. 주로 대학으로부터 나온 비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9년, 논란은 기우였습니다. 정부 지원을 받았던 서울의 주요대학들의 기회균형 선발비율이 전국 평균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던 겁니다. 이수연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특정 대학에 재정지원을 더 주는 간접지원방식으로 기회균형선발을 확대하려 했지만, 대학들이 기회균등 선발에 관심이 없었고, 또 정부의 간접지원도 실효가 없었다고 이유를 밝힙니다. 용이 미꾸라지가 될 걱정은 애초부터 할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빈민가에서 자란 미혼모 아들, 동남아 이주 근로자 자녀가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나와 당당히 사회의 일꾼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트레비스(사진 상단. 23세)는 15살에 미혼모가 된 엄마, 두 동생과 미국 남부 미시시피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고향을 떠나 미 동부 뉴헤이븐으로 왔을때 적지 않은 충격에 빠졌다고 합니다. 주민의 97%가 흑인인 고향과 달리 뉴헤이븐에는 정말 다양한 인종이 있었다는 거죠. 마약과 범죄를 걱정하는 고향 동네와 뉴헤이븐의 생활 수준이 전혀 달랐던 겁니다. 롸이언(사진 하단. 28세)은 필리핀 출신 이민 1세대입니다. 엄마는 간호사 아빠는 도장공, 뉴욕의 빈민가 브롱스에서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며 살았습니다. 고교시절 그는 대학을 갈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흙수저중의 흙수저인 두 사람, 한 명은 미국 예일대에 재학 중이고 다른 한 명은 온라인 미디어 회사 넥스트데이베터(NextDayBetter)의 대표입니다. 예일대 재학생인 트레비스는 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있습니다. 1년에 만 4천 달러의 생활비도 받습니다. 트레비스는 그 돈으로 월세를 내고 생활비가 부족하면 학교에서 제공하는 시급 12달러의 교내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넥스트데이 롸이언 대표는 매사추세츠 윗튼 대학을 전액 장학생으로 졸업했습니다. 미국의 민간단체인 파시 재단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파시 재단은 가난하지만 재능있는 학생들을 선발해 대학과 연결해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만약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가끔 궁금해요. 내 인생이 어땠을까? 파시가 아니었다면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인터뷰를 못 했거나 제가 무척 사랑하는 사업을 못 했을 거에요." 롸이언 대표의 말입니다.
예일대의 학비보조 기준표입니다. 부모소득이 연간 6만 5천 달러, 우리 돈 8천만 원 이하면 학비가 전액 면제됩니다. 또 연간 20만 달러, 우리 돈 2억 4천만 원 미만인 중산층까지 학비 감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의 학비 보조를 받는 학생은 52%, 이중 전액 장학생은 12%입니다. 예일대는 이런 장학금을 위해 총장, 교수, 동문들이 장학금 모금 행사를 벌입니다. 또 매년 재학생들을 고향 마을에 보내 후배들에게 장학 정책을 소개하도록 합니다. 잘 나가는 예일대만의 얘기일까요? 앞서 소개한 민간단체 파시 재단측은 미국의 대학 진학을 위해 가계 소득과 재능을 기반으로 한두 가지 지원을 얘기합니다. 가계 소득이 낮을수록 더 많은 지원을 받게 하고 예체능 재능을 기반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다시 반문을 해봅니다. 미국이 부자라서? 네, 부자 맞습니다. 개인 자산 1조 원이 넘는 부호들이 가장 많은 나라이니 말이죠. 그러나 계층간 소득격차가 가장 큰 나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육은 다양성을 중요시하고 사회와 국가의 경쟁력으로 키워가고 있습니다. 예일대 입학처 차장은 사회 경제적 배경이 다양한 학생들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 노력이 학생들에게는 배움의 값진 경험으로 다가오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부유한 집안의 학생들만 진학하게 되면 교육은 걱정된다는 겁니다. 다양한 학생들로 구성된 교육이 빛을 보고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미국이 소득격차, 교육 양극화의 문제를 학교를 통해 풀어 보려 노력하는 것은 단순히 저소득층의 신분 상승만을 위한 일은 아닙니다. 미국 신시네티의 청소년 상담가인 라마르케 워드 씨(미국 신시네티 거주, 38세). 그는 뉴욕 인근 4년제 대학의 농구 장학생이었습니다. 스위스와 페루에서 프로농구선수 생활을 하다 지금은 고향에 정착했습니다. 그와 같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고향 후배들에게 꿈을 나누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상담사가 되기 위해 그는 교육학 석사 학위도 땄습니다. 워드 씨의 집은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생계를 유지할 만큼 어려워 워드 씨는 학교 수업을 마치면 하루 6시간씩 접시를 닦아야만 했습니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낸 끝에 15살에 아이 아빠가 된 워드 씨, 모든 걸 포기하고 싶던 순간, 워드 씨에겐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고교 농구팀 코치가 그의 재능을 알아본 것이었습니다. 사고뭉치였던 라마르케 워드의 마음을 움직인 선생님의 얘기는 어떤 얘기였을까요? 그는 농구를 열심히 하면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코치의 조언을 듣고 하루 1,000개씩 슈팅 연습을 하며 농구에 열정을 쏟았고 이후 미 전역 상위 100위권에 드는 우수한 성적으로 페얼리 디킨슨 대학의 전액 장학생이 됐습니다.
제작진이 그를 만났을때 그는 한 고등학교를 방문해 강연에 나섰습니다. 전교생의 40% 정도가 졸업 전 학업을 포기하는 가난한 학교의 후배들에게 힘주어 희망을 전했습니다. 남들을 탓하지 말고 개인의 책임이 중요하다, 노력하고 헌신하는 법을 배우라고... 미국이 추구하는 기회균등의 진정한 가치는 이들이 지역 사회로 돌아가 취약한 사회구조를 일으켜 세우는 인재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한국의 대학입시는 복잡해지고 대학의 등록금은 치솟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자녀들이 입학하기 어렵게 되고 있습니다. 교육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아니라 빈부의 대물림을 고착화시키는 수단이 됐다는 절망감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이유입니다. 가난의 가장 큰 문제는 미래세대의 꿈을 갉아 먹는다는 것입니다.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서구 사회가 법과 제도를 바탕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이뤄내 제 2, 제 3의 기회를 만들어 내려 노력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이 기사는 3월 8일 화요일 밤 10시 KBS 1TV 시사기획 창 [청년 대한민국 '개천의 용' 살아있나]에서 더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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