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들은 컬러 물감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입력 2016.03.12 (08:58) 수정 2016.03.1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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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무 ‘청장관전서’ 이덕무 ‘청장관전서’


한양대 국문과 정민 교수가 쓴 <책벌레와 메모광>이란 흥미진진한 책을 읽다가 이런 대목을 만났습니다.

“이덕무의 <앙엽기>는 주로 역사에 관한 내용이 많다. 하지만 화가가 사용하는 그림물감의 각종 빛깔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적은 기록도 보인다. <철경록(輟耕錄)>이란 책을 읽다가 여러 빛깔의 물감 제조 방법에 관한 내용에 흥미를 느껴 메모장을 만들어두었다. 그 뒤에 <개자원화보(芥子園畫譜)>에서 비슷하지만 설명이 훨씬 구체적인 대목을 하나 더 찾았다. 그래서 이 두 메모를 합쳐서 한 항목으로 정리한 것이다. 두 자료가 한데 묶이고 보니, 동양화의 물감 제조법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다. 아주 요긴하고 귀한 자료다.”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궁금증이 치밀어 올랐죠. 옛 그림을 그저 감상만 할 줄 알았지, 도대체 그 옛날에 그토록 형형색색 다양한 물감을 어떻게 만들어 썼는지는 전혀 몰랐으니까요. 막연한 궁금증만 갖고 있던 차에 책에서 이런 흥미로운 대목을 만났으니 절로 호기심이 발동할 밖에요.

가장 먼저 이덕무라는 분이 썼다는 <앙엽기>가 도대체 무슨 글인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금방 나오더군요. 결론만 말씀드리면 <앙엽기>는 이덕무가 펴낸 기념비적인 백과사전인 <청장관전서> 안에 수록돼 있습니다. 자, 그럼 이번엔 우리말로 번역돼 있는지 확인해야겠지요. 한문으로 된 글을 해석하는 재주가 없는 처지에 감히 원문에 도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국역 청장관전서 9~10권(왼쪽)과 ‘앙엽기’ 본문(오른쪽)국역 청장관전서 9~10권(왼쪽)과 ‘앙엽기’ 본문(오른쪽)


천만다행으로 이덕무의 <청장관전서>는 재단법인 민족문화추진회가 펴낸 우리말 번역본이 나와 있습니다. 1981년에 총 13권으로 간행된 <국역 청장관전서>입니다. 지금은 절판된 책이라 도서관 자료를 대출해 찾아보았지요. 그랬더니 <국역 청장관전서> 9권과 10권에 이덕무의 <앙엽기(盎葉記)>가 실려 있습니다.

총 8장으로 이뤄져 있는 <앙엽기>는 온갖 시시콜콜하고 자질구레한 지식을 모아 놓은 일종의 백과사전입니다. 제목만 죽 훑어봐도 정말 별의별 것들을 다 적어놓았습니다. ‘이상한 성과 이름’, ‘사람의 한 부분을 닮은 해물(海物)’, ‘부부가 아닌데 합장한 일’, ‘새·짐승·물고기 중에 몸의 크기는 다르지만 모양이 비슷한 것’, ‘사람에게 여덟 개의 구멍이 있다’ 등등 제목만 봐도 이덕무라는 분의 관심사가 얼마나 방대했던 가를 알 수 있지요.

그림에 관한 글도 제법 있어서, 제1장의 ‘서화의 능했던 가문’, ‘공민왕의 그림’, 제2장의 ‘자백마도(赭白馬圖)’, 제3장의 ‘명화의 목록’, ‘왕유가 그린 돌’, 제4장의 ‘진(晉) 나라의 글씨와 당나라 그림의 진적’, ‘권신들이 글씨와 그림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던 일’, 제6장의 ‘세 문인의 초상’ 등이 보입니다.

<앙엽기>에 실려 있다는 그림물감 제조법에 관한 글은 ‘화가(畫家)에게 소용되는 그림물감’(畫家顔色)이란 제목으로 <앙엽기> 제7장에 스물한 번째로 실려 있습니다. 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철경록>에 이렇게 되어 있다.” <철경록>이란 책에서 옮겨 적었다는 뜻이겠지요.

<철경록>은 중국 원나라 말기의 저술가인 도종의(陶宗儀)라는 분이 펴낸 수필집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원나라의 법률 제도 및 서화문예(書畵文藝)의 고정(考訂) 따위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많아 원나라 때의 사료로서 가치가 높다.”고 돼 있습니다. 1366년에 완성했고, 모두 30권으로 돼 있다는군요.

최근 기사를 찾아보면 고려시대 먹 관련 기사에 <철경록>이 등장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가 소나무를 태울 때 생기는 그을음으로 만든 먹(墨)인 송연묵(松烟墨)을 당나라에 세공으로 바쳤다는 기록이 <철경록>에 남아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덕무의 <잉여기>에도 <철경록>에서 옮겨 적은 글이 여럿 보이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화가(畫家)에게 소용되는 그림물감’이란 글입니다.

“대저 복식(服食)․기물(器物) 등을 그릴 때 소용되는 물감을 조제함에 있어, 비홍색(緋紅色, 붉은 비단과 같은 색채)은 은주(銀朱)에다 자화(紫花)를 넣어 조제하고, 도홍색(桃紅色, 복숭아꽃과 같은 색채)은 은주에다 연지(胭脂)를 넣어 조제하고, 육홍색(肉紅色, 살코기와 같은 색채)은 분(粉)을 주료(主料)로 연지를 넣어 조제하고…”

같은 빨강도 원료에 따라 색감이 다 다르죠. 이 글에 소개된 빨강은 붉은 비단과 같은 비홍, 복숭아꽃과 같은 도홍, 살코기와 같은 육홍의 세 가지입니다. 먼저 비홍색(緋紅色)의 원료인 은주(銀朱)는 수은과 황이 화합해 만들어진 광물인 주사(朱砂)를 정제해서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유황을 수은에 섞은 뒤 가열해서 만들기도 하는데요. 이것이 붉은색을 띱니다. 여기에 자줏빛이 나는 꽃을 일컫는 자화(紫花)를 섞어 비홍색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비홍색은 조선 중기 이후에 가장 많이 사용된 빨강으로, 주로 관복에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요즘의 자주색에 상당히 가까워 보이네요.

다음으로 도홍은 앞서 설명해 드린 은주(銀朱)에다가 ‘연지곤지’하는 그 연지(胭脂)를 섞어 만듭니다. 전통적으로 빨간 연지를 만든 재료는 잇꽃과 주사(朱砂)였는데요. 잇꽃은 국화과에 속하는 식물로 한자 이름이 홍화(紅花)인 점에서도 알 수 있듯 신라 시대부터 붉은색을 만드는 재료로 쓰였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한복 치마 색깔처럼 복숭아꽃 같은 분홍빛을 띱니다.

비홍색(왼쪽)과 도홍색(오른쪽)비홍색(왼쪽)과 도홍색(오른쪽)


빨간색을 만드는 주원료의 하나인 은주(銀朱)는 우리나라에선 생산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한치윤이 조카 한진서와 함께 펴낸 역사책 <해동역사>의 제26권 물산지(物産志)의 <현람(玄覽)> 편에 “조선에는 강동(岡桐)과 은주(銀朱)가 없다.”고 돼 있습니다. 중국에서 수입해다가 썼다는 뜻이겠지요.

마지막으로 육홍색은 ‘얼굴에 분 바른다’ 하는 바로 그 화장용 가루에다가 연지를 넣어 만듭니다. 날 것의 육고기 색깔을 떠올리시면 될 겁니다. 붉은색 이야기를 쓰다 보니 소설 <바람의 화원>에서 조선 후기 풍속화의 대가 신윤복의 이복형인 영복이 동생을 위해 ‘궁극의 붉은색’을 만들어주려 애쓰는 대목이 떠오르네요.

동생 윤복이 원하는 건 바로 ‘앳된 여인의 볼에 어린 홍조’를 표현할 붉은색이었습니다. 그래서 형 영복은 동생을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붉을 꽃잎을 삶아도 보고 붉은 황토를 갈아보기도 하지요.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그래서 급기야는 자신의 손바닥을 칼로 그어 피를 받아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하죠. “이 색이다. 순수한 피가 머금은 순수한 붉은색….”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얼마나 절실했으면 그랬을까 싶어집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면, 이 짧은 글에 소개된 물감 제조법은 용어부터 재료까지 지금은 과거의 흔적으로나 남은 것들이라 참 어렵습니다. 빨강 다음으로는 초록색에 관한 설명이 나옵니다. 백지록색, 흑록색, 유록색, 압두녹색… 그 뒤에는 갈색인데 그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전갈색, 형갈색, 애갈색, 응배갈색, 은갈색, 주자갈색, 우사갈색, 노갈색, 다갈색, 사향갈색, 단갈색, 산곡갈색, 고죽갈색, 호수갈색, 총백갈색, 당리갈색, 추다갈색, 서미갈색, 포도갈색, 정향갈색… 무려 20가지나 되는군요.

전갈색은 벽돌과 같은 갈색, 노갈색은 이슬과 같은 갈색, 호수갈색은 호수와 같은 갈색, 서미갈색은 쥐꼬리와 같은 갈색이랍니다. 종류도 다양합니다만 색깔 이름도 참 기가 막히게 붙였지요. 그 옛날에 같은 갈색을 이렇듯 다양하게 만들어 썼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몇 가지 특이한 색깔도 눈에 띕니다. 월색(月色)은 말 그대로 달과 같은 색채입니다. “분에다 경묵(京墨)을 넣어 조제한다”고 돼 있습니다. 분은 앞에서 말씀드렸듯 대개 쌀을 빻아 가루로 만드니까 달의 색깔과 비슷하다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겠고, 여기에 약재로 널리 쓰이는 먹 ‘경묵’을 섞어 만든다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불로홍색(不老紅色)이란 것도 있습니다. 노인의 얼굴과 같은 색상이랍니다. 이런 색까지 만들었다니 참 신기합니다. 제조법을 보니 자화(紫花)에다가 은주(銀朱)를 넣어 조제한답니다. 앞에서 소개한 비홍색(緋紅色, 붉은 비단과 같은 색채) 만드는 방법과 재료의 순서만 달랐지 같습니다. 아마도 주원료에 따라 색깔의 차이를 낸 것 같네요. 이밖에도 수달의 털과 같은 비단 색깔을 일컫는 수달전색(水獺氈色)이란 것도 눈길을 끕니다.

개자원화전개자원화전


물감 제조법이 얼마나 많았으면 본문 중간에 “그 나머지는 낱낱이 기록할 수 없으니 그 상황에 맞추어 물감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적고는 물감을 조제 사용하는 데 섬세한 색상의 종류를 두청(頭靑), 이청(二靑), 삼청(三靑) 하는 식으로 또 죽 열거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이덕무의 그림물감 탐구는 다음 책으로 이어집니다. 이번엔 <개자원화보(芥子園畫譜)>(‘개자원화전’이라고도 합니다.)란 책에서 관련 대목을 옮겨 놓았습니다. <개자원화보>는 청나라 화가 왕개(王槪)가 지은 회화 입문서입니다. 그림을 배우는 데 꼭 필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당시 청나라뿐 아니라 조선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미술책이었다고 하는데요. 이 책에 그림물감의 재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붙어 있어서, 이덕무가 그 내용을 <앙엽기>에 옮겨 놓았습니다.

파랑, 초록, 빨강, 노랑에 해당하는 석청(石靑), 석록(石綠), 은주(銀朱), 석황(石黃) 등 각 재료의 특성과 제조법, 사용법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어렵고 전문적이니 여기에 따로 옮기진 않겠습니다.

주사(왼쪽)과 석황(오른쪽)주사(왼쪽)과 석황(오른쪽)


정민 교수의 <책벌레와 메모광>을 읽다 보니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한평생 손에서 책과 붓을 놓지 않았던 이덕무라는 분의 그 도저한 학구열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책을 구하기조차 쉽지 않았던 시절, 누가 어떤 책을 입수했다는 이야기만 들리면 구해다 읽고 손수 베껴서 간직하지 않고는 성에 차지 않았던 꼬장꼬장한 서생의 그 열정이 깨알 같이 써내려간 <앙엽기> 안에 절절하게 배어 있으니까요.

옛사람의 독서는 이렇듯 지독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림물감에 관한 내용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사실 위에 소개해드린 내용을 보시면 잘 아시겠지만 그 옛날 그림물감 재료는 상당 부분 약재(藥材)였습니다. 그래서 물감을 만드는 것이 병을 낫게 하는 약을 조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요. 정성도 정성이었겠지만 가격도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조선시대에는 파랑새의 깃털에서 뽑아낸 파란색 물감을 화려한 궁중 장신구 만드는 재료로 썼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들은 적이 있어요. 혹시 지금 파랑새가 자취를 감춘 게 그 때문일까요? 아무튼 물감 하나도 귀했고, 그걸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도 귀했던 시절이었을 겁니다. 소설 <바람의 화원>에도 물감에 관한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한 대목을 옮겨봅니다.

“(도화서) 화원들이 색을 쓰지 못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것은 색을 내는 안료를 구하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쪽과 함께 푸른색을 내는 석청(石淸)은 중국에서도 멀리 서역 너머에서 들여왔다. 황색을 내는 등황은 안남(베트남)에서 배를 타고 더 들어가는 섬나라의 나무에서 채취해야 했다. 구하기도 힘들지만,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가격도 천정부지였다. 돈 많은 양반의 초상화나 어진을 그릴 때는 그나마 구하기 쉬운 황색 계통의 안료가 쓰일 따름이었다.”

파랑새(왼쪽)와 조선시대 궁중 장신구(오른쪽)파랑새(왼쪽)와 조선시대 궁중 장신구(오른쪽)


이랬던 사정을 알고 나면 옛 그림을 보는 우리의 마음가짐도 달라지지 않을 수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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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사람들은 컬러 물감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 입력 2016-03-12 08:58:47
    • 수정2016-03-12 15:15:07
    컬처 스토리
 이덕무 ‘청장관전서’

한양대 국문과 정민 교수가 쓴 <책벌레와 메모광>이란 흥미진진한 책을 읽다가 이런 대목을 만났습니다.

“이덕무의 <앙엽기>는 주로 역사에 관한 내용이 많다. 하지만 화가가 사용하는 그림물감의 각종 빛깔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적은 기록도 보인다. <철경록(輟耕錄)>이란 책을 읽다가 여러 빛깔의 물감 제조 방법에 관한 내용에 흥미를 느껴 메모장을 만들어두었다. 그 뒤에 <개자원화보(芥子園畫譜)>에서 비슷하지만 설명이 훨씬 구체적인 대목을 하나 더 찾았다. 그래서 이 두 메모를 합쳐서 한 항목으로 정리한 것이다. 두 자료가 한데 묶이고 보니, 동양화의 물감 제조법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다. 아주 요긴하고 귀한 자료다.”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궁금증이 치밀어 올랐죠. 옛 그림을 그저 감상만 할 줄 알았지, 도대체 그 옛날에 그토록 형형색색 다양한 물감을 어떻게 만들어 썼는지는 전혀 몰랐으니까요. 막연한 궁금증만 갖고 있던 차에 책에서 이런 흥미로운 대목을 만났으니 절로 호기심이 발동할 밖에요.

가장 먼저 이덕무라는 분이 썼다는 <앙엽기>가 도대체 무슨 글인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금방 나오더군요. 결론만 말씀드리면 <앙엽기>는 이덕무가 펴낸 기념비적인 백과사전인 <청장관전서> 안에 수록돼 있습니다. 자, 그럼 이번엔 우리말로 번역돼 있는지 확인해야겠지요. 한문으로 된 글을 해석하는 재주가 없는 처지에 감히 원문에 도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국역 청장관전서 9~10권(왼쪽)과 ‘앙엽기’ 본문(오른쪽)

천만다행으로 이덕무의 <청장관전서>는 재단법인 민족문화추진회가 펴낸 우리말 번역본이 나와 있습니다. 1981년에 총 13권으로 간행된 <국역 청장관전서>입니다. 지금은 절판된 책이라 도서관 자료를 대출해 찾아보았지요. 그랬더니 <국역 청장관전서> 9권과 10권에 이덕무의 <앙엽기(盎葉記)>가 실려 있습니다.

총 8장으로 이뤄져 있는 <앙엽기>는 온갖 시시콜콜하고 자질구레한 지식을 모아 놓은 일종의 백과사전입니다. 제목만 죽 훑어봐도 정말 별의별 것들을 다 적어놓았습니다. ‘이상한 성과 이름’, ‘사람의 한 부분을 닮은 해물(海物)’, ‘부부가 아닌데 합장한 일’, ‘새·짐승·물고기 중에 몸의 크기는 다르지만 모양이 비슷한 것’, ‘사람에게 여덟 개의 구멍이 있다’ 등등 제목만 봐도 이덕무라는 분의 관심사가 얼마나 방대했던 가를 알 수 있지요.

그림에 관한 글도 제법 있어서, 제1장의 ‘서화의 능했던 가문’, ‘공민왕의 그림’, 제2장의 ‘자백마도(赭白馬圖)’, 제3장의 ‘명화의 목록’, ‘왕유가 그린 돌’, 제4장의 ‘진(晉) 나라의 글씨와 당나라 그림의 진적’, ‘권신들이 글씨와 그림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던 일’, 제6장의 ‘세 문인의 초상’ 등이 보입니다.

<앙엽기>에 실려 있다는 그림물감 제조법에 관한 글은 ‘화가(畫家)에게 소용되는 그림물감’(畫家顔色)이란 제목으로 <앙엽기> 제7장에 스물한 번째로 실려 있습니다. 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철경록>에 이렇게 되어 있다.” <철경록>이란 책에서 옮겨 적었다는 뜻이겠지요.

<철경록>은 중국 원나라 말기의 저술가인 도종의(陶宗儀)라는 분이 펴낸 수필집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원나라의 법률 제도 및 서화문예(書畵文藝)의 고정(考訂) 따위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많아 원나라 때의 사료로서 가치가 높다.”고 돼 있습니다. 1366년에 완성했고, 모두 30권으로 돼 있다는군요.

최근 기사를 찾아보면 고려시대 먹 관련 기사에 <철경록>이 등장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가 소나무를 태울 때 생기는 그을음으로 만든 먹(墨)인 송연묵(松烟墨)을 당나라에 세공으로 바쳤다는 기록이 <철경록>에 남아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덕무의 <잉여기>에도 <철경록>에서 옮겨 적은 글이 여럿 보이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화가(畫家)에게 소용되는 그림물감’이란 글입니다.

“대저 복식(服食)․기물(器物) 등을 그릴 때 소용되는 물감을 조제함에 있어, 비홍색(緋紅色, 붉은 비단과 같은 색채)은 은주(銀朱)에다 자화(紫花)를 넣어 조제하고, 도홍색(桃紅色, 복숭아꽃과 같은 색채)은 은주에다 연지(胭脂)를 넣어 조제하고, 육홍색(肉紅色, 살코기와 같은 색채)은 분(粉)을 주료(主料)로 연지를 넣어 조제하고…”

같은 빨강도 원료에 따라 색감이 다 다르죠. 이 글에 소개된 빨강은 붉은 비단과 같은 비홍, 복숭아꽃과 같은 도홍, 살코기와 같은 육홍의 세 가지입니다. 먼저 비홍색(緋紅色)의 원료인 은주(銀朱)는 수은과 황이 화합해 만들어진 광물인 주사(朱砂)를 정제해서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유황을 수은에 섞은 뒤 가열해서 만들기도 하는데요. 이것이 붉은색을 띱니다. 여기에 자줏빛이 나는 꽃을 일컫는 자화(紫花)를 섞어 비홍색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비홍색은 조선 중기 이후에 가장 많이 사용된 빨강으로, 주로 관복에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요즘의 자주색에 상당히 가까워 보이네요.

다음으로 도홍은 앞서 설명해 드린 은주(銀朱)에다가 ‘연지곤지’하는 그 연지(胭脂)를 섞어 만듭니다. 전통적으로 빨간 연지를 만든 재료는 잇꽃과 주사(朱砂)였는데요. 잇꽃은 국화과에 속하는 식물로 한자 이름이 홍화(紅花)인 점에서도 알 수 있듯 신라 시대부터 붉은색을 만드는 재료로 쓰였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한복 치마 색깔처럼 복숭아꽃 같은 분홍빛을 띱니다.

비홍색(왼쪽)과 도홍색(오른쪽)

빨간색을 만드는 주원료의 하나인 은주(銀朱)는 우리나라에선 생산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한치윤이 조카 한진서와 함께 펴낸 역사책 <해동역사>의 제26권 물산지(物産志)의 <현람(玄覽)> 편에 “조선에는 강동(岡桐)과 은주(銀朱)가 없다.”고 돼 있습니다. 중국에서 수입해다가 썼다는 뜻이겠지요.

마지막으로 육홍색은 ‘얼굴에 분 바른다’ 하는 바로 그 화장용 가루에다가 연지를 넣어 만듭니다. 날 것의 육고기 색깔을 떠올리시면 될 겁니다. 붉은색 이야기를 쓰다 보니 소설 <바람의 화원>에서 조선 후기 풍속화의 대가 신윤복의 이복형인 영복이 동생을 위해 ‘궁극의 붉은색’을 만들어주려 애쓰는 대목이 떠오르네요.

동생 윤복이 원하는 건 바로 ‘앳된 여인의 볼에 어린 홍조’를 표현할 붉은색이었습니다. 그래서 형 영복은 동생을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붉을 꽃잎을 삶아도 보고 붉은 황토를 갈아보기도 하지요.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그래서 급기야는 자신의 손바닥을 칼로 그어 피를 받아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하죠. “이 색이다. 순수한 피가 머금은 순수한 붉은색….”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얼마나 절실했으면 그랬을까 싶어집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면, 이 짧은 글에 소개된 물감 제조법은 용어부터 재료까지 지금은 과거의 흔적으로나 남은 것들이라 참 어렵습니다. 빨강 다음으로는 초록색에 관한 설명이 나옵니다. 백지록색, 흑록색, 유록색, 압두녹색… 그 뒤에는 갈색인데 그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전갈색, 형갈색, 애갈색, 응배갈색, 은갈색, 주자갈색, 우사갈색, 노갈색, 다갈색, 사향갈색, 단갈색, 산곡갈색, 고죽갈색, 호수갈색, 총백갈색, 당리갈색, 추다갈색, 서미갈색, 포도갈색, 정향갈색… 무려 20가지나 되는군요.

전갈색은 벽돌과 같은 갈색, 노갈색은 이슬과 같은 갈색, 호수갈색은 호수와 같은 갈색, 서미갈색은 쥐꼬리와 같은 갈색이랍니다. 종류도 다양합니다만 색깔 이름도 참 기가 막히게 붙였지요. 그 옛날에 같은 갈색을 이렇듯 다양하게 만들어 썼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몇 가지 특이한 색깔도 눈에 띕니다. 월색(月色)은 말 그대로 달과 같은 색채입니다. “분에다 경묵(京墨)을 넣어 조제한다”고 돼 있습니다. 분은 앞에서 말씀드렸듯 대개 쌀을 빻아 가루로 만드니까 달의 색깔과 비슷하다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겠고, 여기에 약재로 널리 쓰이는 먹 ‘경묵’을 섞어 만든다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불로홍색(不老紅色)이란 것도 있습니다. 노인의 얼굴과 같은 색상이랍니다. 이런 색까지 만들었다니 참 신기합니다. 제조법을 보니 자화(紫花)에다가 은주(銀朱)를 넣어 조제한답니다. 앞에서 소개한 비홍색(緋紅色, 붉은 비단과 같은 색채) 만드는 방법과 재료의 순서만 달랐지 같습니다. 아마도 주원료에 따라 색깔의 차이를 낸 것 같네요. 이밖에도 수달의 털과 같은 비단 색깔을 일컫는 수달전색(水獺氈色)이란 것도 눈길을 끕니다.

개자원화전

물감 제조법이 얼마나 많았으면 본문 중간에 “그 나머지는 낱낱이 기록할 수 없으니 그 상황에 맞추어 물감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적고는 물감을 조제 사용하는 데 섬세한 색상의 종류를 두청(頭靑), 이청(二靑), 삼청(三靑) 하는 식으로 또 죽 열거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이덕무의 그림물감 탐구는 다음 책으로 이어집니다. 이번엔 <개자원화보(芥子園畫譜)>(‘개자원화전’이라고도 합니다.)란 책에서 관련 대목을 옮겨 놓았습니다. <개자원화보>는 청나라 화가 왕개(王槪)가 지은 회화 입문서입니다. 그림을 배우는 데 꼭 필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당시 청나라뿐 아니라 조선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미술책이었다고 하는데요. 이 책에 그림물감의 재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붙어 있어서, 이덕무가 그 내용을 <앙엽기>에 옮겨 놓았습니다.

파랑, 초록, 빨강, 노랑에 해당하는 석청(石靑), 석록(石綠), 은주(銀朱), 석황(石黃) 등 각 재료의 특성과 제조법, 사용법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어렵고 전문적이니 여기에 따로 옮기진 않겠습니다.

주사(왼쪽)과 석황(오른쪽)

정민 교수의 <책벌레와 메모광>을 읽다 보니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한평생 손에서 책과 붓을 놓지 않았던 이덕무라는 분의 그 도저한 학구열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책을 구하기조차 쉽지 않았던 시절, 누가 어떤 책을 입수했다는 이야기만 들리면 구해다 읽고 손수 베껴서 간직하지 않고는 성에 차지 않았던 꼬장꼬장한 서생의 그 열정이 깨알 같이 써내려간 <앙엽기> 안에 절절하게 배어 있으니까요.

옛사람의 독서는 이렇듯 지독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림물감에 관한 내용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사실 위에 소개해드린 내용을 보시면 잘 아시겠지만 그 옛날 그림물감 재료는 상당 부분 약재(藥材)였습니다. 그래서 물감을 만드는 것이 병을 낫게 하는 약을 조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요. 정성도 정성이었겠지만 가격도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조선시대에는 파랑새의 깃털에서 뽑아낸 파란색 물감을 화려한 궁중 장신구 만드는 재료로 썼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들은 적이 있어요. 혹시 지금 파랑새가 자취를 감춘 게 그 때문일까요? 아무튼 물감 하나도 귀했고, 그걸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도 귀했던 시절이었을 겁니다. 소설 <바람의 화원>에도 물감에 관한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한 대목을 옮겨봅니다.

“(도화서) 화원들이 색을 쓰지 못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것은 색을 내는 안료를 구하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쪽과 함께 푸른색을 내는 석청(石淸)은 중국에서도 멀리 서역 너머에서 들여왔다. 황색을 내는 등황은 안남(베트남)에서 배를 타고 더 들어가는 섬나라의 나무에서 채취해야 했다. 구하기도 힘들지만,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가격도 천정부지였다. 돈 많은 양반의 초상화나 어진을 그릴 때는 그나마 구하기 쉬운 황색 계통의 안료가 쓰일 따름이었다.”

파랑새(왼쪽)와 조선시대 궁중 장신구(오른쪽)

이랬던 사정을 알고 나면 옛 그림을 보는 우리의 마음가짐도 달라지지 않을 수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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