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시선] 신인배우의 산실, 독립영화가 흔들린다

입력 2016.03.16 (10:13) 수정 2016.03.2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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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희 영화평론가
여러분은 지난 1년 동안 한국 독립영화 몇 편이나 보셨나요? 독립영화가 뭐냐고요? 대자본의 투자를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제작비를 조달해서 만드는 그런 영화를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투자자의 입김이 없죠. ‘감독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이런 매력과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독립영화는요.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는 산실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요즘에는 독립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쉽지 않고 개봉하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오늘 까칠한 시선에서 짚어봅니다.

최근에 인기리에 방영 중인 한 케이블 드라마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배우죠. 바로 이제훈입니다. 사실 배우 이제훈이 충무로의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지난 2011년에 개봉했던 독립영화 <파수꾼>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반항기 가득한 고교생으로 출연해서 굉장히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는데요. 영화가 모은 관객은 2만 명. 그러나 이제훈이라는 재능을 알린 결정적인 작품이 됐죠.

지난 1월에 종영한 또 다른 인기 케이블 드라마에는 유독 독립영화에서 얼굴을 알린 배우들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드라마 출연 배우 가운데 대입학력고사 6수생으로 등장한 안재홍. 일찍이 <족구왕>이라는 독립영화로 얼굴을 알린 배우입니다. 지난 2014년 여름에 개봉했던 <족구왕>은 학교 내 족구대회에 출전하는 대학생들의 좌충우돌을 코믹한 터치로 담아냈던 작품이었죠. 총관객 수는 4만6천 명. 그러나 이 영화 역시 안재홍이라는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 커다란 발판이 됐죠.
같은 드라마에서 서울대생 보라로 등장한 류혜영은 어떻습니까. 그녀 역시 독립영화에서 개성과 재능을 먼저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바로 2013년에 나왔던 <잉투기>라는 아주 발칙한 영화였죠. 이 영화에서 류혜영은 욕구 불만을 먹방(먹는 방송)으로 해소하는, 특이한 격투기 소녀 영자 역을 맡아서 이미 될성부른 나무임을 입증했습니다.

자, 이런 사실은 뭘 말하는 걸까요. 독립 영화는 새로운 개성과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는 산실 역할을 톡톡히 담당하고 있단 얘기죠. 그런데요. 그런데 말씀입니다. 최근 들어서 독립 영화를 만난다는 게 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독립영화들이 상영될 기회가 사실상 축소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말에 서울에 대표적인 예술 독립영화 전용관이었던 '시네코드 선재'가 운영난으로 문을 닫았고요. 올초에는 강릉의 역시 예술 영화관인 '신영극장'이 폐관했습니다. 앞서서 '거제 아트 시네마' 역시 재정난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이렇게 운영난으로 문을 닫는 곳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기댈 곳은 그나마 영화 진흥위원회가 주는 보조금인데요. 그런데 보조금을 받으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지정 위탁 단체가 선정한 한 달, 네 편의 영화 가운데 두 편을 지정한 요일과 회차에 맞춰서 틀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단 독립영화 입장에선 선정하는 네 편 안에 무조건 들어야겠죠. 그렇게 뽑혔다고 해도 개봉될 확률은 50%입니다. 한마디로 극장들의 자율성을 줄이고 예술 영화와 독립 영화의 프로그래밍을 영화진흥위원회가 알아서 하겠다는 건데요. 독립영화인들이 이 정책에 반발하고 나서는 건 어쩌면 당연하겠죠.

한 나라의 영화 산업이 얼마나 건강한지 아닌지를 따지려면 그 나라의 영화 문화가 얼마나 다양한지 또 독립영화를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멀티플렉스에 가면 온통 상업영화 일색이고요. 독립영화 전용관들은 속속 문을 닫고 있습니다. 상영 기회가 줄어들면 독립영화는 만든다고 한들, 큰 의미가 없겠죠. 영화계의 어린 새싹들의 재능과 개성을 우리 스스로 짓밟고 있는 건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구 동성아트홀은 재개관하여 내용을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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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까칠한 시선] 신인배우의 산실, 독립영화가 흔들린다
    • 입력 2016-03-16 10:13:09
    • 수정2016-03-29 17:07:05
    까칠한 시선
최광희 영화평론가
여러분은 지난 1년 동안 한국 독립영화 몇 편이나 보셨나요? 독립영화가 뭐냐고요? 대자본의 투자를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제작비를 조달해서 만드는 그런 영화를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투자자의 입김이 없죠. ‘감독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이런 매력과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독립영화는요.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는 산실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요즘에는 독립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쉽지 않고 개봉하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오늘 까칠한 시선에서 짚어봅니다.

최근에 인기리에 방영 중인 한 케이블 드라마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배우죠. 바로 이제훈입니다. 사실 배우 이제훈이 충무로의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지난 2011년에 개봉했던 독립영화 <파수꾼>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반항기 가득한 고교생으로 출연해서 굉장히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는데요. 영화가 모은 관객은 2만 명. 그러나 이제훈이라는 재능을 알린 결정적인 작품이 됐죠.

지난 1월에 종영한 또 다른 인기 케이블 드라마에는 유독 독립영화에서 얼굴을 알린 배우들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드라마 출연 배우 가운데 대입학력고사 6수생으로 등장한 안재홍. 일찍이 <족구왕>이라는 독립영화로 얼굴을 알린 배우입니다. 지난 2014년 여름에 개봉했던 <족구왕>은 학교 내 족구대회에 출전하는 대학생들의 좌충우돌을 코믹한 터치로 담아냈던 작품이었죠. 총관객 수는 4만6천 명. 그러나 이 영화 역시 안재홍이라는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 커다란 발판이 됐죠.
같은 드라마에서 서울대생 보라로 등장한 류혜영은 어떻습니까. 그녀 역시 독립영화에서 개성과 재능을 먼저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바로 2013년에 나왔던 <잉투기>라는 아주 발칙한 영화였죠. 이 영화에서 류혜영은 욕구 불만을 먹방(먹는 방송)으로 해소하는, 특이한 격투기 소녀 영자 역을 맡아서 이미 될성부른 나무임을 입증했습니다.

자, 이런 사실은 뭘 말하는 걸까요. 독립 영화는 새로운 개성과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는 산실 역할을 톡톡히 담당하고 있단 얘기죠. 그런데요. 그런데 말씀입니다. 최근 들어서 독립 영화를 만난다는 게 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독립영화들이 상영될 기회가 사실상 축소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말에 서울에 대표적인 예술 독립영화 전용관이었던 '시네코드 선재'가 운영난으로 문을 닫았고요. 올초에는 강릉의 역시 예술 영화관인 '신영극장'이 폐관했습니다. 앞서서 '거제 아트 시네마' 역시 재정난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이렇게 운영난으로 문을 닫는 곳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기댈 곳은 그나마 영화 진흥위원회가 주는 보조금인데요. 그런데 보조금을 받으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지정 위탁 단체가 선정한 한 달, 네 편의 영화 가운데 두 편을 지정한 요일과 회차에 맞춰서 틀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단 독립영화 입장에선 선정하는 네 편 안에 무조건 들어야겠죠. 그렇게 뽑혔다고 해도 개봉될 확률은 50%입니다. 한마디로 극장들의 자율성을 줄이고 예술 영화와 독립 영화의 프로그래밍을 영화진흥위원회가 알아서 하겠다는 건데요. 독립영화인들이 이 정책에 반발하고 나서는 건 어쩌면 당연하겠죠.

한 나라의 영화 산업이 얼마나 건강한지 아닌지를 따지려면 그 나라의 영화 문화가 얼마나 다양한지 또 독립영화를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멀티플렉스에 가면 온통 상업영화 일색이고요. 독립영화 전용관들은 속속 문을 닫고 있습니다. 상영 기회가 줄어들면 독립영화는 만든다고 한들, 큰 의미가 없겠죠. 영화계의 어린 새싹들의 재능과 개성을 우리 스스로 짓밟고 있는 건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구 동성아트홀은 재개관하여 내용을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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