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사상 최대 위기’…왜?

입력 2016.03.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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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이 지금 대혼란에 빠졌다. 사상 최대 규모인 300만 명 이상의 거리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대통령은 의회에서 탄핵에 몰리고,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던 대통령이 다음 정부의 장관으로 임명되자 법원에선 이를 무효라고 결정하고, 다시 거리에선 찬반 시위대가 맞붙고 있다. 브라질 역사상 처음 있는 일들이 몇 주 사이에 숨 가쁘게 벌어지고 있다.

현지 시각으로 17일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에선 이색적인 취임식이 벌어졌다. 전직 대통령이었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71세) 전 대통령이 수석장관으로 취임한 것이다. 룰라는 현 지우마 호세프(69세) 대통령을 정계에 입문시키고 멘토 역할을 해서 대통령으로 키운 사람이다. 그런 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5년 만에 장관으로 임명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룰라 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가. 재임 시절 브라질을 세계 7위 규모의 경제 대국으로 끌어올리고 서민들의 삶을 안정시켜 세계의 모델이 되도록 만든 좌파출신의 정치인. 초등학교 학력으로 사회의 밑바닥 삶을 전전하다 철강노조를 이끌며 정치에 입문해 노동자당을 세우고 대통령이 된 사람. 그리고 재선에 성공해 임기를 마칠 때 지지율이 83%를 기록할 정도로 브라질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대통령이다.

취임 직후도 아니고 퇴임 때 이처럼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것은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라 오바마 대통령도 칭찬과 부러움을 표시할 정도로 룰라 대통령은 세계의 이목을 받은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퇴임 이후 5년이나 지난 지금 다시 장관이라는 하찮은(?) 자리로 정계에 복귀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브라질 최대의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브라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최근 룰라는 남부 파라나 주 법원의 지시에 따라 부패 혐의로 경찰에 강제구인돼 조사를 받았다. 이어 상파울루 주 검찰이 법원에 룰라에 대한 예방적 구금을 요청했다.

이처럼 대통령 시절에 부정부패를 저질렀다는 혐의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나서고 법원이 재판에 나서려 하자 이를 피하려고 장관에 취임한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왜냐하면 브라질에선 연방정부 각료가 되면 주 검찰의 수사나 지역 연방법원 판사의 재판으로부터 면책되고 연방검찰의 수사와 연방대법관이 주관하는 재판만 받는 특권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룰라 전 대통령의 수석장관 취임식은 애초 오는 22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일정이 앞당겨졌다. 법적인 분쟁을 피하려는 조치일 개연성이 높다. 왜냐하면 브라질리아 연방법원이 이날 오전 룰라의 수석장관 취임식이 열린 직후 효력정지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결정을 내린 카타 프레타 판사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룰라를 둘러싼 비리 의혹에 관해 해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를 수석장관에 임명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프레타 판사는 "취임식이 이미 이뤄졌지만, 이 결정에 관한 절차가 끝날 때까지 효력이 정지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부 측은 연방법원에 즉각 이의를 제기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법원이 효력정지 결정 이후 룰라의 장관 임명과 면책특권이 유효한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법원 결정이 기각되기 전까지는 유효하기 때문에 정부는 이를 무시할 수 없다며 룰라가 아직 장관이 아니라는 해석과, 이미 취임식이 열렸다면 최종 결정이 있기 전엔 법원 결정이 효력을 가질 수 없어 그동안 룰라는 공식 장관 역할을 할 수는 없겠지만, 장관으로서의 면책 특권을 누릴 수 있다는 주장이 맞서며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룰라의 수석장관 취임식에 맞춰 주요 도시에서는 찬-반 시위가 벌어졌다. 브라질리아 대통령궁 앞에서는 룰라와 호세프 지지자들과 반정부 시위대가 충돌해 부상자가 발생했다. 상파울루 시에서는 이날 출근 시간부터 수백 명의 시민단체 회원들이 도로를 점거한 채 시위를 벌였다.

부정부패를 일삼은 노동자당과 현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며 룰라를 장관으로 삼은 것을 비난하는 시위대와 지금의 집권세력보다 오히려 더 부패한 야당세력의 쿠냐 국회의장을 비난하는 노동자당 지지대가 맞불시위를 벌인 것이다.









브라질 정부조직법상 수석장관은 우리나라의 국무총리처럼 행정부처를 총괄한다. 정부 부처 간 정책 조율과 정부-의회 관계, 정부-시민·사회단체 관계 등에 관해 폭넓은 임무를 수행한다.

그래서 룰라가 수석장관을 맡은 것은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을 탄핵 위기에서 구해내고 자신을 둘러싼 사법 당국의 부패 수사를 비켜가겠다는 의도에 따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자 정치권에서는 룰라의 세 번째 임기가 시작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호세프 대통령의 영향력은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마치 러시아에서 푸틴 대통령이 2000년 대통령에 취임해 임기를 2번 연임하고 총리를 지냈다가 다시 2012년에 다시 대통령에 복귀하는 것 같은 모양새가 벌어지고 있는 꼴이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지우마 대통령이 룰라 전 대통령에게 전화한 내용이 공개되는 바람에 사태는 더 악화됐다. 파라나주의 담당 판사인 모루 판사가 감청자료를 공개한 것이다. 감청내용에는 지우마 대통령이 룰라에게 "필요한 경우에 대비해 서류(장관 임명장)를 보내겠다"는 말이 들어있다.

룰라 전 대통령과 호세프 현 대통령의 통화 내용

장관직을 수락한다는 내용의 서류를 보내 '방탄 장관'이 되도록 해주겠다는 내용으로 비칠 수 있는 전화 녹취 내용을 법원에서 공개하는 바람에 이에 격분한 브라질의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들고 일어나고 시민들은 대통령이 퇴진하라는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호세프 대통령은 오히려 룰라의 장관 취임식에서 그 서류를 들어 보이며 장관 취임절차를 위해 보내는 서류를 누가 이런 식으로 공개했는지 따지겠다고 밝혔다. 그 서류가 대통령의 합법적인 임명절차인데 누가 룰라를 보호하기 위한 음모로 녹취해 공개했는지 밝혀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탄핵당할까?

결국, 브라질 정국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브라질 의회의 탄핵 절차가 재개된 것이다.

연방하원은 17일(현지시각) 에두아르두 쿠냐 의장의 주도 아래 호세프 대통령 탄핵 절차의 첫 단계로 탄핵 문제를 심의할 특별위원회 구성에 착수했다.



앞서 쿠냐 의장은 정부회계가 재정법을 위반했다는 연방회계법원의 판결을 근거로 지난해 12월 초 호세프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하원은 비밀투표로 탄핵 특위를 구성했으나, 연방대법원이 특위를 공개투표로 구성하라고 판결하면서 탄핵 절차가 지금까지 보류됐다.

특위가 구성되면 탄핵안과 호세프 대통령의 반론에 대한 심의를 거치게 되고, 탄핵 추진에 합의가 이뤄지면 의회 표결에 부쳐진다. 탄핵안은 연방 상·하원에서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호세프 대통령 탄핵 문제는 지난 13일 역대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것을 계기로 어느 정도 동력을 회복했다는 분석이다.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에는 300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이는 과거 군사독재 정권기인 1984년에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벌어진 시위를 넘어서는 규모다.

13일 브라질에선 300만 명이 참여하는 사상 최대의 시위가 벌어졌다.13일 브라질에선 300만 명이 참여하는 사상 최대의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사법 당국의 정·재계 부패 수사와 반부패법 제정을 지지하고,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과 부패 의혹에 휩싸인 룰라 전 대통령 처벌을 촉구했다. 사상 최악으로 평가되는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을 물어 노동자당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도 터져 나왔다.

이 같은 브라질 사상 초유의 사태는 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경기침체다. 한때 세계 7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며 잘나가던 브라질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사태는 불거졌다. 과거에도 있었던, 그리고 다들 그러려니 하고 알고 묵인하다시피 했던 부정부패 문제가 살기 어려워지니까 폭발한 셈이다.

지난해 브라질의 국내총생산은 3.8% 하락했다. 실업률은 9.1%로 치솟았다. 달러 대비 브라질 헤알화의 가치는 32%나 폭락했고, 증시는 10% 넘게 떨어졌다. 물가는 10% 이상 치솟았다. 이 같은 경제지표는 1990년대 이후로 최악의 수준이다. 세계적인 경제불황 때문에 석유와 석탄 등 자원수출에 의존하던 브라질 경제가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이 같은 추세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은 브라질의 신용등급을 잇달아 내리고 있다. 피치는 올해 브라질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 2.5%에서 - 3.5%로 1%포인트 내렸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고 고용 환경 악화와 기업·개인 신용대출 부진 등이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3대 국제신용평가사 가운데 피치는 지난해 12월 브라질 국가신용등급을 투자등급의 맨 아래 단계인 'BBB-'에서 투기등급의 맨 위 단계인 'BB-'로 강등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와 무디스가 평가한 브라질 국가신용등급은 피치보다 한 단계 아래인 'BB'와 'Ba2'다.

브라질 경제는 단기간에 회복세 보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룰라가 들어선 정부가 얼마나 오래갈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브라질은 부정부패가 심한 나라로 알려졌다. 정치는 수십 개의 정당이 연합정권을 꾸리며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정부가 꾸려지면 장관 자리를 여러 당에서 나눠 가진다. 집권 노동자당(PT)뿐 아니라 과거의 집권여당이었던 현 야당 사회민주당(PSDB)도 부정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경제가 풍요로울 때 문제가 없었던 정치적 분배가, 경기침체가 이어지자 불만과 타도의 대상으로 바뀌고 있다. 정치와 정권이 부패하면 이런 문제는 언제고 터지는 법이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랴'라고 할 만한 브라질 정치가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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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라질 ‘사상 최대 위기’…왜?
    • 입력 2016-03-19 09:00:51
    취재K
 브라질이 지금 대혼란에 빠졌다. 사상 최대 규모인 300만 명 이상의 거리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대통령은 의회에서 탄핵에 몰리고,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던 대통령이 다음 정부의 장관으로 임명되자 법원에선 이를 무효라고 결정하고, 다시 거리에선 찬반 시위대가 맞붙고 있다. 브라질 역사상 처음 있는 일들이 몇 주 사이에 숨 가쁘게 벌어지고 있다.

현지 시각으로 17일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에선 이색적인 취임식이 벌어졌다. 전직 대통령이었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71세) 전 대통령이 수석장관으로 취임한 것이다. 룰라는 현 지우마 호세프(69세) 대통령을 정계에 입문시키고 멘토 역할을 해서 대통령으로 키운 사람이다. 그런 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5년 만에 장관으로 임명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룰라 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가. 재임 시절 브라질을 세계 7위 규모의 경제 대국으로 끌어올리고 서민들의 삶을 안정시켜 세계의 모델이 되도록 만든 좌파출신의 정치인. 초등학교 학력으로 사회의 밑바닥 삶을 전전하다 철강노조를 이끌며 정치에 입문해 노동자당을 세우고 대통령이 된 사람. 그리고 재선에 성공해 임기를 마칠 때 지지율이 83%를 기록할 정도로 브라질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대통령이다.

취임 직후도 아니고 퇴임 때 이처럼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것은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라 오바마 대통령도 칭찬과 부러움을 표시할 정도로 룰라 대통령은 세계의 이목을 받은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퇴임 이후 5년이나 지난 지금 다시 장관이라는 하찮은(?) 자리로 정계에 복귀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브라질 최대의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브라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최근 룰라는 남부 파라나 주 법원의 지시에 따라 부패 혐의로 경찰에 강제구인돼 조사를 받았다. 이어 상파울루 주 검찰이 법원에 룰라에 대한 예방적 구금을 요청했다.

이처럼 대통령 시절에 부정부패를 저질렀다는 혐의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나서고 법원이 재판에 나서려 하자 이를 피하려고 장관에 취임한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왜냐하면 브라질에선 연방정부 각료가 되면 주 검찰의 수사나 지역 연방법원 판사의 재판으로부터 면책되고 연방검찰의 수사와 연방대법관이 주관하는 재판만 받는 특권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룰라 전 대통령의 수석장관 취임식은 애초 오는 22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일정이 앞당겨졌다. 법적인 분쟁을 피하려는 조치일 개연성이 높다. 왜냐하면 브라질리아 연방법원이 이날 오전 룰라의 수석장관 취임식이 열린 직후 효력정지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결정을 내린 카타 프레타 판사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룰라를 둘러싼 비리 의혹에 관해 해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를 수석장관에 임명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프레타 판사는 "취임식이 이미 이뤄졌지만, 이 결정에 관한 절차가 끝날 때까지 효력이 정지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부 측은 연방법원에 즉각 이의를 제기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법원이 효력정지 결정 이후 룰라의 장관 임명과 면책특권이 유효한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법원 결정이 기각되기 전까지는 유효하기 때문에 정부는 이를 무시할 수 없다며 룰라가 아직 장관이 아니라는 해석과, 이미 취임식이 열렸다면 최종 결정이 있기 전엔 법원 결정이 효력을 가질 수 없어 그동안 룰라는 공식 장관 역할을 할 수는 없겠지만, 장관으로서의 면책 특권을 누릴 수 있다는 주장이 맞서며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룰라의 수석장관 취임식에 맞춰 주요 도시에서는 찬-반 시위가 벌어졌다. 브라질리아 대통령궁 앞에서는 룰라와 호세프 지지자들과 반정부 시위대가 충돌해 부상자가 발생했다. 상파울루 시에서는 이날 출근 시간부터 수백 명의 시민단체 회원들이 도로를 점거한 채 시위를 벌였다.

부정부패를 일삼은 노동자당과 현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며 룰라를 장관으로 삼은 것을 비난하는 시위대와 지금의 집권세력보다 오히려 더 부패한 야당세력의 쿠냐 국회의장을 비난하는 노동자당 지지대가 맞불시위를 벌인 것이다.









브라질 정부조직법상 수석장관은 우리나라의 국무총리처럼 행정부처를 총괄한다. 정부 부처 간 정책 조율과 정부-의회 관계, 정부-시민·사회단체 관계 등에 관해 폭넓은 임무를 수행한다.

그래서 룰라가 수석장관을 맡은 것은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을 탄핵 위기에서 구해내고 자신을 둘러싼 사법 당국의 부패 수사를 비켜가겠다는 의도에 따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자 정치권에서는 룰라의 세 번째 임기가 시작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호세프 대통령의 영향력은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마치 러시아에서 푸틴 대통령이 2000년 대통령에 취임해 임기를 2번 연임하고 총리를 지냈다가 다시 2012년에 다시 대통령에 복귀하는 것 같은 모양새가 벌어지고 있는 꼴이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지우마 대통령이 룰라 전 대통령에게 전화한 내용이 공개되는 바람에 사태는 더 악화됐다. 파라나주의 담당 판사인 모루 판사가 감청자료를 공개한 것이다. 감청내용에는 지우마 대통령이 룰라에게 "필요한 경우에 대비해 서류(장관 임명장)를 보내겠다"는 말이 들어있다.

룰라 전 대통령과 호세프 현 대통령의 통화 내용

장관직을 수락한다는 내용의 서류를 보내 '방탄 장관'이 되도록 해주겠다는 내용으로 비칠 수 있는 전화 녹취 내용을 법원에서 공개하는 바람에 이에 격분한 브라질의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들고 일어나고 시민들은 대통령이 퇴진하라는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호세프 대통령은 오히려 룰라의 장관 취임식에서 그 서류를 들어 보이며 장관 취임절차를 위해 보내는 서류를 누가 이런 식으로 공개했는지 따지겠다고 밝혔다. 그 서류가 대통령의 합법적인 임명절차인데 누가 룰라를 보호하기 위한 음모로 녹취해 공개했는지 밝혀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탄핵당할까?

결국, 브라질 정국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브라질 의회의 탄핵 절차가 재개된 것이다.

연방하원은 17일(현지시각) 에두아르두 쿠냐 의장의 주도 아래 호세프 대통령 탄핵 절차의 첫 단계로 탄핵 문제를 심의할 특별위원회 구성에 착수했다.



앞서 쿠냐 의장은 정부회계가 재정법을 위반했다는 연방회계법원의 판결을 근거로 지난해 12월 초 호세프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하원은 비밀투표로 탄핵 특위를 구성했으나, 연방대법원이 특위를 공개투표로 구성하라고 판결하면서 탄핵 절차가 지금까지 보류됐다.

특위가 구성되면 탄핵안과 호세프 대통령의 반론에 대한 심의를 거치게 되고, 탄핵 추진에 합의가 이뤄지면 의회 표결에 부쳐진다. 탄핵안은 연방 상·하원에서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호세프 대통령 탄핵 문제는 지난 13일 역대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것을 계기로 어느 정도 동력을 회복했다는 분석이다.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에는 300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이는 과거 군사독재 정권기인 1984년에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벌어진 시위를 넘어서는 규모다.

13일 브라질에선 300만 명이 참여하는 사상 최대의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사법 당국의 정·재계 부패 수사와 반부패법 제정을 지지하고,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과 부패 의혹에 휩싸인 룰라 전 대통령 처벌을 촉구했다. 사상 최악으로 평가되는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을 물어 노동자당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도 터져 나왔다.

이 같은 브라질 사상 초유의 사태는 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경기침체다. 한때 세계 7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며 잘나가던 브라질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사태는 불거졌다. 과거에도 있었던, 그리고 다들 그러려니 하고 알고 묵인하다시피 했던 부정부패 문제가 살기 어려워지니까 폭발한 셈이다.

지난해 브라질의 국내총생산은 3.8% 하락했다. 실업률은 9.1%로 치솟았다. 달러 대비 브라질 헤알화의 가치는 32%나 폭락했고, 증시는 10% 넘게 떨어졌다. 물가는 10% 이상 치솟았다. 이 같은 경제지표는 1990년대 이후로 최악의 수준이다. 세계적인 경제불황 때문에 석유와 석탄 등 자원수출에 의존하던 브라질 경제가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이 같은 추세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은 브라질의 신용등급을 잇달아 내리고 있다. 피치는 올해 브라질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 2.5%에서 - 3.5%로 1%포인트 내렸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고 고용 환경 악화와 기업·개인 신용대출 부진 등이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3대 국제신용평가사 가운데 피치는 지난해 12월 브라질 국가신용등급을 투자등급의 맨 아래 단계인 'BBB-'에서 투기등급의 맨 위 단계인 'BB-'로 강등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와 무디스가 평가한 브라질 국가신용등급은 피치보다 한 단계 아래인 'BB'와 'Ba2'다.

브라질 경제는 단기간에 회복세 보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룰라가 들어선 정부가 얼마나 오래갈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브라질은 부정부패가 심한 나라로 알려졌다. 정치는 수십 개의 정당이 연합정권을 꾸리며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정부가 꾸려지면 장관 자리를 여러 당에서 나눠 가진다. 집권 노동자당(PT)뿐 아니라 과거의 집권여당이었던 현 야당 사회민주당(PSDB)도 부정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경제가 풍요로울 때 문제가 없었던 정치적 분배가, 경기침체가 이어지자 불만과 타도의 대상으로 바뀌고 있다. 정치와 정권이 부패하면 이런 문제는 언제고 터지는 법이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랴'라고 할 만한 브라질 정치가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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