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新풍속도] (4) ‘유령 회사’의 시대…일자리는 어디로?

입력 2016.03.23 (10:43) 수정 2016.06.1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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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ost Company'

올해 초 미국 기업들의 고용 실태를 분석하며 미국의 한 월간지가 사용한 단어다. 우리 식으로 하면 '유령 기업' 정도로 표현해야 할까?

취지는 이렇다. 여러 기술기업(tech company)들이 몸집을 키우며 대형화하고 있는데 일자리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느냐는 것이다.

'종업원이 없는 기업'의 시대

미 브루킹스 연구소의 최신 연구를 보면 실제로 지난 20세기 동안 막대한 돈을 버는 미국 기업들은 그만큼 많은 미국인을 고용했다.

1962년에 미국 내 시가총액 5대 업체 중 한 곳인 GM은 50만 명이 넘는 근로자들을 고용했다.

GM을 포함해 5대 업체 중 4곳이 10만 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었고, 5위 업체인 IBM의 근로자도 8만 명을 넘었다.

GM은 한때 노동자 50만 명을 고용한 적도 있었다. 1950년대 GM의 생산 라인GM은 한때 노동자 50만 명을 고용한 적도 있었다. 1950년대 GM의 생산 라인


그러나 21세기 들어 상황은 달라진다. 2012년 기준으로 시가총액 상위 5개 업체 중 10만 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업체는 월마트(Walmart) 한 곳 뿐이다.

애플(Apple), 구글(Google), 엑손(Exxon),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등 다른 4개 업체는 다 합해도 종업원이 30만 명에 불과하다.



☞ [바로가기] 브루킹스 연구소 ‘21세기의 자본시장과 일자리 창출’

이윤 극대화...일자리 창출은 '뒷전'

보고서는 미국 경제가 고속 성장과 고수익 첨단 산업의 발전으로 '종업원이 없는 기업의 시대(the age of the employee-less company)'로 접어들고 있다며 구체적인 이유를 분석한다.

우선 기업들이 업무를 디지털화하면서 정규직 근로자가 덜 필요하게 됐다는 점이 꼽힌다.

자동화가 이뤄지면서 공장 근로자가 줄어들고, 부품을 생산하는 사람들(하청업체 근로자)은 근로자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유이다.

중국 후안성에 있는 GM 중국공장에서 근로자가 로봇팔을 이용해 엔진을 조립하고 있다.중국 후안성에 있는 GM 중국공장에서 근로자가 로봇팔을 이용해 엔진을 조립하고 있다.


주식시장과 주주(shareholder)들이 이윤 극대화만 추구하면서 과거 이해관계자(stakeholder)시절에 비해 종업원 고용 등 다른 가치를 도외시하고 있다는 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외로의 공장 이전이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보고서를 작성한 미시간 대학의 제리 삭스 교수는 분석한다.

독일 하노버 정보통신 박람회 '2016 세빗(CEBIT)'에서 IBM사 직원이 인공지능 로봇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독일 하노버 정보통신 박람회 '2016 세빗(CEBIT)'에서 IBM사 직원이 인공지능 로봇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문제는 대기업들의 근로자 감소 추이가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가총액이 3천억 달러(약 348조 원)에 이르는 페이스북의 정규직 근로자는 만 5천 명이 되지 않는다.

높은 주가에 수억 명이 이용하는 트위터도 5천 명을 넘지 않는다.

페이스북트위터페이스북트위터


강력한 플랫폼과 콘텐츠 등을 갖춘 글로벌 인터넷 기업들의 성장이 눈부시지만 일자리 확대와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제리 삭스 교수의 우려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우버와 같은 공유경제형 기업들의 확산도 '일자리 없는 기업의 시대'를 가속할 전망이다.

이들 기업은 소수의 정규직만 필요로 할 뿐 대부분 네트워크로 연결된 비공식 근로자들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한국도 올해 고용시장 '우울'

삼성전자 본관 깃발삼성전자 본관 깃발


눈을 국내로 돌려보면 어떨까? 삼성전자의 임직원 수가 10만 명을 돌파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불과 5년 전, 2011년의 일이다. 당시 매출액은 165조 원.

삼성전자는 이후 4년 연속 매출 200조 원을 돌파했고, 지난해 영업이익은 26조 원을 기록했다. 임직원 수는 몇 명으로 늘었을까? 지난해 말 기준 9만 9천여 명. 변화가 없다.

현대자동차 등 다른 대기업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미국의 대기업들이 올해 성장 둔화 때문에 고용을 줄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대기업 CEO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결과 '자신의 회사에서 채용보다는 감원 인력이 많을 것'이라는 응답이 다수였다는 것이다.

국내 대기업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가운데 올해 상반기 대졸 신규채용 규모를 줄이거나 아직 채용 계획조차 못 세운 곳이 3분의 2에 이른다는 게 최근 전경련의 조사결과다.

조사결과를 보면 오히려 명예퇴직 등 인력 구조조정을 염두에 두고 있는 곳이 절반을 넘는다.

삼성 협력사들의 채용 박람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삼성 협력사들의 채용 박람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국내 청년 실업률은 12.5%로 역대 최고치로 치솟았고, 전체 실업률도 4.9%로 6년 만에 가장 높은 상태로 악화했다.



이런 고용 한파는 물론 어려운 경제 상황이 절대적인 이유이다. 여기에 사내 유보금을 쌓아두고도 고용을 늘리는 데는 소홀한 기업들과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정부의 실업대책 등이 어우러진 결과이다.

"기업가, 일자리 창출자 아니다"

제리 삭스 교수는 보고서의 결론에서 미래의 경제적 안전은 과거의 경제 모델과 21세 기업들의 본성이 일치하지 않음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강조한다.

이어 그 첫 단계로, 기업가들은 일자리 창출자라는 생각이나 상장 규제를 완화하는 게 고용을 창출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말한다. 주주의 이윤 창출을 노리는 기업가 정신은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 같지 않다는 설명이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와 고용 한파가 심해지는 상황, 우리 정부가 참고할만한 분석이 아닐까?

‘[사무실 新풍속도]⑤ 아인슈타인과 처칠, 구글과 나이키의 공통점?’이 곧 이어집니다.

김종명 에디터의 [사무실 新풍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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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3-23 10:43:36
    • 수정2016-06-17 11:34:56
    사무실 新 풍속도 시즌1
'Ghost Company' 올해 초 미국 기업들의 고용 실태를 분석하며 미국의 한 월간지가 사용한 단어다. 우리 식으로 하면 '유령 기업' 정도로 표현해야 할까? 취지는 이렇다. 여러 기술기업(tech company)들이 몸집을 키우며 대형화하고 있는데 일자리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느냐는 것이다. '종업원이 없는 기업'의 시대 미 브루킹스 연구소의 최신 연구를 보면 실제로 지난 20세기 동안 막대한 돈을 버는 미국 기업들은 그만큼 많은 미국인을 고용했다. 1962년에 미국 내 시가총액 5대 업체 중 한 곳인 GM은 50만 명이 넘는 근로자들을 고용했다. GM을 포함해 5대 업체 중 4곳이 10만 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었고, 5위 업체인 IBM의 근로자도 8만 명을 넘었다. GM은 한때 노동자 50만 명을 고용한 적도 있었다. 1950년대 GM의 생산 라인 그러나 21세기 들어 상황은 달라진다. 2012년 기준으로 시가총액 상위 5개 업체 중 10만 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업체는 월마트(Walmart) 한 곳 뿐이다. 애플(Apple), 구글(Google), 엑손(Exxon),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등 다른 4개 업체는 다 합해도 종업원이 30만 명에 불과하다. ☞ [바로가기] 브루킹스 연구소 ‘21세기의 자본시장과 일자리 창출’ 이윤 극대화...일자리 창출은 '뒷전' 보고서는 미국 경제가 고속 성장과 고수익 첨단 산업의 발전으로 '종업원이 없는 기업의 시대(the age of the employee-less company)'로 접어들고 있다며 구체적인 이유를 분석한다. 우선 기업들이 업무를 디지털화하면서 정규직 근로자가 덜 필요하게 됐다는 점이 꼽힌다. 자동화가 이뤄지면서 공장 근로자가 줄어들고, 부품을 생산하는 사람들(하청업체 근로자)은 근로자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유이다. 중국 후안성에 있는 GM 중국공장에서 근로자가 로봇팔을 이용해 엔진을 조립하고 있다. 주식시장과 주주(shareholder)들이 이윤 극대화만 추구하면서 과거 이해관계자(stakeholder)시절에 비해 종업원 고용 등 다른 가치를 도외시하고 있다는 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외로의 공장 이전이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보고서를 작성한 미시간 대학의 제리 삭스 교수는 분석한다. 독일 하노버 정보통신 박람회 '2016 세빗(CEBIT)'에서 IBM사 직원이 인공지능 로봇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문제는 대기업들의 근로자 감소 추이가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가총액이 3천억 달러(약 348조 원)에 이르는 페이스북의 정규직 근로자는 만 5천 명이 되지 않는다. 높은 주가에 수억 명이 이용하는 트위터도 5천 명을 넘지 않는다. 페이스북트위터 강력한 플랫폼과 콘텐츠 등을 갖춘 글로벌 인터넷 기업들의 성장이 눈부시지만 일자리 확대와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제리 삭스 교수의 우려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우버와 같은 공유경제형 기업들의 확산도 '일자리 없는 기업의 시대'를 가속할 전망이다. 이들 기업은 소수의 정규직만 필요로 할 뿐 대부분 네트워크로 연결된 비공식 근로자들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한국도 올해 고용시장 '우울' 삼성전자 본관 깃발 눈을 국내로 돌려보면 어떨까? 삼성전자의 임직원 수가 10만 명을 돌파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불과 5년 전, 2011년의 일이다. 당시 매출액은 165조 원. 삼성전자는 이후 4년 연속 매출 200조 원을 돌파했고, 지난해 영업이익은 26조 원을 기록했다. 임직원 수는 몇 명으로 늘었을까? 지난해 말 기준 9만 9천여 명. 변화가 없다. 현대자동차 등 다른 대기업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미국의 대기업들이 올해 성장 둔화 때문에 고용을 줄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대기업 CEO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결과 '자신의 회사에서 채용보다는 감원 인력이 많을 것'이라는 응답이 다수였다는 것이다. 국내 대기업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가운데 올해 상반기 대졸 신규채용 규모를 줄이거나 아직 채용 계획조차 못 세운 곳이 3분의 2에 이른다는 게 최근 전경련의 조사결과다. 조사결과를 보면 오히려 명예퇴직 등 인력 구조조정을 염두에 두고 있는 곳이 절반을 넘는다. 삼성 협력사들의 채용 박람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국내 청년 실업률은 12.5%로 역대 최고치로 치솟았고, 전체 실업률도 4.9%로 6년 만에 가장 높은 상태로 악화했다. 이런 고용 한파는 물론 어려운 경제 상황이 절대적인 이유이다. 여기에 사내 유보금을 쌓아두고도 고용을 늘리는 데는 소홀한 기업들과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정부의 실업대책 등이 어우러진 결과이다. "기업가, 일자리 창출자 아니다" 제리 삭스 교수는 보고서의 결론에서 미래의 경제적 안전은 과거의 경제 모델과 21세 기업들의 본성이 일치하지 않음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강조한다. 이어 그 첫 단계로, 기업가들은 일자리 창출자라는 생각이나 상장 규제를 완화하는 게 고용을 창출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말한다. 주주의 이윤 창출을 노리는 기업가 정신은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 같지 않다는 설명이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와 고용 한파가 심해지는 상황, 우리 정부가 참고할만한 분석이 아닐까? ‘[사무실 新풍속도]⑤ 아인슈타인과 처칠, 구글과 나이키의 공통점?’이 곧 이어집니다. 김종명 에디터의 [사무실 新풍속도] ☞ ① “점심은 얼간이들이나 먹는거야” ☞ ② 변기보다 400배 지저분한 ‘세균 폭탄’…그곳에서 음식을? ☞ ③ 당신의 점심시간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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