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지 않아도 괜찮아!] ③ 미 여학생 스포츠의 이상한(?) 전통

입력 2016.03.2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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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 여자 소프트볼 경기장.

땅.. 호쾌한 타격음과 함께 타자와 주자들이 베이스를 질주한다.

그런데 발목을 접질린 2루 주자가 그라운드에 쓰러진다. 힘겹게 일어나 달려보지만,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절뚝거린다. 동료들이 힘을 내라고 목청껏 응원해 주지만, 규정상 직접 주자를 도울 순 없다. 도움을 받는 순간 아웃이 선언되기 때문이다.

이때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다. 주자를 아웃시켜야 할 상대 팀 수비수들이 주자를 부축하기 시작한다. 주자를 번쩍 들어 3루 베이스를 밟도록 도와주는가 하면 홈 베이스까지 밟고 득점을 기록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미국 대학 소프트볼 경기 중 부상 당한 주자를 수비 팀 선수들이 도와주고 있다.미국 대학 소프트볼 경기 중 부상 당한 주자를 수비 팀 선수들이 도와주고 있다.


부상당한 상대 팀 선수를 돕는 이 아름다운 전통은 지난 2008년 시작됐다.

미국 대학스포츠연맹(NCAA) 여자 소프트볼 리그가 열린 워싱턴 엘린스버그. 2부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걸린 중요한 길목에서 지역 내 라이벌 센트럴 워싱턴 대학과 웨스턴 오레곤 대학이 맞붙었다.

2회 주자 1, 2루 상황에서 웨스턴 오레곤 대학의 사라(Sarah Tucholsky)가 타석에 들어섰다. 4학년 사라는 신장 157cm 단신 선수로 장타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더구나 극심한 부진에 빠져 타율은 1할대에 머물러 있었다. 상대 팀 응원단의 야유가 이어졌다.

그 순간 사라의 방망이가 매섭게 돌아갔다. 가운데 펜스를 넘어가는 홈런이었다. 사라도, 동료들도, 상대 팀도 심지어 관중도 믿을 수 없었다. 사라는 평생 단 한 번도 홈런을 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생애 첫 홈런, 그것도 플레이오프가 걸린 승부처에서 터진 극적인 3점 홈런에 사라는 흥분했다. 펜스를 넘어가는 볼을 쳐다보다가 미쳐 1루 베이스를 밟지 않고 지나친 것이다.

급하게 1루로 돌아서는 순간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오른쪽 무릎 인대가 찢어진 사라는 그라운드에 쓰러지고 말았다.

홈런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홈베이스까지 달려야 했다. 심판은 동료들의 도움을 받는 순간 아웃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라는 이미 일어서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이때 상대 팀의 말로리 홀트만(Mallory Holtman)과 리즈 월러스(Liz Wallace)가 도움을 자청하고 나섰다. 말로리는 심판에게 물었다. "만약 상대 팀에서 홈베이스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주면 어떻게 되나요?" 심판은 상대 팀에서 도와주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없다고 답변했다.

결국, 공격팀의 사라가 수비팀의 말로리와 리즈의 부축을 받아 3점 홈런을 기록하는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 펼쳐졌다.

말로리와 리즈는 사라를 번쩍 들어 1루 베이스를 터치하도록 한 뒤 2루와 3루를 거쳐 그대로 홈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홈 베이스를 밟는 순간 사라와 팀 동료들은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사라의 생애 첫 홈런이자 마지막 홈런은 3점 결승 홈런으로 공식 기록에 남을 수 있었다. 말로리와 리즈의 센트럴 워싱턴 대학은 4대2로 패배했다.

여대생들이 보여준 진정한 스포츠 정신은 전국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후배들은 선배들의 자랑스러운 행동을 기념해 새로운 전통을 만들었다. 승패를 떠나 부상당한 상대 팀 선수를 도와주는 조금은 이상한(?) 전통은 이렇게 시작됐다.

학교체육은 배려와 존중이다.

"이기지 않아도 괜찮아!"

[이기지 않아도 괜찮아!]시리즈
☞ [이기지 않아도 괜찮아!] ① 자폐증 소년과 6개의 기적
☞ [이기지 않아도 괜찮아!] ② 레슬링 매트에서 빛난 아름다운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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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지 않아도 괜찮아!] ③ 미 여학생 스포츠의 이상한(?) 전통
    • 입력 2016-03-23 14:10:24
    취재K
미국 대학 여자 소프트볼 경기장.

땅.. 호쾌한 타격음과 함께 타자와 주자들이 베이스를 질주한다.

그런데 발목을 접질린 2루 주자가 그라운드에 쓰러진다. 힘겹게 일어나 달려보지만,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절뚝거린다. 동료들이 힘을 내라고 목청껏 응원해 주지만, 규정상 직접 주자를 도울 순 없다. 도움을 받는 순간 아웃이 선언되기 때문이다.

이때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다. 주자를 아웃시켜야 할 상대 팀 수비수들이 주자를 부축하기 시작한다. 주자를 번쩍 들어 3루 베이스를 밟도록 도와주는가 하면 홈 베이스까지 밟고 득점을 기록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미국 대학 소프트볼 경기 중 부상 당한 주자를 수비 팀 선수들이 도와주고 있다.

부상당한 상대 팀 선수를 돕는 이 아름다운 전통은 지난 2008년 시작됐다.

미국 대학스포츠연맹(NCAA) 여자 소프트볼 리그가 열린 워싱턴 엘린스버그. 2부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걸린 중요한 길목에서 지역 내 라이벌 센트럴 워싱턴 대학과 웨스턴 오레곤 대학이 맞붙었다.

2회 주자 1, 2루 상황에서 웨스턴 오레곤 대학의 사라(Sarah Tucholsky)가 타석에 들어섰다. 4학년 사라는 신장 157cm 단신 선수로 장타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더구나 극심한 부진에 빠져 타율은 1할대에 머물러 있었다. 상대 팀 응원단의 야유가 이어졌다.

그 순간 사라의 방망이가 매섭게 돌아갔다. 가운데 펜스를 넘어가는 홈런이었다. 사라도, 동료들도, 상대 팀도 심지어 관중도 믿을 수 없었다. 사라는 평생 단 한 번도 홈런을 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생애 첫 홈런, 그것도 플레이오프가 걸린 승부처에서 터진 극적인 3점 홈런에 사라는 흥분했다. 펜스를 넘어가는 볼을 쳐다보다가 미쳐 1루 베이스를 밟지 않고 지나친 것이다.

급하게 1루로 돌아서는 순간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오른쪽 무릎 인대가 찢어진 사라는 그라운드에 쓰러지고 말았다.

홈런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홈베이스까지 달려야 했다. 심판은 동료들의 도움을 받는 순간 아웃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라는 이미 일어서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이때 상대 팀의 말로리 홀트만(Mallory Holtman)과 리즈 월러스(Liz Wallace)가 도움을 자청하고 나섰다. 말로리는 심판에게 물었다. "만약 상대 팀에서 홈베이스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주면 어떻게 되나요?" 심판은 상대 팀에서 도와주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없다고 답변했다.

결국, 공격팀의 사라가 수비팀의 말로리와 리즈의 부축을 받아 3점 홈런을 기록하는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 펼쳐졌다.

말로리와 리즈는 사라를 번쩍 들어 1루 베이스를 터치하도록 한 뒤 2루와 3루를 거쳐 그대로 홈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홈 베이스를 밟는 순간 사라와 팀 동료들은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사라의 생애 첫 홈런이자 마지막 홈런은 3점 결승 홈런으로 공식 기록에 남을 수 있었다. 말로리와 리즈의 센트럴 워싱턴 대학은 4대2로 패배했다.

여대생들이 보여준 진정한 스포츠 정신은 전국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후배들은 선배들의 자랑스러운 행동을 기념해 새로운 전통을 만들었다. 승패를 떠나 부상당한 상대 팀 선수를 도와주는 조금은 이상한(?) 전통은 이렇게 시작됐다.

학교체육은 배려와 존중이다.

"이기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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