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밀린 양육비 대신 받아주려 하지만…

입력 2016.03.29 (08:58) 수정 2016.03.30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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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사고가 나서 척추 골절이 됐는데, 양육비가 갑자기 끊어졌다"

2년 전 이혼한 뒤 두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는 주부 정지혜 씨가 겪은 일입니다. 정 씨는 2014년 2월 이혼하면서 아이 한 명당 월 40만 원씩, 매월 80만 원의 양육비를 전남편에게 받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그해 9월 정 씨는 교통사고를 당해 척추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다음 달부터 전남편은 양육비를 뚝 끊어버렸습니다. 사고 사실을 알렸는데도 말이죠.

요양병원 간호사였던 정 씨는 사고로 직장에도 나가지 못해 생계가 막막했습니다. 다행히 2015년 2월부터 석 달은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생계 지원을 받았습니다. 생계지원이 끝날 무렵인 4월, 정 씨는 다행히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알게 돼 양육비 이행확보 지원 서비스를 신청했습니다.



정 씨는 일단 한시적양육비지급심의위원회로부터 지급 결정을 받아 지난해 7월부터 석 달 동안은 월 20만 원을 지원받았습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은 이와 동시에 정 씨의 전남편을 상대로 양육비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정 씨의 전남편은 한 공업사 생산라인의 일반사원으로 한 달 수입이 3백여만 원에 이르고, 최근 동생 명의로 승용차를 사들여 할부금까지 내고 있었습니다. 관리원이 법률구조공단에 이 사건을 위탁한 결과 밀린 양육비 800만 원에 대한 채권 압류와 추심명령이 신청됐고, 전남편의 월급을 압류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6백80여만 원의 양육비가 정 씨에게 지급됐습니다.

■ 한부모 78% "양육비 합의조차 없었다"

정 씨의 경우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전남편의 소재와 재산 상황이 파악됐기 때문입니다. 이혼할 때 양육비를 받기로 합의한 것도 도움이 됐습니다. 실제로 많은 부부가 이혼할 때 양육비에 대한 합의조차 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가족부 조사결과 한부모의 78%는 양육비 채권이 없었습니다. 양육비에 대한 합의 자체가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이 전 배우자에게 양육비를 한 푼도 받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합의가 있었다고 해도 안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육비를 받기로 한 한부모 가운데 27%는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받기 위해서는 소송을 해야 하는데, 생계에 쫓기는 한부모가족에게 소송은 쉽지 않습니다.

수백만 원의 소송비용도 부담이고, 시간도 없습니다. 한부모의 87%는 생업에 종사하고 있고, 절반 이상이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고 있으니까요.

양육비이행관리원 상담양육비이행관리원 상담


■ "양육비 소송 대신해드려요" …'양육비이행관리원' 출범 1년

그래서 정부가 대신 소송을 해주기로 하고 지난해 3월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출범했습니다. 관심은 뜨거웠습니다. 1년 동안 3만 6천 건의 상담이 쏟아졌습니다. 이 가운데 6천5백 명은 서류를 갖춰 양육비를 받아달라고 정식으로 접수했습니다. 소송을 대리한 이행원은 이 가운데 2천8백여 건에 대해 양육비를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실제로 양육비가 지급된 경우는 아직 844건에 불과합니다(2016년 2월 29일 기준). 약속은 받았는데 집행은 느립니다. 대부분 추심이나 압류를 통해 받아내는데 상대방의 재산상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주소지나 근무지를 알아낼 수 있는 권한은 관리원에 있지만, 재산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권한은 아직 없습니다. 상대방의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일일이 법원에 신청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이 같은 문제는 양육비에 대한 인식 때문에 발생합니다. 개인과 개인의 단순 채무와 다름없이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양육비가 없으면 아이는 생계를 위협받습니다. 따라서 양육비는 이혼한 상대방에 대한 빚이 아니라, 아이의 생존권이 달린 사회적 비용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아이의 양육에 대한 공동책임은 부모 모두에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엄중한 의무입니다.

■ 양육비는 사회적 책무…단순한 빚 아냐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서구 국가들은 양육비 이행 관련 기관에 강력한 권한을 주고 있습니다.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자녀 양육비 이행국'은 각 주에서 운영하는 자녀양육비 이행 기관을 지원하고, 각 이행 기관들은 부모 위치 확인 서비스를 통해 양육비를 회피한 부모 위치를 파악합니다. 국세청과 연방수사국이 보유한 관련 정보에 접근해서 재산이나 소득을 파악하기도 합니다. 양육비를 안 주면 검찰청에 지명수배까지 내립니다.

제도적으로도 미국은 양육비 2,500달러 이상을 연체하면 여권 발급을 거부하고, 이미 발행된 여권은 폐기할 수 있습니다. 양육비 채무자의 계좌 정보를 찾기 위해 금융기관들과 자료 대조도 하고 있습니다. 양육비를 먼저 지급하고, 채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유럽 국가들도 있습니다.

민감한 개인정보와 연관된 만큼, 제도 개선은 아직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양육비는 이혼한 배우자에게 줘야 하는 단순한 빚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아이의 생존을 위한 사회적 책무라는 부모의 인식 전환만큼은 절실한 상황입니다.

[연관기사] ☞ [뉴스광장] 양육비 이행관리원 1년…“13%만 돌려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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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밀린 양육비 대신 받아주려 하지만…
    • 입력 2016-03-29 08:58:16
    • 수정2016-03-30 08:22:14
    취재후·사건후
■ "교통사고가 나서 척추 골절이 됐는데, 양육비가 갑자기 끊어졌다"

2년 전 이혼한 뒤 두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는 주부 정지혜 씨가 겪은 일입니다. 정 씨는 2014년 2월 이혼하면서 아이 한 명당 월 40만 원씩, 매월 80만 원의 양육비를 전남편에게 받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그해 9월 정 씨는 교통사고를 당해 척추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다음 달부터 전남편은 양육비를 뚝 끊어버렸습니다. 사고 사실을 알렸는데도 말이죠.

요양병원 간호사였던 정 씨는 사고로 직장에도 나가지 못해 생계가 막막했습니다. 다행히 2015년 2월부터 석 달은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생계 지원을 받았습니다. 생계지원이 끝날 무렵인 4월, 정 씨는 다행히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알게 돼 양육비 이행확보 지원 서비스를 신청했습니다.



정 씨는 일단 한시적양육비지급심의위원회로부터 지급 결정을 받아 지난해 7월부터 석 달 동안은 월 20만 원을 지원받았습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은 이와 동시에 정 씨의 전남편을 상대로 양육비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정 씨의 전남편은 한 공업사 생산라인의 일반사원으로 한 달 수입이 3백여만 원에 이르고, 최근 동생 명의로 승용차를 사들여 할부금까지 내고 있었습니다. 관리원이 법률구조공단에 이 사건을 위탁한 결과 밀린 양육비 800만 원에 대한 채권 압류와 추심명령이 신청됐고, 전남편의 월급을 압류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6백80여만 원의 양육비가 정 씨에게 지급됐습니다.

■ 한부모 78% "양육비 합의조차 없었다"

정 씨의 경우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전남편의 소재와 재산 상황이 파악됐기 때문입니다. 이혼할 때 양육비를 받기로 합의한 것도 도움이 됐습니다. 실제로 많은 부부가 이혼할 때 양육비에 대한 합의조차 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가족부 조사결과 한부모의 78%는 양육비 채권이 없었습니다. 양육비에 대한 합의 자체가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이 전 배우자에게 양육비를 한 푼도 받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합의가 있었다고 해도 안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육비를 받기로 한 한부모 가운데 27%는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받기 위해서는 소송을 해야 하는데, 생계에 쫓기는 한부모가족에게 소송은 쉽지 않습니다.

수백만 원의 소송비용도 부담이고, 시간도 없습니다. 한부모의 87%는 생업에 종사하고 있고, 절반 이상이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고 있으니까요.

양육비이행관리원 상담

■ "양육비 소송 대신해드려요" …'양육비이행관리원' 출범 1년

그래서 정부가 대신 소송을 해주기로 하고 지난해 3월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출범했습니다. 관심은 뜨거웠습니다. 1년 동안 3만 6천 건의 상담이 쏟아졌습니다. 이 가운데 6천5백 명은 서류를 갖춰 양육비를 받아달라고 정식으로 접수했습니다. 소송을 대리한 이행원은 이 가운데 2천8백여 건에 대해 양육비를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실제로 양육비가 지급된 경우는 아직 844건에 불과합니다(2016년 2월 29일 기준). 약속은 받았는데 집행은 느립니다. 대부분 추심이나 압류를 통해 받아내는데 상대방의 재산상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주소지나 근무지를 알아낼 수 있는 권한은 관리원에 있지만, 재산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권한은 아직 없습니다. 상대방의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일일이 법원에 신청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이 같은 문제는 양육비에 대한 인식 때문에 발생합니다. 개인과 개인의 단순 채무와 다름없이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양육비가 없으면 아이는 생계를 위협받습니다. 따라서 양육비는 이혼한 상대방에 대한 빚이 아니라, 아이의 생존권이 달린 사회적 비용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아이의 양육에 대한 공동책임은 부모 모두에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엄중한 의무입니다.

■ 양육비는 사회적 책무…단순한 빚 아냐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서구 국가들은 양육비 이행 관련 기관에 강력한 권한을 주고 있습니다.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자녀 양육비 이행국'은 각 주에서 운영하는 자녀양육비 이행 기관을 지원하고, 각 이행 기관들은 부모 위치 확인 서비스를 통해 양육비를 회피한 부모 위치를 파악합니다. 국세청과 연방수사국이 보유한 관련 정보에 접근해서 재산이나 소득을 파악하기도 합니다. 양육비를 안 주면 검찰청에 지명수배까지 내립니다.

제도적으로도 미국은 양육비 2,500달러 이상을 연체하면 여권 발급을 거부하고, 이미 발행된 여권은 폐기할 수 있습니다. 양육비 채무자의 계좌 정보를 찾기 위해 금융기관들과 자료 대조도 하고 있습니다. 양육비를 먼저 지급하고, 채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유럽 국가들도 있습니다.

민감한 개인정보와 연관된 만큼, 제도 개선은 아직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양육비는 이혼한 배우자에게 줘야 하는 단순한 빚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아이의 생존을 위한 사회적 책무라는 부모의 인식 전환만큼은 절실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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