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eye] ‘개혁·개방’ 쿠바…변혁의 현장을 가다

입력 2016.04.02 (09:09) 수정 2016.04.0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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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녹취> 버락 오바마(미 대통령) : "냉전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쿠바를 방문해서 한 연설의 일부분입니다.

미국과 쿠바는 오랜 적대 관계를 끝내며 지난해 다시 수교했는데, 미국 대통령의 쿠바 방문은 88년 만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포기하지 말라고 역설했는데요.

이 연설은 쿠바 국민들에게 그대로 생방송 됐습니다.

고립을 벗어나 개혁 개방으로 가는 사회주의 국가 쿠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인데요,

쿠바 사회는 지금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요?

박유한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록음악의 전설 롤링 스톤스가 무대에 섰습니다.

이곳에서 록음악은 수 십 년 간 금지된 노래였습니다.

칠순의 록가수는 시간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며 더 열정적으로 노래했습니다.

무료 공연에 60만 인파가 몰렸습니다.

가수와 비슷한 연배의 노인도, 손자뻘인 젊은이도, 세대를 잊고 함께 환호했습니다.

<인터뷰> 까탈리나 에샤이(쿠바인) : "믿을 수 없어요. 너무 행복합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바뀔지 몰랐습니다. 이 열기를 보세요."

자본주의 문화의 상징이자 저항의 상징이기도 한 록음악이 울려 퍼지는 이곳은 사회주의 국가, 쿠바의 수도 아바나입니다.

공산화와 미국의 경제 제재로 50년 넘게 시간이 멈춘 듯했던 아바나, 지금은 도시 곳곳에 호텔 신축 공사가 한창입니다.

지난해 미국과, 올해 유럽연합과, 다시 수교를 했고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화물선이 드나들던 아바나항엔 대형 크루즈선이 정박해 있습니다.

어디서나 흥겨운 라틴 음악이 흘러넘치는 곳,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바나 구시가지는 서구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빕니다.

<인터뷰> 독일인 관광객 : "사람들이 아주 친절해요. 모든 사람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도 참 좋아요."

아바나에서는 50년대 미국 차들이 지금도 도로를 달립니다.

미국의 금수조치로 차 수입이 끊기면서, 차가 환갑을 넘기도록 고치고 또 고쳐 타온 겁니다.

이 오래된 차들은 냉전과 경제제재의 산물입니다만 지금은 미국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관광자원이 되고 있습니다.

쿠바를 사랑한 대문호 헤밍웨이의 유산도 미국인 관광객들을 불러들입니다.

헤밍웨이가 살던 아바나 외곽의 저택은 미국 단체 관광객들이 빠짐없이 찾는 곳입니다.

<인터뷰> 미국인 관광객 : "(쿠바 어떠세요?) 아주 좋아요. 음식이 참 좋아요. 모히토는 더 좋고요."

<인터뷰> 팀 맹키(미국인 관광객) : "쿠바 사람들이 캐나다에서 왔느냐고 묻길래 미국에서 왔다고 답했더니 내 손을 잡고 악수를 하면서 '고맙다 고맙다' 하더군요."

올여름 미국 항공사들의 직항 노선이 개설되면 미국인 관광객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교통도, 통신도 쿠바는 이제 통제 속에 단절된 나라가 아닙니다.

거리 곳곳에 와이파이가 설치됐고 쿠바의 젊은이들은, SNS로, 영상통화로 세계와 소통합니다.

<인터뷰> 야셀 아리야스야네스(쿠바인) : "여동생이 미국에 삽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인터넷으로 연결할 수 있어서 자주 대화합니다."

더 큰 변화는 자본주의 경제가 번지고 있는 겁니다.

개인이 집을 사고파는 게 허용되면서 부동산 중개업체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칸띠오요 씨도 잘 나가던 국영기업을 그만두고 부동산 중개업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지오바니 깐띠오요(부동산 중개업자) : "부동산 매매 허용으로 이민자들이 쿠바로 돌아와 정착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습니다. 물론 쿠바인들이 이민자들에게 집을 팔아야겠죠."

특히 미국에 사는 쿠바인들의 돈이 들어오면서 어느새 부동산 투기 조짐마저 일고 있습니다.

집을 수리하고 단장해 민박을 운영하는 쿠바인들도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밀려드는 관광객들을 수용할 호텔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어서 민박집들은 호황을 맞고 있습니다.

<인터뷰> 디노라 마론(민박집 운영) : "5월까지 예약이 모두 차있습니다. 주변의 민박집들도 전부 꽉 차있습니다."

쿠바의 춤 살사, 아바나를 찾은 관광객들 가운데도 살사를 배워 가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이 교습소의 살사 강사들은 모두가 개인 사업자입니다.

대부분의 사업체가 국영이던 쿠바에서 자영업이 대폭 허용된 결과입니다.

<인터뷰> 요스벨 마티네스(살사 강사) : "정부에서 일하면 기본급만 줍니다. 자영업을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습니다."

공립학교에서 살사를 가르치던 마티네스 씨는 이제 자신의 학원을 아바나 최고의 살사 교습소로 만드는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쿠바의 젊은이들은 이제 저마다 꿈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 소련의 붕괴와 경제 지원 중단으로 극심한 가난을 겪었던 쿠바의 젊은이들은, 이제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삶을 살 거라고 말합니다.

<인터뷰> 다리엘 로드리게스(31살) : "우리는 정치적인 세대가 아닙니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업, 사람들, 친구들, 가족에 관심이 있습니다."

다리엘은 지인들과 자금을 모아 꽤 큰 식당 개업을 준비 중입니다.

쿠바에도 어김없이 불고 있는 한류의 바람 속에, 아바나에 처음으로 한식당을 열게 된 다리엘은 더 큰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인터뷰> 다리엘 로드리게스(31살) : "이런 식당을 더 많이 열고 싶습니다. 이 식당을 성공하게 해서 한식당 브랜드를 만들고 싶습니다."

아바나에서 차로 40분 거리인 해안가 지역에 경제특구가 지정됐습니다.

중남미와 미국, 유럽을 잇는 지역적 이점을 활용해 쿠바를, 외국 기업들의 생산 거점과 물류 기지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입니다.

기반공사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지만 해외에서 투자 신청이 4백여 건 들어왔고, 여덟 건이 승인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정덕래(코트라 아바나무역관장) : "법인세를 10년간 감면해주고 국가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투자유치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품목에 대해서는 제조기지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쿠바의 산업화를 위해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한국의 한 종합상사가 지사 설립 허가를 얻는데 무려 2년이 걸렸습니다.

근로자들을 쿠바 정부를 통해 고용해야 하는 사회주의식 제도도 기업들에겐 큰 고민거리입니다.

<인터뷰> 후안 코르도비(아바나대학 경제학과 교수) : "쿠바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식 경쟁과 사회주의의 계획경제 사이에서 명확히 결정된 것은 없습니다."

날씨 때문인지 쿠바의 시간은 더디게 흐르는 듯합니다.

개혁 개방에도 서두르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쿠바엔 지금 되돌릴 수 없는 변혁의 물결이 일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변혁의 물결은 쿠바 국민들에게 수십 년 간 잊혀졌던 꿈을 되찾아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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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eye] ‘개혁·개방’ 쿠바…변혁의 현장을 가다
    • 입력 2016-04-02 10:16:20
    • 수정2016-04-02 10:30:52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녹취> 버락 오바마(미 대통령) : "냉전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쿠바를 방문해서 한 연설의 일부분입니다.

미국과 쿠바는 오랜 적대 관계를 끝내며 지난해 다시 수교했는데, 미국 대통령의 쿠바 방문은 88년 만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포기하지 말라고 역설했는데요.

이 연설은 쿠바 국민들에게 그대로 생방송 됐습니다.

고립을 벗어나 개혁 개방으로 가는 사회주의 국가 쿠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인데요,

쿠바 사회는 지금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요?

박유한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록음악의 전설 롤링 스톤스가 무대에 섰습니다.

이곳에서 록음악은 수 십 년 간 금지된 노래였습니다.

칠순의 록가수는 시간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며 더 열정적으로 노래했습니다.

무료 공연에 60만 인파가 몰렸습니다.

가수와 비슷한 연배의 노인도, 손자뻘인 젊은이도, 세대를 잊고 함께 환호했습니다.

<인터뷰> 까탈리나 에샤이(쿠바인) : "믿을 수 없어요. 너무 행복합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바뀔지 몰랐습니다. 이 열기를 보세요."

자본주의 문화의 상징이자 저항의 상징이기도 한 록음악이 울려 퍼지는 이곳은 사회주의 국가, 쿠바의 수도 아바나입니다.

공산화와 미국의 경제 제재로 50년 넘게 시간이 멈춘 듯했던 아바나, 지금은 도시 곳곳에 호텔 신축 공사가 한창입니다.

지난해 미국과, 올해 유럽연합과, 다시 수교를 했고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화물선이 드나들던 아바나항엔 대형 크루즈선이 정박해 있습니다.

어디서나 흥겨운 라틴 음악이 흘러넘치는 곳,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바나 구시가지는 서구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빕니다.

<인터뷰> 독일인 관광객 : "사람들이 아주 친절해요. 모든 사람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도 참 좋아요."

아바나에서는 50년대 미국 차들이 지금도 도로를 달립니다.

미국의 금수조치로 차 수입이 끊기면서, 차가 환갑을 넘기도록 고치고 또 고쳐 타온 겁니다.

이 오래된 차들은 냉전과 경제제재의 산물입니다만 지금은 미국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관광자원이 되고 있습니다.

쿠바를 사랑한 대문호 헤밍웨이의 유산도 미국인 관광객들을 불러들입니다.

헤밍웨이가 살던 아바나 외곽의 저택은 미국 단체 관광객들이 빠짐없이 찾는 곳입니다.

<인터뷰> 미국인 관광객 : "(쿠바 어떠세요?) 아주 좋아요. 음식이 참 좋아요. 모히토는 더 좋고요."

<인터뷰> 팀 맹키(미국인 관광객) : "쿠바 사람들이 캐나다에서 왔느냐고 묻길래 미국에서 왔다고 답했더니 내 손을 잡고 악수를 하면서 '고맙다 고맙다' 하더군요."

올여름 미국 항공사들의 직항 노선이 개설되면 미국인 관광객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교통도, 통신도 쿠바는 이제 통제 속에 단절된 나라가 아닙니다.

거리 곳곳에 와이파이가 설치됐고 쿠바의 젊은이들은, SNS로, 영상통화로 세계와 소통합니다.

<인터뷰> 야셀 아리야스야네스(쿠바인) : "여동생이 미국에 삽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인터넷으로 연결할 수 있어서 자주 대화합니다."

더 큰 변화는 자본주의 경제가 번지고 있는 겁니다.

개인이 집을 사고파는 게 허용되면서 부동산 중개업체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칸띠오요 씨도 잘 나가던 국영기업을 그만두고 부동산 중개업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지오바니 깐띠오요(부동산 중개업자) : "부동산 매매 허용으로 이민자들이 쿠바로 돌아와 정착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습니다. 물론 쿠바인들이 이민자들에게 집을 팔아야겠죠."

특히 미국에 사는 쿠바인들의 돈이 들어오면서 어느새 부동산 투기 조짐마저 일고 있습니다.

집을 수리하고 단장해 민박을 운영하는 쿠바인들도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밀려드는 관광객들을 수용할 호텔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어서 민박집들은 호황을 맞고 있습니다.

<인터뷰> 디노라 마론(민박집 운영) : "5월까지 예약이 모두 차있습니다. 주변의 민박집들도 전부 꽉 차있습니다."

쿠바의 춤 살사, 아바나를 찾은 관광객들 가운데도 살사를 배워 가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이 교습소의 살사 강사들은 모두가 개인 사업자입니다.

대부분의 사업체가 국영이던 쿠바에서 자영업이 대폭 허용된 결과입니다.

<인터뷰> 요스벨 마티네스(살사 강사) : "정부에서 일하면 기본급만 줍니다. 자영업을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습니다."

공립학교에서 살사를 가르치던 마티네스 씨는 이제 자신의 학원을 아바나 최고의 살사 교습소로 만드는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쿠바의 젊은이들은 이제 저마다 꿈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 소련의 붕괴와 경제 지원 중단으로 극심한 가난을 겪었던 쿠바의 젊은이들은, 이제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삶을 살 거라고 말합니다.

<인터뷰> 다리엘 로드리게스(31살) : "우리는 정치적인 세대가 아닙니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업, 사람들, 친구들, 가족에 관심이 있습니다."

다리엘은 지인들과 자금을 모아 꽤 큰 식당 개업을 준비 중입니다.

쿠바에도 어김없이 불고 있는 한류의 바람 속에, 아바나에 처음으로 한식당을 열게 된 다리엘은 더 큰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인터뷰> 다리엘 로드리게스(31살) : "이런 식당을 더 많이 열고 싶습니다. 이 식당을 성공하게 해서 한식당 브랜드를 만들고 싶습니다."

아바나에서 차로 40분 거리인 해안가 지역에 경제특구가 지정됐습니다.

중남미와 미국, 유럽을 잇는 지역적 이점을 활용해 쿠바를, 외국 기업들의 생산 거점과 물류 기지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입니다.

기반공사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지만 해외에서 투자 신청이 4백여 건 들어왔고, 여덟 건이 승인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정덕래(코트라 아바나무역관장) : "법인세를 10년간 감면해주고 국가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투자유치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품목에 대해서는 제조기지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쿠바의 산업화를 위해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한국의 한 종합상사가 지사 설립 허가를 얻는데 무려 2년이 걸렸습니다.

근로자들을 쿠바 정부를 통해 고용해야 하는 사회주의식 제도도 기업들에겐 큰 고민거리입니다.

<인터뷰> 후안 코르도비(아바나대학 경제학과 교수) : "쿠바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식 경쟁과 사회주의의 계획경제 사이에서 명확히 결정된 것은 없습니다."

날씨 때문인지 쿠바의 시간은 더디게 흐르는 듯합니다.

개혁 개방에도 서두르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쿠바엔 지금 되돌릴 수 없는 변혁의 물결이 일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변혁의 물결은 쿠바 국민들에게 수십 년 간 잊혀졌던 꿈을 되찾아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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