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여학생들의 ‘앞머리 사수작전’…이유는?

입력 2016.04.05 (09:53) 수정 2016.04.0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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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냥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그랬다. 어떤 친구는 머리를 잡고, 어떤 친구는 얼굴을 가리고 달린다. 그런데 한두 명이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렇게 기이한 방식으로 달리고 있었다. 경기도 서해 고등학교 여학생들의 체육 수업을 지켜보면서 갖게 된 의문이다.

여학생이 앞머리를 잡고 달리는 이유?

도대체 왜? 그냥 달리기도 힘든데 저렇게 머리를 잡고 불편하게 달려야 할까? 저렇게 달리면 기록도 늦어지고 잘못하면 넘어질 수도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래서 여학생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 보기로 했다. 서해고 1학년 여학생들이 모여 체육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학생들이 신경 쓰여요"

제일 먼저 쏟아진 이야기는 남학생들이었다.
여학생A: "달릴 때 여자는 약간 앞에서 뻔히 쳐다보면 민망하잖아. 그런데 꼭 남자애들이 먼저 뛰고 앞에서 기다려. 그리고 달릴 때 애들이 전부 다 쳐다 보잖아. 너무 싫어. 그러니까 제대로 못 달리지"

앞머리가 여학생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달리기를 하면 앞머리가 바람에 흩날리고 이마가 훤하게 드러난다. 또 달리면 볼살이 흔들려 자연스럽게 이른바 '굴욕 샷'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앞머리는 여학생의 자존심이고, 얼굴을 적당히 가려줄 앞머리가 없다는 건 민낯을 드러내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여학생B: "어떤 남자 애들은 막 저 앞머리 봐라 이러면서 웃고 그러는데 '극혐'(극도로 혐오한다는 뜻)이야 진짜"

"시설도 프로그램도 부족해요"

옷을 갈아입을 탈의실도, 땀을 닦을 샤워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여학생들이 체육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여학생C: "체육을 하면 우리는 하기 싫어서 벤치에 앉아 있고 그러는데 남자애들은 쉬라고 하면 축구하자 그러고 뛰는 걸 좋아하잖아"

여학생D: "남자애들 땀에 젖어서 또 머리 감고 다 젖어서 들어오잖아. 자기들은 운동하고 옷 벗으면 멋있는 줄 알아.." "그냥 냄새나"



그래서 서해고는 여학생들이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점심시간에 운영되는 요가 시간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 강한 햇볕이 사라지는 시간에 여학생들만 참여하는 석식리그를 진행하기도 했다. 남학생들의 시선이 사라지면서 조금은 더 자유로운 체육이 가능해졌다.

'여학생 체육 엘리트와 남학생에 밀려 이중소외'

여학생 체육 활성화가 교육계 전체의 이슈로 주목받고 있는 요즘 체육에 대한 여학생들의 솔직한 목소리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특히 엘리트 체육에 밀려서 일반 학생들의 체육 활동이 심각하게 위축돼 있는 국내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나마 학교 체육 시간에는 남학생들에게 밀려서 여학생은 또다시 뒤로 밀려나고 있다. 엘리트 체육과 남학생 체육에 우선순위를 뺏긴 여학생 체육은 '이중소외'를 겪고 있다.

그러다 보니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생활체육 참여 실태조사에서 '생활체육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는 여학생 비율이 무려 73%로 나타났다. 또 2010년 스포츠 개발원 한태룡 박사의 '여학생 체육활동 참여 실태분석 결과에 따르면 '체육 활동에 전혀 참가하지 않는다'는 여학생이 74%였다.

특히 방과 후 체육활동에 참여하는 여학생 비율은 더욱 심각했다. 응답자의 88.6%는 방과 후 체육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참가 비율은 고작 11.4%다.



독일체육회(DOSB)의 2013년 자료를 보면 7-14세의 여성 중 62.6%, 15-18세의 여성 중 48.9%가 스포츠클럽의 회원으로 방과 후 체육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우리나라 여학생 체육의 심각한 현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여학생 체육 활성화 편안함이 시작!

교육부의 2014 여학생 체육활동 현황분석 결과를 분석하면 국내 여학생들이 체육 수업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다양했다. 가장 큰 이유로 '소질이나 취미가 없어서'가 40.6%로 나타났고 '체력이 약해서'가 11.6%를 기록했다. '체육 수업 내용이 재미없어서' 16.3%, '체육복 갈아입기가 불편해서' 9.3%, '땀 흘리는 게 싫어서' 9.0%였다.



결국 여학생 체육을 활성화하는 열쇠는 여학생들이 편안하게 체육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운동능력에 따라 남녀 체육 수업을 분리 운영하거나, 여학생 탈의시설 등을 갖춰주는 등 예민한 사춘기 여학생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중요하다.

여학생 체육 활성화는 구호가 아니라 편안함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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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리는 여학생들의 ‘앞머리 사수작전’…이유는?
    • 입력 2016-04-05 09:53:29
    • 수정2016-04-05 16:35:48
    취재K
처음엔 그냥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그랬다. 어떤 친구는 머리를 잡고, 어떤 친구는 얼굴을 가리고 달린다. 그런데 한두 명이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렇게 기이한 방식으로 달리고 있었다. 경기도 서해 고등학교 여학생들의 체육 수업을 지켜보면서 갖게 된 의문이다.

여학생이 앞머리를 잡고 달리는 이유?

도대체 왜? 그냥 달리기도 힘든데 저렇게 머리를 잡고 불편하게 달려야 할까? 저렇게 달리면 기록도 늦어지고 잘못하면 넘어질 수도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래서 여학생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 보기로 했다. 서해고 1학년 여학생들이 모여 체육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학생들이 신경 쓰여요"

제일 먼저 쏟아진 이야기는 남학생들이었다.
여학생A: "달릴 때 여자는 약간 앞에서 뻔히 쳐다보면 민망하잖아. 그런데 꼭 남자애들이 먼저 뛰고 앞에서 기다려. 그리고 달릴 때 애들이 전부 다 쳐다 보잖아. 너무 싫어. 그러니까 제대로 못 달리지"

앞머리가 여학생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달리기를 하면 앞머리가 바람에 흩날리고 이마가 훤하게 드러난다. 또 달리면 볼살이 흔들려 자연스럽게 이른바 '굴욕 샷'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앞머리는 여학생의 자존심이고, 얼굴을 적당히 가려줄 앞머리가 없다는 건 민낯을 드러내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여학생B: "어떤 남자 애들은 막 저 앞머리 봐라 이러면서 웃고 그러는데 '극혐'(극도로 혐오한다는 뜻)이야 진짜"

"시설도 프로그램도 부족해요"

옷을 갈아입을 탈의실도, 땀을 닦을 샤워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여학생들이 체육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여학생C: "체육을 하면 우리는 하기 싫어서 벤치에 앉아 있고 그러는데 남자애들은 쉬라고 하면 축구하자 그러고 뛰는 걸 좋아하잖아"

여학생D: "남자애들 땀에 젖어서 또 머리 감고 다 젖어서 들어오잖아. 자기들은 운동하고 옷 벗으면 멋있는 줄 알아.." "그냥 냄새나"



그래서 서해고는 여학생들이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점심시간에 운영되는 요가 시간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 강한 햇볕이 사라지는 시간에 여학생들만 참여하는 석식리그를 진행하기도 했다. 남학생들의 시선이 사라지면서 조금은 더 자유로운 체육이 가능해졌다.

'여학생 체육 엘리트와 남학생에 밀려 이중소외'

여학생 체육 활성화가 교육계 전체의 이슈로 주목받고 있는 요즘 체육에 대한 여학생들의 솔직한 목소리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특히 엘리트 체육에 밀려서 일반 학생들의 체육 활동이 심각하게 위축돼 있는 국내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나마 학교 체육 시간에는 남학생들에게 밀려서 여학생은 또다시 뒤로 밀려나고 있다. 엘리트 체육과 남학생 체육에 우선순위를 뺏긴 여학생 체육은 '이중소외'를 겪고 있다.

그러다 보니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생활체육 참여 실태조사에서 '생활체육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는 여학생 비율이 무려 73%로 나타났다. 또 2010년 스포츠 개발원 한태룡 박사의 '여학생 체육활동 참여 실태분석 결과에 따르면 '체육 활동에 전혀 참가하지 않는다'는 여학생이 74%였다.

특히 방과 후 체육활동에 참여하는 여학생 비율은 더욱 심각했다. 응답자의 88.6%는 방과 후 체육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참가 비율은 고작 11.4%다.



독일체육회(DOSB)의 2013년 자료를 보면 7-14세의 여성 중 62.6%, 15-18세의 여성 중 48.9%가 스포츠클럽의 회원으로 방과 후 체육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우리나라 여학생 체육의 심각한 현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여학생 체육 활성화 편안함이 시작!

교육부의 2014 여학생 체육활동 현황분석 결과를 분석하면 국내 여학생들이 체육 수업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다양했다. 가장 큰 이유로 '소질이나 취미가 없어서'가 40.6%로 나타났고 '체력이 약해서'가 11.6%를 기록했다. '체육 수업 내용이 재미없어서' 16.3%, '체육복 갈아입기가 불편해서' 9.3%, '땀 흘리는 게 싫어서' 9.0%였다.



결국 여학생 체육을 활성화하는 열쇠는 여학생들이 편안하게 체육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운동능력에 따라 남녀 체육 수업을 분리 운영하거나, 여학생 탈의시설 등을 갖춰주는 등 예민한 사춘기 여학생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중요하다.

여학생 체육 활성화는 구호가 아니라 편안함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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