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트럼프 ‘폭탄급 주장’ 동북아 안보지형 흔드나?

입력 2016.04.0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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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선두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 탓에 갑자기 '한반도'가 미국 대선 이슈의 한 가운데로 떠올랐습니다. "한반도와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겠다", "방위비를 더 내놓지 않으면 주한미군은 철수할 것이다" 같은 최근 한미 관계에서 듣기 힘들었던 강경론을 트럼프 후보가 꺼내놓은 탓입니다.

미국의 경기 침체 속에 '동맹'이나 '외교'보다는 '경제'를 우선시하는 듯한 트럼프의 주장은 미국 내 일부 계층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 정색하고 보면 과연 얼마나 실현 가능한 것일까요?

① 한국 핵무장 용인 : "한국도 핵보유하면 나아질 것"

트럼프 후보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한반도 핵무장 용인', 그리고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입니다. '한국이 미군 주둔에 필요한 비용을 더 내지 않으면 미국이 한반도 방위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알아서 방위하려면 핵무장도 필요할텐데 그건 신경쓰지 않겠다'는 논리입니다.



[연관 기사] ☞ 트럼프 “한일 핵무장” 거듭 제기…백악관 “미 정책과 배치” (2016.3.31)

하지만 트럼프 후보의 주장대로 되려면 우선 큰 국제조약이 장벽입니다. 가장 큰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핵확산금지조약(NPT: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입니다. 핵확산금지조약은 핵보유국(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을 제외한 비핵보유국들의 핵무기 보유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과 일본은 NPT 가입국입니다. NPT를 탈퇴하고 핵무장을 하게 되면 강력한 무역과 경제제재를 받게 됩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조약을 동맹국이 알아서 깨라면서, 경제 제재는 감당하라는 것은 모순이죠.

더구나 미국이 북한 핵보유를 반대해 온 이유 중 하나는 동북아의 '핵 도미노' 즉, 북한의 핵보유를 이유로 동북아 국가들이 너도나도 핵무장에 뛰어드는 독자행동을 감행하고 미국 주도의 안보협력 체제가 붕괴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 후보의 주장이 그간 지속돼 온 미국의 안보 정책과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의 주장대로라면 지난 1972년 맺어져, 지난해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 역시 파기돼야 합니다. 한·미 원자력협정은 연구 등 일부 목적 외에 한국이 핵연료 재처리나 농축 활동을 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핵무기 자체를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애초에 차단돼있는 것이죠. 20년 뒤에나 개정할 수 있습니다.

☞ [바로가기] 新 한미 원자력협정 발효 외교부 보도자료 (2015.11.25)

발언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트럼프는 지난 30일, MSNBC 방송 주최로 위스콘신 주 그린베이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한국과 일본이 독자 핵무기 능력을 개발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 현 상태를 유지하자는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서기도 했지만 여전히 핵무장 용인 주장을 굽히지는 않았습니다. 외려 "(한국과 일본이) 방위비에 대해서는 공정한 몫을 내야 한다"며 '안보 무임승차론'을 더 크게 강조했습니다.

② 안보 무임승차론 : "한반도에서 전쟁하라면 하라지"

하지만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안보 무임승차론' 역시 각종 한·미 간의 조약들과 배치되는 내용이 수두룩합니다. 가장 기본은 6.25 전쟁 이듬해인 1954년 발효된 '한·미 상호방위조약'입니다.

1953년 7월 휴전협정 체결 이후 한·미 양국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상황에 공동 대처하기 위해 맺어진 이 조약은 한반도에 무력 충돌이 발생할 경우 미국이 즉각 개입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한미 동맹도 이 조약에 기반합니다.



[연관 기사] ☞ 트럼프 “한반도 전쟁 나도 미국과 무관” (2016.4.4)

"북한이 전쟁을 벌이더라도 미국은 불개입하겠다"고 말하는 트럼프의 주장은 '한미 중 어느 한 쪽이 위협받을 때 무력공격 저지를 위한 수단을 지속·강화한다(상호방위조약 2조)'와 '상호 합의에 따라 미국의 육·해·공군을 한국 영토에 배치한다(4조)'에 배치되는 내용입니다.



한반도 전쟁에 미국이 불개입하려면 전시작전통제권도 미국으로부터 다시 가져와야 합니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2014년 10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늦추는데 합의했습니다.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와 '킬체인(Kill-Chain)' 구축이 완료되는 2023년 환수가 대략 목표이지만, 한국군의 능력과 주변 안보 환경 등의 '조건'이 갖춰지는 시기에 환수하겠다고 합의해 시기가 특정된 건 아닙니다. 트럼프의 주장대로라면 전시작전권도 재논의해야 합니다.

☞ [바로가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조건 합의(2014,10.23)

한국이 내는 방위비가 적다는 트럼프의 전제 역시 사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은 1991년 이래 막대한 방위비를 꾸준히 지불해 왔습니다. 가장 최근인 2014년 9차 방위비분담 협상 결과, 한국이 지불한 방위비는 9,200억 원, 주한미군 예산의 40%에 달합니다. 물가 인상률에 따라 해마다 늘어납니다. 미군의 해외 주둔이 주둔국의 방위 뿐 아니라 미국 국익을 위한 세계전략의 목적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돈입니다. 이 협정 역시 2018년까지 바꾸지 않도록 돼 있습니다.

☞ [바로가기] 한·미 방위비 분담협정 (2014.6.18 개정 발효)

실현 힘든 트럼프 발언, 하지만...

트럼프 후보의 발언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집권 8년 간 애지중지해온 정책, '핵 비확산'과 '아시아 재균형론'과 모두 거꾸로입니다. 백악관이 발끈하는 이유입니다.

당징 경기는 침체하는데 해외 방위에 너무 많은 돈을 쓰는 게 아니냐며 불만을 쌓아온 보수 세력 표를 얻기 위한 발언 아니냐는 추측이 나옵니다. 사업가 출신으로 외교적 소양이 부족한 트럼프가 '경영' 마인드로만 접근하고 있다는 비판과 어차피 실현이 어려우니 그저 한국과 일본에게 방위비를 더 받아내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모두 트럼프의 주장이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둡니다.

하지만 이런 트럼프의 주장에 꽤 많은 미국인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현실은 '세계의 경찰'을 자임해 온 미국의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미국이 강한 입김을 행사해온 동북아의 안보 지형 역시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트럼프 발언에 대해 일본 정부가 '비핵 3원칙'을 고수한다면서도 '핵무기 보유가 헌법 상 완전히 금지된 것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각의에서 채택한 것은 시사하는 점이 큽니다.

[연관 기사]
☞ 정부 “‘주한미군 철수 언급’ 트럼프 등 美후보 측과 접촉 강화” (2016.3.29)
☞ 日 “핵보유 헌법상 금지된건 아냐”…트럼프 ‘핵보유론’엔 반발 (20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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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중분석] 트럼프 ‘폭탄급 주장’ 동북아 안보지형 흔드나?
    • 입력 2016-04-05 17:20:07
    취재K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선두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 탓에 갑자기 '한반도'가 미국 대선 이슈의 한 가운데로 떠올랐습니다. "한반도와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겠다", "방위비를 더 내놓지 않으면 주한미군은 철수할 것이다" 같은 최근 한미 관계에서 듣기 힘들었던 강경론을 트럼프 후보가 꺼내놓은 탓입니다.

미국의 경기 침체 속에 '동맹'이나 '외교'보다는 '경제'를 우선시하는 듯한 트럼프의 주장은 미국 내 일부 계층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 정색하고 보면 과연 얼마나 실현 가능한 것일까요?

① 한국 핵무장 용인 : "한국도 핵보유하면 나아질 것"

트럼프 후보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한반도 핵무장 용인', 그리고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입니다. '한국이 미군 주둔에 필요한 비용을 더 내지 않으면 미국이 한반도 방위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알아서 방위하려면 핵무장도 필요할텐데 그건 신경쓰지 않겠다'는 논리입니다.



[연관 기사] ☞ 트럼프 “한일 핵무장” 거듭 제기…백악관 “미 정책과 배치” (2016.3.31)

하지만 트럼프 후보의 주장대로 되려면 우선 큰 국제조약이 장벽입니다. 가장 큰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핵확산금지조약(NPT: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입니다. 핵확산금지조약은 핵보유국(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을 제외한 비핵보유국들의 핵무기 보유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과 일본은 NPT 가입국입니다. NPT를 탈퇴하고 핵무장을 하게 되면 강력한 무역과 경제제재를 받게 됩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조약을 동맹국이 알아서 깨라면서, 경제 제재는 감당하라는 것은 모순이죠.

더구나 미국이 북한 핵보유를 반대해 온 이유 중 하나는 동북아의 '핵 도미노' 즉, 북한의 핵보유를 이유로 동북아 국가들이 너도나도 핵무장에 뛰어드는 독자행동을 감행하고 미국 주도의 안보협력 체제가 붕괴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 후보의 주장이 그간 지속돼 온 미국의 안보 정책과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의 주장대로라면 지난 1972년 맺어져, 지난해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 역시 파기돼야 합니다. 한·미 원자력협정은 연구 등 일부 목적 외에 한국이 핵연료 재처리나 농축 활동을 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핵무기 자체를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애초에 차단돼있는 것이죠. 20년 뒤에나 개정할 수 있습니다.

☞ [바로가기] 新 한미 원자력협정 발효 외교부 보도자료 (2015.11.25)

발언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트럼프는 지난 30일, MSNBC 방송 주최로 위스콘신 주 그린베이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한국과 일본이 독자 핵무기 능력을 개발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 현 상태를 유지하자는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서기도 했지만 여전히 핵무장 용인 주장을 굽히지는 않았습니다. 외려 "(한국과 일본이) 방위비에 대해서는 공정한 몫을 내야 한다"며 '안보 무임승차론'을 더 크게 강조했습니다.

② 안보 무임승차론 : "한반도에서 전쟁하라면 하라지"

하지만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안보 무임승차론' 역시 각종 한·미 간의 조약들과 배치되는 내용이 수두룩합니다. 가장 기본은 6.25 전쟁 이듬해인 1954년 발효된 '한·미 상호방위조약'입니다.

1953년 7월 휴전협정 체결 이후 한·미 양국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상황에 공동 대처하기 위해 맺어진 이 조약은 한반도에 무력 충돌이 발생할 경우 미국이 즉각 개입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한미 동맹도 이 조약에 기반합니다.



[연관 기사] ☞ 트럼프 “한반도 전쟁 나도 미국과 무관” (2016.4.4)

"북한이 전쟁을 벌이더라도 미국은 불개입하겠다"고 말하는 트럼프의 주장은 '한미 중 어느 한 쪽이 위협받을 때 무력공격 저지를 위한 수단을 지속·강화한다(상호방위조약 2조)'와 '상호 합의에 따라 미국의 육·해·공군을 한국 영토에 배치한다(4조)'에 배치되는 내용입니다.



한반도 전쟁에 미국이 불개입하려면 전시작전통제권도 미국으로부터 다시 가져와야 합니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2014년 10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늦추는데 합의했습니다.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와 '킬체인(Kill-Chain)' 구축이 완료되는 2023년 환수가 대략 목표이지만, 한국군의 능력과 주변 안보 환경 등의 '조건'이 갖춰지는 시기에 환수하겠다고 합의해 시기가 특정된 건 아닙니다. 트럼프의 주장대로라면 전시작전권도 재논의해야 합니다.

☞ [바로가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조건 합의(2014,10.23)

한국이 내는 방위비가 적다는 트럼프의 전제 역시 사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은 1991년 이래 막대한 방위비를 꾸준히 지불해 왔습니다. 가장 최근인 2014년 9차 방위비분담 협상 결과, 한국이 지불한 방위비는 9,200억 원, 주한미군 예산의 40%에 달합니다. 물가 인상률에 따라 해마다 늘어납니다. 미군의 해외 주둔이 주둔국의 방위 뿐 아니라 미국 국익을 위한 세계전략의 목적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돈입니다. 이 협정 역시 2018년까지 바꾸지 않도록 돼 있습니다.

☞ [바로가기] 한·미 방위비 분담협정 (2014.6.18 개정 발효)

실현 힘든 트럼프 발언, 하지만...

트럼프 후보의 발언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집권 8년 간 애지중지해온 정책, '핵 비확산'과 '아시아 재균형론'과 모두 거꾸로입니다. 백악관이 발끈하는 이유입니다.

당징 경기는 침체하는데 해외 방위에 너무 많은 돈을 쓰는 게 아니냐며 불만을 쌓아온 보수 세력 표를 얻기 위한 발언 아니냐는 추측이 나옵니다. 사업가 출신으로 외교적 소양이 부족한 트럼프가 '경영' 마인드로만 접근하고 있다는 비판과 어차피 실현이 어려우니 그저 한국과 일본에게 방위비를 더 받아내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모두 트럼프의 주장이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둡니다.

하지만 이런 트럼프의 주장에 꽤 많은 미국인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현실은 '세계의 경찰'을 자임해 온 미국의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미국이 강한 입김을 행사해온 동북아의 안보 지형 역시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트럼프 발언에 대해 일본 정부가 '비핵 3원칙'을 고수한다면서도 '핵무기 보유가 헌법 상 완전히 금지된 것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각의에서 채택한 것은 시사하는 점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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