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광주 7남매는 왜 초등학교에도 못 갔을까?
입력 2016.04.07 (09:03)
수정 2016.04.0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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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집이 들어찬 골목길을 한참 헤맨 끝에 허름한 연립주택이 나왔다. 1층에는 쇠창살을 덧댄 작은 유리창이 빼꼼히 뚫려 있었다. 똑똑. 노크해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집안에 누가 있을까? "계십니까?"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막 변성기를 지난 듯한 청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른들은 안 계세요. 연락할 만한 전화번호도 없어요." 살짝 열린 창틈으로 보이는 건 소년의 손가락뿐이었다. 40대 부부와 자녀 7명이 사는 다섯 평 남짓의 비좁은 단칸방 창문이 다시 닫혔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44살 조 모 씨 부부는 열 명의 자녀를 뒀다. 맏딸과 아홉째, 막내를 제외한 7남매는 초등학교 문턱도 밟지 못했다. 학교에 못 간 남매 가운데 3명은 이미 성년이 됐다. 나머지 4명은 초·중·고등학생 나이다.
비좁기 짝이 없는 방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선생님으로, 또 친구로 삼아 지냈다. 아이들을 살펴본 구청 관계자는 "학대받은 정황은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은 티 없이 밝고 착한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의도적으로 사회에 소속되기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1998년 이른바 'IMF 사태' 때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정에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사채를 피해 떠돌이 생활이 계속됐다.
아이들은 계속 늘어났지만, 남들처럼 키울 수가 없었다. 다섯째부터 여덟째까지는 출생신고도 제때 못했다. 주민등록번호도 없이 살아간 세월은 길게는 17년에 이르렀다. 공교육의 울타리는 물론이고 국가 행정의 테두리에서도 벗어난 삶을 이어간 셈이다.
아이들을 찾아내고, 돌보고,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였어야 할 행정당국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했다. 조 씨 가족이 2008년부터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기 시작하면서 해마다 가정 조사가 이뤄졌는데도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의 존재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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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뒤늦게 아이 4명의 출생신고가 이뤄졌지만, 주민센터는 과태료 20만 원만 부과한 게 다였다. 왜 이렇게 신고가 늦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올해 2월에는 조 씨 부부가 기초수급비 신청서를 내면서, 취학하지도 않은 자녀들을 학교에 재학 중인 것처럼 속여서 적었다. 주민센터는 확인 절차 없이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전산망에 올렸다. 구청은 지난달 수급비 지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가정 방문까지 했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 놓쳤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한 초등학교의 교육 공무원이 학적부와 수급비 신청서에 적힌 아이들의 학적을 대조하면서 진실이 드러났다. 한 공무원의 관심이 없었다면 아이들의 존재는 지금도 음지에 남아 있었을지 모른다.
사연이 알려진 뒤 일곱째와 여덟째는 기초학력 평가를 거쳐 집 근처 한 초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다른 자녀들은 대안학교 입학과 검정고시 응시 등을 지원받게 됐다.
교육청 관계자는 "시험을 본 아이들이 '혹시 결과가 나빠서 학교에 못 가게 되면 어쩌나?' 하며 걱정하더라"고 말했다. 구청과 관계 기관은 가족들이 더 넓은 집에서 살 수 있도록 거주비를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불우하기 짝이 없는 환경에서도 잘 자라난 아이들, 지역사회에서 쏟아지는 온정의 손길. 이야기의 결말만 보면 '해피 엔딩'에 가깝다. 하지만 끝이 좋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지금도 유령처럼 사회 밖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어디에 있을지, 그늘 속에서 시들고 있는 생명이 얼마나 많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 씨 가족의 사연이 우리에게 던져 준 화두다.
[연관 기사]
☞ 자녀 7명 학교 안 보내…“아동학대 정황 없어”
☞ 생활고에 ‘7명 미취학’…구멍 뚫린 출생신고제
"어른들은 안 계세요. 연락할 만한 전화번호도 없어요." 살짝 열린 창틈으로 보이는 건 소년의 손가락뿐이었다. 40대 부부와 자녀 7명이 사는 다섯 평 남짓의 비좁은 단칸방 창문이 다시 닫혔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44살 조 모 씨 부부는 열 명의 자녀를 뒀다. 맏딸과 아홉째, 막내를 제외한 7남매는 초등학교 문턱도 밟지 못했다. 학교에 못 간 남매 가운데 3명은 이미 성년이 됐다. 나머지 4명은 초·중·고등학생 나이다.
비좁기 짝이 없는 방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선생님으로, 또 친구로 삼아 지냈다. 아이들을 살펴본 구청 관계자는 "학대받은 정황은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은 티 없이 밝고 착한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의도적으로 사회에 소속되기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1998년 이른바 'IMF 사태' 때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정에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사채를 피해 떠돌이 생활이 계속됐다.
아이들은 계속 늘어났지만, 남들처럼 키울 수가 없었다. 다섯째부터 여덟째까지는 출생신고도 제때 못했다. 주민등록번호도 없이 살아간 세월은 길게는 17년에 이르렀다. 공교육의 울타리는 물론이고 국가 행정의 테두리에서도 벗어난 삶을 이어간 셈이다.
아이들을 찾아내고, 돌보고,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였어야 할 행정당국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했다. 조 씨 가족이 2008년부터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기 시작하면서 해마다 가정 조사가 이뤄졌는데도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의 존재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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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뒤늦게 아이 4명의 출생신고가 이뤄졌지만, 주민센터는 과태료 20만 원만 부과한 게 다였다. 왜 이렇게 신고가 늦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올해 2월에는 조 씨 부부가 기초수급비 신청서를 내면서, 취학하지도 않은 자녀들을 학교에 재학 중인 것처럼 속여서 적었다. 주민센터는 확인 절차 없이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전산망에 올렸다. 구청은 지난달 수급비 지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가정 방문까지 했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 놓쳤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한 초등학교의 교육 공무원이 학적부와 수급비 신청서에 적힌 아이들의 학적을 대조하면서 진실이 드러났다. 한 공무원의 관심이 없었다면 아이들의 존재는 지금도 음지에 남아 있었을지 모른다.
사연이 알려진 뒤 일곱째와 여덟째는 기초학력 평가를 거쳐 집 근처 한 초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다른 자녀들은 대안학교 입학과 검정고시 응시 등을 지원받게 됐다.
교육청 관계자는 "시험을 본 아이들이 '혹시 결과가 나빠서 학교에 못 가게 되면 어쩌나?' 하며 걱정하더라"고 말했다. 구청과 관계 기관은 가족들이 더 넓은 집에서 살 수 있도록 거주비를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불우하기 짝이 없는 환경에서도 잘 자라난 아이들, 지역사회에서 쏟아지는 온정의 손길. 이야기의 결말만 보면 '해피 엔딩'에 가깝다. 하지만 끝이 좋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지금도 유령처럼 사회 밖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어디에 있을지, 그늘 속에서 시들고 있는 생명이 얼마나 많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 씨 가족의 사연이 우리에게 던져 준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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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후] 광주 7남매는 왜 초등학교에도 못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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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16-04-07 11:58:47

낡은 집이 들어찬 골목길을 한참 헤맨 끝에 허름한 연립주택이 나왔다. 1층에는 쇠창살을 덧댄 작은 유리창이 빼꼼히 뚫려 있었다. 똑똑. 노크해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집안에 누가 있을까? "계십니까?"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막 변성기를 지난 듯한 청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른들은 안 계세요. 연락할 만한 전화번호도 없어요." 살짝 열린 창틈으로 보이는 건 소년의 손가락뿐이었다. 40대 부부와 자녀 7명이 사는 다섯 평 남짓의 비좁은 단칸방 창문이 다시 닫혔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44살 조 모 씨 부부는 열 명의 자녀를 뒀다. 맏딸과 아홉째, 막내를 제외한 7남매는 초등학교 문턱도 밟지 못했다. 학교에 못 간 남매 가운데 3명은 이미 성년이 됐다. 나머지 4명은 초·중·고등학생 나이다.
비좁기 짝이 없는 방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선생님으로, 또 친구로 삼아 지냈다. 아이들을 살펴본 구청 관계자는 "학대받은 정황은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은 티 없이 밝고 착한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의도적으로 사회에 소속되기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1998년 이른바 'IMF 사태' 때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정에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사채를 피해 떠돌이 생활이 계속됐다.
아이들은 계속 늘어났지만, 남들처럼 키울 수가 없었다. 다섯째부터 여덟째까지는 출생신고도 제때 못했다. 주민등록번호도 없이 살아간 세월은 길게는 17년에 이르렀다. 공교육의 울타리는 물론이고 국가 행정의 테두리에서도 벗어난 삶을 이어간 셈이다.
아이들을 찾아내고, 돌보고,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였어야 할 행정당국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했다. 조 씨 가족이 2008년부터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기 시작하면서 해마다 가정 조사가 이뤄졌는데도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의 존재를 몰랐다.
지난해에는 뒤늦게 아이 4명의 출생신고가 이뤄졌지만, 주민센터는 과태료 20만 원만 부과한 게 다였다. 왜 이렇게 신고가 늦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올해 2월에는 조 씨 부부가 기초수급비 신청서를 내면서, 취학하지도 않은 자녀들을 학교에 재학 중인 것처럼 속여서 적었다. 주민센터는 확인 절차 없이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전산망에 올렸다. 구청은 지난달 수급비 지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가정 방문까지 했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 놓쳤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한 초등학교의 교육 공무원이 학적부와 수급비 신청서에 적힌 아이들의 학적을 대조하면서 진실이 드러났다. 한 공무원의 관심이 없었다면 아이들의 존재는 지금도 음지에 남아 있었을지 모른다.
사연이 알려진 뒤 일곱째와 여덟째는 기초학력 평가를 거쳐 집 근처 한 초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다른 자녀들은 대안학교 입학과 검정고시 응시 등을 지원받게 됐다.
교육청 관계자는 "시험을 본 아이들이 '혹시 결과가 나빠서 학교에 못 가게 되면 어쩌나?' 하며 걱정하더라"고 말했다. 구청과 관계 기관은 가족들이 더 넓은 집에서 살 수 있도록 거주비를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불우하기 짝이 없는 환경에서도 잘 자라난 아이들, 지역사회에서 쏟아지는 온정의 손길. 이야기의 결말만 보면 '해피 엔딩'에 가깝다. 하지만 끝이 좋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지금도 유령처럼 사회 밖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어디에 있을지, 그늘 속에서 시들고 있는 생명이 얼마나 많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 씨 가족의 사연이 우리에게 던져 준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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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고에 ‘7명 미취학’…구멍 뚫린 출생신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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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희 기자 shar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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