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할머니 배구단의 플라잉 리시브

입력 2016.04.19 (14:4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낯설다. 너무나 낯설다.

백발 머리 할머니들이 유니폼을 입고 배구를 한다고? 간혹 60대도 있지만 대부분 70대이고, 심지어 80대 할머니까지 선수로 참가한다. 몸을 풀고 있는 할머니들이 불안해 보인다. 허리에서, 무릎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연습게임을 한다는데 정말 시합이 가능할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볼을 향해 온 몸을 던지는 할머니들.. 흔히 말하는 다이빙 캐치, 전문 용어로 플라잉 리시브(Flying Receive) 아닌가? 한 두 분이 아니다. 대부분 할머니들이 주저없이 몸을 던져 볼을 건져 올린다.



젊은이들처럼 강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스파이크도 때려 넣는다. 서로 화이팅을 외쳐가며 격려하고 팀플레이를 한다. 할머니들은 그렇게 무려 4시간이나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연습 게임을 했다. 어지간한 젊은 사람보다 더 체력이 좋아 보였다.

지난 2011년 KBS 특집 다큐멘터리 '스포츠는 권리다'를 찍을 당시 일본 도쿄에서 만났던 아이비 할머니 배구단을 보면서 깜짝 놀랐던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놀랄 만큼 건강하고 행복한 미소를 가진 일본의 노인들 그 비결은 도대체 뭘까?

샤워를 마치고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을 곁들인 뒤풀이 자리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이비 할머니 배구단은 무려 30년 동안 함께 땀을 흘린 인생의 동료들이었다. 단지 운동만 같이 하는 팀 동료를 넘어 함께 여행도 다니고 여가 시간을 보내고 서로를 챙겨주는 작은 공동체였다.



올해 80세인 데루코 할머니는 배구가 없는 인생은 생각하기 힘들다고 했다. "건강도 유지되고 배구를 통해 친구도 만들고 타이완, 한국, 중국 등 해외에도 배구팀 선수들하고 다녀왔어요. 그래서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배구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이비 배구단에 외로운 노인은 없다. 배구는 자칫 고립되기 쉬운 노인들을 끈끈한 사회적 네트워크로 연결해 주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도쿄 네리마구에만 약 60여 개 할머니 배구단이 있다고 했다. 서로 연습게임도 하고 1년에 2번 정도 정규대회도 참가한다. 한 구에 60개 팀이 있다고 가정하면 종로구, 영등포구 등 25개 구로 구성된 서울에만 무려 1,500여 개 할머니 배구단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공공 체육관을 사용하는 비용은 1인당 100엔 우리 돈으로 천 원 정도면 하루를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말한다. "스포츠를 통해 건강하게 사는 것이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라고.. 스포츠 복지가 이미 선진국의 조건으로 자리잡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스포츠 복지를 통해 노인들의 건강은 물론 사회적 연결망을 강화하는 정책은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둔 우리 사회에도 큰 의미가 있다. 한국 사회는 2026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다.

타카즈미 후크시마 재경대 교수는 스포츠 복지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은 상태에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는 것은 재앙이라고 경고한다. "2030년이면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가 30%입니다. 연간 의료비만 100조엔(1,050조 원)으로 일본 GDP 20%에 이를 겁니다. 치료에서 예방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합니다. 실패하면 일본 경제는 파산할 겁니다. 스포츠 복지만이 초고령화 사회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스포츠 복지라는 개념조차 생소한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초고령화 사회를 맞이하게 될까? 일본 할머니 배구단의 건강하고 유쾌한 모습이 우리 노인들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부러워만 하기엔 다가오는 현실이 너무나 냉정하다.

스포츠는 복지다! 시민의 권리다! 국가의 의무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70대 할머니 배구단의 플라잉 리시브
    • 입력 2016-04-19 14:48:12
    취재K
낯설다. 너무나 낯설다.

백발 머리 할머니들이 유니폼을 입고 배구를 한다고? 간혹 60대도 있지만 대부분 70대이고, 심지어 80대 할머니까지 선수로 참가한다. 몸을 풀고 있는 할머니들이 불안해 보인다. 허리에서, 무릎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연습게임을 한다는데 정말 시합이 가능할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볼을 향해 온 몸을 던지는 할머니들.. 흔히 말하는 다이빙 캐치, 전문 용어로 플라잉 리시브(Flying Receive) 아닌가? 한 두 분이 아니다. 대부분 할머니들이 주저없이 몸을 던져 볼을 건져 올린다.



젊은이들처럼 강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스파이크도 때려 넣는다. 서로 화이팅을 외쳐가며 격려하고 팀플레이를 한다. 할머니들은 그렇게 무려 4시간이나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연습 게임을 했다. 어지간한 젊은 사람보다 더 체력이 좋아 보였다.

지난 2011년 KBS 특집 다큐멘터리 '스포츠는 권리다'를 찍을 당시 일본 도쿄에서 만났던 아이비 할머니 배구단을 보면서 깜짝 놀랐던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놀랄 만큼 건강하고 행복한 미소를 가진 일본의 노인들 그 비결은 도대체 뭘까?

샤워를 마치고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을 곁들인 뒤풀이 자리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이비 할머니 배구단은 무려 30년 동안 함께 땀을 흘린 인생의 동료들이었다. 단지 운동만 같이 하는 팀 동료를 넘어 함께 여행도 다니고 여가 시간을 보내고 서로를 챙겨주는 작은 공동체였다.



올해 80세인 데루코 할머니는 배구가 없는 인생은 생각하기 힘들다고 했다. "건강도 유지되고 배구를 통해 친구도 만들고 타이완, 한국, 중국 등 해외에도 배구팀 선수들하고 다녀왔어요. 그래서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배구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이비 배구단에 외로운 노인은 없다. 배구는 자칫 고립되기 쉬운 노인들을 끈끈한 사회적 네트워크로 연결해 주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도쿄 네리마구에만 약 60여 개 할머니 배구단이 있다고 했다. 서로 연습게임도 하고 1년에 2번 정도 정규대회도 참가한다. 한 구에 60개 팀이 있다고 가정하면 종로구, 영등포구 등 25개 구로 구성된 서울에만 무려 1,500여 개 할머니 배구단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공공 체육관을 사용하는 비용은 1인당 100엔 우리 돈으로 천 원 정도면 하루를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말한다. "스포츠를 통해 건강하게 사는 것이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라고.. 스포츠 복지가 이미 선진국의 조건으로 자리잡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스포츠 복지를 통해 노인들의 건강은 물론 사회적 연결망을 강화하는 정책은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둔 우리 사회에도 큰 의미가 있다. 한국 사회는 2026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다.

타카즈미 후크시마 재경대 교수는 스포츠 복지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은 상태에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는 것은 재앙이라고 경고한다. "2030년이면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가 30%입니다. 연간 의료비만 100조엔(1,050조 원)으로 일본 GDP 20%에 이를 겁니다. 치료에서 예방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합니다. 실패하면 일본 경제는 파산할 겁니다. 스포츠 복지만이 초고령화 사회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스포츠 복지라는 개념조차 생소한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초고령화 사회를 맞이하게 될까? 일본 할머니 배구단의 건강하고 유쾌한 모습이 우리 노인들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부러워만 하기엔 다가오는 현실이 너무나 냉정하다.

스포츠는 복지다! 시민의 권리다! 국가의 의무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2024 파리 올림픽 배너 이미지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