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무늬만 회사차’ 방지법 시행…“대충 하면 돼요”

입력 2016.04.2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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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남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윤 모 씨. 윤 씨는 회사 명의로 7천만 원 상당의 벤츠를 리스했습니다. 리스 비용과 보험료 등을 모두 포함해 한 달에 3백만 원 정도가 드는데 모두 회사 비용으로 처리합니다. 이 차를 타고 출근도 하고 퇴근도 하고. 주말엔 식구들과 나들이를 가기도 합니다.



# 2. 양천구에 거주하는 개업 의사 이모 씨. 이 씨는 병원 명의로 1억 원대 레인지로버 한 대를 리스했습니다. 하지만 이 씨가 이 차를 타지는 않습니다. 본인은 걸어서 출퇴근하고, 차는 집에 둡니다. 아내가 장을 보거나 아이들을 학원에 데려다 줄 때만 차를 사용합니다.



■ 억대 수입차 83%가 회사 차?

대표적인 레저용 차량인 랜드로버의 경우 지난해 팔린 차량의 61%가 회사 명의였습니다. 포르쉐는 지난해 3천8백여 대가 팔렸는데 73%가 회사 차였습니다. 2억 원을 훌쩍 넘는 벤틀리도 지난해 팔린 차량의 86%가 회사 차였습니다. 4억 원대 롤스로이스는 지난해 59대가 팔렸는데 모두 회사 차였습니다. 1억 원 넘는 수입 차량의 83%가 회사 차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회사 차로 등록하면 혜택은 엄청납니다. 일단 리스비와 주유 비용, 보험료 등 모든 비용을 회사가 부담하니까 개인적으론 공짜로 차를 타는 셈입니다. 회사 입장에서도 영업 비용으로 처리하면 그만큼 영업 이익은 줄어드니까 법인세를 아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업무용 차량으로 등록하면 세금 감면 혜택이 주어집니다. 2억 원짜리 수입차를 리스로 구입하면 연간 5천만 원 정도 세금을 덜 냅니다. 전체적으론 1년에 2조 5천억 원 정도 세금이 감면됩니다.



■ '무늬만 회사 차' 탈세 금액 8천억 원 넘을 듯

문제는 윤 씨나 이 씨처럼 회사 차를 개인적으로 이용하는 전문직과 고소득 자영업자가 많다는 겁니다. 이런 차를 두고 '무늬만 회사 차'라고 합니다. 사업가들이 어떻게 차를 이용하는지 일일이 조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무늬만 회사 차'가 정확히 몇 대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전체 회사 차의 30%가 개인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가정해 본다면 한해 탈세 금액은 8천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무늬만 회사 차'에 세금이 줄줄 샌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정부는 지난 2월 법을 바꿨습니다. 연간 천만 원까지만 비과세 비용으로 인정하고, 그 이상을 처리하려면 주행일지를 작성하게 했습니다. 또 이달부터는 법인의 경우 임직원 전용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법인 차를 몰지 못하도록 권고했습니다.



■ '무늬만 회사 차' 방지법 시행 이후…

법 개정 이후 수입차 시장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지난 1월과 2월 고가 수입차의 법인 차 비중이 10% 정도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체 수입차의 업무용 등록 비율도 사상 최저로 떨어졌습니다. 주행일지 작성 등이 수입차의 매력을 떨어뜨린 것으로 분석됩니다. 법 개정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셈이죠.

하지만 확 줄었던 수입차 판매, 3월부터 다시 회복세입니다. 취재진은 시장 분위기를 직접 살펴보기 위해 수입차 매장을 찾아가 봤습니다.

서로 다른 고가 브랜드의 수입차 딜러 두 명을 만났습니다. 딜러 A 씨는 법 개정으로 무엇이 바뀌었느냐는 질문에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정부가 제도를 한 번에 바꿀 수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미 차를 산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고 제도를 한번에 바꾸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전문직들의 법인 차량 신청이 많다면서 신청서도 꺼내 보였습니다. 또 법인 차로 등록하고 개인이 몰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 "운행기록부 그냥 대충 쓰면 돼죠"

딜러 B 씨도 비슷했습니다. 운행기록부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그냥 대충 쓰면 되는 건데 뭐가 걱정이냐고 했습니다. 실제 운행기록부 양식도 간단하기 때문에 쓰기 전혀 어렵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딜러 B 씨는 그래도 보험에 대해선 제대로 설명했습니다. 개인 사업자는 괜찮지만 법인의 경우 앞으로는 직원만 보험에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차로 타기에는 어려운 점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부분이 걱정되면 가족을 회사 직원으로 등록하기만 하면 된다고 친절히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 사전 단속은 불가능…규제안은 대폭 후퇴

여전히 쉽게 탈 수 있는 '무늬만 회사 차'. 단속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요? 알아보니 현행법상 사전 단속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국세청에도 지방자치단체에도 경찰에도 상시 단속 권한은 없었습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하면서 사후에 '무늬만 법인 차'를 적발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사실 수백만 대에 달하는 업무용 차의 사적인 사용을 일일이 사전에 조사하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애초에 법을 더 명확하고 강하게 고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실제로 지난해 말에 법 개정이 논의될 땐 더 강한 규제안이 추진됐습니다. 비과세 한도를 더 명확하게 정하고 경비 처리는 업무용으로 사용한 만큼만 하도록 허용하는 방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수입차 시장이 위축될 수 있고, 자동차 수출 국가들과 통상 마찰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또 업무용 일지를 너무 자세히 쓸 경우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이런저런 논의 과정 끝에 규제안은 대폭 후퇴했습니다.

'무늬만 회사 차'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요? 회사 차에는 회사 로고를 붙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운행일지를 더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아예 제도 개선을 원점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앞으로 운영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실효성 있는 제도로 발전시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연관기사] ☞ [심층 리포트] 무늬만 회사차…수입차 탈세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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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무늬만 회사차’ 방지법 시행…“대충 하면 돼요”
    • 입력 2016-04-25 09:19:09
    취재후·사건후
# 1. 강남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윤 모 씨. 윤 씨는 회사 명의로 7천만 원 상당의 벤츠를 리스했습니다. 리스 비용과 보험료 등을 모두 포함해 한 달에 3백만 원 정도가 드는데 모두 회사 비용으로 처리합니다. 이 차를 타고 출근도 하고 퇴근도 하고. 주말엔 식구들과 나들이를 가기도 합니다.



# 2. 양천구에 거주하는 개업 의사 이모 씨. 이 씨는 병원 명의로 1억 원대 레인지로버 한 대를 리스했습니다. 하지만 이 씨가 이 차를 타지는 않습니다. 본인은 걸어서 출퇴근하고, 차는 집에 둡니다. 아내가 장을 보거나 아이들을 학원에 데려다 줄 때만 차를 사용합니다.



■ 억대 수입차 83%가 회사 차?

대표적인 레저용 차량인 랜드로버의 경우 지난해 팔린 차량의 61%가 회사 명의였습니다. 포르쉐는 지난해 3천8백여 대가 팔렸는데 73%가 회사 차였습니다. 2억 원을 훌쩍 넘는 벤틀리도 지난해 팔린 차량의 86%가 회사 차였습니다. 4억 원대 롤스로이스는 지난해 59대가 팔렸는데 모두 회사 차였습니다. 1억 원 넘는 수입 차량의 83%가 회사 차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회사 차로 등록하면 혜택은 엄청납니다. 일단 리스비와 주유 비용, 보험료 등 모든 비용을 회사가 부담하니까 개인적으론 공짜로 차를 타는 셈입니다. 회사 입장에서도 영업 비용으로 처리하면 그만큼 영업 이익은 줄어드니까 법인세를 아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업무용 차량으로 등록하면 세금 감면 혜택이 주어집니다. 2억 원짜리 수입차를 리스로 구입하면 연간 5천만 원 정도 세금을 덜 냅니다. 전체적으론 1년에 2조 5천억 원 정도 세금이 감면됩니다.



■ '무늬만 회사 차' 탈세 금액 8천억 원 넘을 듯

문제는 윤 씨나 이 씨처럼 회사 차를 개인적으로 이용하는 전문직과 고소득 자영업자가 많다는 겁니다. 이런 차를 두고 '무늬만 회사 차'라고 합니다. 사업가들이 어떻게 차를 이용하는지 일일이 조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무늬만 회사 차'가 정확히 몇 대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전체 회사 차의 30%가 개인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가정해 본다면 한해 탈세 금액은 8천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무늬만 회사 차'에 세금이 줄줄 샌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정부는 지난 2월 법을 바꿨습니다. 연간 천만 원까지만 비과세 비용으로 인정하고, 그 이상을 처리하려면 주행일지를 작성하게 했습니다. 또 이달부터는 법인의 경우 임직원 전용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법인 차를 몰지 못하도록 권고했습니다.



■ '무늬만 회사 차' 방지법 시행 이후…

법 개정 이후 수입차 시장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지난 1월과 2월 고가 수입차의 법인 차 비중이 10% 정도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체 수입차의 업무용 등록 비율도 사상 최저로 떨어졌습니다. 주행일지 작성 등이 수입차의 매력을 떨어뜨린 것으로 분석됩니다. 법 개정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셈이죠.

하지만 확 줄었던 수입차 판매, 3월부터 다시 회복세입니다. 취재진은 시장 분위기를 직접 살펴보기 위해 수입차 매장을 찾아가 봤습니다.

서로 다른 고가 브랜드의 수입차 딜러 두 명을 만났습니다. 딜러 A 씨는 법 개정으로 무엇이 바뀌었느냐는 질문에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정부가 제도를 한 번에 바꿀 수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미 차를 산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고 제도를 한번에 바꾸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전문직들의 법인 차량 신청이 많다면서 신청서도 꺼내 보였습니다. 또 법인 차로 등록하고 개인이 몰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 "운행기록부 그냥 대충 쓰면 돼죠"

딜러 B 씨도 비슷했습니다. 운행기록부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그냥 대충 쓰면 되는 건데 뭐가 걱정이냐고 했습니다. 실제 운행기록부 양식도 간단하기 때문에 쓰기 전혀 어렵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딜러 B 씨는 그래도 보험에 대해선 제대로 설명했습니다. 개인 사업자는 괜찮지만 법인의 경우 앞으로는 직원만 보험에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차로 타기에는 어려운 점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부분이 걱정되면 가족을 회사 직원으로 등록하기만 하면 된다고 친절히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 사전 단속은 불가능…규제안은 대폭 후퇴

여전히 쉽게 탈 수 있는 '무늬만 회사 차'. 단속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요? 알아보니 현행법상 사전 단속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국세청에도 지방자치단체에도 경찰에도 상시 단속 권한은 없었습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하면서 사후에 '무늬만 법인 차'를 적발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사실 수백만 대에 달하는 업무용 차의 사적인 사용을 일일이 사전에 조사하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애초에 법을 더 명확하고 강하게 고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실제로 지난해 말에 법 개정이 논의될 땐 더 강한 규제안이 추진됐습니다. 비과세 한도를 더 명확하게 정하고 경비 처리는 업무용으로 사용한 만큼만 하도록 허용하는 방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수입차 시장이 위축될 수 있고, 자동차 수출 국가들과 통상 마찰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또 업무용 일지를 너무 자세히 쓸 경우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이런저런 논의 과정 끝에 규제안은 대폭 후퇴했습니다.

'무늬만 회사 차'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요? 회사 차에는 회사 로고를 붙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운행일지를 더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아예 제도 개선을 원점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앞으로 운영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실효성 있는 제도로 발전시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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