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시선] 외국영화, 한국판 포스터는 왜?

입력 2016.04.27 (11:0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최광희 영화평론가

여러분이 영화를 고르실 때 가장 먼저 접하는 것, 뭘까요. 바로 그 영화의 포스터죠. 포스터는 영화에 대한 첫인상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강렬한 포스터 한 장이 그 영화를 보고 싶게끔 만드는 경우도 있고요. 거꾸로 영화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포스터들도 있습니다. 자, 오늘 까칠한 시선에서 영화 포스터에서 딴죽을 걸어보겠습니다.

지난주에 개봉한 영화 <브루클린(Brooklyn)>입니다. 영화 속에서 여주인공 에일리스(Eilis)는 뉴욕 생활 와중에 심한 외로움을 겪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 이탈리아 출신의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요.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일로 다시 아일랜드에 잠시 다녀올 수밖에 없게 되면서부터 그녀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그래도 고향 사람들이 자신을 반겨주는 아일랜드에 남을 것이냐 아니면 사랑하는 남자가 기다리고 있는 뉴욕으로 갈 것이냐 이런 딜레마죠. 그러니까 영화는 에일리스라는 한 여성의 삶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자, 그럼 이 영화의 원래 포스터를 보기로 할까요.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를 배경으로 여주인공이 담벼락에 기대 서 있습니다. 여행 가방을 옆에 든 여주인공의 모습이 영화의 스토리라인과 주제를 함축적이면서도 정갈하게 묘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우리나라 개봉 당시 포스터를 볼까요? 여주인공과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가 이마를 맞대고 있는 사진으로 둔갑했습니다. 여주인공의 실존적 선택이라는 주제 의식은 증발되어버리고 평범한 로맨스나 멜로 영화라는 인상을 안겨주죠. 게다가 참 글들이 많습니다. 한마디로 좋은 영화라는 얘기인 건 알겠는데, 원래 포스터와 비교해보면 조잡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 영화의 수입사는 왜 원래 세련된 포스터를 버리고 이렇게 조잡한 포스터를 만든 걸까요. 결국, 그래야 관객들이 영화에 호감을 품을 수 있다고 판단한 거겠죠.



얼마 전에 개봉한 <조이(Joy)>라는 영화도 그렇습니다. 원래 포스터는 여주인공을 맡은 제니퍼 로렌스(Jennifer Lawrence)가 얼굴을 치켜들어 내리는 눈을 맞고 있습니다. 눈이란 여주인공이 맞게 되는 고난이자, 마침내 찾아온 보상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죠. 그걸 얼굴로 맞고 있는 모습은 영화 속의 여주인공 삶의 태도를 닮았죠. 그런데 우리나라 포스터는 어떤가요, 역시 눈은 맞고 있는데 어딘가를 응시하면서 선글라스를 살짝 벗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원래 포스터에는 나오지 않은 영화 속 남자배우들이 포스터 아래쪽에 등장합니다.



영화의 포스터가 영화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 2006년에 개봉한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El Laberinto Del Fauno, Pan's Labyrinth)>라는 작품인데요. 이 작품은 대단히 기괴하고도 음산한 톤의 영화입니다. 영화의 오리지널 포스터를 보실까요. 영화의 분위기 그대로 소녀가 압도적으로 공포스러우면서도 위험한 상황에 처한 느낌을 주죠. 국내 개봉 당시의 포스터는 소녀의 앞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느낌이 굉장히 다르죠. 기괴함이라는 분위기보다는 뭔가 판타지 모험극 같은 느낌을 안겨줍니다. 이 포스터만을 본 관객들은 뭔가 아기자기하고도 동화스러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겁니다. 과연 그렇게 생각하고 영화를 관람한 많은 관객이 영화에 저주를 퍼부었죠. 사실 그건 영화의 잘못이 아니라 포스터가 관객들로 하여금 오해하게끔 만든 것이죠.

앞서 말씀드린 대로 포스터는 영화에 대한 첫인상을 만들어내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 관객들의 정서에 맞춰야한다’ 또는 더 ‘많은 관심과 호기심을 가로채야한다’ 이런 강박감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 영화를 모욕하는 이들은 저 같은 비평가나 관객들이 아니라 그 영화를 직접 사고파는 이들일 때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까칠한 시선이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까칠한 시선] 외국영화, 한국판 포스터는 왜?
    • 입력 2016-04-27 11:09:43
    까칠한 시선
최광희 영화평론가

여러분이 영화를 고르실 때 가장 먼저 접하는 것, 뭘까요. 바로 그 영화의 포스터죠. 포스터는 영화에 대한 첫인상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강렬한 포스터 한 장이 그 영화를 보고 싶게끔 만드는 경우도 있고요. 거꾸로 영화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포스터들도 있습니다. 자, 오늘 까칠한 시선에서 영화 포스터에서 딴죽을 걸어보겠습니다.

지난주에 개봉한 영화 <브루클린(Brooklyn)>입니다. 영화 속에서 여주인공 에일리스(Eilis)는 뉴욕 생활 와중에 심한 외로움을 겪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 이탈리아 출신의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요.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일로 다시 아일랜드에 잠시 다녀올 수밖에 없게 되면서부터 그녀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그래도 고향 사람들이 자신을 반겨주는 아일랜드에 남을 것이냐 아니면 사랑하는 남자가 기다리고 있는 뉴욕으로 갈 것이냐 이런 딜레마죠. 그러니까 영화는 에일리스라는 한 여성의 삶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자, 그럼 이 영화의 원래 포스터를 보기로 할까요.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를 배경으로 여주인공이 담벼락에 기대 서 있습니다. 여행 가방을 옆에 든 여주인공의 모습이 영화의 스토리라인과 주제를 함축적이면서도 정갈하게 묘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우리나라 개봉 당시 포스터를 볼까요? 여주인공과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가 이마를 맞대고 있는 사진으로 둔갑했습니다. 여주인공의 실존적 선택이라는 주제 의식은 증발되어버리고 평범한 로맨스나 멜로 영화라는 인상을 안겨주죠. 게다가 참 글들이 많습니다. 한마디로 좋은 영화라는 얘기인 건 알겠는데, 원래 포스터와 비교해보면 조잡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 영화의 수입사는 왜 원래 세련된 포스터를 버리고 이렇게 조잡한 포스터를 만든 걸까요. 결국, 그래야 관객들이 영화에 호감을 품을 수 있다고 판단한 거겠죠.



얼마 전에 개봉한 <조이(Joy)>라는 영화도 그렇습니다. 원래 포스터는 여주인공을 맡은 제니퍼 로렌스(Jennifer Lawrence)가 얼굴을 치켜들어 내리는 눈을 맞고 있습니다. 눈이란 여주인공이 맞게 되는 고난이자, 마침내 찾아온 보상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죠. 그걸 얼굴로 맞고 있는 모습은 영화 속의 여주인공 삶의 태도를 닮았죠. 그런데 우리나라 포스터는 어떤가요, 역시 눈은 맞고 있는데 어딘가를 응시하면서 선글라스를 살짝 벗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원래 포스터에는 나오지 않은 영화 속 남자배우들이 포스터 아래쪽에 등장합니다.



영화의 포스터가 영화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 2006년에 개봉한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El Laberinto Del Fauno, Pan's Labyrinth)>라는 작품인데요. 이 작품은 대단히 기괴하고도 음산한 톤의 영화입니다. 영화의 오리지널 포스터를 보실까요. 영화의 분위기 그대로 소녀가 압도적으로 공포스러우면서도 위험한 상황에 처한 느낌을 주죠. 국내 개봉 당시의 포스터는 소녀의 앞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느낌이 굉장히 다르죠. 기괴함이라는 분위기보다는 뭔가 판타지 모험극 같은 느낌을 안겨줍니다. 이 포스터만을 본 관객들은 뭔가 아기자기하고도 동화스러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겁니다. 과연 그렇게 생각하고 영화를 관람한 많은 관객이 영화에 저주를 퍼부었죠. 사실 그건 영화의 잘못이 아니라 포스터가 관객들로 하여금 오해하게끔 만든 것이죠.

앞서 말씀드린 대로 포스터는 영화에 대한 첫인상을 만들어내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 관객들의 정서에 맞춰야한다’ 또는 더 ‘많은 관심과 호기심을 가로채야한다’ 이런 강박감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 영화를 모욕하는 이들은 저 같은 비평가나 관객들이 아니라 그 영화를 직접 사고파는 이들일 때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까칠한 시선이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