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을 아십니까?

입력 2016.05.01 (22:30) 수정 2016.05.01 (23:5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프롤로그>

<인터뷰> 박옥자(학부모) : "(문화상품권의 사용처가 어딘지 아세요?) 그거는 잘 모르고 그냥 어디서 책 산다고 하면 그냥 그런 걸로만 알고 있죠."

<녹취> 청소년들 : "(이걸 줄여서 뭐라고 하죠?) 문상이요. 문상? 그냥 문상이라고 하는데. 문상이요."

<녹취> 청소년들(음성변조) : "게임, 현질(게임 아이템 구매). (책 사면) 이득이 아닌 것 같아요. 문화상품권 받으면 웬만하면 캐쉬질(게임아이템 구매)에 쓰니까. 책으로는 웬만하면 안 써요."

<녹취> 청소년들(음성변조) : "한마디로 돈이 되긴 돈이 되죠. 돈을 주겠다고 했는데, '문상으로 줄까? (묻더라고요.)"

<녹취> 임정혁(한신교육문화연구소장) : "마음만 먹으면 이런 미성년자의 성 구매를 문화상품권을 통해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오프닝>

혹시 '문상'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아이들은 알고 어른들은 모르는 이 단어, 바로 문화상품권의 줄임말입니다.

한해 6천억 원이 넘는 '문상', '문화상품권'이 유통되는데 사실상 청소년들의 화폐처럼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문상은 문화 진흥이라는 본래 취지에 걸맞게 쓰이고 있을까요?

청소년들의 화폐, 문상의 실체를 추적해봤습니다.

<리포트>

어둡고 허름한 경기도 외곽의 한 모텔.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이 작은 방이 가출 청소년 이 모양의 초라한 보금자리입니다.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번 돈으로 이런 모텔방을 전전하며 숙식을 해결 한지도 벌써 3년째….

<인터뷰> 이 모양(가출 청소년/음성변조) : "그냥 모텔에서 매일 잤어요. 하루살이로 그냥 노래방이 일당이어서 일당으로 벌면 모텔 가서 쓰고 항상."

집을 나온 뒤 쏟아지는 건 도움의 손길이 아니라 어른들의 갖가지 성매매 제안이라고 이 양은 털어놓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으로 벗은 몸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거나 음란 화상 채팅을 하면 돈을 주겠다는 성인들의 제안은 청소년들이 가장 쉽게 빠져드는 유혹입니다.

<인터뷰> 이모 양(가출청소년/음성변조) : "사진으로 부위 찍어서 보내주고 몇만 원, 몇만 원 이렇게 찍어서 정육점에서 고기 팔듯이 그렇게 한 적도 있고. 영상통화 걸어가지고 이렇게 보여준 것도 있고. 그게 몸캠이에요."

이렇게 인터넷에서 청소년들의 성을 사는 부도덕한 어른들이 지불하는 수단이 바로 문화상품권이라고 청소년들은 말합니다.

<녹취> □□□(가출 청소년/음성변조) : "(문화상품권을) 팔 수도 있고 팔면 돈이 되잖아요. 돈도 되고 아니면 뭐 도저히 안 팔리면 게임머니로 쓸 수도 있는 거니까. 한마디로 돈이 되긴 돈이 되죠."

<녹취> ○○○(가출 청소년/음성변조) : "문화상품권으로 그렇게 쉽게 거래할 수 있는 건 좋은 거겠죠? 그냥 간단하게 사진 한 장으로도 할 수 있다는 점?"

문화상품권이 인터넷에서 현금처럼 사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래 흔적이 남지 않는 데다 실제로 만나거나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간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상', 그러니까 '문화상품권'에는 금액 표시가 있는데요.

이 표시를 긁어내면 '핀 번호'가 나오고, 이 '핀 번호'를 상대방에게 보내는 것으로 사실상의 송금이 이뤄지는 겁니다.

실제로 인터넷 사이트에서 문화상품권을 이용할 때는 '핀 번호'를 입력하는 창이 뜨고 여기에 '핀 번호'만 처 넣으면 결제가 이뤄집니다.

미성년인 청소년들은 본인 명의의 은행계좌가 없거나 부모의 동의없이 거래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대신 '문상', 즉 문화상품권이 사이버상의 화폐로 쓰이고 있는 셈입니다.

<녹취> 중학생 : "사진 찍어서 보내기도 하고 문자를 찍어서 보내기도 하죠? (그러면 송금하는 것처럼 되는 거예요?) 네."

'문화상품권'이라는 간편한 결제수단을 이용한 '온라인 성매매'의 검은 손길은 가출 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반 학생들에게까지 뻗치고 있습니다.

<인터뷰> 고등학생(음성변조) : "어떤 사람이 저한테 페북신청을 걸었는데 받아줬더니 인사를 가볍게 나누다가 아르바이트 구하시냐고 그래서 안 한다 했더니 3일에 15만 원 줄 테니까 할 생각 없냐고 물어요. 그래서 무슨 아르바이트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랑 영상통화를 하면 3일에 15만 원을 주겠다 그래서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서 저는 안 한다고 했어요. (상대방이) 돈을 주겠다고 했는데 '문상으로 줄까? 아니면 통장으로 넣어줄까?' 그래서…."

한 여중생은 문화상품권을 받고 인터넷으로 자신의 음란사진과 영상을 보냈다가 나중에 사진과 영상이 유포돼 씻기 힘든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결국, 자녀가 이른바 '문상 벌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부모님이 전문업체에 디지털 기록 삭제를 요청했습니다.

<인터뷰> 김호진(디지털 기록 삭제 업체 대표) : "(부모가) 아이 방을 청소하러 들어갔는데 아빠의 허리띠가 있거나 개목걸이가 있는 거예요. 아이가 자는 사이에 핸드폰을 찾아서 뒤져 본 거죠. 그랬더니 아이의 모든 행동들이 이런 것들이 있는 걸 찾아낸 거예요."

이 여중생과 10여 명의 성인 남성들이 함께 채팅을 했던 이른바 '노예 대화방'입니다.

음란행위 한 번에 문상, 즉 문화상품권 몇장이라는 식의 대화가 계속해서 오고 갔습니다.

<인터뷰> 김호진(디지털 기록 삭제 업체 대표) : "'친구해요.' '매너하실 분 쪽지.' '문상 필요한사람 쪽지.' 이렇게 보내는 거죠. 보내면 대화를 하다가 그거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참여를 하면서 만들어지는 거죠."

실태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해 청소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인터넷을 검색해봤습니다.

음란 사진과 영상을 문상으로 거래한다는 글을 손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인터뷰>임정혁(한신 교육문화연구소장) : "현금 송금을 하면 그게 부모님한테 내역이 나오니까 부모님한테 들킬 수도 있고, 우리 학생들이 통장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이러니까 여러가지로 불편한 거죠. 문화상품권으로 거래를 하면 즉각적으로 현금으로 바꿀수도 있고 현금화 시킬수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다 문상 거래를 하고 있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이 성을 매매하는 행위가 '문상'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아무런 통제 없이 이뤄지고 있는 겁니다.

<인터뷰>임정혁(한신 교육문화연구소장) : "사실 마음만 먹으면 이런 미성년자의 성구매를 문화상품권을 통해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굉장히 무방비 상태죠. 이걸 누가 제제를 하고 누가 검사를 하고 누가 이걸 일일히 신고를 하고 하겠습니까."

문화상품권은 얼마나 발행되고, 어디에 사용되고 있을까.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관련 업계는 인지세 등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한해에 6천억원 이상의 문화상품권이 유통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문화상품권의 발행과 이용 내역이 불투명하고 추적도 어렵다보니 청소년 성매매 외에 다른 범죄에 이용되기도 합니다.

지난해 10월에는 다른 사람의 스마트폰을 빌리거나 훔쳐 모바일 문화상품권 1천3백여만원어치를 구입한 뒤 편의점에서 현금으로 바꾼 20대가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녹취> 경기 의정부경찰서 관계자 : "온라인에서는 그 고유 번호 있잖아요. 문화 상품권의 핀번호라고 그러는데 그 결제코드만 알고 있으면 그냥 누구라도 결제를 해버릴 수가 있어요. 핀번호를 적어가지고 편의점에서 현금으로 세탁하는 거죠."

문화상품권은 지난 1998년 문화관련 협회와 단체 27곳이 '한국문화진흥'을 설립한 뒤 정부의 인가를 받아 발행을 시작했습니다.

발행 5년 만인 지난 2004년 누적 판매량이 1억 장을 넘어서는 등 급성장했습니다.

1999년 상품권법이 폐지되면서 모든 종류의 상품권 발행이 전면 자유화 된 것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상품권법의 폐지는 관리감독의 공백을 불러왔습니다.

상품권이 얼마나 유통되고, 발행 목적에 맞게 쓰이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임동주(국회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장) : "지금 상품권 관할법이 없다보니까 상품권을 관할하는 관청도 없고요, 정부 부처도 없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규모를 어느 기관에서도 추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대략 추정하기에는 2014년까지 10조 원에서 21조 원으로 추정됐는데…."

문화상품권은 여러 종이 있지만, 제일 처음 발행을 시작했고, 가장 널리 유통되는 상품권은 '한국문화진흥'의 '컬쳐랜드 문화상품권'입니다.

문화상품권이 인터넷에서 악용되고 있는 데 대한 한국문화진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업체를 찾았지만 한국문화진흥은 구체적인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녹취> 한국문화진흥 관계자(음성변조) : "취재는 좀 어려울 것 같고요. 저희 담당 임원분들도 안계셔서.."

대신 고객서비스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검토하여 개선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최초에 한국문화진흥에 문화상품권 발행을 '추천'한 '문화체육관광부'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녹취>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음성변조) : "(문체부가 문화상품권 관련된 어떤 것도 안하는건가요?)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어떤 것도 없습니다. 옛날에는 했었는데 지금은 그 업무를 하는 데가 없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2008년 개정된 문화예술진흥법에는 '문화상품권' 인증 제도가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전체 가맹점 가운데 도서,공연 등 문화예술 분야에 속한 가맹점 수와 여기서 사용한 상환액의 비율이 일정 기준 이상일 경우에만 문화상품권 인증을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문체부는 매년 기준을 고시하고 문화상품권 인증 신청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문체부는 지난 2008년 이후 이 같은 인증 제도를 운용한 적이 없다는 것이 취재 결과 드러났습니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모든 상품권의 발행이 자유이기 때문에 문화상품권 역시 반드시 인증을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녹취>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음성변조) : "인증을 그 다음(법이 생긴 뒤)부터 한 번도 안 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공백이 생겼어요. 그래서 그동안 이게 막 떠돌면서…. 아무런 이슈가 안되니까 업무가 붕 뜬 거죠. 저희가 적극적으로 인증한 적이 없으니까, 그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 됐던 거고요."

또, 인증제는 문화상품권을 통제·관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문화 예술 활성화를 위해 상품권 사용을 촉진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하지만, 문체부가 인증 업무에 손을 놓은 사이 문화예술 활성화라는 상품권 도입 취지는 변질되고 있습니다.

<녹취> 청소년들(음성변조) : "(어떤데 많이 써요?) 게임, 현질(게임아이템 구매). (책사는 건) 이득이 아닌 것 같아요. 문화상품권 받으면 왠만하면 캐쉬질(게임아이템 구매)에 쓰니까. 책으로는 왠만하면 안 써요."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꾸는 이른바 '상품권 깡'이 횡행하고 게임이나 음란동영상을 위한 음성적인 결제수단으로도 쓰입니다.

<녹취> 중학생(음성변조) : "문화상품권을 받았어요. 문화상품권을 게임의 골드로 서로 거래를 해요. 바꾼 다음에.. 그 골드도 다른 사람이랑 거래를 해서 (현금으로) 바꿀 수가 있어요."

<녹취> 초등학생(음성변조) : "제 친구가 문상으로 야동 샀어요. 야한 사진이 동영상사이트에 있잖아요. 그거 결제하는 거요. 문상 번호만 대면 되는 거 같아요."

대부분의 부모는 '문화상품권'이 도서 구입이나 문화 공연 등 건전한 목적에만 쓰이는 것으로 알고 용돈이나 선물을 문화상품권으로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터뷰> 박옥자(학부모) : "(문화상품권의 사용처가 어딘지 아세요?) 그거는 잘 모르고 그냥 어디서 책 산다고 하면 그냥 그런 걸로만 알고 있죠. 게임도 할 수 있어요? 나는 책만 사는 줄 알고 있었지."

실제로 사용되지 않아 한국문화진흥이 가져가는 낙전 수입만 한 해 70억 원이 넘는 문화상품권.

<인터뷰> 이지훈(공인회계사) : "영업외수익으로 분리되는 상품권 소멸시효경과이익(낙전수입)은 비중이 영업손실에 비해서도 많이 큰 편입니다."

어느새인가부터 청소년들의 '화폐'로 자리 잡은 '문화상품권'.

그 규모와 중요성에 걸맞은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지 제도적 점검이 필요해 보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문상’을 아십니까?
    • 입력 2016-05-01 23:09:02
    • 수정2016-05-01 23:53:57
    취재파일K
<프롤로그>

<인터뷰> 박옥자(학부모) : "(문화상품권의 사용처가 어딘지 아세요?) 그거는 잘 모르고 그냥 어디서 책 산다고 하면 그냥 그런 걸로만 알고 있죠."

<녹취> 청소년들 : "(이걸 줄여서 뭐라고 하죠?) 문상이요. 문상? 그냥 문상이라고 하는데. 문상이요."

<녹취> 청소년들(음성변조) : "게임, 현질(게임 아이템 구매). (책 사면) 이득이 아닌 것 같아요. 문화상품권 받으면 웬만하면 캐쉬질(게임아이템 구매)에 쓰니까. 책으로는 웬만하면 안 써요."

<녹취> 청소년들(음성변조) : "한마디로 돈이 되긴 돈이 되죠. 돈을 주겠다고 했는데, '문상으로 줄까? (묻더라고요.)"

<녹취> 임정혁(한신교육문화연구소장) : "마음만 먹으면 이런 미성년자의 성 구매를 문화상품권을 통해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오프닝>

혹시 '문상'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아이들은 알고 어른들은 모르는 이 단어, 바로 문화상품권의 줄임말입니다.

한해 6천억 원이 넘는 '문상', '문화상품권'이 유통되는데 사실상 청소년들의 화폐처럼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문상은 문화 진흥이라는 본래 취지에 걸맞게 쓰이고 있을까요?

청소년들의 화폐, 문상의 실체를 추적해봤습니다.

<리포트>

어둡고 허름한 경기도 외곽의 한 모텔.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이 작은 방이 가출 청소년 이 모양의 초라한 보금자리입니다.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번 돈으로 이런 모텔방을 전전하며 숙식을 해결 한지도 벌써 3년째….

<인터뷰> 이 모양(가출 청소년/음성변조) : "그냥 모텔에서 매일 잤어요. 하루살이로 그냥 노래방이 일당이어서 일당으로 벌면 모텔 가서 쓰고 항상."

집을 나온 뒤 쏟아지는 건 도움의 손길이 아니라 어른들의 갖가지 성매매 제안이라고 이 양은 털어놓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으로 벗은 몸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거나 음란 화상 채팅을 하면 돈을 주겠다는 성인들의 제안은 청소년들이 가장 쉽게 빠져드는 유혹입니다.

<인터뷰> 이모 양(가출청소년/음성변조) : "사진으로 부위 찍어서 보내주고 몇만 원, 몇만 원 이렇게 찍어서 정육점에서 고기 팔듯이 그렇게 한 적도 있고. 영상통화 걸어가지고 이렇게 보여준 것도 있고. 그게 몸캠이에요."

이렇게 인터넷에서 청소년들의 성을 사는 부도덕한 어른들이 지불하는 수단이 바로 문화상품권이라고 청소년들은 말합니다.

<녹취> □□□(가출 청소년/음성변조) : "(문화상품권을) 팔 수도 있고 팔면 돈이 되잖아요. 돈도 되고 아니면 뭐 도저히 안 팔리면 게임머니로 쓸 수도 있는 거니까. 한마디로 돈이 되긴 돈이 되죠."

<녹취> ○○○(가출 청소년/음성변조) : "문화상품권으로 그렇게 쉽게 거래할 수 있는 건 좋은 거겠죠? 그냥 간단하게 사진 한 장으로도 할 수 있다는 점?"

문화상품권이 인터넷에서 현금처럼 사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래 흔적이 남지 않는 데다 실제로 만나거나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간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상', 그러니까 '문화상품권'에는 금액 표시가 있는데요.

이 표시를 긁어내면 '핀 번호'가 나오고, 이 '핀 번호'를 상대방에게 보내는 것으로 사실상의 송금이 이뤄지는 겁니다.

실제로 인터넷 사이트에서 문화상품권을 이용할 때는 '핀 번호'를 입력하는 창이 뜨고 여기에 '핀 번호'만 처 넣으면 결제가 이뤄집니다.

미성년인 청소년들은 본인 명의의 은행계좌가 없거나 부모의 동의없이 거래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대신 '문상', 즉 문화상품권이 사이버상의 화폐로 쓰이고 있는 셈입니다.

<녹취> 중학생 : "사진 찍어서 보내기도 하고 문자를 찍어서 보내기도 하죠? (그러면 송금하는 것처럼 되는 거예요?) 네."

'문화상품권'이라는 간편한 결제수단을 이용한 '온라인 성매매'의 검은 손길은 가출 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반 학생들에게까지 뻗치고 있습니다.

<인터뷰> 고등학생(음성변조) : "어떤 사람이 저한테 페북신청을 걸었는데 받아줬더니 인사를 가볍게 나누다가 아르바이트 구하시냐고 그래서 안 한다 했더니 3일에 15만 원 줄 테니까 할 생각 없냐고 물어요. 그래서 무슨 아르바이트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랑 영상통화를 하면 3일에 15만 원을 주겠다 그래서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서 저는 안 한다고 했어요. (상대방이) 돈을 주겠다고 했는데 '문상으로 줄까? 아니면 통장으로 넣어줄까?' 그래서…."

한 여중생은 문화상품권을 받고 인터넷으로 자신의 음란사진과 영상을 보냈다가 나중에 사진과 영상이 유포돼 씻기 힘든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결국, 자녀가 이른바 '문상 벌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부모님이 전문업체에 디지털 기록 삭제를 요청했습니다.

<인터뷰> 김호진(디지털 기록 삭제 업체 대표) : "(부모가) 아이 방을 청소하러 들어갔는데 아빠의 허리띠가 있거나 개목걸이가 있는 거예요. 아이가 자는 사이에 핸드폰을 찾아서 뒤져 본 거죠. 그랬더니 아이의 모든 행동들이 이런 것들이 있는 걸 찾아낸 거예요."

이 여중생과 10여 명의 성인 남성들이 함께 채팅을 했던 이른바 '노예 대화방'입니다.

음란행위 한 번에 문상, 즉 문화상품권 몇장이라는 식의 대화가 계속해서 오고 갔습니다.

<인터뷰> 김호진(디지털 기록 삭제 업체 대표) : "'친구해요.' '매너하실 분 쪽지.' '문상 필요한사람 쪽지.' 이렇게 보내는 거죠. 보내면 대화를 하다가 그거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참여를 하면서 만들어지는 거죠."

실태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해 청소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인터넷을 검색해봤습니다.

음란 사진과 영상을 문상으로 거래한다는 글을 손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인터뷰>임정혁(한신 교육문화연구소장) : "현금 송금을 하면 그게 부모님한테 내역이 나오니까 부모님한테 들킬 수도 있고, 우리 학생들이 통장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이러니까 여러가지로 불편한 거죠. 문화상품권으로 거래를 하면 즉각적으로 현금으로 바꿀수도 있고 현금화 시킬수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다 문상 거래를 하고 있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이 성을 매매하는 행위가 '문상'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아무런 통제 없이 이뤄지고 있는 겁니다.

<인터뷰>임정혁(한신 교육문화연구소장) : "사실 마음만 먹으면 이런 미성년자의 성구매를 문화상품권을 통해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굉장히 무방비 상태죠. 이걸 누가 제제를 하고 누가 검사를 하고 누가 이걸 일일히 신고를 하고 하겠습니까."

문화상품권은 얼마나 발행되고, 어디에 사용되고 있을까.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관련 업계는 인지세 등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한해에 6천억원 이상의 문화상품권이 유통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문화상품권의 발행과 이용 내역이 불투명하고 추적도 어렵다보니 청소년 성매매 외에 다른 범죄에 이용되기도 합니다.

지난해 10월에는 다른 사람의 스마트폰을 빌리거나 훔쳐 모바일 문화상품권 1천3백여만원어치를 구입한 뒤 편의점에서 현금으로 바꾼 20대가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녹취> 경기 의정부경찰서 관계자 : "온라인에서는 그 고유 번호 있잖아요. 문화 상품권의 핀번호라고 그러는데 그 결제코드만 알고 있으면 그냥 누구라도 결제를 해버릴 수가 있어요. 핀번호를 적어가지고 편의점에서 현금으로 세탁하는 거죠."

문화상품권은 지난 1998년 문화관련 협회와 단체 27곳이 '한국문화진흥'을 설립한 뒤 정부의 인가를 받아 발행을 시작했습니다.

발행 5년 만인 지난 2004년 누적 판매량이 1억 장을 넘어서는 등 급성장했습니다.

1999년 상품권법이 폐지되면서 모든 종류의 상품권 발행이 전면 자유화 된 것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상품권법의 폐지는 관리감독의 공백을 불러왔습니다.

상품권이 얼마나 유통되고, 발행 목적에 맞게 쓰이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임동주(국회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장) : "지금 상품권 관할법이 없다보니까 상품권을 관할하는 관청도 없고요, 정부 부처도 없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규모를 어느 기관에서도 추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대략 추정하기에는 2014년까지 10조 원에서 21조 원으로 추정됐는데…."

문화상품권은 여러 종이 있지만, 제일 처음 발행을 시작했고, 가장 널리 유통되는 상품권은 '한국문화진흥'의 '컬쳐랜드 문화상품권'입니다.

문화상품권이 인터넷에서 악용되고 있는 데 대한 한국문화진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업체를 찾았지만 한국문화진흥은 구체적인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녹취> 한국문화진흥 관계자(음성변조) : "취재는 좀 어려울 것 같고요. 저희 담당 임원분들도 안계셔서.."

대신 고객서비스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검토하여 개선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최초에 한국문화진흥에 문화상품권 발행을 '추천'한 '문화체육관광부'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녹취>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음성변조) : "(문체부가 문화상품권 관련된 어떤 것도 안하는건가요?)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어떤 것도 없습니다. 옛날에는 했었는데 지금은 그 업무를 하는 데가 없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2008년 개정된 문화예술진흥법에는 '문화상품권' 인증 제도가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전체 가맹점 가운데 도서,공연 등 문화예술 분야에 속한 가맹점 수와 여기서 사용한 상환액의 비율이 일정 기준 이상일 경우에만 문화상품권 인증을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문체부는 매년 기준을 고시하고 문화상품권 인증 신청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문체부는 지난 2008년 이후 이 같은 인증 제도를 운용한 적이 없다는 것이 취재 결과 드러났습니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모든 상품권의 발행이 자유이기 때문에 문화상품권 역시 반드시 인증을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녹취>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음성변조) : "인증을 그 다음(법이 생긴 뒤)부터 한 번도 안 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공백이 생겼어요. 그래서 그동안 이게 막 떠돌면서…. 아무런 이슈가 안되니까 업무가 붕 뜬 거죠. 저희가 적극적으로 인증한 적이 없으니까, 그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 됐던 거고요."

또, 인증제는 문화상품권을 통제·관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문화 예술 활성화를 위해 상품권 사용을 촉진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하지만, 문체부가 인증 업무에 손을 놓은 사이 문화예술 활성화라는 상품권 도입 취지는 변질되고 있습니다.

<녹취> 청소년들(음성변조) : "(어떤데 많이 써요?) 게임, 현질(게임아이템 구매). (책사는 건) 이득이 아닌 것 같아요. 문화상품권 받으면 왠만하면 캐쉬질(게임아이템 구매)에 쓰니까. 책으로는 왠만하면 안 써요."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꾸는 이른바 '상품권 깡'이 횡행하고 게임이나 음란동영상을 위한 음성적인 결제수단으로도 쓰입니다.

<녹취> 중학생(음성변조) : "문화상품권을 받았어요. 문화상품권을 게임의 골드로 서로 거래를 해요. 바꾼 다음에.. 그 골드도 다른 사람이랑 거래를 해서 (현금으로) 바꿀 수가 있어요."

<녹취> 초등학생(음성변조) : "제 친구가 문상으로 야동 샀어요. 야한 사진이 동영상사이트에 있잖아요. 그거 결제하는 거요. 문상 번호만 대면 되는 거 같아요."

대부분의 부모는 '문화상품권'이 도서 구입이나 문화 공연 등 건전한 목적에만 쓰이는 것으로 알고 용돈이나 선물을 문화상품권으로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터뷰> 박옥자(학부모) : "(문화상품권의 사용처가 어딘지 아세요?) 그거는 잘 모르고 그냥 어디서 책 산다고 하면 그냥 그런 걸로만 알고 있죠. 게임도 할 수 있어요? 나는 책만 사는 줄 알고 있었지."

실제로 사용되지 않아 한국문화진흥이 가져가는 낙전 수입만 한 해 70억 원이 넘는 문화상품권.

<인터뷰> 이지훈(공인회계사) : "영업외수익으로 분리되는 상품권 소멸시효경과이익(낙전수입)은 비중이 영업손실에 비해서도 많이 큰 편입니다."

어느새인가부터 청소년들의 '화폐'로 자리 잡은 '문화상품권'.

그 규모와 중요성에 걸맞은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지 제도적 점검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