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이오지마 전투 영웅, 진실 여부 재조사 착수

입력 2016.05.03 (21:0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일본 남동쪽에 있는 화산섬 이오지마(Iwo Jima). 지금은 이오토(硫黄島)로 불리는 이 섬은 세계 2차 대전 막바지 미군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잘 알려져있다.

특히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좋아하는 영화팬들에게는 더욱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2007년 개봉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아버지의 깃발(Flags of Our Fathers)'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 1945년 초 미국은 일본 본토에 대한 B-29 전략폭격기 발진 기지의 하나로 거리가 상대적으로 가까운 이오지마 탈환을 결정했다. 이오지마에서 벌어진 전투는 1945년 2월 16일부터 다음 달 26일까지 1개월여간 벌어졌다. 전투는 일본군 수비대 1만 8천여 명과 미군 5천여 명이 전사할 정도로 격전이었다.



전투는 미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오지마 수리바치 산에 성조기를 게양하는 6명의 미 해군 장병 사진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승리를 염원하던 미국민들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전해졌다. 당시 사진은 AP통신 소속 사진 기자 조 로젠탈이 찍었다.

그런데 최근 이오지마 전투의 성조기 게양과 관련해 미군이 재조사에 나섰다. 지난 2014년 아마추어 역사연구가 두 사람이 사진 속 인물이 성조기 게양과는 관계없음을 시사하는 증거를 제출하면서 재조사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당시 성조기 게양 사진의 주인공 병사 6명 중 한 명인 해군 위생병 존 브래들리가 실제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첫째 의문은 브래들리가 탄창을 찬 채 군복 포켓 밖으로 철사 절단기를 갖고 있다는 부분이다. 해군 위생병은 통상 소총을 휴대하지 않은 데다 철사 절단기도 필요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브래들리의 바지와 철모 아래 군모를 쓴 부분도 문제 삼았다. 문제의 게양식 사진을 보면 브래들리는 끝단이 접혀 올려지지 않은 바지 차림이었다. 그러나 같은 날 다른 사진에는 바지 끝이 접혀 올려간 상태였다. 이와 함께 다른 사진에는 그가 철모 아래로 군모를 쓰지 않았다.



즉 브래들리는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전투에 참가한 것처럼 사진을 찍었고 그로 인해 해군십자상을 받은 등 유명 전쟁 영웅이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의혹이 나오는 이유는 미 해군이 당시 승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첫 번째 찍은 사진보다 더 큰 성조기를 갖고 사진을 다시 찍었기 때문이다.

존 브래들리는 1994년 숨졌고 아들인 제임스 브래들리는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영화 '아버지의 깃발'(Flags of Our Fathers)의 원작이다. 하지만 브래들리의 아들 제임스 브래들리는 재조사와 관련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며 "사실과 진실에 관심이 있을 뿐 재조사에 대해서는 상관없다"고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2차 대전 이오지마 전투 영웅, 진실 여부 재조사 착수
    • 입력 2016-05-03 21:03:49
    국제
 일본 남동쪽에 있는 화산섬 이오지마(Iwo Jima). 지금은 이오토(硫黄島)로 불리는 이 섬은 세계 2차 대전 막바지 미군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잘 알려져있다.

특히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좋아하는 영화팬들에게는 더욱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2007년 개봉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아버지의 깃발(Flags of Our Fathers)'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 1945년 초 미국은 일본 본토에 대한 B-29 전략폭격기 발진 기지의 하나로 거리가 상대적으로 가까운 이오지마 탈환을 결정했다. 이오지마에서 벌어진 전투는 1945년 2월 16일부터 다음 달 26일까지 1개월여간 벌어졌다. 전투는 일본군 수비대 1만 8천여 명과 미군 5천여 명이 전사할 정도로 격전이었다.



전투는 미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오지마 수리바치 산에 성조기를 게양하는 6명의 미 해군 장병 사진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승리를 염원하던 미국민들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전해졌다. 당시 사진은 AP통신 소속 사진 기자 조 로젠탈이 찍었다.

그런데 최근 이오지마 전투의 성조기 게양과 관련해 미군이 재조사에 나섰다. 지난 2014년 아마추어 역사연구가 두 사람이 사진 속 인물이 성조기 게양과는 관계없음을 시사하는 증거를 제출하면서 재조사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당시 성조기 게양 사진의 주인공 병사 6명 중 한 명인 해군 위생병 존 브래들리가 실제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첫째 의문은 브래들리가 탄창을 찬 채 군복 포켓 밖으로 철사 절단기를 갖고 있다는 부분이다. 해군 위생병은 통상 소총을 휴대하지 않은 데다 철사 절단기도 필요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브래들리의 바지와 철모 아래 군모를 쓴 부분도 문제 삼았다. 문제의 게양식 사진을 보면 브래들리는 끝단이 접혀 올려지지 않은 바지 차림이었다. 그러나 같은 날 다른 사진에는 바지 끝이 접혀 올려간 상태였다. 이와 함께 다른 사진에는 그가 철모 아래로 군모를 쓰지 않았다.



즉 브래들리는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전투에 참가한 것처럼 사진을 찍었고 그로 인해 해군십자상을 받은 등 유명 전쟁 영웅이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의혹이 나오는 이유는 미 해군이 당시 승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첫 번째 찍은 사진보다 더 큰 성조기를 갖고 사진을 다시 찍었기 때문이다.

존 브래들리는 1994년 숨졌고 아들인 제임스 브래들리는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영화 '아버지의 깃발'(Flags of Our Fathers)의 원작이다. 하지만 브래들리의 아들 제임스 브래들리는 재조사와 관련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며 "사실과 진실에 관심이 있을 뿐 재조사에 대해서는 상관없다"고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