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남동쪽에 있는 화산섬 이오지마(Iwo Jima). 지금은 이오토(硫黄島)로 불리는 이 섬은 세계 2차 대전 막바지 미군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잘 알려져있다.
특히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좋아하는 영화팬들에게는 더욱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2007년 개봉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아버지의 깃발(Flags of Our Fathers)'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 1945년 초 미국은 일본 본토에 대한 B-29 전략폭격기 발진 기지의 하나로 거리가 상대적으로 가까운 이오지마 탈환을 결정했다. 이오지마에서 벌어진 전투는 1945년 2월 16일부터 다음 달 26일까지 1개월여간 벌어졌다. 전투는 일본군 수비대 1만 8천여 명과 미군 5천여 명이 전사할 정도로 격전이었다.
전투는 미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오지마 수리바치 산에 성조기를 게양하는 6명의 미 해군 장병 사진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승리를 염원하던 미국민들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전해졌다. 당시 사진은 AP통신 소속 사진 기자 조 로젠탈이 찍었다.
그런데 최근 이오지마 전투의 성조기 게양과 관련해 미군이 재조사에 나섰다. 지난 2014년 아마추어 역사연구가 두 사람이 사진 속 인물이 성조기 게양과는 관계없음을 시사하는 증거를 제출하면서 재조사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당시 성조기 게양 사진의 주인공 병사 6명 중 한 명인 해군 위생병 존 브래들리가 실제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첫째 의문은 브래들리가 탄창을 찬 채 군복 포켓 밖으로 철사 절단기를 갖고 있다는 부분이다. 해군 위생병은 통상 소총을 휴대하지 않은 데다 철사 절단기도 필요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브래들리의 바지와 철모 아래 군모를 쓴 부분도 문제 삼았다. 문제의 게양식 사진을 보면 브래들리는 끝단이 접혀 올려지지 않은 바지 차림이었다. 그러나 같은 날 다른 사진에는 바지 끝이 접혀 올려간 상태였다. 이와 함께 다른 사진에는 그가 철모 아래로 군모를 쓰지 않았다.
즉 브래들리는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전투에 참가한 것처럼 사진을 찍었고 그로 인해 해군십자상을 받은 등 유명 전쟁 영웅이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의혹이 나오는 이유는 미 해군이 당시 승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첫 번째 찍은 사진보다 더 큰 성조기를 갖고 사진을 다시 찍었기 때문이다.
존 브래들리는 1994년 숨졌고 아들인 제임스 브래들리는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영화 '아버지의 깃발'(Flags of Our Fathers)의 원작이다. 하지만 브래들리의 아들 제임스 브래들리는 재조사와 관련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며 "사실과 진실에 관심이 있을 뿐 재조사에 대해서는 상관없다"고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특히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좋아하는 영화팬들에게는 더욱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2007년 개봉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아버지의 깃발(Flags of Our Fathers)'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 1945년 초 미국은 일본 본토에 대한 B-29 전략폭격기 발진 기지의 하나로 거리가 상대적으로 가까운 이오지마 탈환을 결정했다. 이오지마에서 벌어진 전투는 1945년 2월 16일부터 다음 달 26일까지 1개월여간 벌어졌다. 전투는 일본군 수비대 1만 8천여 명과 미군 5천여 명이 전사할 정도로 격전이었다.
전투는 미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오지마 수리바치 산에 성조기를 게양하는 6명의 미 해군 장병 사진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승리를 염원하던 미국민들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전해졌다. 당시 사진은 AP통신 소속 사진 기자 조 로젠탈이 찍었다.
그런데 최근 이오지마 전투의 성조기 게양과 관련해 미군이 재조사에 나섰다. 지난 2014년 아마추어 역사연구가 두 사람이 사진 속 인물이 성조기 게양과는 관계없음을 시사하는 증거를 제출하면서 재조사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당시 성조기 게양 사진의 주인공 병사 6명 중 한 명인 해군 위생병 존 브래들리가 실제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첫째 의문은 브래들리가 탄창을 찬 채 군복 포켓 밖으로 철사 절단기를 갖고 있다는 부분이다. 해군 위생병은 통상 소총을 휴대하지 않은 데다 철사 절단기도 필요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브래들리의 바지와 철모 아래 군모를 쓴 부분도 문제 삼았다. 문제의 게양식 사진을 보면 브래들리는 끝단이 접혀 올려지지 않은 바지 차림이었다. 그러나 같은 날 다른 사진에는 바지 끝이 접혀 올려간 상태였다. 이와 함께 다른 사진에는 그가 철모 아래로 군모를 쓰지 않았다.
즉 브래들리는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전투에 참가한 것처럼 사진을 찍었고 그로 인해 해군십자상을 받은 등 유명 전쟁 영웅이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의혹이 나오는 이유는 미 해군이 당시 승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첫 번째 찍은 사진보다 더 큰 성조기를 갖고 사진을 다시 찍었기 때문이다.
존 브래들리는 1994년 숨졌고 아들인 제임스 브래들리는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영화 '아버지의 깃발'(Flags of Our Fathers)의 원작이다. 하지만 브래들리의 아들 제임스 브래들리는 재조사와 관련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며 "사실과 진실에 관심이 있을 뿐 재조사에 대해서는 상관없다"고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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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대전 이오지마 전투 영웅, 진실 여부 재조사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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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6-05-03 21:03:49
일본 남동쪽에 있는 화산섬 이오지마(Iwo Jima). 지금은 이오토(硫黄島)로 불리는 이 섬은 세계 2차 대전 막바지 미군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잘 알려져있다.
특히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좋아하는 영화팬들에게는 더욱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2007년 개봉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아버지의 깃발(Flags of Our Fathers)'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 1945년 초 미국은 일본 본토에 대한 B-29 전략폭격기 발진 기지의 하나로 거리가 상대적으로 가까운 이오지마 탈환을 결정했다. 이오지마에서 벌어진 전투는 1945년 2월 16일부터 다음 달 26일까지 1개월여간 벌어졌다. 전투는 일본군 수비대 1만 8천여 명과 미군 5천여 명이 전사할 정도로 격전이었다.
전투는 미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오지마 수리바치 산에 성조기를 게양하는 6명의 미 해군 장병 사진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승리를 염원하던 미국민들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전해졌다. 당시 사진은 AP통신 소속 사진 기자 조 로젠탈이 찍었다.
그런데 최근 이오지마 전투의 성조기 게양과 관련해 미군이 재조사에 나섰다. 지난 2014년 아마추어 역사연구가 두 사람이 사진 속 인물이 성조기 게양과는 관계없음을 시사하는 증거를 제출하면서 재조사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당시 성조기 게양 사진의 주인공 병사 6명 중 한 명인 해군 위생병 존 브래들리가 실제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첫째 의문은 브래들리가 탄창을 찬 채 군복 포켓 밖으로 철사 절단기를 갖고 있다는 부분이다. 해군 위생병은 통상 소총을 휴대하지 않은 데다 철사 절단기도 필요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브래들리의 바지와 철모 아래 군모를 쓴 부분도 문제 삼았다. 문제의 게양식 사진을 보면 브래들리는 끝단이 접혀 올려지지 않은 바지 차림이었다. 그러나 같은 날 다른 사진에는 바지 끝이 접혀 올려간 상태였다. 이와 함께 다른 사진에는 그가 철모 아래로 군모를 쓰지 않았다.
즉 브래들리는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전투에 참가한 것처럼 사진을 찍었고 그로 인해 해군십자상을 받은 등 유명 전쟁 영웅이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의혹이 나오는 이유는 미 해군이 당시 승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첫 번째 찍은 사진보다 더 큰 성조기를 갖고 사진을 다시 찍었기 때문이다.
존 브래들리는 1994년 숨졌고 아들인 제임스 브래들리는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영화 '아버지의 깃발'(Flags of Our Fathers)의 원작이다. 하지만 브래들리의 아들 제임스 브래들리는 재조사와 관련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며 "사실과 진실에 관심이 있을 뿐 재조사에 대해서는 상관없다"고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특히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좋아하는 영화팬들에게는 더욱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2007년 개봉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아버지의 깃발(Flags of Our Fathers)'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 1945년 초 미국은 일본 본토에 대한 B-29 전략폭격기 발진 기지의 하나로 거리가 상대적으로 가까운 이오지마 탈환을 결정했다. 이오지마에서 벌어진 전투는 1945년 2월 16일부터 다음 달 26일까지 1개월여간 벌어졌다. 전투는 일본군 수비대 1만 8천여 명과 미군 5천여 명이 전사할 정도로 격전이었다.
전투는 미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오지마 수리바치 산에 성조기를 게양하는 6명의 미 해군 장병 사진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승리를 염원하던 미국민들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전해졌다. 당시 사진은 AP통신 소속 사진 기자 조 로젠탈이 찍었다.
그런데 최근 이오지마 전투의 성조기 게양과 관련해 미군이 재조사에 나섰다. 지난 2014년 아마추어 역사연구가 두 사람이 사진 속 인물이 성조기 게양과는 관계없음을 시사하는 증거를 제출하면서 재조사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당시 성조기 게양 사진의 주인공 병사 6명 중 한 명인 해군 위생병 존 브래들리가 실제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첫째 의문은 브래들리가 탄창을 찬 채 군복 포켓 밖으로 철사 절단기를 갖고 있다는 부분이다. 해군 위생병은 통상 소총을 휴대하지 않은 데다 철사 절단기도 필요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브래들리의 바지와 철모 아래 군모를 쓴 부분도 문제 삼았다. 문제의 게양식 사진을 보면 브래들리는 끝단이 접혀 올려지지 않은 바지 차림이었다. 그러나 같은 날 다른 사진에는 바지 끝이 접혀 올려간 상태였다. 이와 함께 다른 사진에는 그가 철모 아래로 군모를 쓰지 않았다.
즉 브래들리는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전투에 참가한 것처럼 사진을 찍었고 그로 인해 해군십자상을 받은 등 유명 전쟁 영웅이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의혹이 나오는 이유는 미 해군이 당시 승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첫 번째 찍은 사진보다 더 큰 성조기를 갖고 사진을 다시 찍었기 때문이다.
존 브래들리는 1994년 숨졌고 아들인 제임스 브래들리는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영화 '아버지의 깃발'(Flags of Our Fathers)의 원작이다. 하지만 브래들리의 아들 제임스 브래들리는 재조사와 관련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며 "사실과 진실에 관심이 있을 뿐 재조사에 대해서는 상관없다"고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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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호 기자 kyungh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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