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① 죽음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입력 2016.05.06 (18:14) 수정 2016.05.1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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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으신가요? 특별한 하루를 상상하고 계신가요? 아주 평범한 일상이 간절한 소망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기암으로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던 주부 권현정(52) 씨의 소망은 너무 소박했습니다. "가족을 위해서 밥을 해주고 싶어요."

권 씨는 지난 2011년 11월 피지샘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전까지 자신이 암에 걸릴 줄은 꿈에서라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권 씨는 처음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을 때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눈이 충혈되고 눈꼽이 꼈어요. 안과를 다녔는데 알러지라는 거예요. 조직검사를 해보니 암이었어요. 오른쪽 눈을 적출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그때 진짜 엄청 울었어요.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눈도 없이"

권 씨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살기 위한 선택'을 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 8월 서울대병원에서 오른쪽 눈을 적출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37번의 방사선 치료를 병행한 결과 암이 98% 완치됐습니다. 권 씨는 "그 말을 듣고 진짜 천국에 온 것 같다고 좋아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권 씨가 '죽기보다 싫은 선택'을 통해 찾은 행복은 채 2달을 가지 못했습니다. 눈 피지샘에 있던 암이 코 등으로 전이된 것입니다. 2012년 10월 담당 의사는 "더 이상 수술은 의미가 없다"며 사실상 '사망 선고'를 내렸습니다. 죽음의 그림자는 그렇게 갑자기 권 씨를 덮쳤습니다.

권 씨에게 가장 큰 걱정은 남겨질 가족이었습니다. 특히 대학생 딸만 생각하면 눈물이 앞섰습니다. 권 씨는 "딸은 엄마가 울타리가 돼야하는데. 딸한테 형제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권 씨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딸에게 가혹하게 말했습니다. "어차피 사람은 다 죽어. 미안하지만 우리 받아들이자. 그래도 네가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엄마가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권 씨는 마지막을 집에서 가족과 함께 맞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가정 호스피스의 돌봄을 받으며 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던 권 씨는 지난 달 중순 사랑하는 남편과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습니다.



남석현(80) 씨에게도 1년 전 갑자기 '뇌종양'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습니다. 남 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어지러워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응급실에 실려갔고 종양을 발견했습니다.

남 씨는 "의사가 사진을 찍더니 머리에 콩 만한 게 하나 달려있다고 하더라"며 농담처럼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건강할 때는 합창단 활동을 하며 누구보다 활기찼던 남 씨는 지금 한 종합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부인과 간호사들의 돌봄 속에 추억을 하나씩 정리하며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늘 웃는 얼굴인 부인 유순자(72) 씨는 남편이 잠들자 눈시울을 붉힙니다. 유 씨는 "하고 싶은 것 많은 남편이 가래 하나 혼자 뱉질 못해서 나를 부른다"며 침대에만 누워있는 남편을 바라봤습니다. 누구보다도 활력이 넘쳤기 때문에 1년 전까지만 해도 죽음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죽음은 나이와 상관없이 찾아옵니다.

직장인 박성렬(33) 씨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일찍 삶의 마지막 순간에 맞닥뜨렸습니다. 회사를 다니던 3년 전 갑자기 피부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12차례 넘는 항암치료에 좋다는 민간요법까지 해볼 수 있는 건 다해봤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박 씨는 용인의 한 호스피스에 들어가 어머니와 마지막 순간을 준비했습니다. 청소년이 된 이후 10여 년 동안 그렇게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시간을 함께 보낸 적이 없었습니다. 박 씨는"내가 안 아팠으면 여자친구의 아들이었을텐데, 아프니까 엄마 아들로 지낼 수 있어서 좋다"고 웃곤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9일 어머니에게 "사랑했습니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는 작별 인사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죽음은 나이가 많든 적든, 사고든 병이든 누구에게나 갑자기 찾아올 수 있습니다. 수술을 받다가, 혹은 의식을 잃어 가족들에게 작별인사 한마디 못하고 떠나는 사람도 많습니다. 시간을 갖고 '좋은 죽음', 이른바 웰다잉(Well Dying)을 준비할 수 있다면 행운이겠지요.

오늘이 당신의 마지막 날이라면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으신가요?



[잘 죽는 법 ‘웰다잉’]시리즈
☞ ① 죽음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 ② 죽을 때 비참한 나라 한국
☞ ③ ‘호스피스’를 아시나요
☞ ④ 호스피스는 ‘죽음 대기소’가 아닙니다
☞ ⑤ ‘죽음의 질’ 1위 비결은?
☞ ⑥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 ‘존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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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웰다잉] ① 죽음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 입력 2016-05-06 18:14:57
    • 수정2016-05-12 09:20:09
    취재K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으신가요? 특별한 하루를 상상하고 계신가요? 아주 평범한 일상이 간절한 소망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기암으로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던 주부 권현정(52) 씨의 소망은 너무 소박했습니다. "가족을 위해서 밥을 해주고 싶어요."

권 씨는 지난 2011년 11월 피지샘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전까지 자신이 암에 걸릴 줄은 꿈에서라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권 씨는 처음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을 때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눈이 충혈되고 눈꼽이 꼈어요. 안과를 다녔는데 알러지라는 거예요. 조직검사를 해보니 암이었어요. 오른쪽 눈을 적출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그때 진짜 엄청 울었어요.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눈도 없이"

권 씨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살기 위한 선택'을 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 8월 서울대병원에서 오른쪽 눈을 적출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37번의 방사선 치료를 병행한 결과 암이 98% 완치됐습니다. 권 씨는 "그 말을 듣고 진짜 천국에 온 것 같다고 좋아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권 씨가 '죽기보다 싫은 선택'을 통해 찾은 행복은 채 2달을 가지 못했습니다. 눈 피지샘에 있던 암이 코 등으로 전이된 것입니다. 2012년 10월 담당 의사는 "더 이상 수술은 의미가 없다"며 사실상 '사망 선고'를 내렸습니다. 죽음의 그림자는 그렇게 갑자기 권 씨를 덮쳤습니다.

권 씨에게 가장 큰 걱정은 남겨질 가족이었습니다. 특히 대학생 딸만 생각하면 눈물이 앞섰습니다. 권 씨는 "딸은 엄마가 울타리가 돼야하는데. 딸한테 형제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권 씨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딸에게 가혹하게 말했습니다. "어차피 사람은 다 죽어. 미안하지만 우리 받아들이자. 그래도 네가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엄마가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권 씨는 마지막을 집에서 가족과 함께 맞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가정 호스피스의 돌봄을 받으며 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던 권 씨는 지난 달 중순 사랑하는 남편과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습니다.



남석현(80) 씨에게도 1년 전 갑자기 '뇌종양'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습니다. 남 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어지러워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응급실에 실려갔고 종양을 발견했습니다.

남 씨는 "의사가 사진을 찍더니 머리에 콩 만한 게 하나 달려있다고 하더라"며 농담처럼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건강할 때는 합창단 활동을 하며 누구보다 활기찼던 남 씨는 지금 한 종합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부인과 간호사들의 돌봄 속에 추억을 하나씩 정리하며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늘 웃는 얼굴인 부인 유순자(72) 씨는 남편이 잠들자 눈시울을 붉힙니다. 유 씨는 "하고 싶은 것 많은 남편이 가래 하나 혼자 뱉질 못해서 나를 부른다"며 침대에만 누워있는 남편을 바라봤습니다. 누구보다도 활력이 넘쳤기 때문에 1년 전까지만 해도 죽음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죽음은 나이와 상관없이 찾아옵니다.

직장인 박성렬(33) 씨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일찍 삶의 마지막 순간에 맞닥뜨렸습니다. 회사를 다니던 3년 전 갑자기 피부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12차례 넘는 항암치료에 좋다는 민간요법까지 해볼 수 있는 건 다해봤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박 씨는 용인의 한 호스피스에 들어가 어머니와 마지막 순간을 준비했습니다. 청소년이 된 이후 10여 년 동안 그렇게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시간을 함께 보낸 적이 없었습니다. 박 씨는"내가 안 아팠으면 여자친구의 아들이었을텐데, 아프니까 엄마 아들로 지낼 수 있어서 좋다"고 웃곤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9일 어머니에게 "사랑했습니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는 작별 인사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죽음은 나이가 많든 적든, 사고든 병이든 누구에게나 갑자기 찾아올 수 있습니다. 수술을 받다가, 혹은 의식을 잃어 가족들에게 작별인사 한마디 못하고 떠나는 사람도 많습니다. 시간을 갖고 '좋은 죽음', 이른바 웰다잉(Well Dying)을 준비할 수 있다면 행운이겠지요.

오늘이 당신의 마지막 날이라면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으신가요?



[잘 죽는 법 ‘웰다잉’]시리즈
☞ ① 죽음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 ② 죽을 때 비참한 나라 한국
☞ ③ ‘호스피스’를 아시나요
☞ ④ 호스피스는 ‘죽음 대기소’가 아닙니다
☞ ⑤ ‘죽음의 질’ 1위 비결은?
☞ ⑥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 ‘존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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