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③ ‘호스피스’를 아시나요

입력 2016.05.09 (10:21) 수정 2016.05.1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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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마지막을 준비하면서 다른 사람들한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있어요.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3년 동안 피부암으로 투병하다 지난 2월 경기도 용인의 샘물 호스피스에 들어온 박성렬(33) 씨는 힘주어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속고 있어요. 지금.. 자기가 뭘 위해 살아야 되는지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아요.”



박 씨의 아버지 박래섭 씨도 "성렬이가 수술실에서 고생만하다 가는 것보다 호스피스에서 가족과 충분히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고 떠나는 게 낫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아직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박 씨는 "성렬이가 암에 걸린 뒤 함께 남한산성에도 같이 가고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낸 기억이 정말 소중하다"고 말했습니다.

2011년부터 피지샘 암을 앓아온 권현정(52) 씨는 지난 3월부터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대신 가정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으며 삶의 마지막을 준비했습니다. 1주일에 두 번 병원에서 의료진이 찾아와 염증부위를 소독하고, 통증도 조절했습니다.



권 씨가 가정 호스피스를 선택한 이유는 자신 뿐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였습니다. "딸이 계속 병실 한 구석에서 쪽잠을 자는 걸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내가 집으로 오면 가족들이 더 편해질 것 같았어요. 저에게도 집이 천국이에요. 병실에는 환자가 5명이나 있어서 서로 조심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아요. 집은 익숙한 공간이니까 편하고 여기 저기 왔다갔다 할 수도 있잖아요. 참 감사한 혜택이에요"

'잘 죽는 법(Well Dying)'



이들처럼 차근차근 행복한 방식으로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것이 '웰 다잉(Well Dying)'이겠죠. 죽음을 무조건 금기시하고 회피하는 게 아니라 미리 준비해서 평안하게 맞기 위한 모든 노력하는 겁니다. 무의미한 연명(延命)치료를 거부하는 것도, 건강할 때 미리 임종을 계획하는 적극적인 과정도 모두 '잘 죽기' 위한 노력입니다.

그렇다면 '잘 죽는 법'은 무엇일까요? 미리 유서를 써보는 임종 준비 교육이나 자신의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계획서를 작성해 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또 옛날 사진을 이용해서 본인의 자서전을 만들어보고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지요.

실제로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에서 150여 명에게 이 같은 임종 준비 교육을 하고 삶의 가치에 대해 물었더니 긍정적인 답변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죽음에 대한 다양한 캠페인도 진행됩니다. 영국의 클리어 헨리 완화의료위원회 최고책임자는 "죽음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핵심 분야에 관해 5~6가지 질문을 해보라"고 독려합니다. 유언장을 작성해보고, 재산을 기부하거나 장례식 계획을 미리 세워보고, 또 자신의 바람을 가족들과 얘기해보라고 권하는 겁니다.

한국도 '웰다잉' 위한 체계 필요

한국에서도 웰다잉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윤영호 교수(서울대학교 의과대학)는 "의학적으로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의학적인 치료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는 시점에서는 죽음이 치료의 실패가 아닌 삶의 완성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 죽음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윤 교수는 또 "기대 수명이 늘어난 만큼 역설적으로 질병으로 인한 고통의 시간도 늘어나 죽음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이에 대비하기 위한 시스템이 바로 완화의료와 호스피스다"라며 '웰다잉'을 위한 제도적 필요성도 역설했습니다.

호스피스, 웰다잉을 위한 노력





호스피스는 환자들이 편안하고 인간답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말합니다. 라정란 서울 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 센터 팀장은 "인생은 드라마와 같다. 어떻게 마무리를 하는가에 따라 사람들에게 남기는 인상도, 미치는 영향도 다르다. 호스피스는 살아온 삶을 정리하면서 인생 전체를 정리하고, 그것을 도와주는 곳이다. 호스피스에서는 신체적 통증 조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와 더불어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요소도 보살펴준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내 호스피스 전문기관은 60여곳. 국내 대부분의 호스피스 병동은 암 환자들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1년 전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은 남석현(80) 씨도 부인 유순자(72) 씨와 함께 서울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 여정을 보내고 있습니다. 남 씨는 "호스피스에서의 아침 맞이는 참 이색적이고 많은 감동을 줍니다. 하루의 연명은 하늘이 주시는 아주 특별한 은총"이라며 지인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부인 유 씨 역시 호스피스에서 온 후로 안정을 찾았습니다. 유 씨는 "복도 건너편 병실에 있던환자분이 갑자기 안보이더라고요. 알고보니 '죽음 준비 방'으로 간 것었어요. 그분이 3~4일 전에 인사하면서 굉장히 맑은 웃음을 지으셨는데, 이 곳에서 그렇게 밝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호스피스에서의 평안함을 전했습니다.

누구에게나 다가올 숙명 죽음. 그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아야 좋은 마무리가 될까요? '잘 죽는 법'에 대해 생각해 두지 않으면, 그런 환경이 마련되어있지 않으면 '웰 다잉'은 어려운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잘 죽는 법 ‘웰다잉’]시리즈
☞ ① 죽음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 ② 죽을 때 비참한 나라 한국
☞ ③ ‘호스피스’를 아시나요
☞ ④ 호스피스는 ‘죽음 대기소’가 아닙니다
☞ ⑤ ‘죽음의 질’ 1위 비결은?
☞ ⑥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 ‘존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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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웰다잉] ③ ‘호스피스’를 아시나요
    • 입력 2016-05-09 10:21:25
    • 수정2016-05-12 09:19:47
    취재K
"제가 마지막을 준비하면서 다른 사람들한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있어요.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3년 동안 피부암으로 투병하다 지난 2월 경기도 용인의 샘물 호스피스에 들어온 박성렬(33) 씨는 힘주어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속고 있어요. 지금.. 자기가 뭘 위해 살아야 되는지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아요.”



박 씨의 아버지 박래섭 씨도 "성렬이가 수술실에서 고생만하다 가는 것보다 호스피스에서 가족과 충분히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고 떠나는 게 낫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아직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박 씨는 "성렬이가 암에 걸린 뒤 함께 남한산성에도 같이 가고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낸 기억이 정말 소중하다"고 말했습니다.

2011년부터 피지샘 암을 앓아온 권현정(52) 씨는 지난 3월부터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대신 가정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으며 삶의 마지막을 준비했습니다. 1주일에 두 번 병원에서 의료진이 찾아와 염증부위를 소독하고, 통증도 조절했습니다.



권 씨가 가정 호스피스를 선택한 이유는 자신 뿐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였습니다. "딸이 계속 병실 한 구석에서 쪽잠을 자는 걸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내가 집으로 오면 가족들이 더 편해질 것 같았어요. 저에게도 집이 천국이에요. 병실에는 환자가 5명이나 있어서 서로 조심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아요. 집은 익숙한 공간이니까 편하고 여기 저기 왔다갔다 할 수도 있잖아요. 참 감사한 혜택이에요"

'잘 죽는 법(Well Dying)'



이들처럼 차근차근 행복한 방식으로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것이 '웰 다잉(Well Dying)'이겠죠. 죽음을 무조건 금기시하고 회피하는 게 아니라 미리 준비해서 평안하게 맞기 위한 모든 노력하는 겁니다. 무의미한 연명(延命)치료를 거부하는 것도, 건강할 때 미리 임종을 계획하는 적극적인 과정도 모두 '잘 죽기' 위한 노력입니다.

그렇다면 '잘 죽는 법'은 무엇일까요? 미리 유서를 써보는 임종 준비 교육이나 자신의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계획서를 작성해 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또 옛날 사진을 이용해서 본인의 자서전을 만들어보고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지요.

실제로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에서 150여 명에게 이 같은 임종 준비 교육을 하고 삶의 가치에 대해 물었더니 긍정적인 답변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죽음에 대한 다양한 캠페인도 진행됩니다. 영국의 클리어 헨리 완화의료위원회 최고책임자는 "죽음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핵심 분야에 관해 5~6가지 질문을 해보라"고 독려합니다. 유언장을 작성해보고, 재산을 기부하거나 장례식 계획을 미리 세워보고, 또 자신의 바람을 가족들과 얘기해보라고 권하는 겁니다.

한국도 '웰다잉' 위한 체계 필요

한국에서도 웰다잉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윤영호 교수(서울대학교 의과대학)는 "의학적으로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의학적인 치료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는 시점에서는 죽음이 치료의 실패가 아닌 삶의 완성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 죽음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윤 교수는 또 "기대 수명이 늘어난 만큼 역설적으로 질병으로 인한 고통의 시간도 늘어나 죽음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이에 대비하기 위한 시스템이 바로 완화의료와 호스피스다"라며 '웰다잉'을 위한 제도적 필요성도 역설했습니다.

호스피스, 웰다잉을 위한 노력





호스피스는 환자들이 편안하고 인간답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말합니다. 라정란 서울 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 센터 팀장은 "인생은 드라마와 같다. 어떻게 마무리를 하는가에 따라 사람들에게 남기는 인상도, 미치는 영향도 다르다. 호스피스는 살아온 삶을 정리하면서 인생 전체를 정리하고, 그것을 도와주는 곳이다. 호스피스에서는 신체적 통증 조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와 더불어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요소도 보살펴준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내 호스피스 전문기관은 60여곳. 국내 대부분의 호스피스 병동은 암 환자들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1년 전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은 남석현(80) 씨도 부인 유순자(72) 씨와 함께 서울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 여정을 보내고 있습니다. 남 씨는 "호스피스에서의 아침 맞이는 참 이색적이고 많은 감동을 줍니다. 하루의 연명은 하늘이 주시는 아주 특별한 은총"이라며 지인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부인 유 씨 역시 호스피스에서 온 후로 안정을 찾았습니다. 유 씨는 "복도 건너편 병실에 있던환자분이 갑자기 안보이더라고요. 알고보니 '죽음 준비 방'으로 간 것었어요. 그분이 3~4일 전에 인사하면서 굉장히 맑은 웃음을 지으셨는데, 이 곳에서 그렇게 밝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호스피스에서의 평안함을 전했습니다.

누구에게나 다가올 숙명 죽음. 그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아야 좋은 마무리가 될까요? '잘 죽는 법'에 대해 생각해 두지 않으면, 그런 환경이 마련되어있지 않으면 '웰 다잉'은 어려운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잘 죽는 법 ‘웰다잉’]시리즈
☞ ① 죽음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 ② 죽을 때 비참한 나라 한국
☞ ③ ‘호스피스’를 아시나요
☞ ④ 호스피스는 ‘죽음 대기소’가 아닙니다
☞ ⑤ ‘죽음의 질’ 1위 비결은?
☞ ⑥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 ‘존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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