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GM의 구조조정은 왜 ‘성공’이라 불리는가?

입력 2016.05.1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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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파산 위기에 처해, 무려 500억 달러(약 60조 원)에 달하는 미국 정부 구제금융을 지원받기로 하고 대대적 구조조정을 해야 했던 미국 최대 자동차기업 제너럴모터스(GM). 7년이 지난 지금, GM은 다시 도요타, 폭스바겐과 세계 1위를 다투는 건실한 기업으로 되돌아왔다.

구조조정에 착수한 바로 다음해인 2010년부터 손익을 맞춰가기 시작했을 정도로 GM의 구조조정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GM의 구조조정을 ‘성공’이라 부르는 이유는 단순히 GM이 빠르게 회생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GM의 구조조정이 구조조정의 정석을 보여줬음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협력·하청업체, 노조와 노사관계, 중공업에 의존하던 지역 경제구조까지 변화했기 때문이다.

과거 영광의 상징이던 중공업이 현재는 무너져가고 있고 미래엔 존속조차 어려운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건 기계화, 자동화를 넘어선 첨단기술의 시대에 당연한 얘기다. 결코 미래산업이라 불릴 수 없는, 선박·조선·철강·석유화학·건설 등 5대 산업 구조조정에 나선 한국은, GM의 구조조정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디트로이트 현지 취재를 통해 살펴봤다.


■ 알고도 막지 못했던 GM의 파산 위기

당시를 회고하는 GM의 구 경영진, 직접 참여했던 구조조정 전문가, 디트로이트 자동차산업을 연구하는 학자 등은 모두, GM의 파산은 이미 그 수년 전부터 예고돼왔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GM 스스로가 GM이 위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지난 1970년대 50%를 넘나들던 GM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파산 보호 신청 직전에는 20%아래까지 쪼그라들어 있었다. 부르스 벨조우스키 미시간대 자동차산업연구소 교수는 GM이 그런데도 계속 40~50% 점유율을 가진 회사처럼 운영되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브랜드 수가 8개나 됐고, 생산라인과 판매점의 숫자 등이 모두 과잉이었다. 이익을 못내는 브랜드까지 생산라인을 돌려가며 수년간 유지되니 적자가 나지 않을 수 없다. 파산보호신청 전 4년간의 누적 적자만 800억 달러가 넘을 정도였다.

궁금했다. 대체 왜 GM은 그런데도 회사 규모를 적정하게 줄이는 자율적 구조조정을 하지 못했을까? 정부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당시 GM의 최고경영자였던 왜고너는, 재직하는 9년 동안 부단히 자율적 구조조정을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제는 그 노력이 너무나 부족했다는 데 있다.

당시 GM의 부회장이었던 밥 러츠는 “우리도 브랜드 수가 너무 많다는 걸, 이익을 내지 못하는 브랜드가 많다는 걸 알았지만, 브랜드를 줄이자니 판매점과의 계약 때문에 소송에 걸리게 되는 등 여러 현실적 문제로 줄이지를 못했다”고 말한다. 러츠 전 부회장은 고질적 관료주의로 지적되는, 임원 숫자도 너무 많았다며, 자신 스스로도 ‘대체 저렇게 많은 임원이 왜 필요한가’라고 자문할 정도였다고 했다.

강성노조와 현실에 맞는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당시 GM이 직원은 물론 퇴직자들까지 포함해 노조원에게 주는 건강보험 보조액은 한 해 70억 달러, 우리 돈 8조원에 이르렀다. 회사가 이익을 내지 못하는 데도 수십 년간 유지된 고임금체제를 뜯어고치지도 못했다. 이같은 자율적 구조조정 실패가 결국 GM을 파산 위기로 내몬 것이다.

밥 러츠/GM 구조조정 당시 부회장밥 러츠/GM 구조조정 당시 부회장


■ GM 구조조정의 비결은 속도와 과감함

하지만, 2009년 미국 정부가 GM에 약 500억 달러에 가까운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뒤의 과정은 좀 달랐다. 미국 정부는 월가 출신 재무 전문가 스티븐 래트너, 철강노조 구조조정 전문가 론 블룸을 중심으로 구조개혁, 노무, 투자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팀을 꾸렸다. 돈은 정부가 내놨지만, 구조조정 자체는 바로 이 전문가들이 주도했다.

당시 GM 구조조정을 컨설팅했던 알릭스파트너스의 알버트 코크 부회장은, “미국 정부는 채권자로서 구조조정의 큰 방향을 잡았지만, 구조조정의 구제적 계획을 입안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채권자들은 돈을 빨리 되찾으려 하고, GM 경영진들은 기존 생산라인에 미련이 있는 등 이해당사자별로 관심이 다른 만큼, 이런 급박한 구조조정은 결국 전문가 손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의 초점은 GM의 전체적 규모를 현재의 시장 점유율에 맞게 확 줄이는 것이었다. ‘속도’와 ‘과감함’이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었다. 전문가 그룹은 기존 연간 천7백만 대 정도를 생산하도록 설계된 생산 라인을 천만 대 정도의 생산 라인으로 줄이기로 했다. 기존 생산라인의 40% 가까이를 한번에 줄여야 하는 엄청난 규모의 구조조정이다.

그러나 2009년 2월말 결성된 전문가 그룹은 채권단과 경영진, 판매점 등 이해당사자들과 합의를 전광석화처럼 이뤄갔다. 기존 8개 브랜드의 절반인 4개 브랜드 폐쇄, 14개 공장 폐쇄, 판매점 40% 축소, 2만여 명 해고라는 전무후무한 구조조정계획의 입안과 정부 검토, 채권단 승인이 3개월만에 이뤄졌다.

GM의 가장 큰 지출 중 하나였던 한 해 8조 원에 달하던 건강보험기금 보조 삭감도 노조와 합의했다. 이런 핵심 구조조정안이 6월 정식 파산보호 신청을 하기 전에 다 합의됐을 정도로, GM의 구조조정은 신속했고 과감했다. 그 결과 GM은 39일만에 공식적인 파산 보호에서 벗어났고, 이듬해인 2010년 바로 손익을 맞췄고, 2011년부터는 흑자로 전환됐다. 전광석화같던 구조조정의 속도만큼 GM의 부활도 빨랐다.

알버트 코크/알릭스파트너스(GM구조조정 컨설팅) 부회장알버트 코크/알릭스파트너스(GM구조조정 컨설팅) 부회장


■ 구조조정이 노사관계 변화시켜

미국 내에서도 가장 강성 노조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UAW(전미자동차노조연합)와의 여러 합의들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했다. 구조조정을 전후로 GM이 노조와 합의한 ‘이중임금제’(기존 근로자와 신규 입사자의 시급 체계를 차별화하는 제도), ‘건강보험기금 보조 삭감’, ‘파업 자제’ 등은 GM이 오랫동안 노조와 논의하면서도 합의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구조조정의 당사자, 당시 노사 관계자들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노조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회사 자체가 없어진다면 노조도 아무 의미가 없다.

마치 영원할 것 같았던 자동차기업의 영광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절박한 경험은 이후 노조의 성격과 문화도 바꿨다. 과거 임금 인상과 혜택, 휴가 확대에 맞춰졌던 노조의 투쟁 방향은 이제, 고용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로 옮겨졌다.

노조의 회사 경영에 대한 관심도 더 높아졌다고 한다. 회사가 제대로 경영되고 있는지, 어떻게 경영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노사가 더 밀접하게 협의하는 등 노조도 회사의 존속과 발전을 위한 하나의 주체라는 관점이 강화됐다는 것이다.

빅 3의 위기 뒤 미시간주는 또한 과거 거의 의무였던 노조 가입 여부를 근로자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UAW 디트로이트 본부 건물UAW 디트로이트 본부 건물


■ 협력업체들도 체질 개선에 나서

생산라인을 40% 가까이 축소하는 GM의 구조조정은 협력·하청업체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원가 절감과 생산 효율화를 위한 다양한 방식이 시행됐다. 이를테면 부품 당 협력업체의 수를 줄이고 대신 한 업체 당 주문 개수를 늘림으로써 개당 생산원가를 낮추거나, 한 지역 업체의 기준을 표준화해 전 세계에 적용함으로써 효율을 높였다.

원청업체의 파산 위기를 경험한 협력업체들 역시 이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도록 변해야 했다. GM의 최대협력업체 중 하나인 자동차부품기업 광진의 이용주 미주법인 사장은 빅3의 위기를 체험한 뒤 회사의 사업 방향 자체를 바꿨다고 말한다.

한 업체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서는 미래의 위기에 대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광진은, GM뿐 아니라 크라이슬러 등 경쟁업체에서도 주문을 따고, 미주 뿐 아니라 유럽과 중국으로 거래처를 확대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미국 시장이 좋지 않을 때는 유럽에서, 유럽 시장이 좋지 않을 때는 중국에서 버틸 수 있도록, 한 기업이 좋지 않을 때는 다른 기업과의 거래로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장기적 전략을 수립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빅 3의 구조조정 과정은 협력, 하청업체를 비롯한 디트로이트 주변 자동차 관련 산업 전체가 미래 대비형으로 바뀌도록 자극했다.
광진 미주법인 공장광진 미주법인 공장


■ 디트로이트시 “더이상 자동차 산업에 의존하지 않겠다”

GM을 비롯한 빅 3의 구조조정과 회생은 이처럼 빠르게 이뤄졌지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엄청나게 줄어든 인구, 그에 따라 엄청나게 줄어든 세금은 뒤이어 디트로이트시의 파산을 불렀다. GM 파산 보호 신청 4년 뒤인 2013년 디트로이트시는 180억 달러(약 20조 원)라는, 미 자치단체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부채를 안고 파산했다.

파산으로 디트로이트시 역시 공무원 수를 줄이고, 공공서비스와 지원 등 예산을 삭감하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뼈저린 교훈은 더 이상 자동차 산업 한 가지만 바라봐서는 도시가 존속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디트로이트시는 시의 산업구조 자체를 장기적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수십 년간 자동차산업의 메카로 군림했던 디트로이트시는 이미 많은 자산을 갖고 있었다. 퇴직자들까지 건강보험 보조가 체계화됐던 탓에 건강의료산업이 발달했다. 자동차기업과 대학·연구소의 오랜 산학 협력으로 공학을 중심으로 한 교육도 발달했다. 자동차 관련 기업들은 물론 많은 기업들의 본사가 있었기 때문에 기업 서비스 인프라도 발달했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문화, 예술, 관광 등 서비스 산업이 다양하게 발달해있진 않았다.

디트로이트시와 미시간주는 디트로이트의 파산을 빨리 극복하기 위해, 우선 기존의 인프라를 적극 활용했다. 기업서비스 인프라를 활용해 신규기업 유치에 노력하는 한편, 건강, 교육 인프라를 활용해 건강, 교육 서비스 관련 산업도 육성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산업인 중공업에만 치우치지 않고 미래의 산업인 서비스업을 다양하게 발달시키는 쪽으로 산업구조를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디트로이트시 캐롤 맥클래언 부시장은, 당시 디트로이트의 가장 큰 문제는 수십년에 걸쳐 꾸준히 인구가 줄었던 것이라고 진단한다. 자동차산업이 기계화·자동화되고 빅3의 미국시장 점유율도 줄면서 근로자 수가 주는 만큼 인구도 줄었다. 맥클래언 부시장은 “도시를 살아있게 하려면 인구가 많아져야 하고,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도시가 되려면 그들이 원하는 모든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며 현재 디트로이트시는 그런 도시가 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디트로이트 구 시가지디트로이트 구 시가지


GM을 비롯한 디트로이트 빅3의 빠른 회생에는 그들의 자구노력 뿐 아니라, 저유가, 저금리, 미국 경기 회복 등 대외여건도 크게 작용했다. 저유가 탓에 미국인들이 다시 픽업트럭, 대형 SUV 등 이른바 큰 차를 사기 시작했고, 저금리로 자동차 구매 장기 무이자 할부 금융이 활성화됐고, 미국 경기 회복으로 시장도 좋아졌다.

하지만, 현실에 맞는 규모로 회사를 40% 가까이 단번에 줄이는 뼈와 살을 깎는 구조조정이 과감하고 신속하게,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합의 속에 이뤄지지 않았다면, 어떤 대외 여건도 GM을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GM의 구조조정을 ‘성공’이라 부르는 이유는, 구조조정 자체의 성공은 물론이거니와 그 과정에서 기업과 도시, 사람들이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기 시작했다는데 있을 것이다.

[연관 기사] ☞ [글로벌 리포트] 신속한 구조조정 자동차 빅3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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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GM의 구조조정은 왜 ‘성공’이라 불리는가?
    • 입력 2016-05-15 10:11:36
    취재후·사건후
지난 2009년 파산 위기에 처해, 무려 500억 달러(약 60조 원)에 달하는 미국 정부 구제금융을 지원받기로 하고 대대적 구조조정을 해야 했던 미국 최대 자동차기업 제너럴모터스(GM). 7년이 지난 지금, GM은 다시 도요타, 폭스바겐과 세계 1위를 다투는 건실한 기업으로 되돌아왔다.

구조조정에 착수한 바로 다음해인 2010년부터 손익을 맞춰가기 시작했을 정도로 GM의 구조조정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GM의 구조조정을 ‘성공’이라 부르는 이유는 단순히 GM이 빠르게 회생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GM의 구조조정이 구조조정의 정석을 보여줬음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협력·하청업체, 노조와 노사관계, 중공업에 의존하던 지역 경제구조까지 변화했기 때문이다.

과거 영광의 상징이던 중공업이 현재는 무너져가고 있고 미래엔 존속조차 어려운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건 기계화, 자동화를 넘어선 첨단기술의 시대에 당연한 얘기다. 결코 미래산업이라 불릴 수 없는, 선박·조선·철강·석유화학·건설 등 5대 산업 구조조정에 나선 한국은, GM의 구조조정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디트로이트 현지 취재를 통해 살펴봤다.


■ 알고도 막지 못했던 GM의 파산 위기

당시를 회고하는 GM의 구 경영진, 직접 참여했던 구조조정 전문가, 디트로이트 자동차산업을 연구하는 학자 등은 모두, GM의 파산은 이미 그 수년 전부터 예고돼왔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GM 스스로가 GM이 위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지난 1970년대 50%를 넘나들던 GM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파산 보호 신청 직전에는 20%아래까지 쪼그라들어 있었다. 부르스 벨조우스키 미시간대 자동차산업연구소 교수는 GM이 그런데도 계속 40~50% 점유율을 가진 회사처럼 운영되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브랜드 수가 8개나 됐고, 생산라인과 판매점의 숫자 등이 모두 과잉이었다. 이익을 못내는 브랜드까지 생산라인을 돌려가며 수년간 유지되니 적자가 나지 않을 수 없다. 파산보호신청 전 4년간의 누적 적자만 800억 달러가 넘을 정도였다.

궁금했다. 대체 왜 GM은 그런데도 회사 규모를 적정하게 줄이는 자율적 구조조정을 하지 못했을까? 정부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당시 GM의 최고경영자였던 왜고너는, 재직하는 9년 동안 부단히 자율적 구조조정을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제는 그 노력이 너무나 부족했다는 데 있다.

당시 GM의 부회장이었던 밥 러츠는 “우리도 브랜드 수가 너무 많다는 걸, 이익을 내지 못하는 브랜드가 많다는 걸 알았지만, 브랜드를 줄이자니 판매점과의 계약 때문에 소송에 걸리게 되는 등 여러 현실적 문제로 줄이지를 못했다”고 말한다. 러츠 전 부회장은 고질적 관료주의로 지적되는, 임원 숫자도 너무 많았다며, 자신 스스로도 ‘대체 저렇게 많은 임원이 왜 필요한가’라고 자문할 정도였다고 했다.

강성노조와 현실에 맞는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당시 GM이 직원은 물론 퇴직자들까지 포함해 노조원에게 주는 건강보험 보조액은 한 해 70억 달러, 우리 돈 8조원에 이르렀다. 회사가 이익을 내지 못하는 데도 수십 년간 유지된 고임금체제를 뜯어고치지도 못했다. 이같은 자율적 구조조정 실패가 결국 GM을 파산 위기로 내몬 것이다.

밥 러츠/GM 구조조정 당시 부회장

■ GM 구조조정의 비결은 속도와 과감함

하지만, 2009년 미국 정부가 GM에 약 500억 달러에 가까운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뒤의 과정은 좀 달랐다. 미국 정부는 월가 출신 재무 전문가 스티븐 래트너, 철강노조 구조조정 전문가 론 블룸을 중심으로 구조개혁, 노무, 투자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팀을 꾸렸다. 돈은 정부가 내놨지만, 구조조정 자체는 바로 이 전문가들이 주도했다.

당시 GM 구조조정을 컨설팅했던 알릭스파트너스의 알버트 코크 부회장은, “미국 정부는 채권자로서 구조조정의 큰 방향을 잡았지만, 구조조정의 구제적 계획을 입안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채권자들은 돈을 빨리 되찾으려 하고, GM 경영진들은 기존 생산라인에 미련이 있는 등 이해당사자별로 관심이 다른 만큼, 이런 급박한 구조조정은 결국 전문가 손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의 초점은 GM의 전체적 규모를 현재의 시장 점유율에 맞게 확 줄이는 것이었다. ‘속도’와 ‘과감함’이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었다. 전문가 그룹은 기존 연간 천7백만 대 정도를 생산하도록 설계된 생산 라인을 천만 대 정도의 생산 라인으로 줄이기로 했다. 기존 생산라인의 40% 가까이를 한번에 줄여야 하는 엄청난 규모의 구조조정이다.

그러나 2009년 2월말 결성된 전문가 그룹은 채권단과 경영진, 판매점 등 이해당사자들과 합의를 전광석화처럼 이뤄갔다. 기존 8개 브랜드의 절반인 4개 브랜드 폐쇄, 14개 공장 폐쇄, 판매점 40% 축소, 2만여 명 해고라는 전무후무한 구조조정계획의 입안과 정부 검토, 채권단 승인이 3개월만에 이뤄졌다.

GM의 가장 큰 지출 중 하나였던 한 해 8조 원에 달하던 건강보험기금 보조 삭감도 노조와 합의했다. 이런 핵심 구조조정안이 6월 정식 파산보호 신청을 하기 전에 다 합의됐을 정도로, GM의 구조조정은 신속했고 과감했다. 그 결과 GM은 39일만에 공식적인 파산 보호에서 벗어났고, 이듬해인 2010년 바로 손익을 맞췄고, 2011년부터는 흑자로 전환됐다. 전광석화같던 구조조정의 속도만큼 GM의 부활도 빨랐다.

알버트 코크/알릭스파트너스(GM구조조정 컨설팅) 부회장

■ 구조조정이 노사관계 변화시켜

미국 내에서도 가장 강성 노조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UAW(전미자동차노조연합)와의 여러 합의들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했다. 구조조정을 전후로 GM이 노조와 합의한 ‘이중임금제’(기존 근로자와 신규 입사자의 시급 체계를 차별화하는 제도), ‘건강보험기금 보조 삭감’, ‘파업 자제’ 등은 GM이 오랫동안 노조와 논의하면서도 합의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구조조정의 당사자, 당시 노사 관계자들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노조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회사 자체가 없어진다면 노조도 아무 의미가 없다.

마치 영원할 것 같았던 자동차기업의 영광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절박한 경험은 이후 노조의 성격과 문화도 바꿨다. 과거 임금 인상과 혜택, 휴가 확대에 맞춰졌던 노조의 투쟁 방향은 이제, 고용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로 옮겨졌다.

노조의 회사 경영에 대한 관심도 더 높아졌다고 한다. 회사가 제대로 경영되고 있는지, 어떻게 경영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노사가 더 밀접하게 협의하는 등 노조도 회사의 존속과 발전을 위한 하나의 주체라는 관점이 강화됐다는 것이다.

빅 3의 위기 뒤 미시간주는 또한 과거 거의 의무였던 노조 가입 여부를 근로자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UAW 디트로이트 본부 건물

■ 협력업체들도 체질 개선에 나서

생산라인을 40% 가까이 축소하는 GM의 구조조정은 협력·하청업체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원가 절감과 생산 효율화를 위한 다양한 방식이 시행됐다. 이를테면 부품 당 협력업체의 수를 줄이고 대신 한 업체 당 주문 개수를 늘림으로써 개당 생산원가를 낮추거나, 한 지역 업체의 기준을 표준화해 전 세계에 적용함으로써 효율을 높였다.

원청업체의 파산 위기를 경험한 협력업체들 역시 이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도록 변해야 했다. GM의 최대협력업체 중 하나인 자동차부품기업 광진의 이용주 미주법인 사장은 빅3의 위기를 체험한 뒤 회사의 사업 방향 자체를 바꿨다고 말한다.

한 업체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서는 미래의 위기에 대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광진은, GM뿐 아니라 크라이슬러 등 경쟁업체에서도 주문을 따고, 미주 뿐 아니라 유럽과 중국으로 거래처를 확대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미국 시장이 좋지 않을 때는 유럽에서, 유럽 시장이 좋지 않을 때는 중국에서 버틸 수 있도록, 한 기업이 좋지 않을 때는 다른 기업과의 거래로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장기적 전략을 수립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빅 3의 구조조정 과정은 협력, 하청업체를 비롯한 디트로이트 주변 자동차 관련 산업 전체가 미래 대비형으로 바뀌도록 자극했다.
광진 미주법인 공장

■ 디트로이트시 “더이상 자동차 산업에 의존하지 않겠다”

GM을 비롯한 빅 3의 구조조정과 회생은 이처럼 빠르게 이뤄졌지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엄청나게 줄어든 인구, 그에 따라 엄청나게 줄어든 세금은 뒤이어 디트로이트시의 파산을 불렀다. GM 파산 보호 신청 4년 뒤인 2013년 디트로이트시는 180억 달러(약 20조 원)라는, 미 자치단체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부채를 안고 파산했다.

파산으로 디트로이트시 역시 공무원 수를 줄이고, 공공서비스와 지원 등 예산을 삭감하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뼈저린 교훈은 더 이상 자동차 산업 한 가지만 바라봐서는 도시가 존속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디트로이트시는 시의 산업구조 자체를 장기적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수십 년간 자동차산업의 메카로 군림했던 디트로이트시는 이미 많은 자산을 갖고 있었다. 퇴직자들까지 건강보험 보조가 체계화됐던 탓에 건강의료산업이 발달했다. 자동차기업과 대학·연구소의 오랜 산학 협력으로 공학을 중심으로 한 교육도 발달했다. 자동차 관련 기업들은 물론 많은 기업들의 본사가 있었기 때문에 기업 서비스 인프라도 발달했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문화, 예술, 관광 등 서비스 산업이 다양하게 발달해있진 않았다.

디트로이트시와 미시간주는 디트로이트의 파산을 빨리 극복하기 위해, 우선 기존의 인프라를 적극 활용했다. 기업서비스 인프라를 활용해 신규기업 유치에 노력하는 한편, 건강, 교육 인프라를 활용해 건강, 교육 서비스 관련 산업도 육성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산업인 중공업에만 치우치지 않고 미래의 산업인 서비스업을 다양하게 발달시키는 쪽으로 산업구조를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디트로이트시 캐롤 맥클래언 부시장은, 당시 디트로이트의 가장 큰 문제는 수십년에 걸쳐 꾸준히 인구가 줄었던 것이라고 진단한다. 자동차산업이 기계화·자동화되고 빅3의 미국시장 점유율도 줄면서 근로자 수가 주는 만큼 인구도 줄었다. 맥클래언 부시장은 “도시를 살아있게 하려면 인구가 많아져야 하고,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도시가 되려면 그들이 원하는 모든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며 현재 디트로이트시는 그런 도시가 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디트로이트 구 시가지

GM을 비롯한 디트로이트 빅3의 빠른 회생에는 그들의 자구노력 뿐 아니라, 저유가, 저금리, 미국 경기 회복 등 대외여건도 크게 작용했다. 저유가 탓에 미국인들이 다시 픽업트럭, 대형 SUV 등 이른바 큰 차를 사기 시작했고, 저금리로 자동차 구매 장기 무이자 할부 금융이 활성화됐고, 미국 경기 회복으로 시장도 좋아졌다.

하지만, 현실에 맞는 규모로 회사를 40% 가까이 단번에 줄이는 뼈와 살을 깎는 구조조정이 과감하고 신속하게,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합의 속에 이뤄지지 않았다면, 어떤 대외 여건도 GM을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GM의 구조조정을 ‘성공’이라 부르는 이유는, 구조조정 자체의 성공은 물론이거니와 그 과정에서 기업과 도시, 사람들이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기 시작했다는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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