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⑦ ‘나만의 것’이 아닌 ‘나의 죽음’

입력 2016.05.15 (11:56) 수정 2016.05.15 (16:2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보영아, 엄마가 너 초등학교 다닐 때 안 아팠던 걸 감사해야 해"

지난 달 피지샘 암으로 세상을 떠난 故 권현정(52) 씨가 대학생 외동딸에게 자주 했던 말입니다.

"하루 아침에 사고로 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힘들겠니. 엄마가 이렇게 몇 년씩 투병하는 동안 너도 마음의 준비가 돼서 아마 딱정이가 생겼을 거야. 미안하지만 우리 받아들이자."



고(故) 권현정 씨는 서울 북부병원 완화병동에 입원해 있는 동안 딸 보영 씨와 손뼉치기, 이른바 '쎄쎄쎄'를 자주 했습니다. 딸과 모녀라기보다는 친구같은 모습이었지요.

5년 가까이 엄마의 투병생활을 지켜본 보영 씨도 또래보다 훨씬 어른스러워졌습니다. 권 씨는 "다른 사람들은 교대라도 하는 데 우리 딸은 혼자 병원에서 쪽잠을 잤어요. 내가 그걸 보니까 너무 안쓰럽고 또 고마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올해 초 권 씨는 완화병동에서도 나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마지막을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남편 황인창 씨는 '잘 선택했다'며 집으로 돌아온 권 씨를 꼭 안아줬습니다. 권 씨는 눈물을 보이는 남편을 오히려 위로하며 "너무 좋아. 집이 천국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남편 황인창 씨는 아내에게 자주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권현정 씨. 완화 병동에서 퇴원하던 날만 해도 씩씩하게 걸어 나오더니 몸이 바짝 말라서 욕실에 갈 때면 불쌍해서 눈물이 나온다. … 잠이라도 잘 자야 편하지. 수면제 먹고도 2-3시간밖에 못자니 얼마나 힘들어. '어떡하냐고'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댈 때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어. 여보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 -남편의 편지 中

황 씨는 "갑자기 아내가 세상을 떠나는 것보다는 남은 생을 정리하고 가서 좋습니다. 특히 저희 가족들도 생각할 겨를을 주기 때문에 이런 시간이 참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달 초 벚꽃이 만발하자 권 씨 가족은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꽃구경'에 나섰습니다. 남편 황씨는 "이렇게 그냥 손잡고 며칠 있어보니 굉장한 행복감을 느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권현정 씨는 가족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지난 달 중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엄마, 고생 많이 시켜서 미안해요"

 

"계 탔네요."
올해 초 경기도 용인의 호스피스 병동, 10년 만에 제대로 된 피자를 먹어본다는 박성렬(33) 씨는 무척 즐거워 보였습니다. 피부암으로 투병하는 동안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못 했기 때문이죠.

가족들과 어릴 때 사진을 돌아보며 "어릴 때는 예쁘지 않았어요?"라고 웃어 보이자 어머니는 장금순 씨는 "사진이 다 지워졌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렇게 박성렬 씨는 하루하루를 아주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 9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뼘' 더 사랑하며 준비했던 이별이었습니다.



故 박성렬 씨는 가족들에게 작은 선물을 남겼습니다. 어머니가 자리를 비웠을 때 KBS 카메라를 통해 영상편지를 남겼습니다.

"엄마, 삶이 끝날 때 더 많이 함께 해서 너무 기쁘고 즐거운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사랑한다는 말밖에 할 게 없고, 고생 많이 시켜서 너무 미안해요. 지금까지 엄마한테 잘못했던 것들 용서해줘요." - 故 박성렬 씨 영상편지 中

아들이 세상을 뜬 뒤 영상편지를 본 어머니 장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족들은 "KBS '시사기획 창' 취재에 응하기를 잘한 것 같다. 덕분에 성렬이의 모습이 기록으로 남겨졌고 우리에게도 좋은 추억이 됐다" 고 말했습니다.

지난 2005년 국립암센터가 6개월간 말기 암 환자와 가족 187명에게 물었더니 가족의 27%가 '환자의 질병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긴장 때문에 아프거나 정상기능을 할 수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또 '환자의 질병 때문에 가족의 저축 전부 혹은 대부분을 사용했다'는 답도 54%에 달했습니다.

내 여정의 마지막은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나의 마지막 모습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남은 이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닙니다.

어떤 모습으로 가족들의 기억에 남고 싶으십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떤 죽음을 준비하고 싶으신가요?



[잘 죽는 법 ‘웰다잉’]시리즈
☞ ① 죽음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 ② 죽을 때 비참한 나라 한국
☞ ③ ‘호스피스’를 아시나요
☞ ④ 호스피스는 ‘죽음 대기소’가 아닙니다
☞ ⑤ ‘죽음의 질’ 1위 비결은?
☞ ⑥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 ‘존엄사’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웰다잉] ⑦ ‘나만의 것’이 아닌 ‘나의 죽음’
    • 입력 2016-05-15 11:56:42
    • 수정2016-05-15 16:26:59
    취재K
" 보영아, 엄마가 너 초등학교 다닐 때 안 아팠던 걸 감사해야 해"

지난 달 피지샘 암으로 세상을 떠난 故 권현정(52) 씨가 대학생 외동딸에게 자주 했던 말입니다.

"하루 아침에 사고로 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힘들겠니. 엄마가 이렇게 몇 년씩 투병하는 동안 너도 마음의 준비가 돼서 아마 딱정이가 생겼을 거야. 미안하지만 우리 받아들이자."



고(故) 권현정 씨는 서울 북부병원 완화병동에 입원해 있는 동안 딸 보영 씨와 손뼉치기, 이른바 '쎄쎄쎄'를 자주 했습니다. 딸과 모녀라기보다는 친구같은 모습이었지요.

5년 가까이 엄마의 투병생활을 지켜본 보영 씨도 또래보다 훨씬 어른스러워졌습니다. 권 씨는 "다른 사람들은 교대라도 하는 데 우리 딸은 혼자 병원에서 쪽잠을 잤어요. 내가 그걸 보니까 너무 안쓰럽고 또 고마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올해 초 권 씨는 완화병동에서도 나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마지막을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남편 황인창 씨는 '잘 선택했다'며 집으로 돌아온 권 씨를 꼭 안아줬습니다. 권 씨는 눈물을 보이는 남편을 오히려 위로하며 "너무 좋아. 집이 천국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남편 황인창 씨는 아내에게 자주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권현정 씨. 완화 병동에서 퇴원하던 날만 해도 씩씩하게 걸어 나오더니 몸이 바짝 말라서 욕실에 갈 때면 불쌍해서 눈물이 나온다. … 잠이라도 잘 자야 편하지. 수면제 먹고도 2-3시간밖에 못자니 얼마나 힘들어. '어떡하냐고'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댈 때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어. 여보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 -남편의 편지 中

황 씨는 "갑자기 아내가 세상을 떠나는 것보다는 남은 생을 정리하고 가서 좋습니다. 특히 저희 가족들도 생각할 겨를을 주기 때문에 이런 시간이 참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달 초 벚꽃이 만발하자 권 씨 가족은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꽃구경'에 나섰습니다. 남편 황씨는 "이렇게 그냥 손잡고 며칠 있어보니 굉장한 행복감을 느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권현정 씨는 가족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지난 달 중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엄마, 고생 많이 시켜서 미안해요"

 

"계 탔네요."
올해 초 경기도 용인의 호스피스 병동, 10년 만에 제대로 된 피자를 먹어본다는 박성렬(33) 씨는 무척 즐거워 보였습니다. 피부암으로 투병하는 동안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못 했기 때문이죠.

가족들과 어릴 때 사진을 돌아보며 "어릴 때는 예쁘지 않았어요?"라고 웃어 보이자 어머니는 장금순 씨는 "사진이 다 지워졌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렇게 박성렬 씨는 하루하루를 아주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 9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뼘' 더 사랑하며 준비했던 이별이었습니다.



故 박성렬 씨는 가족들에게 작은 선물을 남겼습니다. 어머니가 자리를 비웠을 때 KBS 카메라를 통해 영상편지를 남겼습니다.

"엄마, 삶이 끝날 때 더 많이 함께 해서 너무 기쁘고 즐거운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사랑한다는 말밖에 할 게 없고, 고생 많이 시켜서 너무 미안해요. 지금까지 엄마한테 잘못했던 것들 용서해줘요." - 故 박성렬 씨 영상편지 中

아들이 세상을 뜬 뒤 영상편지를 본 어머니 장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족들은 "KBS '시사기획 창' 취재에 응하기를 잘한 것 같다. 덕분에 성렬이의 모습이 기록으로 남겨졌고 우리에게도 좋은 추억이 됐다" 고 말했습니다.

지난 2005년 국립암센터가 6개월간 말기 암 환자와 가족 187명에게 물었더니 가족의 27%가 '환자의 질병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긴장 때문에 아프거나 정상기능을 할 수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또 '환자의 질병 때문에 가족의 저축 전부 혹은 대부분을 사용했다'는 답도 54%에 달했습니다.

내 여정의 마지막은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나의 마지막 모습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남은 이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닙니다.

어떤 모습으로 가족들의 기억에 남고 싶으십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떤 죽음을 준비하고 싶으신가요?



[잘 죽는 법 ‘웰다잉’]시리즈
☞ ① 죽음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 ② 죽을 때 비참한 나라 한국
☞ ③ ‘호스피스’를 아시나요
☞ ④ 호스피스는 ‘죽음 대기소’가 아닙니다
☞ ⑤ ‘죽음의 질’ 1위 비결은?
☞ ⑥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 ‘존엄사’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