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⑨ ‘외교 전설’ 키신저는 왜 트럼프를 만났나?

입력 2016.05.2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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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로 사실상 지명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미국 외교의 전설로 불리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회동한 사실이 알려지며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막말과 오락가락 발언으로 세계 각국의 비난을 받은 건 물론, 미국 내 외교 전문가들도 등을 돌려온 트럼프와 '외교 거물' 키신저의 만남은 대선을 앞둔 미국 정가에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트럼프의 일부 외교 정책이 방향을 바꿀 것이라는 이른 기대마저 나온다. 둘 사이에는 어떤 대화가 오간 것일까?

트럼프가 들었을 '외교 전설'의 조언은?

키신저가 트럼프에게 우선적으로 했으리라 보이는 조언은 '중국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트럼프는 그간 중국에 적대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다. 지난 1일, 미국 인디애나주 유세에서는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를 언급하며 "우리는 중국이 미국을 계속 강간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중국에서 수입되는 제품에는 45%의 관세를 물리겠다"며 '중국 때리기'에 나섰다.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18일(현지시간) 오후 뉴욕에 있는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자택을 찾아 1시간가량 비공개로 대화를 나눴다.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18일(현지시간) 오후 뉴욕에 있는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자택을 찾아 1시간가량 비공개로 대화를 나눴다.


이에 반해, 키신저 전 장관은 중국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쪽이다. 키신저는 지난해 9월,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중 양국이 충돌하면 양국 모두에게 불행이며, 어느 쪽도 그 대가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중 갈등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분석에 대해서는 "지난 50년간 그런 말을 들었지만, 모든 미국과 중국의 대통령은 '협력'이라는 같은 정책을 선택했다"고 강조했다.

미국 공화당 대선주자들의 경쟁적인 '중국 때리기' 발언을 "위험을 초래하는 어리석은 짓"(워싱턴포스트 기사)이라고 비판했던 키신저가 트럼프에게도 이런 자신의 주장을 반복해 펼쳤으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키신저가 북핵 문제 해법을 언급했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난 1월,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는 동아시아재단 발간 '정책논쟁'에 기고한 글에서 키신저의 북한에 대한 언급을 소개했다. 키신저가 북핵 해법으로 "북한의 위협만 강조하고 비핵화에만 집중하면 실패할 것이다. 북한은 미국을 믿을 때만 핵을 포기할 것이며, 이는 북한과의 대화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키신저는 또 "북한이 전체주의에서 벗어나 진화하는 것도 동북아 국제정세 발전의 한 부분으로 봐야 한다"고도 밝혔다.



키신저는 이를 위한 중국과의 협력 역시 강조한다. 지난 2014년 9월, 자신의 저서 '세계질서(World Order)'를 통해 키신저는, 북한 문제는 미국과 중국 간 이해가 일치할 수 있는 영역이라며, 미-중 양국이 북한의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 달성을 위한 정책 공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했다고 <미국의 소리> 방송은 보도했다.

키신저의 주장들은 중국을 극도로 압박하는 정책으로 북한 역시 압박해 핵 포기를 끌어내겠다는 트럼프의 기존 주장과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때문에 키신저가 이런 자신의 주장을 트럼프에게 조언하지 않았겠냐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가 회동 전날인 17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간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미치광이(maniac)'이라고 비판해 온 태도를 바꿔 "김정은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한 것도 논의에 영향을 미쳤을지 주목된다.

[연관기사] ☞ 트럼프 "北 김정은과 대화"…"자격 없다" 비판 (2016.5.20)

'외교 전설' 키신저가 트럼프 방문을 받아들인 이유?

'갈팡질팡 외교정책'이라는 비판을 듣던 트럼프가 키신저 박사를 찾아간 것은 외교에 있어 문외한이라는 그간의 비난을 털고, 적극적으로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하겠다는 태도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자신이 공약으로 내건 국익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을 전문가들에게도 인정받아 안정적인 대통령 후보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행보라는 것이다. 키신저가 공화당의 원로인 만큼 공화당 주류에게 다가가기 위한 행보로 보는 시각도 있다.

헨리 키신저(93) 전 미국 국무장관헨리 키신저(93) 전 미국 국무장관


'외교의 전설'로 불리는 키신저가 트럼프의 방문을 받아들인 것 역시 의미가 크다. 그간 워싱턴의 외교 전문가들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대외정책과 즉흥적인 '좌충우돌' 발언을 일삼아 온 트럼프에 대해 비관적 견해를 이어 왔다. 키신저 전 장관 역시 트럼프의 '과격성'을 비판했었다. 지난해 12월, 폭스 비즈니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온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에 대해 키신저는 비판과 함께 자신은 주류 후보들의 외교정책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하기도 했다.

이런 키신저가 트럼프 후보를 만났다는 것은 워싱턴 외교가가 트럼프를 현실적 가능성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사건'이기도 하다. 공화당의 후보로 지명이 거의 확정된 데다,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클린턴과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할 정도로 격차를 좁히며 본선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는 트럼프다. 이런 움직임이 이어질 경우 키신저를 필두로 더 많은 워싱턴 외교 전문가들이 트럼프 측에도 포진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국익주의자'들의 만남...코드 맞았을까?

닉슨, 포드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내며 외교정책을 총괄했던 키신저 전 장관은 철저한 '현실주의자'다. 스스로를 '미국의 국익에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해왔다'고 평하기도 했다. 역시 '국익 우선'을 내건 트럼프가 자신의 외교 노선과 키신저의 정책 방향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1972년 2월, 닉슨 미국 前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 전 주석과 회동하는 모습. 키신저 전 장관은 미·중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세계사의 질서를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1972년 2월, 닉슨 미국 前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 전 주석과 회동하는 모습. 키신저 전 장관은 미·중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세계사의 질서를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키신저는 전 장관은 재직 당시 옛 소련과의 데탕트(detente·긴장완화)를 유도하며 군축협정을 이끌어냈고, 닉슨의 중국 방문과 미-중 수교를 이끌어내는 활약을 해 외교·안보 분야의 '전설'로 불리는 인물이다. 하지만 동티모르 학살을 묵인하고,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지원했으며, 베트남전을 확전하면서 캄보디아 비밀 공습을 승인하는 등 각종 분쟁에 개입해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키신저는 민주당 유력 대선후보인 클린턴에게도 외교적 조언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샌더스 후보는 클린턴 후보가 키신저에게 외교정책의 조언을 듣는다는 점을 "놀랍다"고 언급하며, 캄보디아 비밀 폭격 등을 예로 들어 "키신저는 미국 역사상 가장 해악을 끼친 국무장관 중 한 명"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클린턴은 자신은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다"며 "복잡한 문제를 다루다 보면 (주관적 선호를 떠나) 각 분야 최고 전문가로부터 조언을 듣는 게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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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20 17: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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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로 사실상 지명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미국 외교의 전설로 불리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회동한 사실이 알려지며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막말과 오락가락 발언으로 세계 각국의 비난을 받은 건 물론, 미국 내 외교 전문가들도 등을 돌려온 트럼프와 '외교 거물' 키신저의 만남은 대선을 앞둔 미국 정가에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트럼프의 일부 외교 정책이 방향을 바꿀 것이라는 이른 기대마저 나온다. 둘 사이에는 어떤 대화가 오간 것일까?

트럼프가 들었을 '외교 전설'의 조언은?

키신저가 트럼프에게 우선적으로 했으리라 보이는 조언은 '중국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트럼프는 그간 중국에 적대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다. 지난 1일, 미국 인디애나주 유세에서는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를 언급하며 "우리는 중국이 미국을 계속 강간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중국에서 수입되는 제품에는 45%의 관세를 물리겠다"며 '중국 때리기'에 나섰다.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18일(현지시간) 오후 뉴욕에 있는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자택을 찾아 1시간가량 비공개로 대화를 나눴다.

이에 반해, 키신저 전 장관은 중국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쪽이다. 키신저는 지난해 9월,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중 양국이 충돌하면 양국 모두에게 불행이며, 어느 쪽도 그 대가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중 갈등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분석에 대해서는 "지난 50년간 그런 말을 들었지만, 모든 미국과 중국의 대통령은 '협력'이라는 같은 정책을 선택했다"고 강조했다.

미국 공화당 대선주자들의 경쟁적인 '중국 때리기' 발언을 "위험을 초래하는 어리석은 짓"(워싱턴포스트 기사)이라고 비판했던 키신저가 트럼프에게도 이런 자신의 주장을 반복해 펼쳤으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키신저가 북핵 문제 해법을 언급했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난 1월,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는 동아시아재단 발간 '정책논쟁'에 기고한 글에서 키신저의 북한에 대한 언급을 소개했다. 키신저가 북핵 해법으로 "북한의 위협만 강조하고 비핵화에만 집중하면 실패할 것이다. 북한은 미국을 믿을 때만 핵을 포기할 것이며, 이는 북한과의 대화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키신저는 또 "북한이 전체주의에서 벗어나 진화하는 것도 동북아 국제정세 발전의 한 부분으로 봐야 한다"고도 밝혔다.



키신저는 이를 위한 중국과의 협력 역시 강조한다. 지난 2014년 9월, 자신의 저서 '세계질서(World Order)'를 통해 키신저는, 북한 문제는 미국과 중국 간 이해가 일치할 수 있는 영역이라며, 미-중 양국이 북한의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 달성을 위한 정책 공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했다고 <미국의 소리> 방송은 보도했다.

키신저의 주장들은 중국을 극도로 압박하는 정책으로 북한 역시 압박해 핵 포기를 끌어내겠다는 트럼프의 기존 주장과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때문에 키신저가 이런 자신의 주장을 트럼프에게 조언하지 않았겠냐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가 회동 전날인 17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간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미치광이(maniac)'이라고 비판해 온 태도를 바꿔 "김정은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한 것도 논의에 영향을 미쳤을지 주목된다.

[연관기사] ☞ 트럼프 "北 김정은과 대화"…"자격 없다" 비판 (2016.5.20)

'외교 전설' 키신저가 트럼프 방문을 받아들인 이유?

'갈팡질팡 외교정책'이라는 비판을 듣던 트럼프가 키신저 박사를 찾아간 것은 외교에 있어 문외한이라는 그간의 비난을 털고, 적극적으로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하겠다는 태도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자신이 공약으로 내건 국익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을 전문가들에게도 인정받아 안정적인 대통령 후보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행보라는 것이다. 키신저가 공화당의 원로인 만큼 공화당 주류에게 다가가기 위한 행보로 보는 시각도 있다.

헨리 키신저(93) 전 미국 국무장관

'외교의 전설'로 불리는 키신저가 트럼프의 방문을 받아들인 것 역시 의미가 크다. 그간 워싱턴의 외교 전문가들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대외정책과 즉흥적인 '좌충우돌' 발언을 일삼아 온 트럼프에 대해 비관적 견해를 이어 왔다. 키신저 전 장관 역시 트럼프의 '과격성'을 비판했었다. 지난해 12월, 폭스 비즈니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온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에 대해 키신저는 비판과 함께 자신은 주류 후보들의 외교정책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하기도 했다.

이런 키신저가 트럼프 후보를 만났다는 것은 워싱턴 외교가가 트럼프를 현실적 가능성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사건'이기도 하다. 공화당의 후보로 지명이 거의 확정된 데다,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클린턴과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할 정도로 격차를 좁히며 본선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는 트럼프다. 이런 움직임이 이어질 경우 키신저를 필두로 더 많은 워싱턴 외교 전문가들이 트럼프 측에도 포진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국익주의자'들의 만남...코드 맞았을까?

닉슨, 포드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내며 외교정책을 총괄했던 키신저 전 장관은 철저한 '현실주의자'다. 스스로를 '미국의 국익에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해왔다'고 평하기도 했다. 역시 '국익 우선'을 내건 트럼프가 자신의 외교 노선과 키신저의 정책 방향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1972년 2월, 닉슨 미국 前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 전 주석과 회동하는 모습. 키신저 전 장관은 미·중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세계사의 질서를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키신저는 전 장관은 재직 당시 옛 소련과의 데탕트(detente·긴장완화)를 유도하며 군축협정을 이끌어냈고, 닉슨의 중국 방문과 미-중 수교를 이끌어내는 활약을 해 외교·안보 분야의 '전설'로 불리는 인물이다. 하지만 동티모르 학살을 묵인하고,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지원했으며, 베트남전을 확전하면서 캄보디아 비밀 공습을 승인하는 등 각종 분쟁에 개입해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키신저는 민주당 유력 대선후보인 클린턴에게도 외교적 조언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샌더스 후보는 클린턴 후보가 키신저에게 외교정책의 조언을 듣는다는 점을 "놀랍다"고 언급하며, 캄보디아 비밀 폭격 등을 예로 들어 "키신저는 미국 역사상 가장 해악을 끼친 국무장관 중 한 명"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클린턴은 자신은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다"며 "복잡한 문제를 다루다 보면 (주관적 선호를 떠나) 각 분야 최고 전문가로부터 조언을 듣는 게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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