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6시간에 15만 원” 해도 너무하는 바가지

입력 2016.05.21 (09:03) 수정 2016.05.2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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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소 앞 '울면'의 기억

12년 전 훈련소 입소 직전 먹었던 '울면'의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왜 그 음식을 시켰는지, 정확히 얼마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맛에 비해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는 느낌은 또렷합니다. 울고 싶은 맛이었으니까요. '이래서 울면 이구나….' 거의 남기고 들어갔던 장면이 아직 생생합니다.

입대라는 심리적 압박 속에 밥맛이 좋을 리 없었겠죠. 하지만 10년이 넘도록 잊히지 않는 바가지 기억, 저만 그런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첫 번째 기사가 나간 후 많은 분이 군부대 주변에서 바가지를 당했던 경험을 공유하며 공분했습니다.

■ 한나절 대실에 15만 원

수영장 딸린 고급 호텔 얘기가 아닙니다. 훈련소 인근 숙박시설들의 대실 비용입니다.

2012년 훈련병 영외면회가 부활한 논산훈련소 일대에는 매주 수요일이 대목입니다. 평균 1,200명의 훈련병이 영외면회를 나와, 가족까지 수천 명이 훈련소 인근에서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며 소비를 하기 때문인데요.

이를 틈타 새로운 시장이 생겼습니다. 장병과 가족들을 상대로 한 숙소 대실 영업입니다. 훈련소가 있는 연무읍 일대에는 펜션 간판을 단 숙박업소들이 성업 중입니다.

문제는 가격입니다. 장병들이 부대 밖으로 나오는 시간은 오전 11시, 복귀 시간은 오후 5시 반이니까 6시간가량을 밖에서 머물 수 있는데 이 시간 동안 방을 쓰는 비용이 보통 10만 원에서 12만 원, 조금 큰 방은 15만 원씩이나 합니다. 지방의 하루 여관 대실료보다 2~3배는 비쌉니다. 또 올해 기준 이등병 월급이 14만 8천 원이니까 한 번 방을 빌리는데 이등병 한 달 월급이 고스란히 쓰이는 셈입니다.

시설은 어떤지 확인해 봤습니다. 면회객을 설득해 들어간 12만 원짜리 방. 컨테이너를 개조한 곳인데 4명이 상을 펴고 앉으니 다른 사람은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비좁았습니다. 집기도 낡은 식기와 밥솥, 20인치 정도 되는 TV가 전부였습니다. 일부는 창문조차 없고, 온수가 나오지 않는 방도 있었습니다.

네 명의 가족이 둘러 앉은 방, 밥상 바로 옆에 양변기가 보인다.네 명의 가족이 둘러 앉은 방, 밥상 바로 옆에 양변기가 보인다.


온수가 나오지 않는 모습온수가 나오지 않는 모습


비싸고 시설이 좋지 않으면 이용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병과 가족들의 선택권은 많지 않습니다. 위수지역이 논산에 한정돼있고 면회시간이 상대적으로 짧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10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방을 빌리고 있었습니다.

■ "일주일에 한 번인데 뭐가 비싸냐"…. 담합 의혹도

"청소비 들어가야지, 기름도 때야지, 여름이면 에어컨도 켜줘야지, 수도료 내야지, 안 들어가는 게 어딨어. 일주일에 딱 한 번 영업하는데, 그것 안 받고 어떻게 일해" 상인들의 항변입니다. 투자비를 회수하려면 10만 원은 받아야 수익이 난다는 주장입니다.

시장경제 원리로 설명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장병은 많은데 방이 적다 보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상한 건 최근 숙박업소들이 폭증하고 있는데도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같이 10만 원, 12만 원, 많게는 15만 원을 요구했습니다. 한 펜션에 들어가 흥정에 나서자 일대 업소들의 가격이 비슷한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4시간 정도만 이용할 건데 너무 비싸요."
"5만 원에 줄께 그럼. 아무 말도 말고 다른 사람한테는"
"왜요"
"아이고 뭐라고 해요. 협회가 있어서 (방값을) 너무 싸게 못 주게 해요."
"얼마까지 받으라고 해요. 그러면?"
"저기 9만 원까지는 받아도 돼, 9만 원보다 더 싸게 주면 (주변) 방값 내린다고 뭐라고 해"


상인들이 집단 담합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물론 상인회 측은 펄쩍 뛰었습니다. 상인회 측은 지역 펜션 업주들과 매월 한 차례씩 모임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격은 업소들의 자율에 맡기고 있다며 짬짜미 의혹을 일축했습니다.

오히려 펜션 업주들을 상대로 '친절' 교육과 면회객들을 맞지 못한 장병들을 상대로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며 담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대부분 미신고 불법영업, 눈감은 행정기관

취재 과정에서 이 업소들이 대부분 미신고 시설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현재 육군훈련소가 있는 논산 연무지역에서 '펜션'간판을 달고 사실상 숙박영업을 하는 곳은 80여 곳. 하지만 자치단체에 합법적으로 '숙박업'이나 '민박업'으로 신고된 곳은 24곳에 불과했습니다.

'숙박업'은 용도지역상 허가가 날 수 없고, '민박업'으로 등록하려면 건물 총바닥면적이 230㎡보다 작아야 하는데 이를 충족할 수 없자 간판만 달고 불법영업을 하고 있는 겁니다.

논산시청 공무원과 ‘숙박·민박등록 대장’에 적힌 명단과 일대 펜션을 대조하는 모습논산시청 공무원과 ‘숙박·민박등록 대장’에 적힌 명단과 일대 펜션을 대조하는 모습


지자체에 등록이 안 됐으니 자치단체가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서비스 안전교육과 위생점검을 받지 않고, 화재보험 의무가입 대상도 아니어서 재난 시 피해 보상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세무서에 민박이나 숙박업으로 사업자 등록을 할 수 없으니, 탈세 우려도 크지만 자치단체는 단속 규정이 없다며 장병과 가족들을 상대로 한 바가지 영업을 사실상 묵인하고 있습니다.

■ 바가지 근절 없이 관광지 개발??

매주 수요일 육군훈련소에서 쏟아져 나오는 면회객과 훈련병들매주 수요일 육군훈련소에서 쏟아져 나오는 면회객과 훈련병들


충청남도와 논산시는 최근 보도자료를 내고 육군훈련소를 활용해 논산을 안보관광의 중심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배출되는 장병은 연간 13만 명, 입소와 면회객들까지 족히 100만 명이 논산을 오가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들을 관광객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바가지를 쓰고 전국으로 흩어질 이들이 좋은 기억을 갖고 논산을 다시 찾을지 상인들과 자치단체가 장기적 안목을 갖고 생각해 볼 일입니다.

육군훈련소 영외면회는 바가지 논란 속에 1998년 폐지됐다가 2012년 부활했습니다.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논산시와 지역주민들의 숙원 사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서비스 개선 없이 지금과 같은 바가지요금 논란이 이어진다면 이번 영외면회 역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연관기사] ☞ [뉴스9] 6시간에 15만 원, 아들 면회 갔다가 ‘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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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6시간에 15만 원” 해도 너무하는 바가지
    • 입력 2016-05-21 09:03:32
    • 수정2016-05-21 09:05:26
    취재후·사건후
■ 훈련소 앞 '울면'의 기억 12년 전 훈련소 입소 직전 먹었던 '울면'의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왜 그 음식을 시켰는지, 정확히 얼마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맛에 비해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는 느낌은 또렷합니다. 울고 싶은 맛이었으니까요. '이래서 울면 이구나….' 거의 남기고 들어갔던 장면이 아직 생생합니다. 입대라는 심리적 압박 속에 밥맛이 좋을 리 없었겠죠. 하지만 10년이 넘도록 잊히지 않는 바가지 기억, 저만 그런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첫 번째 기사가 나간 후 많은 분이 군부대 주변에서 바가지를 당했던 경험을 공유하며 공분했습니다. ■ 한나절 대실에 15만 원 수영장 딸린 고급 호텔 얘기가 아닙니다. 훈련소 인근 숙박시설들의 대실 비용입니다. 2012년 훈련병 영외면회가 부활한 논산훈련소 일대에는 매주 수요일이 대목입니다. 평균 1,200명의 훈련병이 영외면회를 나와, 가족까지 수천 명이 훈련소 인근에서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며 소비를 하기 때문인데요. 이를 틈타 새로운 시장이 생겼습니다. 장병과 가족들을 상대로 한 숙소 대실 영업입니다. 훈련소가 있는 연무읍 일대에는 펜션 간판을 단 숙박업소들이 성업 중입니다. 문제는 가격입니다. 장병들이 부대 밖으로 나오는 시간은 오전 11시, 복귀 시간은 오후 5시 반이니까 6시간가량을 밖에서 머물 수 있는데 이 시간 동안 방을 쓰는 비용이 보통 10만 원에서 12만 원, 조금 큰 방은 15만 원씩이나 합니다. 지방의 하루 여관 대실료보다 2~3배는 비쌉니다. 또 올해 기준 이등병 월급이 14만 8천 원이니까 한 번 방을 빌리는데 이등병 한 달 월급이 고스란히 쓰이는 셈입니다. 시설은 어떤지 확인해 봤습니다. 면회객을 설득해 들어간 12만 원짜리 방. 컨테이너를 개조한 곳인데 4명이 상을 펴고 앉으니 다른 사람은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비좁았습니다. 집기도 낡은 식기와 밥솥, 20인치 정도 되는 TV가 전부였습니다. 일부는 창문조차 없고, 온수가 나오지 않는 방도 있었습니다. 네 명의 가족이 둘러 앉은 방, 밥상 바로 옆에 양변기가 보인다. 온수가 나오지 않는 모습 비싸고 시설이 좋지 않으면 이용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병과 가족들의 선택권은 많지 않습니다. 위수지역이 논산에 한정돼있고 면회시간이 상대적으로 짧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10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방을 빌리고 있었습니다. ■ "일주일에 한 번인데 뭐가 비싸냐"…. 담합 의혹도 "청소비 들어가야지, 기름도 때야지, 여름이면 에어컨도 켜줘야지, 수도료 내야지, 안 들어가는 게 어딨어. 일주일에 딱 한 번 영업하는데, 그것 안 받고 어떻게 일해" 상인들의 항변입니다. 투자비를 회수하려면 10만 원은 받아야 수익이 난다는 주장입니다. 시장경제 원리로 설명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장병은 많은데 방이 적다 보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상한 건 최근 숙박업소들이 폭증하고 있는데도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같이 10만 원, 12만 원, 많게는 15만 원을 요구했습니다. 한 펜션에 들어가 흥정에 나서자 일대 업소들의 가격이 비슷한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4시간 정도만 이용할 건데 너무 비싸요." "5만 원에 줄께 그럼. 아무 말도 말고 다른 사람한테는" "왜요" "아이고 뭐라고 해요. 협회가 있어서 (방값을) 너무 싸게 못 주게 해요." "얼마까지 받으라고 해요. 그러면?" "저기 9만 원까지는 받아도 돼, 9만 원보다 더 싸게 주면 (주변) 방값 내린다고 뭐라고 해" 상인들이 집단 담합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물론 상인회 측은 펄쩍 뛰었습니다. 상인회 측은 지역 펜션 업주들과 매월 한 차례씩 모임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격은 업소들의 자율에 맡기고 있다며 짬짜미 의혹을 일축했습니다. 오히려 펜션 업주들을 상대로 '친절' 교육과 면회객들을 맞지 못한 장병들을 상대로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며 담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대부분 미신고 불법영업, 눈감은 행정기관 취재 과정에서 이 업소들이 대부분 미신고 시설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현재 육군훈련소가 있는 논산 연무지역에서 '펜션'간판을 달고 사실상 숙박영업을 하는 곳은 80여 곳. 하지만 자치단체에 합법적으로 '숙박업'이나 '민박업'으로 신고된 곳은 24곳에 불과했습니다. '숙박업'은 용도지역상 허가가 날 수 없고, '민박업'으로 등록하려면 건물 총바닥면적이 230㎡보다 작아야 하는데 이를 충족할 수 없자 간판만 달고 불법영업을 하고 있는 겁니다. 논산시청 공무원과 ‘숙박·민박등록 대장’에 적힌 명단과 일대 펜션을 대조하는 모습 지자체에 등록이 안 됐으니 자치단체가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서비스 안전교육과 위생점검을 받지 않고, 화재보험 의무가입 대상도 아니어서 재난 시 피해 보상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세무서에 민박이나 숙박업으로 사업자 등록을 할 수 없으니, 탈세 우려도 크지만 자치단체는 단속 규정이 없다며 장병과 가족들을 상대로 한 바가지 영업을 사실상 묵인하고 있습니다. ■ 바가지 근절 없이 관광지 개발?? 매주 수요일 육군훈련소에서 쏟아져 나오는 면회객과 훈련병들 충청남도와 논산시는 최근 보도자료를 내고 육군훈련소를 활용해 논산을 안보관광의 중심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배출되는 장병은 연간 13만 명, 입소와 면회객들까지 족히 100만 명이 논산을 오가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들을 관광객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바가지를 쓰고 전국으로 흩어질 이들이 좋은 기억을 갖고 논산을 다시 찾을지 상인들과 자치단체가 장기적 안목을 갖고 생각해 볼 일입니다. 육군훈련소 영외면회는 바가지 논란 속에 1998년 폐지됐다가 2012년 부활했습니다.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논산시와 지역주민들의 숙원 사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서비스 개선 없이 지금과 같은 바가지요금 논란이 이어진다면 이번 영외면회 역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연관기사] ☞ [뉴스9] 6시간에 15만 원, 아들 면회 갔다가 ‘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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