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거리’에는 수학적 비밀이 있다?

입력 2016.05.27 (16:27) 수정 2016.05.2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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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기사] ☞ [뉴스9] ‘걷고 싶은 거리’에는 수학적 비밀이 있다?

요즘 가장 핫하다는 거리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서울의 홍대 앞 거리와 신사동 가로수길, 명동, 이태원 등지에는 하루 평균 수십만에서 백만 명에 가까운 방문객들이 다녀간다. 즐길거리, 볼거리가 가득한 데다가 최근에는 중국 관광객까지 밀려들면서 주말에는 발 디딜 틈 없는 거리로 유명하다.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을까? 당연한 걸 왜 묻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자꾸만 가고 싶고 또 걷고 싶게 만드는 거리의 비밀을 수학적으로 분석해봤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좌) 유현준 교수가 발표한 ‘도심 내 걷고 싶은 거리의 이벤트 밀도 연구’논문(우)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좌) 유현준 교수가 발표한 ‘도심 내 걷고 싶은 거리의 이벤트 밀도 연구’논문(우)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했다. 서울의 대표 거리 5곳(홍대, 신사동 가로수길, 명동, 강남대로, 테헤란로)에서 보행자를 '걷고 싶게 만드는' 요인을 분석했는데, 원인은 바로 '이벤트 밀도'에 있었다. '이벤트 밀도'란 '일정한 거리(100m)에 면해있는 출입구 수'를 뜻한다.

홍대 피카소 거리 내 100미터 구간에 존재하는 출입구 수 (사진: 유현준)홍대 피카소 거리 내 100미터 구간에 존재하는 출입구 수 (사진: 유현준)


홍대 앞 피카소 거리 100미터 구간에 접해있는 건물들을 들여다보니 고만고만한 가게들이 밀집해있다. 업종도 다양해서 의류, 소품, 식당, 카페, 점집, 술집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다. 보행자가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 수를 세어봤더니 모두 20개였다.

같은 방법으로 가로수길과 명동의 100미터 구간 출입구 수는 22개, 강남대로 17개, 테헤란로는 9개나 나왔다. 출입구가 많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띠는 것일까?



커다란 건물 위주의 테헤란로와 작은 상점이 밀집돼있는 가로수길을 각각 걸어보면 보행자는 실제로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거리를 걸을 때 우리는 어떤 가게에 들어갈지, 안 들어갈지 고민하게 된다. 이렇게 선택을 하는 것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출입구 수가 한 곳일 때는 들어가거나, 말거나 이렇게 2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또 출입구가 2곳일 때는 경우의 수가 4가지로 늘어난다.



학창시절 수학시간에 '선택할 수 있는 경우'를 'n'이라고 했을 때 발생하는 전체 경우의 수는 '2의 n 제곱'이라고 배웠다. 따라서 출입구 수가 22개로 가장 많은 가로수길과 명동의 경우 '2의 22제곱'에 해당되는 '419만 4,304가지' 경우의 수가 생겨난다. 반면 테헤란로는 경우의 수가 512가지로 가장 적다. 결국 가로수길이나 명동을 걸을 때는 테헤란로보다 8,192배나 다양한 선택이 가능해진다.



테헤란로는 강남지역을 가로지르는 왕복 10차선의 도로인데 대형 금융기관들이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도시 계획에 의해 조성된 길이라 필지의 크기가 크고 건물 사이의 간격도 넓다. 강남대로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강남역 주변의 유동인구가 워낙 많기 때문에 소비재 점포들이 테헤란로보다 많이 자리 잡아 이벤트 밀도가 더 높게 나타났다.



신사동 가로수길은 1980년대 인사동 화랑들이 이전해오면서 조성되기 시작했고 단독 주택을 리모델링한 작은 상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오랜 시간 소규모 자본들에 의해 개발됐기 때문에 다양한 업종들이 좁은 거리 주변을 채우고 있다. 명동이나 홍대도 마찬가지다.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은 거리를 걷게 되면 보행자는 다양한 채널의 텔레비전을 보는 것과 같다. 원하는 채널을 마음껏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 두 방송만 나오는 텔레비전이라면 금세 지루해진다. 실제 계산 결과 가로수길과 명동에서는 4.5초마다 다른 점포를 만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지만, 테헤란로를 걸을 때는 시간 간격이 11초로 길어진다. 걷고 싶은 거리에는 나름의 수학적 이유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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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6-05-27 22:05:24
    취재K
[연관기사] ☞ [뉴스9] ‘걷고 싶은 거리’에는 수학적 비밀이 있다? 요즘 가장 핫하다는 거리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서울의 홍대 앞 거리와 신사동 가로수길, 명동, 이태원 등지에는 하루 평균 수십만에서 백만 명에 가까운 방문객들이 다녀간다. 즐길거리, 볼거리가 가득한 데다가 최근에는 중국 관광객까지 밀려들면서 주말에는 발 디딜 틈 없는 거리로 유명하다.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을까? 당연한 걸 왜 묻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자꾸만 가고 싶고 또 걷고 싶게 만드는 거리의 비밀을 수학적으로 분석해봤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좌) 유현준 교수가 발표한 ‘도심 내 걷고 싶은 거리의 이벤트 밀도 연구’논문(우)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했다. 서울의 대표 거리 5곳(홍대, 신사동 가로수길, 명동, 강남대로, 테헤란로)에서 보행자를 '걷고 싶게 만드는' 요인을 분석했는데, 원인은 바로 '이벤트 밀도'에 있었다. '이벤트 밀도'란 '일정한 거리(100m)에 면해있는 출입구 수'를 뜻한다. 홍대 피카소 거리 내 100미터 구간에 존재하는 출입구 수 (사진: 유현준) 홍대 앞 피카소 거리 100미터 구간에 접해있는 건물들을 들여다보니 고만고만한 가게들이 밀집해있다. 업종도 다양해서 의류, 소품, 식당, 카페, 점집, 술집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다. 보행자가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 수를 세어봤더니 모두 20개였다. 같은 방법으로 가로수길과 명동의 100미터 구간 출입구 수는 22개, 강남대로 17개, 테헤란로는 9개나 나왔다. 출입구가 많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띠는 것일까? 커다란 건물 위주의 테헤란로와 작은 상점이 밀집돼있는 가로수길을 각각 걸어보면 보행자는 실제로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거리를 걸을 때 우리는 어떤 가게에 들어갈지, 안 들어갈지 고민하게 된다. 이렇게 선택을 하는 것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출입구 수가 한 곳일 때는 들어가거나, 말거나 이렇게 2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또 출입구가 2곳일 때는 경우의 수가 4가지로 늘어난다. 학창시절 수학시간에 '선택할 수 있는 경우'를 'n'이라고 했을 때 발생하는 전체 경우의 수는 '2의 n 제곱'이라고 배웠다. 따라서 출입구 수가 22개로 가장 많은 가로수길과 명동의 경우 '2의 22제곱'에 해당되는 '419만 4,304가지' 경우의 수가 생겨난다. 반면 테헤란로는 경우의 수가 512가지로 가장 적다. 결국 가로수길이나 명동을 걸을 때는 테헤란로보다 8,192배나 다양한 선택이 가능해진다. 테헤란로는 강남지역을 가로지르는 왕복 10차선의 도로인데 대형 금융기관들이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도시 계획에 의해 조성된 길이라 필지의 크기가 크고 건물 사이의 간격도 넓다. 강남대로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강남역 주변의 유동인구가 워낙 많기 때문에 소비재 점포들이 테헤란로보다 많이 자리 잡아 이벤트 밀도가 더 높게 나타났다. 신사동 가로수길은 1980년대 인사동 화랑들이 이전해오면서 조성되기 시작했고 단독 주택을 리모델링한 작은 상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오랜 시간 소규모 자본들에 의해 개발됐기 때문에 다양한 업종들이 좁은 거리 주변을 채우고 있다. 명동이나 홍대도 마찬가지다.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은 거리를 걷게 되면 보행자는 다양한 채널의 텔레비전을 보는 것과 같다. 원하는 채널을 마음껏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 두 방송만 나오는 텔레비전이라면 금세 지루해진다. 실제 계산 결과 가로수길과 명동에서는 4.5초마다 다른 점포를 만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지만, 테헤란로를 걸을 때는 시간 간격이 11초로 길어진다. 걷고 싶은 거리에는 나름의 수학적 이유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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